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에 미친 영향이 사실 절대적이긴 합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이라는 터닝포인트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37년 이전까지 독립운동한 지식인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있는 문학인(당시 최고 지식인들)
춘원 이광수 같은...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곧장 일본이 파죽지세로 베이징을 거쳐 상해 광저우까지 진격해 들어가자
곧바로 "GG" 치고 친일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적어도 그 전까진 "중국"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존재했거든요.
(중국이 아직 살아있는데 어찌 일본에 충성하리오!?)
(사실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사대성향이 강하긴 합니다. 많이 알기에 비겁한거죠)
그게 무너지자 "이제 우리의 살길은 일본"이라고 믿고 변절한거죠.
결국 그들은 1941~1945년 그 엄혹한 시절에 "정신대 나가라" "징용가라" "황군이 되라" "참전하면 진짜 시민" 머 이런 논리로
젊은 아이들을 세계대전의 어둠 속으로 몰아 넣고 말죠.
기본적으로 한국의 지도층들의 뿌리는 이 1940년대 일본제국에 충성한, 혹은 제국의 신민이 되고싶었던
지식인과 정치인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게 맞습니다.
2.
두번째는 역시 "적산재산"입니다.
이건 한국 재벌들의 뿌리가 됩니다.
일본 제국에 충성했던 이들에게 일본이 남기고간 "자산"들이 원칙없이 대충 불하가 됩니다.
(몽양 선생의 건준이 살아있었다면 절대 그렇게 안됐겠죠)
물론 미군정이 주도를 했다고는 하나, 그건 맨 상층부(동양척식주식회사) 정도 얘기고
지방에서는 대충 지역 유지들과 공무원들이 합심해서 일본지주들 집이랑 땅이랑 나눠가졌어요.
김무성 집안의 "전남방직"이 대표적인 사례죠.
이런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일본인이 소유했던 그 많던 공장과 땅의 새로운 한국인 주인이 생겼으니까요.
당시 산업구조는 농업 기반에 "방직"회사들이 대부분이었죠 (민족자본? 머 그런거는 미약했어요)
일본의 대규모 농장을 이어 땅을 가져간 이들은, 조봉암의 농지개혁이 예고되자 대규모로 "사립학교"'를 만들어 땅을 보존하죠
기본적으로 한국 재계의 뿌리도 이들 일본이 남기고간 재산에 기반을 두고 있어
심리적 의존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혹시나 일본에 빼앗기지 않을까 전전긍긍,
1968 한일 수교당시에도 그거 안 빼기는 조건으로 협상했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협상이 그 모양인 겁니다, 일본이 남기고 간것을 받아먹은 애들이 협상을 해서..."남기고 간건 나 주는거다, 맞지? 도장 쿡~" 머 이런 느낌?, 그러니까 일본이 "그럼 징용자 피해자 다 퉁쳐서 3억에 콜?"... )
그러니, 그런 재산을 자신들에게 흔쾌히 양보해 준 일본제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형언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자신들 (재산의) 뿌리가 일본제국이다보니, 눈치를 봤던거죠.
3.
세번째는 역시나 "산업성장기" 일본의 배려(?) 입니다.
과거 한국의 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살펴보면,
조금 노골적으로 말해서 "일본의 구형 기계(중고품)"을 싸게 들여와 크게 성장한 기업들이 많습니다.
조선-중앙-동아 같은 사례도 마찬가집니다.
1960~80년대 당시 대규모 옵셋 인쇄기가 필요했는데, 사실 신형제품은 너무 비싸고 감당안되는 설비였고
그것을 일본에서 정말 온갖 특혜라며 중고 기계를 나눠줬기에 성장이 가능했던거죠.
이게 지금 생각해보면 별게 아니지만,
당시 우리나라 산업계 전반이 "일본"은 그야말로 선생님의 위치였고, 한국은 굽실거릴 수 밖에 없었죠
신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이런 경향이 있었고
일본은 특혜를 준거라고 생각하고, 그 특혜를 분명 누린 소수의 이들이 있었죠.
조선과 중앙이 부들거리는 이유일 듯도 싶고요
아베나 일본의 극우 세력이 부들거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너네 먹고살라고 응? 집도 주고 공장도 주고 기술도 줬더니, 이제 우릴 배신해?")
4.
마지막으로 역시 일본의 특별한 관리입니다.
일본은 1960년대 이래 쌓기 시작한 막대한 부를 가지고 많은 장난을 쳤는데
그중 대표적인게, 해외 언론인 정치인 학자들 관리 입니다.
정말 다양한 펀드들이 있고, 여러 후원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호사카 유지 교수가 한번 말한 적이 있죠.
일본 재단의 연구기금으로 연수를 다녀오거나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는 지식인, 정치인이라면
그 부채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욕은 못한다는 거죠.
그 장학금이라는게, 먼가 인류 보편적인 이상을 위해 작동하면 참 아름다운 일인데
일본의 정치가 후지다보니 겨우 "일본 제국주의 미화"에 쓰인다는게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런 과정이 사실 그리 멀리 있는게 아닙니다.
조선일보 김O중 주필 나이가 1939년 생이에요.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머 일본어를 배우며 자랐을 사람이죠.
(특정인을 비난하는게 아니라) 그당시
제 아버지나 우리 할아버지도 머 그와 별반 다를것 없는 시대에 살았겠죠.
다들 제국대학에 들어가 판검사 되는 것을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실제로 중앙일보 창립자인 홍진기 회장이 제국대 법대를 나와서 고시를 봐서
전주지법 판사를 하다가 해방을 맞았죠.
이런 분들이 당시의 롤모델이었습니다.
5.
한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면 이런 심리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 있기도 합니다.
"클라언텔리즘(Clientelsm)" 이라고, 쉽게 말해 주인-소작농 모델이 있습니다.
일본의 야쿠자, 태국의 왕정체제, 북한의 왕정체제 같은 아시아의 주종관계를 포괄하는 개념인데
서구학자들은 명확하게 "경제적 상호관계"를 분석해서 어떻게 이들이 그 커뮤니티안에서
경제적 종속관계를 뛰어 넘어 윤리적이고 심리적으로 복종하는 지를 보여주지고 합니다.
주인이 경제적 혜택을 베풀면, 그 아래 신민들은 이를 감사히 여기고 다시 이 시스템의 재생산에 참여하는 모델입니다.
제국주의같기도 한데, 자세히 뜯어보면 중세적 모델이기도 하고...아시아적 특성같기도 한데
생각보다 역사적으로 흔한 모델이기도 합니다.
딱 일본의 극우와 한국의 보수세력의 관계가 바로 이 클라언텔리즘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
여기서 핵심은, 이런 유산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가죠
한국의 보수 세력은 겉으로는 "극일"을 유지하면서 속으로는 "친일"을 해왔죠.
때론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기도 하고요.
저는 반일, 극일 머 이런 말장난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독립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독립은 사실 남북통일에서 정점을 찍겠죠.
문재인 정부의 항일투쟁에 자그마한 힘을 더합니다.
꾸벅.
무조건적인 연좌제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시다니 무섭네요.
그런분들은 토착왜구라고 경멸당하지도않죠.
일본이 망할 줄 몰랐다 였나
무튼 가족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이해하나
결국 자기 가족만 사랑하느라 동포를 팔아먹은 그를 용서할 수는 없는거죠
사람은 이해했지만 죄는 미워할랍니다
서가에 가보면 일본책과 잡지가 절반이 넘어갑니다.
그런 어르신들에게는 일본은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선각자 같은 존재요, 배워야만하는 존재였습니다.
한 번 형성된 평생의 프레임은 절대로 안 깨집니다.
그런 시대가 가고 있어요.
그리고 토착왜구들을 부끄러움을 모르죠.
일단 공감 누르고요. 갈무리했다가 또 읽어봐야 겠습니다.
약간 어리지만
창씨개명해서 일본 이름도 갖고 있을 텐데요.
누군한테서 교욱을 받았을까요?
일어가 더 편한 교사 교수에게서 배웠겠죠
설사 일본어를 국어로 배우지 않았다 한들 사회시스템이나 그 당시 대한민국의 국민들 대부분의 생활 속에 일본어가 뿌리 깊게 박혀가던 시기였습니다. 저희 할머니 분들만 하셔도 31년생이라 나이차이가 조금은 있지만 일본어를 공부해서 동사무소인가 구청에 들어가서 일본어로 된 서류들을 만지셨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일본어는 읽고 말할 수 있으십니다. 39년생이면 광복때 6살입니다. 주변에는 일본어로 점철되어있었고 형 부모들은 일본어를 쓰던 시기였습니다. 더군다나 6살에 광복이면 오히려 지금까지도 인생에 있어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겁니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공부도 할 수 없었는데.. 에서 시작해서
공부를 잘 한다고(제 자랑) 장학금을 줘서 감동해서 눈물이 핑그르 or
돈을 벌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더니 성실함을 인정받아서(제 자랑) 고맙게도 지원해줘서 코끝이 찡~~
이렇게 흐르는 전개.
이번에 확실이 방향이 매국청산으로 기조를 잡아야 할 때이기도 하구요.
충성하는거군요
우리가 못나서 나라 뺐겼으니 열심히 실력 키워서 되찾아야 한다는..
근데 실력 키우려 일본 가서 배우고, 일본 회사 취업해서 살다보니
극일은 구호로만 남고, 실제론 친일로 사는 거.
애초에 불가능한 논리.
학교는 왜지? 라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정보와 분석이 포함된 좋은 글입니다.
때문에 일본을 경험한 기성세대라도, 우리의 이유있는 반일정서에서 비롯된 민족의식 고취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찰해본 사람들과,
일본에 대해 보은의식은 물론 대단하다는 느낌도 없었던 미래 세대들에게서 원동력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폭력시위의 종언을 가져온 촛불문화제형태의 시작에 또래가 장갑차에치여 생을 달리 한 것에 순수하게 슬퍼하고 분노하며 동조한 학생들이 있었으며
우리의 검역주권에 대한 문제점에 민주의식을 가지고 먼저 나선것도 학생들이었지요
지난 탄핵정국의 그 추운 겨울에 스티커를 나눈것도 붙은 스티커를 뗀 것도 학생들이 먼저 나서 주가 되었지요
이것이 정치를 대하는 일본과의 극명한 차이점인데, 우리는 우리 선배들이 피로 찾은 민주의식이 아이들에서 꽃피워 만개중이며
이번 불매라는 형태의, 일본경제로부터의 독립운동에도 우리의 미래가 나서고 있으니
우리는 이길 겁니다 (사진은 어제자 일본대사관앞입니다)
저는 불매와 일본고발을 멈추지 않으렵니다
내가 이렇게 떵떵거리며 살게 만들어 주신 (결초보은할) 분들인데, 너희 천한 것 (=국민)들이 어디서 감히... 느낌일겁니다. ㅎㅎ
나라를 팔아먹어도 자한당인데요.
4.19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게 옳고 나와 다른 얘기를 하는 이들은 틀리다.
이게 그냥 충돌하는거 같습니다.
고치기가 애매해서....그냥 놔두긴 했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전문가이신 것 같은데...
제가 궁금한 대목은, 꽤 많은 사례가 일본공장주인이, 건물과 땅을 직원에게 주고간 사례도 있더라고요
"김과장, 이 건물좀 당신이 일단 맡아두게, 그러면 내가 10년이고 20년이고 뒤에 다시 찾으러 오겠네"
머, 이런 대화들 말이죠.
그런데, 이런건 적산재산에 해당이 되지 않나요? 아니면, 해방직후에 한국인에게 싸게 넘긴것도 마찬가지 였을까요?
꽤 많은 토지 거래가 급하게 이뤄졌다고는 들었는데 말입니다.
꾸벅~
답변을 한다는 게 잘못하여 원 댓글을 삭제해버렸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원 댓글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특히 2번 항목 적산재산 문제는 한일협상 당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으나,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사실 지금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이른바 적산재산은 민간, 공공을 불문하고 일본(인) 소유의 재산을 말하는데, 이 적산재산을 당시 미군정이 1945년 12월 6일 '조선내 일본재산귀속령'(군정령 제33호)를 공포하여 "38도 선 이남의 조선에 있는 모든 일본의 공, 사유 재산을 1945년 9월 25로 소급하여 취득한다"는 적산재산 몰수조치를 실시합니다.
문제는 이 조치가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겁니다. 당시 국제법은 점령지에서 상대방 국민의 사유재산 몰수를 금지하고 있었습니다(1907년 전쟁법규관레에 관한 조약,규칙 제46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1, 2차 대전 모두 패전국인 독일의 민간재산 몰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해서만 민간재산까지 몰수했으니, 최소한 법적으로는 일본이 적산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사람들에게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제대로 정산을 하려도 들면 불하받은 사람들은 난리가 나겠지요?
그래서 이승만 정부는 이미 한국전쟁 중인 1952.3.25.에 미국에 조치의 정당성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미국이 한국 전쟁 상황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서, 일본에 압력을 가합니다. 미국도 자신의 불법성을 인정하기는 싫었겠지요.
한일협정 당시에도 이 문제가 다시 문제되고, 지금도 문제의 핵심에는 있는 청구권조항은 사실 이 적산재산처리 때문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 간단하게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한국측 손해와, '미국'이 불법적으로 몰수한 일본측 손해를 3억달러로 퉁친 것이 한일협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몰수한 일본의 적산재산이 원글을 쓰신 분의 설명과 같이 일부 세력(더 심한 말을 쓰고 싶긴 합니다만)에게 자의적으로 배분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일본의 식민화로 인해 우리측 손해는 전국민이 보았는데, ('미국'이 '불법적'으로) 일본 재산을 몰수한 이득은 청구권협상에 의해 일부 세력(원글에서 지적한)만이 누렸고, 이것을 기정사실화한 것이 한일협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내용은 계약(무상이든 유상이든)에 의해 한국인에게 넘어간 재산은 몰수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일본인 재산은 미군정에 의해 몰수된 뒤, 원글을 쓰신 분의 설명과 같이(사실은 그것보다 더 심각한 사례가 많습니다), 일부 세력에 재불하되었습니다. 헐값으로요.
참고로 한일협상 당시 우리나라가 요구한 적산재산의 기준으로 삼은 날은 해방일 내지 일본 패전일인 1945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45년 8월 9일 현재"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날입니다.
또 참고로 제가 쓴 이 내용은 현재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한일협정 직후인 1965년 일본인이 작성한 일본 논문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혹시 출처를 궁금해하실까봐..
너무 정리를 잘 하셔서 조금 보탰을 뿐입니다.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크랩 해둬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