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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엄마의 오타 46

227
2019-08-07 06:44:40 수정일 : 2019-08-07 11:05:25 180.♡.245.147
히다리키키

1565127831762.jpg

너무 오랜만에 찾은 엄마의 방입니다. 알록달록한 조화가 벽 한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 밑에 빨래줄처럼 늘어뜨린 털실에 자식들과 손주들의 사진이 대롱대롱 널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 두뼘 크기의 화선지에 쓰여진 붓글씨가 보입니다. '매일 조하진다'


올해 여든 넷 우리 엄마는 한글 맞춤법을 틀릴 때가 많습니다. 일제 시대에 소학교를 다니다 만 게 전부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노인교실에서 배운 어설픈 붓글씨로 쓴 '매일 조하진다'는 '매일 좋아진다'의 오타였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매일 좋아진다 보다 매일 조하진다가 더 좋습니다. 더 정겹습니다.


문득 엄마의 오타와 관련된 추억이 몇가지 떠오릅니다. 하나는 아마 내가 열 일곱살때 쯤으로 기억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습니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밤새 놀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이미 일 나가시고 없었습니다. 덩그러니 밥상만 차려져 있었습니다.


신문지로 덮어둔 밥상에는 미역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쪽지에 꾹꾹 눌러 쓴 손편지가 있었습니다. '오늘이 어매 생일이따 가치 밥머글라 했는데 니가 안와 혼자 머것다. 니도 머거라' 그걸 읽는데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엄마.. 엄마.. 흐느끼면서 그 밥을 싹 먹었치웠습니다. 목이 메여 캑캑거리며 그 밥을 싹 먹어치웠습니다.


또 하나는 스물아홉때 쯤인걸로 기억됩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하던 내게 끼니는 여간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그걸 알고 계셨습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라면박스 하나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가 보내준 택배였습니다.


테이프로 칭칭 동여맨 박스를 힘겹게 열었습니다. 배추 김치 한 봉지, 깻잎 김치 한 봉지, 무우 말랭이 한 봉지, 감자 열댓개, 고구마 열댓개.. 그리고 꾹꾹 눌러쓴 엄마의 손편지 한 장. '아드라 객지에서 고새이 만타. 힘드러도 참고 열씨미 해래이...' 그걸 읽는데 또 왈칵. 한동안 그 반찬 덕에 밥 먹을때마다 목이 메였습니다.


잠깐이지만 엄마를 보고 왔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보고 싶어 해놓고 막상 만나선 왜그리 무뚝뚝 했는지 뒤늦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누나나 형은 다들 그리 곰살맞게 잘 하는데 명색이 막내란 놈이.. 어쩌면 우리 엄마의 가장 큰 오타는 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히다리키키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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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46]
뚜비
IP 211.♡.46.74
08-07 2019-08-07 06:48:24
·
아침부터 뭉클...
감사합니다...... 좋은글이네요.
삭제 되었습니다.
wkwkrskan
IP 220.♡.207.203
08-07 2019-08-07 07:00:42
·
오우~ 갑자기 엄마 보고싶습니다. 이따 전화 한통이라도 드려야겠어요.
guwory
IP 39.♡.47.214
08-07 2019-08-07 07:58:36
·
이미 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재롱부리기가 힘들면.
손주 재롱부리게 하는게 최고죠
히다리키키
IP 180.♡.245.147
08-07 2019-08-07 11:07:11
·
안 그래도 애들한테 시키긴 했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엄마한테 안겨보기도 하고, 살갑게 부비고도 싶었는데..
오즈
IP 219.♡.204.108
08-07 2019-08-07 08:36:22
·
글 잘써시는 횟집 사장님. 오늘도 감응합니다.
쟘스
IP 27.♡.53.238
08-07 2019-08-07 08:55:21
·
타지에 있는데 갑자기 울 엄마 보고 싶네요 ㅠㅠㅠㅠㅠ
삭제 되었습니다.
히다리키키
IP 180.♡.245.147
08-07 2019-08-07 11:07:38
·
네. 가장 큰 오타ㅜㅜ
블랙버드4
IP 14.♡.102.191
08-07 2019-08-07 10:43:32
·
뵐 수 있는 어머니가 계셔서 부럽습니다.
뒤늦게 이제서야 알게 되는 엄마의 마음...
히다리키키
IP 180.♡.245.147
08-07 2019-08-07 11:08:37
·
저도 실감이 전혀 나지 않지만 곧 뒤늦은 후회를 하며 가슴을 치는 날이 오겠죠.ㅜㅜ
오스카
IP 121.♡.106.246
08-07 2019-08-07 11:14:37
·
제 메모에 '수필가'로 되어있으신 분, 오늘도 여전히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danLee
IP 221.♡.36.67
08-07 2019-08-07 11:41:59
·
타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저글이 너무 가슴에 스며드네요..
사무실인데 ㅠㅠ 으아...
이완맥그리거
IP 220.♡.73.118
08-07 2019-08-07 11:44:11
·
눈물 찡하네요..
임자있는몸
IP 119.♡.234.115
08-07 2019-08-07 11:59:13
·
잔잔하게 감동이 옵니다. 엄마라는 단어가....
염장샷
IP 175.♡.78.109
08-07 2019-08-07 11:59:58
·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만난날
IP 118.♡.255.212
08-07 2019-08-07 12:04:32
·
마지막줄로 눈물나게 하시면 어떡해요 ㅠㅠ 잘 참다가... 잘 봤습니다. 엄마한테 뭘 할지 생각해봐야겠네요.
hoonlight
IP 124.♡.108.8
08-07 2019-08-07 12:13:03
·
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번 글도 읽고서 생각 많이 했는데 이번 글도...
NO7LYJ
IP 118.♡.4.222
08-07 2019-08-07 12:36:50
·
오타일 수는 있어도 고치려 하시진 않으실 겁니다.
히다리키키
IP 110.♡.94.70
08-07 2019-08-07 15:30:34
·
그러게요.. 엄마는 품은 오타도 다 품을만큼 넉넉한 것 같습니다
LeMY
IP 218.♡.253.115
08-07 2019-08-07 13:15:47
·
이제 글만보고 작성자를 알 수 있겠네요. 글 잘 보고있습니다.
숨기고 지내던 여러가지 감정들을 강제로 꺼내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섹검떡검
IP 175.♡.22.242
08-07 2019-08-07 13:17:10
·
우리는 모두 한때 부모님의 오타였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분들이라면 공감하실듯
히다리키키
IP 110.♡.94.70
08-07 2019-08-07 15:32:13
·
공감 공감입니다
짜짜로닝
IP 106.♡.11.148
08-07 2019-08-07 13:24:12
·
ㅠㅠ 그래도 띄어쓰기는 잘하시네요.
저희 부모님 포함 장인 장모님 모두 띄어쓰기가 실종된 문자를 보내시는데 읽고 나면 머리가 띵합니다.
히다리키키
IP 110.♡.94.70
08-07 2019-08-07 15:32:58
·
띄어쓰기 잘 못하세요. 문자 같은 건 아예 보낼줄도 모르시고요ㅜㅜ
츄파_츕스
IP 27.♡.242.80
08-07 2019-08-07 13:30:38
·
어머님이 생각나네요. 잘 읽고 갑니다.
통통꿀꿀
IP 121.♡.157.151
08-07 2019-08-07 13:33:52
·
수필집 한권 내셔야겠어요
블랙비스킷
IP 175.♡.35.95
08-07 2019-08-07 13:38:21
·
마지막에

이젠 볼수없는 어무이...

이럴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나중에 후회없도록 잘해드리세요!!
kisstherain
IP 58.♡.123.99
08-07 2019-08-07 13:46:58 / 수정일: 2019-08-07 13:55:41
·
점심먹고 스벅에서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며 이 글을 읽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왜 저를 울리시는거죠 ? ㅜㅜ
아스라희
IP 112.♡.50.254
08-07 2019-08-07 13:51:29
·
아.......뭡니까 ㅠ 글 너무잘쓰시네요. 중간에 한번, 마지막에 한번 확 와닿네요. 좋은하루되세요.
빵똥
IP 121.♡.143.182
08-07 2019-08-07 13:59:52
·
저희 어머니도 어려운 형편에 초등학교 못 나오셔서 맞춤법이 서투르십니다.ㅠ

타사이트에 감동적인 글 공유해도 될까요?
히다리키키
IP 110.♡.94.70
08-07 2019-08-07 15:33:58
·
네 그러셔도 됩니다~
andre518
IP 211.♡.48.120
08-07 2019-08-07 14:11:22
·
아유.. 참.. ㅠ..
냥덕후
IP 124.♡.226.11
08-07 2019-08-07 14:16:35 / 수정일: 2019-08-07 14:17:12
·
글쓴님께서 어머니의 오타를 정겨워하시듯이 (글쓴님이 오타라면) 어머니께도 글쓴님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오타가 아닐까요? 마음이 담긴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히다리키키
IP 110.♡.94.70
08-07 2019-08-07 15:36:01
·
그렇겠죠. 나 역시 소똥이나 개똥이의 단점도 사랑스럽게 보이니까요. 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chicken84
IP 175.♡.170.130
08-07 2019-08-07 14:27:17
·
글을 읽기가 힘드네요. 눈물이 나서.
나중에 후회를 덜 하기위해서라도 엄니와 좋은 시간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님의 어머님과 비슷한 세월을 겪어오셨을 중증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엄니가 겁나게 생각납니다.
히다리키키
IP 110.♡.94.70
08-07 2019-08-07 15:39:05
·
댓글에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힘내세요. 어머님도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routeK
IP 117.♡.12.169
08-07 2019-08-07 15:35:24
·
우리엄마도 보고 싶네요.

사리의추억
IP 203.♡.238.95
08-07 2019-08-07 15:48:57
·
교보문고에서 퍼플북인가...
여튼 도서 출판을 도와주는 서비스가 있어요.
한번 두드려보심이...

그나저나 눈물이 ㅠㅠ
새틴
IP 211.♡.86.160
08-07 2019-08-07 15:54:34
·
잘해드려야지하면서 잘안되네요...
오늘도 반성합니다..
홍글이
IP 203.♡.46.102
08-07 2019-08-07 16:30:02 / 수정일: 2019-08-07 16:30:52
·
글쓴이 분을 오타라고 생각하셨을리 없습니다.
애들 키워보면서 느끼셨겠지만,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 아닌가요...

개굴개굴이
IP 121.♡.124.82
08-07 2019-08-07 16:42:11
·
눈물이 왈칵 나네요.......
hanzo29
IP 110.♡.52.172
08-07 2019-08-07 17:13:07
·
저도 공감됩니다.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영 못하는 제가 밉네요 ㅠ
와이즈멘
IP 116.♡.91.91
08-07 2019-08-07 17:13:30
·
저도 갑자기 이 글 읽고서 갑자기 엄마 생각나서 본가에 다녀왔네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한가한
IP 223.♡.169.58
08-07 2019-08-07 18:33:51
·
잔잔하게 읽다가 마지막에 쎈걸로 훅 들어오네요 ㅜ.ㅜ
므그므그
IP 117.♡.12.76
08-07 2019-08-07 18:48:45
·
좋은글 나눔 감사합니다.
마지막줄..
오타쿠..가 아니신지요?(아이디로 추정)
히다리키키
IP 110.♡.94.70
08-08 2019-08-08 10:17:42
·
오타쿠가 될만한 열정도 없어요ㅜㅜ
원밀
IP 175.♡.184.68
08-08 2019-08-08 04:07:51
·
아 마지막 줄때문에 글을 남깁니다. 필력은 마무리라 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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