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으로 오늘 각종 커뮤니티에서 광범위한 저항을 받고 있어서
저는 오히려 조금 놀랐습니다.
어느 정도는 단순 "소설"이라기 보다는 꽤나 설득력있는 배경이 있다고는 생각해왔습니다만...
아무래도 한글이 "독창적"이다, 세종께선 "너무나도 위대하다", 기록도 "확실하다"
라는 고정관념의 벽을 넘어서기 꽤나 어려워 보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배경이해를 조금 고려해 보면 이렇습니다.
1. 한국이라는 지역 자체가 북방민족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한반도가 지형이 좀 유별납니다. 만주에서 직접 연결됐지만,
또 반도이다보니 한반도의 상당부분은 중국과 직접 맞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선조들도 우린 "오랑캐가 아니고 중화문명의 일부다" 라고 자꾸 선언했던 것 같습니다.
말 타고, 전쟁이나 벌이는 무식한 오랑캐가 아니라, 중앙집권관료체제의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과 엇비슷하다는 건데요.
그런데 그건 정말 원나라가 망한 14세기 이후에나 시작된 얘기지
실제 2000년 역사시대 가운데 1500년 이상은 북방민죽과 엄청나게 긴밀하게 연결돼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스로를 "몽골로이드"라고 말하듯, 실제로는 몽골, 거란, 선비족 등과 혈연적 문화적 친화성이
조금 더 높다고 봐도 되고요,
실제로, 중국은 사실 한반도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유독 북방민족만 한반도를 아예 삼킬려고 작정했었더랬죠
아무래도 문화적-역사적으로 가까운 민족이니까요. (수나라-당나라 (선비족), 요나라 (거란), 원나라 (몽골) 등이 있죠)
우리가 쓰는 어휘 (한자 말고 한국어라고 알려진 언어 자체가) 상당부분 거란과 선비와 공유하는 대목도 많고요
심지어 고려시대 말기엔 고려왕이 몽골황제 사위가 되어 심양에서 머물기도 했죠. 몽골말 쓰면서.
그리고 이들 북방민족의 특징이 바로 "불교"의 적극적 수용입니다.
중국민족은 "도교"와 "유교"로 정리된다면 북방왕조는 다 "불교"를 숭상했죠.
2. 북방민족들은 대개 "독자 문자"를 갖고 싶어 했다.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너무 분류가 어려워 학계 이설도 많더라고요.
5호 16국 시대가 있었는데, 이게 사실 고구려 전성기 시대이죠. 그래서 이 혼란기에 고구려가 북방을 쓸기도 하고.
선비족 출신인 수나라와 당나라는 아예 중국에 흡수가 되어버렸는데,
그 밖에 대부분의 북방왕조들은 대부분 한자에서 독립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거란족은 한자 기반의 거란어 만들어 썼고요
서하(대하)라는 나라도 서하문자가 있었습니다.
괵투르크(돌궐)도 돌궐문자
몽골은 당연하게 제국건설하고 티벳어와 파스파어를 한자와 병기했다고 하고
후대인 금나라-청나라도 만주어를 만들어 썼죠.
티벳은 당연하게 티벳 문자가 있었고요.
대부분 나라를 개국하고 초기에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그런지, 왕조가 단명했기 때문에 금방 잊혀졌고요
독자문자를 갖고 싶어했던 이유는 당연히도 "중국과 문자와로 사맛디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어순도 다르고, 어휘도 다르고, 문화자체가 다르니까,
중국 한자를 배우느니 걍 표음문자를 쓰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역시 말의 어순이나 어휘가 중국어랑은 너무 다르니까요.
그리고 그 배경엔 "불교"가 있습니다.
3. 불교문명은 13세기 14세기까지 동아시아의 지배적인 철학, 문명이었다.
(잡설 다 빼고)
불교가 사실 인도 동북부에서 시작된 철학사조이다보니,
이게 번역하기가 굉장히 까다롭고 이해도 어렵습니다.
애당초 산스크리트어(빨리어)-티벳어를 기초로 확장되다보니 중국어로 번역하게 되면 오역이 생기죠
그러다보니 신라시대에는 아예 혜초스님이 직접 인도에 가서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남기기도 하죠.
이분이 대단한게, 뱃길로, 지금의 광저우-싱가포르-말레이반도-버마 통해서 벵골 서쪽 지역에 당도합니다.
이란지역까지 다 돌고 나중엔 중국 시안에 돌아와 죽긴 하는데,
그러니까 이미 1500년 전부터 인도 철학에 대한 지식인들의 열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이게 티벳에서 더 고도화 되어 몽골과 청나라 시대에는 그냥 동아시아 주류 철학이됐고,
그러다보니 이 산스크리트어(빨리어)를 어떻게 (중국어 안통하고) 자국의 언어로 번역할까를 고민했고
이게 주로 북방민족 학자들의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금도 학승이라고 불리는 분들은 빨리어 배웁니다. 아주 처절하게 공부하시죠. ㅎㅎ 너무 어려워서.
4. 세종시대와 몽골 시대가 그리 멀지 않다.
제가 이해한 바로 조선시대 초기까지 한국이 북방민족과 크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많은 제도와 문화 문명을 공유했고,
언어에 있어서도 조선시대처럼 한자 일변도만은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고자 했던 욕망이 싹튼 것도 당연히 여러 북방왕조들의 선례를 보고 배웠던 것도 있고
실제로 몽골문자(파스파문자)나 산스크리트어를 배운 이들도 많았고
이들이 대개 불교쪽에 있던 끈떨어진 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거죠.
원나라 멸망과 세종의 탄생이 불과 50~60년 밖에 시대 차이가 안납니다.
그러니 세종 시대에 꽤나 지배적인 학문이 유학도 있지만 불교학도 상당부분 전통을 이어왔음을 유추할 수 있고요.
종합해서 보면,
세종이 천재였다면 자연스럽게 소리글자의 대표적인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배웠을 것이고
안배웠다면, 당연히 여러 불교쪽 학승들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유학자들은 기왕이면 "유교경전"의 발음기호를 적고 싶어했던 "이두학"의 영향을 받았을 테고요.
(이 이두학이 사실 일본어 문자의 기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요즘 시대로 말하면
"자바"나 "파이선"을 만들고 싶은 개발자가 있는데, C언어와 C++ 정도는 참고했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분명 천재개발자가 언어를 개발한 것은 맞는데, 그 뒤에 배경과 영향은 어느정도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PS.
사족을 달자면, 꽤 많은 산스크리트어 계열 언어에서
한글과 비슷한 문자들이 꽤 됩니다.
ㄲ, ㄷ, ㅇ, ㅌ, 세모, ㅈ, ㄱ, ㄹ 이 대표적인데요.
파스파 문자와 티벳어 한번 보고 가세요. 아주 비슷한건 아닌데, 찾아보면 비슷한거 꽤 됩니다.
(특히 까, 발음과 모양은 사실 똑같습니다...ㄲ ....이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좀.)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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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어
인간이 만든거니까요.
하지만 C언어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얘깁니다. 한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제 원리는 개발을 끝마치고, 사람의 발음기관이나 천지인 사상으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라는 반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스크리트 언어도 창제원리가 있었겠죠. 물론 너무 오래되어서 사라졌겠지만. 그 닮음의 정도로 보아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론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논란이 사라진거죠.
현재는 그냥 여러 군소 가설의 하나 정도로 남아있는 것 같네요.
다만 말씀하신대로, 당시까지의 동아시아 음운학 연구를 세종이 전부 싹 다 긁어다가 학습한 후
최종 결정판으로 한글을 만들었다고 보는게 옳겠죠.
자모의 디자인 말고, 음운학 이론 자체가 당시 동아시아의 최첨단 음운학 이론들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하더군요.
수준으로 보면 유럽에서는 17~18세기에 이 수준에 도달한 걸로 보면 된다고...
당시 시점에서 세종과 동등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수준으로 이 분야를 연구한 제2의 다른 학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최근에 다시 한글과 아시아 여러 언어에 대한 비교 연구가 활발해 지고 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에게 건드리지 말아야 할 위인이 둘 있는데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입니다
그 뒤에 역사적 문화적 언어학 발전 과정의 배경을 주목하자는 얘깁니다.
ㅁ(미음)과 口(입 구), (입 구자의 옛 서체는 ㅂ과도 닮음) 齒 안에 있는 ㅅ 비슷한 문양,
초중종성이 모여야지 글자를 이룬다는 건 한자 육서에서 말하는 회의, 형성의 원리와도 같고...
파스파는 영 아니여요.
한자와 한글은 전혀 다른 언어이고요 (뜻글자 소리글자)
산스크리트-티벳-거란어와 한글은 꽤나 비슷한 언어입니다.
당대 문자들을 거의 대부분 참고한 건 확실할텐데 그 와중에 불교만 띄우는 것도 좀..
그 시대에 종교가 많아봐야 얼마나 많고 불교 영향 안 받았던 나라가 없었던 시대였을 텐데
그렇다고 문자를 만든 사람이 바뀌는건 아니에요.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크게 잡아봐야 만든 사람의 참고자료였다 정도 밖에 안되는거라서요.
그 이상의 의미가 뭐가 있는걸까요?
반면 킹세종 창제설은 물증이 있고.
그건 아닐꺼야 하는 의심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의심입니다.
타진요 . 지구평면설. 달착륙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좀..
이거랑 뭐가 다른 얘기일까요?
다른분들 말씀들처럼 해례본이 있는데요
본문도 모두 "정황추정"밖에 안되잖아요.
그리고 자음기반의 언어(아부기다)라고 해서 모음 발전이 형편없습니다.
한글이 엄청나게 혁신적인 언어입니다.
다만, 우리가 배우는 가나다라, 아야어여, 는 사실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한건 사실입니다.
좋은 지식 의미있는 데 사용하시길.
문법적으로 한글과 95% 이상 동일합니다.
한글과 문법적으로 비슷한건 거란어나 몽골어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비아냥은 하지 마세요.
언어가 백퍼 똑같아도 문자가 다를수있고
여기서의 논제는 한글창제 아닌가요?
문자와 문법은 별개의 문제 입니다.
뜬금없이 문법을 얘기하는 이유는, 북방민족 언어가 독자문자를 창제해야할 이유가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다르니 한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생기고, 그러니 표음문자를 발명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문법이 비슷한 북방민족 언어를 참고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는 얘기 입니다.
한쪽의 기록이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기록의 진위가 불분명하다해야 옳겠죠.
다른 가설을 또 내세울게 아니라...
그리고 그렇다 쳐도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자인 "한글"과 "불교학"과 관련된게 뭔지 모르겠군요.
(예를들어 미국어를, 중국어로 바꿔서 한글로 이해하는 것보다)
산스크리트어 정도는 그냥 한글로 바로 번역하는게 좋겠다, 라는게 북방민족의 독자문자 창제의 발상이라는 얘깁니다.
영어를 프랑스어로 변역하면 정확도가 확 올라가는 것 처럼 말입니다.
같은 표음문자이니, 불교학쪽에서 음운론이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 입니다. 꾸벅~
가설이 틀렸을 근거는 있습니다. 그럼 가설이 옳다고 볼 근거는 어디 있죠?
하지만 그 배경도 보자는 얘기였습니다.
당연히 여러 언어를 참고한건 사실이라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정도일듯 합니다.
/Vollago
저도 욕 먹을 지 알고 썼습니다. ㅠㅠ
훈민정음 해례본이 엄청나긴 하네요. 해례본이 한글 창제 원리가 담긴건 사실인데,
그건 연역법이잖아요. 원리가 있고, 그래서 문자가 나왔다.
그런데 실상 무언가를 발명할 때는, 귀납법도 많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너무 많은 분들이 무시하시네요.
다양한 언어를 참고했다는 얘기 (옛 전자를 참고햇다)거나, 학자들을 만주로 보내서 음운학 배우게 했다는
정황증거들도 있는데...
일단, 한글의 독창성에 너무 연구를 기울이면 좋은 점도 있는데
저는 한국어와 아시아 제어들과의 연관 관계연구가 소홀해 진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언어에 담긴 수많은 몽골어적인, 거란어적인, 티벳어적인 요소들일 무시하는 결과라는 거죠
심지어 우리언어 어원연구 들어가면, 고려시대 후기에서 딱 끝이나고 맙니다. 자료가 없으니까요.
사실 한국어는 2000년 전 경에 형성이 됐을 텐데...자료가 없으니 어원 연구가 불가능해집니디
이런 경우는
만주어나, 몽골어, 중앙아시아 어를 보면 더 명확해지는데 말입니다.
그냥 푸념 한번 해봤습니다. 꾸벅.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겁니다. 공부한 것과 표절은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의 역사를 왜 축소하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 한글 가원설에 대한 다양한 관점 차원에서 글을 쓰신거라면 많은 분들이 더 건설적으로 응대했겠죠.
/Vollago
본문글이 친제에 대한 이야기를 고정관념으로 치부하는데 무슨 이맛클 타령입니까?
왜곡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왜곡입니다.
그리고 있잖아요. 누가 어디서 클리앙이 뭐 어떻다고 한다더라, 로 시작하는 말은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입니다.
솔직히 말해, 친구들 사이에서 술자리 안주로 꺼내도 좋은 이야기 못들을 주제인데.. 왜 이리 정성을 들이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언어에 대해서 너무 고립적으로 생각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 문화와 문명을 지금도 활발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요.
한글의 창제도 좀 다양한 각도로 봤으면 하는 바라이 있습니다.
https://ko.wikisource.org/wiki/%ED%9B%88%EB%AF%BC%EC%A0%95%EC%9D%8C
ㄱ >>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ㅇ >>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떴다
ㄷㅌ >> 설음 ㄴ은 혀가 위턱(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뜨고 ㄴ에서 ㄷ, ㄷ에서 ㅌ, ㅁ에서 ㅂ, ㅂ에서 ㅍ, ㅅ에서 ㅈ, ㅈ에서 ㅊ, ㅇ에서 ㆆ, ㆆ에서 ㅎ으로도, 그 소리를 바탕으로 획을 더한 뜻은 모두 같으나
ㅈ >>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 ㅅ에서 ㅈ, ㅈ에서 ㅊ, ... 그 소리를 바탕으로 획을 더한 뜻은 모두 같으나
ㅿ >> 반잇소리 ㅿ도 또한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으나 그 모양새를 달리해서, 획을 더한 뜻은 없다.
ㄲ >> ㄱ, ㄷ, ㅂ, ㅈ, ㅅ, ㆆ은 전청이 되고, ㅋ, ㅌ, ㅍ, ㅊ, ㅎ은 차청이 되고, ㄲ, ㄸ, ㅃ, ㅉ, ㅆ, ㆅ은 전탁이 되고, ㆁ, ㄴ, ㅁ, ㅇ, ㄹ, ㅿ은 불청불탁이 된다. /// ㄲ라는 모양을 가져왔다고 하기에는 ㄲ, ㄸ, ㅃ, ㅉ, ㅆ, ㆅ까지있음.
그러니깐 ㄱ모양이 ㄱ인것은 산스크리트어의 모양을 따온 다음에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라는 설명을 더했다는 건가요??
여러 언어늘 참고야 했을수도 있겠지만, 소리를 표현하는 문자들끼리는 어느정도 유사성이 있는게 당연할거 같네요
사실 문자라는게 우리가 간단하게 그릴 수 있는 기호의 한계가 명확해서
전세계 어디나 비슷한 문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혁신적으로 적용해서 최신의 음운학적 연구를 적용한게 세종대왕이시죠.
해례본의 중요성만 더욱 부각되네요
북방언어들의 어법이 많이 비슷해서 혼돈해서 사용한 대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앞에서 지적하신 분이 있어서 고치지는 않겠는데, 한국어의 언어와 한글의 문자가 북방언어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라는 것이 주요 주장이신것 같은데요,
글의 시작을 왜 이렇게 저항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반발이 더 큰거라 생각합니다.
우선 이번 논란의 중심이 된 나랏말싸미 영화에 나오는 신미가 집필했다는 원각선종석보가 위작으로 판명이 났으니 불교계의 주장 자체가 신뢰를 크게 잃은 상황에서,
영화는 불교계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신미 주도로 한글이 창제되었고 세종은 보조적 역할로 비춰지는 것에 대한 반발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람들이 한글은 완전히 새로운 독창적인 글자이고 다른 문자체계나 이전의 음운체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고 반발하는것처럼 얘기하고 있습니다.
비판을 달게 받아야죠.
다음에 저 조심해서 쓰겠습니다.
수정하기 늦은게 아니라 싫은거 아닌가싶은데요
틀렸으면 고쳐야죠
원글의 오류나 제 표현상의 한계도 그냥 남기는 것도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문자가 긴 세월동안 주변국의 문자와 영향을 받아가면서 변형을 거쳐서 어떤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서 정착된거라면, 그게 의미가 있어보입니다만, 한글은 세종이라는 한 사람이 주축이 되어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문자들을 가지고 새로이 만들어낸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주변국과의 영향관계 등을 알아본다는건 아무리봐도 무의미해요.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주변국의 문자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 까지는 가능한데, 한국어가 어떠한 영향을 받았다는건 한글로는 엮일 수가 없는 논리관계가 됩니다.
'언어'에 담긴, 즉 한국어에 담긴 주변국과의 영향관계는 충분히 가능하겠으나, 그것을 '문자'로 파악해보겠다는건 전혀 별개의 문제가 되버리고, 누군가에의해서 새로히 발명한 문자로 언어가 적힌 시점에서, 문자로서 주변국과의 관계는 그냥 사라져버린거죠.
파스파와 훈민정음이, 어디어디가 비슷한 형태다더라, 라는 주장이 정말 아무런 근거가 없이 들리긴 합니다. 제 스스로도 말이죠.
그런데, 사실 이건 어디가서 근거를 찾아올 수가 없는 문제라, 세종대왕이 일기를 남겼으면 모를까, 증명하기가 어려운 영역이네요.
말씀하신 대목 잘 참고해서 다시 잘 고민해 보겠습니다. 꾸벅.
제 이야기는, 훈민정음이 실제로 파스파 문자에 영향을 받아서 상당수 그를 근거하여 만들어졌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건 '세종'이 영향을 받은것이지 한국어에서 파스파 문자 혹은 파스파 문자를 쓴 언어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뜻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정음이라는 문자 자체가, 세종이라는 어떤 발명가에 의해서 창제된 것이라서, 파스파 문자와 세종의 영향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고, 한글과 우리 선조의 언어 사이의 영향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파스파 문자(및 그 언어)와 우리 선조의 언어 사이의 관계는 아무 이야기할 근거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 유사점에 대한 연구, 그로인한 언어학적 계통을 파악하는 연구는 당연히 필요하고 유의미합니다만, 그 한국어와 다른 언어사이의 유사점에 대해서 다른 문자와 '한글'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건 아무런 논리적 맥락을 잇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문자와 한글 사이의 영향에 대해서는 실제로 세종이 한글창제시에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냥 세종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으로 끝날 뿐이지 그를 통해 파스파 문자와 한국어 사이의 어떠한 영향관계가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거든요.
그렇기에 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납득이 안되는겁니다.
실제로 세종이 일기를 남겨서 파스파문자가 정음에 미친 영향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어에 미친 영향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왜 정음을 매개로 한국어와 파스파문자를 쓰는 언어권과의 영향관계를 파악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거에요.
음....한국어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한국어가 어디서 왔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라는게 있고, 이를 표현하는 훈민정음이 15세기에 태어났는데요. 이게 세계사적인 맥락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 입니다. 지금도 많은 국문학자들이 한국어가 고립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몽골어나 만주어나 일본어나 어법적인 동일성은 있는데, 뚜렷한 기원상의 공통점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보더군요. 특히 생활에 필수적인 기초적 어휘에 있어서도 말이죠. 한국어 어원을 설명하는 국립국어원 사이트 들어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국어의 어원설명이 15세기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예를들어서, 나, 저, 아저씨, 아버지, 할아버지, 달(사리), 사나이, 나이, 누나, ~들, ~와, 입니다. 습니다. ~다, 등...한자어 말고 우리 고유말이라는 거 말이죠.
그런데, 중앙아시아쪽으로 건너가면 한국어와 비슷한 언어가 존재한다는게 핵심입니다. 거란어와 티벳어, 심지어 산스크리트어에서도 말이죠.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이 중국서쪽, 북쪽 변방이라는 땅들이 척박하고 나라가 다 사라자 없어졌고, 문자와 언어도 다 사라져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간신히 티벳어나 버마어 몽골어 등에 편파적으로 남아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그 예전에 왕국들도 자기 독자 문자를 만들고, 자기 언어를 기록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불교 문화를 기반으로 말이지요.
제가 이 글에서 쓴 내용은, 한글이 만들어진 세계사적인, 아시아적인 맥락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라는 추론에서 쓰여졌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한국어와 비슷한 언어구조와 문명적 동질성을 가진 나라들이 있었고, 그들도 독자문자를 이미 2000년 전부터 추구해 왔기 때문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세계사적인 흐름의 한 정점으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위대한 왕 세종이 무언가 집대성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중앙아시아, 혹은 만주-몽골 평야에 수많은 민족과 왕국이 있었는데, 이들도 한국어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고, 비슷한 고민으로 표음문자를 고민했습니다. 중국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훈민정음도 그런 고민들을 분명히 참고했고, 혁신의 발판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사실 근거 없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사실 더 많은 학자들의 비교연구가 있어야 겠죠.
혹시 언제 시간되시면 2016년에 한글박물관에서 나온 한글과 동아시아어 비교연구 자료 한번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별 내용은 아닌데, 최근 젊은 학자들 가운데 한글의 뿌리를 밝히기 위한 비교연구도 적지 않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꾸벅.
http://www.prism.go.kr/homepage/researchCommon/downloadResearchAttachFile.do;jsessionid=5F5993D2F73FAA8E31D63FAAE3FBFDF4.node02?work_key=001&file_type=CPR&seq_no=001&pdf_conv_yn=Y&research_id=1371000-201700008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더욱 그러하구요
해례는 창제원리에 대해 나와 있지만
이 창제원리라는게 하늘에서 뚱딱 하고 떨어지는건 아닙니다
실제로 새종대왕은 여러 학자들을 전세계에 보내 글을 연구시키기도 하고
또 분명히 “고전”을 참조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분명 기록으로도 열심히ㅡ자료 수집하고 연구한 부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글은 모음과 자음의 창제원리가 다릅니다
자음은 모양을 본 뜨고 (그리고 그 중에는 ㅅ 나 ㅁ의 경우 보면 명백히 한자의 부분을 본땄죠)
모음은 천지인사상으로 만들어지지만 이또한 모양만 보면 주희의 하도낙서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해례와 이 글 본문이 충돌하는 건 아닙니다.
전 새로운 시각을 알수 있어 본문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세상 어떤 천재도 맨땅에서 뚝딱 만들어 내는게 아니에요 아는게 많은걸 바탕으로 대단한 걸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배경 문화 교류사라는게 있는거지요.
당장 대부분의 한글학자들도 아시아 타 언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은 사실입니다.
은사님께 한번 여쭈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건지요. 꼭 그래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꾸벅
구텐베르크와 고려의 업적은 완전 별개인게 맞습니다. 동서 문명 교류 전의 일입니다.
다만, 앞에서도 썼듯이, 파스파 문자는 당시 세계언어로, 고려 지식인에게 영향을 미친것은 확실합니다.
댓글보니
클리앙은 무슨 세종대왕 광신도 소굴 같군요.
세종대왕이 표음문자라는 걸
인류 최초로 고안한 것도 아닌데
기존 표음 문자를
우리 표음 문자 만들면서 참고할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나요?
논문으로 발표한 것도 아니고
세종대왕의 업적을 부정한 것도 아니며
정황상 이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라고 적은 건데 다들 너무 심하신 듯.
이 정도 신실함은
아시안 개임 때
김정일 사진이 비에 젖었다며 우는
북한 사람들 못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클량의 지성미를 믿습니다. 클량의 마력이죠.
경직된 사고를 너무도 당당히 전개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걱정입니다, 클리앙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