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타라카노프 장군이 격찬했던 드라마 체르노빌의 배우 랄프 아이네슨.
"진짜 나를 보는 것 같더군요.
내 배역을 맡은 배우가 정말 맘에 듭니다.
거진 사랑에 빠졌다고 해야할까요."
3. 80년대초, 프리피야트시 전경.
: 폭발한 원자로 4호기와 시의 끝단과의 거리는 불과 3km(!)였습니다.
'시민들의 공황상태가 방사능보다 위험하다'며 피난을 망설였다니 단단히 미쳤던 것이죠.
4. 폭발한 4호기와 동일한 구조의 3호기 내부.
: 1,600개의 연료채널이 상단커버가 벗겨진채로 꽂혀있는 모습입니다.
5. 잔해제거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체르노빌로 다시 돌아온
보리스 셰르비나와 레가소프.
6. 1986년 8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레가소프.
: 온세계가 주목하는 자리에 소련 대표로 참석해서
5시간 분량의 참사보고를 합니다.
7. 1986년 폭발 당시의 체르노빌 원전도
: 4호기에 표시를 해놨습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러시아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수습작업을 위해 군병력들을 총지휘, 감독했던 지휘관인 니콜라이 타라카노프(Nikolai Tarakanov) 장군.
33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85세가 된 고령의 장군도 이 미니 시리즈를 완주했다고 하는군요.
이후 장군은 러시아 관영 통신사인 RT와 당시를 회고하는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을 위해 부분발췌해서 옮겨봅니다.
약력을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신: 카자크
나이/직위: 당시 52세. 소련군 민방위 부사령관 (소장)
병과: 공병, 공학박사
美 선제 핵타격으로 인한 피해에 대처하는 소련군 야전교범 2권을 집필했으며,
가상 피해 시나리오와 모델링에 대한 연구를 했고, 1970년 모스크바 교외의
노긴스크(Noginsk)에 건설한 도심지에 대한 핵피폭 시뮬레이션 실험에 참여해서
군의 표준 복구절차 수립과 특수 공병장비 개발에 기여했던 소련군의 '核 피해복구 전문가'....
쉽게 말해 '양키들에게 핵으로 쳐맞는 상황이 벌어지면 공병을 휘몰고와서 복구하고,
잔존인력과 자원을 소개'시키는 일을 전공한 양반입니다. 사태수습의 적임자였죠.
..............................................
1. 체르노빌 참사의 진정한 영웅은 수습정리 작업에
목숨을 걸고 나섰던 '일선장병들'이었다.
"폭발의 결과로 잔해와 방사능 낙진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죠.
원전 주변 30만 입방미터의 표토를 긁어서 덤프트럭에 싣고 매장지에 보내야했습니다.
이를 자갈과 쇄석으로 대체하고 오염된 흙은 파묻고 거대한 콘크리트판으로 덮어서
봉했습니다.
이런 작업으로 인해 현장의 방사능 오염도는 수백분의 일로 떨어지고
원전현장을 수습하고 오염된 장비들을 제독하는 일이 가능해지게 된 겁니다.
이것도 긴 얘기죠.
다시 말하자면 이 모든 일련의 작업을 해낸 것은 "장병들"입니다.
사람들이 체르노빌에 대해서 내게 물어볼 때마다 항상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네. 물론 과학자들이 있었죠.
저도 박사학위를 갖고 있어요.
그러나, 장병들이말로 체르노빌이라는 이야기의 "영웅"입니다.
전사를 떠올릴 때 우리는 항상 게오르기 주코프(Zhukov) 원수나
보로실로프 원수 같은 위대한 장군과 지도자들을 기억하죠.
하지만 이 모든 전투들을 누가 치뤘습니까?
바로 일선장병들입니다."
2. 결말과 몇몇 부분이 실제와는 다소 다른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드라마가 시도했던 역사적 사건의 재현에는 아무런 불만 (no complaints)이 없다.
3. 내 배역을 맡은 배우는 그야말로 '완벽'(perfect match)했다.
"굉장한 연기를 했어요. 너무 잘했습니다.
나는 내 배역을 맡았던 스코틀랜드 배우 랄프 아이네슨(Ralph Ineson)과
그의 연기에 전적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심지어 난 그가 실제 군장성일 거라고 믿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연기와 극중묘사에 만족감을 표시했던 장군은 다만 딱 하나가 빠졌다고 말합니다.
새 교대병력들이 현장에 도착할 때마다 매번 다음과 같은 훈시를 했다고 말하는군요.
"이런 상황을 종결 짓고 위험을 가둬놓기 위해 군은 우리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군들은 '자원'해야만 한다.
여러분들에게 1분의 시간을 주겠다.
누구든 자신이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열 바깥으로 빠지도록 하라.
아무런 불이익 없이 재배치를 시켜주겠다고 내가 보증하겠다.
왜냐하면 이 임무는 제군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며
내가 제군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본인은 장병들에게 충분히 작업의 위험성을 주지시켰고 선택의 기회를 줬다는 얘기죠.
과연 이걸 '자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퍽 애매합니다만 장군의 '주장'에 따르면
단 한 명의 열외자도 없었다고 합니다.
4. 국가 리더십에 대한 냉정한 평가
'전면에 나서길 꺼리고 참사를 과소평가 하려했던 지도자'
(최고 실권자인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실제로도 그랬냐는 질문에 대해)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상황을 장악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예컨대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이나 영관급 장교나 장성들이라면
지니고 있었던, 해야할 일련의 일들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리면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 말입니다.
그는 폭발소식을 접하고서도 직접 현장에 나가지 않았어요.
대신 각료평의회 니콜라이 류즈코프(Nikolai Ryzhkov) 주석과
부주석인 셰르비나를 보내 수습을 하게 했죠.
그리고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조금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체르노빌 시민들이 처한 위험과 참사가 가져올 영향에
대한 모든 것들을 평가절하 하려고 했습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현지로 떠난 수습 위원회가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고
이제는 괜찮습니다.'라며 보고 해오기만을 기대했던 것이죠.
따라서 당시의 정부는 체르노빌 참사가 실제로 재난급 상황이었음에도
'재난(disaster)'으로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레 기피하며 이를 '사고(accident)'라고 불렀습니다.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처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쪽은 바로 우리 軍이었죠.
체르노빌은 이 나라가 겪은 최대규모의 인재중 하나였으며,
이 땅 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전쟁이자 '핵전쟁'(actual war, a nuclear war) 이었습니다."
5. '동물 살처분'과 '벌거벗은 광부들'은 드라마상 과장된 부분이라고 본다.
"갓 징집된 어린 청년에게 군복과 총기를 지급하고
유기된 동물들을 사살하게 만드는 장면은 터무니 없는 장면입니다.
살처분의 경우, 시 주거지역에서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주변 삼림지역에서 사슴 같은 야생동물들이나
주인이 떠난 후 배회하는 소들에 대해서는 있었습니다."
장군은 병력소집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정부는 2만명 정도를 염두에 두고 모스크바를 비롯한
각지에 동원령을 내려 병력을 긴급소집 했어요.
모든 장병들의 나이는 30-40세 사이였지요.
물론 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배치될지 몰랐죠.
각기 자대배치를 받은 후에 체르노빌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당국이 '예비역 동원령'을 내린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미 청소년들의 만성적인 음주문제와 마약중독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소련 정부는
방사능의 영향을 예단하기 힘든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징집된 신병들이 복구현장에
순차투입 되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될 경우, 병력자원이 조기고갈될 것을 우려했다고
하는군요. (예비군 짬밥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ㅠ.ㅜ)
'화제의 누드씬'이 등장하는 원전 지하굴착 장면에 대해서도 논합니다.
당시 지하굴착 작업을 담은 기록영상
(작업은 삽과 수공구를 이용해서 토사처리까지 광부들의 맨손으로 진행되었는데요.
영상 5분 30초경, 터널 입구쪽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바로 사고원전 건물입니다.)
"저는 광부들이 벌거벗고 작업을 하는 모습은 못 봤습니다.
드라마 제작자가 다소 과장한 부분이라고 말하렵니다.
사실 폭발한 4호기의 지하굴착 작업은 벨리코프(Evgeny Velikhov) 박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는데 불필요 했지만 그대로 진행되었어요.
(주: 유명 물리학자. 쿠르차토프 핵연구소 부소장. 레가소프의 라이벌)
전문가들은 800도 이상에서 타는 흑연(감속재)이 여전히 연소되고 있었기 때문에
파손된 원자로의 하단이 상당한 고온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하를 굴착해서 원자로 밑에 터널을 뚫고 콘크리트판을 타설하게 된 이유죠.
그 밑에 액화질소를 주입해서 냉각효과를 보려는 것이었죠. 냉장고처럼요.
구상은 좋았고 물론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이미 (쌀쌀해지기 시작한) 9월이었어요."
체르노빌 르포를 읽어 보면 400명의 광부들이 감마선에 고스란히 피폭되면서
24시간 3교대로 진행되었던 지하터널 작업의 여건은 실제로 아주 열악했다고 합니다.
열교환기 공간을 만드는 종반부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직경 1.8m의 협소한 터널 안의
기온이 60도까지 치솟아서 옷을 벗고 작업을 해야했으며 환기 시스템이 없었던 내부에서는
질식하거나 쓰러지는 작업자들이 속출했다고 하는군요.
무엇보다 기막히고 허탈했던 얘기는...
조금만 오차가 생겨도 대파된 원자로가 위에서 쏟아져내리며 떼죽음을 당하게될 것이라는
섬찟한 경고를 받으면서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힘들게 조립했던 스테인리스강 튜브와
2백개의 열전대(thermocouples) 센서로 구성된 열교환기가 온갖 난관 끝에 완성이 되었건만...
온도가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작동조차 시켜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운명'이라는 놈은 이렇게 얄궂고 잔인합니다.
6. 때늦은 대피령은 분명 정부측의 과오였다.
"정부 수습 위원단은 폭발 다음 날 프리피야트(Pripyat)시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개인적으로 잘 알던 사이였던 각료평의회 부주석 보리스 셰르비나가
위원단을 이끌고 있었죠.
여기에는 저명한 화학자이자 사고조사 위원장을 맡은 발레리 레가소프가 있었고
학자들과 장성들로 구성된 팀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폭발 참사의 영향에 주의를 기울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위원단은 현지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시 전역에 공개 대피령을 내릴 때까지 "36시간"이 그냥 흘러가버렸습니다.
그때까지 시민들은 일상적인 삶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었던 겁니다.
즉 아이들은 등교하고 부모들은 직장으로 출근을 하러가는데도 아무런 발표가 없었어요.
심지어 상황을 아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물어봤답니다.
'선생님, 이런 경우에는 보호의를 착용하고
집에 머물러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그러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예식을 취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결혼식들이 치뤄졌으며 어부들도 조업을 하러 갔을 정도였죠.
저는 이 모든 지연사태에는 보리스 셰르비나 부주석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타계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점은 책임감 있게 말하렵니다.
그는 정부측 수습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과도한 방사선에 스스로를 노출시켰죠."
7.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주인공 레가소프의 자살배경
"지금은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정부와 학계가) 레가소프를 배척했기 때문이죠.
일례로 예핌 슬라브스키(Yefim Slavsky) 기계공업부 장관은
연방영웅 훈장 후보 상신서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렸어요."
(주: 그는 28년간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소련의 핵병기 생산과 원전사업을
진두지휘 하며 막강한 위세를 자랑해왔던 당시 87세의 최고참 실세장관입니다.
문제의 RBMK형 원자로 설계와 양산에도 직접 참여했던 인물이었죠.
참사의 재발방지를 위해 원전의 설계결함을 지적하며 관련부처 개혁을
공개촉구 하고 나섰던 당시 49살의 레가소프를 어떻게 봤을지는 뻔한 일이죠.)
"그 다음 다른 일이 일어났어요.
레가소프는 체르노빌 보고서를 들고 국제 원자력 기구(IAEA)가 있는 비엔나로 갔고
귀국 후에는 원자력 안전감독기구의 창설을 역설했습니다.
그래서 부처가 만들어졌죠.
벨리코프와 같은 당시 과학계 인사들은 그를 부하직원도 없는 유명무실한 처지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 흔들어댑니다.
어느 누구도 레가소프의 팀에 합류하려들지 않았어요."
(왜 그랬냐는 질문에)
"누가 알겠어요?
돌고 도는 파워게임과 함께 그 시절의 밀물과 썰물이 있었던 것이죠.
이제 그는 과학기술 감독 위원회에 선출되기 위해 충분한 표심을 얻는 일도 힘든 지경이
되었고, 걸출한 과학자이자 스타였던 레가소프는 이내 곧 정부 위원회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3번째 요인이 있었으니 그의 아들이 인명 교통사고를 냈어요.
그래서 1987년말 레가소프는 자살을 시도했죠.
(주: 다량의 수면제를 삼키고 자택에서 혼수상태로 발견 됐습니다.)
당시 집사람이 국영병원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의료진이 실려들어온 레가소프를 소생시켰지요.
하지만 알다시피 몇 달 뒤 그는 다시 자살을 결행하고맙니다."
8. '바이오로보트(?)'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장군은 복구작업을 위해 반드시 치워야만 했던 원전 옥상구역들을
높이와 오염도에 따라 3개소로 나누고 제각기 자신이 인연을 맺었던
여인들의 이름을 붙여 명명합니다.
(드라마에서는 레가소프가 이렇게 나눴다며 장군에게 브리핑 하죠.)
시간당 1천 뢴트겐을 뿜어내는 구역은 캬챠(Katya),
2천 뢴트겐인 구역은 나탸샤(Natasha).
그중 시간당 1만 뢴트겐 (노출 3분내 치명상) 이상의 무시무시한 감마선을
뿜어내며 투입되는 로보트들을 족족 망가뜨리며 모두를 전율하게 만든 구역은
7남매중 다섯째였던 장군의 손윗 누님(!) 이름을 따서 "마샤(Masha)"가 됩니다.
"1-3호기의 옥상과 주변의 오염수치는
여전히 엄청났고 투입한 로보트들은 망가졌죠.
셰르비나는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서 이렇게 말했어요.
"로보트도 없이 도대체 우리가 뭘 해야하는 건가?"
지금은 그게 누군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만
(드라마와는 달리) 레가소프는 그때 자리에 없었어요.
누군가 말했어요.
"이제 남은 유일한 대안은 바이오로보트(bio-roboty)뿐입니다."
저는 듣자마자 알았어요.
병사들을 투입하자는 얘기를 하는구나."
옥상 작업투입 전후, 장군의 훈시를 담은 실제 기록영상
9. 옥상 잔해제거 작업에 대한 장군의 회고
먼저 군의료단의 방사선 전문의(대령)가 실험실 모르모트 역할을 자원합니다.
그는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납판을 얇게 두른 앞치마와 같은 실험적인
보호장비를 걸친 후, 각 신체부위별 피폭선량을 측정하기 위해 도합 10개의
선량계를 몸에 매달고 "마샤"로 뛰어들었습니다.
옥상 여기저기를 잽싸게 뛰어다니며 흑연 다섯 삽을 퍼서 버린 후,
1분 30초간 그가 받은 선량은 총 15 rem(뢴트겐).
그리고 적성훈장(red star)을 수여 받습니다.
계측 결과, 보호장비들이 피폭 정도를 1/3 가까이 줄여줬지만
"마샤"가 뿜어내는 감마선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머리와 몸 곳곳에
둘렀던 조악한 납판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방호효과가 없었다는군요.
따라서 "속도"가 최선의 인명 보호책이라고 판단했던 장군은 항공촬영
사진을 참조해서 원전 옥상을 1:1 실측으로 재현한 모형 훈련장을 만들어놓고
모의 흑연과 연료봉 파편을 뿌려놓은 후, 장병들에게 사전연습을 시켰습니다.
또 투입 직전의 작업조들에게는 앞서 진행된 작업 영상을 직접 틀어주면서
주의사항과 요령을 가르쳐줬죠.
장군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물론 제거작업은 좀더 복잡했어요.
5인으로 구성된 1개조가 사전교육을 받고 인솔장교와 함께 현장에 도착합니다.
장교는 옥상으로 난 구멍을 통해서 조원들을 올려보내죠.
계단을 걸어올라간 작업조는 대형해머 같은 도구들을 쥐고 대기합니다.
(대폭발로 사방에 흝뿌려진 흑연 감속재와 연료봉, 지르코늄 튜브 파편들은
고열로 녹아내린 아스팔트에 서로 엉겨붙어 있었답니다.
따라서 우선 해머로 으깨서 떼어내고 그걸 하나씩 손으로 치워야했죠.
엄청나게 위험하고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계단 아래에는 '배송담당'이라고 불리던 장교가 버튼 2개를 들고 서있었어요.
하나는 스톱워치, 다른 하나는 사이렌 버튼이죠.
스톱워치를 누르면 작업조는 옥상으로 뛰어나가 재빨리 잔해 제거작업을 시작합니다.
"5분" 후 장교가 사이렌 버튼을 누릅니다.
체르노빌 사람이라면 다 들을 수 있을만큼 음량이 큰 사이렌이었죠.
이미 여러 시간 교육을 통해 주의사항을 숙지하고 있던 장병들은 움찔하지도 않았어요.
일을 마친 조원들은 계단을 내려와서 소지했던 휴대용 선량계를 반납합니다.
오브닌스크(Obninsk) 핵발전소에서 파견된 디미트로프 교수가 병사들의
피폭수치를 기록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18 렘...15렘..
좋아. 가도 좋네"
200톤으로 추정되는 옥상잔해를 치우기 위해 작업은 단순히 할당된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 작업량 하나하나가 꼼꼼하게 일지에 기록되었습니다.
"듀딘 N.S: 총 30kg에 달하는 지르코늄봉 7개 제거
바르소프 I.M: 직경 80mm, 길이 3-40cm 파이프 2개와
10개의 지르코늄봉, 총 25kg 제거
바이취코프 V.S: 대형해머로 아스팔트에 녹아붙은 흑연블록 파쇄."
장병들은 앞서 다른 피폭자들과 마찬가지로 작업중에 입안에서 '쇠맛'을 느꼈고,
치아의 감각을 잃었으며, 눈은 충혈되었다고 회고했는데요. 불과 '수 분'동안만
지속된 작업이었음에도 일을 마친 후에는 마치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것'처럼
기력을 잃었고 운신하기가 힘들었다는 체험담을 털어놨습니다.
이들 총 3,828명의 참가자들은 작업이 끝난 후, 인쇄된 '동원해제 증서' 한 장과
소액의 현금을 지급 받고 모두 귀가조치 됩니다.
10. 의사의 섬뜩했던 경고
"체르노빌은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타라카노프 장군은 보름 가까이 진행된 옥상 잔해제거 작업의 진척 상황을
매일 헬기를 타고 점검하며, 원전내 지휘소에 설치된 폐쇄회로 TV를 지켜보거나
옥상을 반복해서 방문하며 현장에서 독려하고 지휘를 했습니다.
3호기 옥상의 잔해제거 작업을 일단락 짓고 붉은 깃발을 보란듯이
굴뚝에 내건지 8일 후, 차에 오르려던 장군은 혼절해서 쓰러집니다.
그에게 누적된 피폭 조사선량은 군의 전시 최대 허용치 1인당 20 뢴트겐의
10배였던 200 뢴트겐이었다는군요.
병명은 "급성 백혈병"이었습니다.
장군은 2년간 병상에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방사능 제독작업에 참여했던 병력들을 향해서
예브게니 차조프(Evgeny Chazov) 선생이 경고를 했었어요.
(주: 소련 보건부 장관을 역임했던 유명 심장 전문의)
' 여러분들은 삶을 마칠 때까지 고통을 겪게될 것이며,
체르노빌은 쉽사리 놓아주질 않을 겁니다.'
선생의 말이 맞았어요.
면도중에 상처가 생기면 보름 가까이 아물지가 않더군요.
잇몸에 피를 흘리거나 혈변을 보기도 합니다.
온갖 종류의 약을 달고 다녔죠.
지금도 주방에 8가지 약을 놓고 하루 3끼 때마다 먹고 있는 중이니까요."
덧글)
1. 제가 장군의 인터뷰를 옮겨온 이유는 수습 책임자였던 그의 육성이
드라마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하지만 장군도 '舊소련체제 내부자' 입장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RT가 푸틴의 대외 선전매체라는 점도 십분 감안 하면서 읽으셔야합니다.
그래서 몇 달 전에 발간된 최신 르포 '자정녘 체르노빌'에서 일부 내용을
보탰습니다.
3. 원래 러시아는 서방에서 자국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경계심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나라인데요.
몇몇 과장되고 생략된 부분에 대한 지적들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대체적으로 '호평'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생존자의 인터뷰를 다룬 외신들을 보더라도 드라마의 대성공으로
참사와 당시의 수습노력이 다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사실에 생존자들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는 편이더군요.
많은 분들에게 그랬듯이 깊은 여운을 남긴 드라마였습니다.
국내 정식(공중파) 방영을 기대 해보렵니다. :)
출처: 러시아 관영 해외채널 RT
"Midnight in Chernobyl"(2019)
Adam Higginbotham
우리나 여타 다른 나라였다면 과연 이 정도까지 했을까 싶은 부분들이 보이긴 합니다.
먹어서 응원하자..
감안하고 읽으셔야합니다. 각기 본인의 주관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일반적인 '열교환기'의 구조나 원리에 대해서는 모릅니다만...
르포에 따르면 우선 광부들이 지하터널을 파서 원전 밑에 교환기가 설치될 공간을 만들었고,
여기서 콘크리트와 흑연블록을 층층이 쌓아올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사이에 (액화질소) 스텐튜브가 들어가는 구조인가 봐요.
주요 부품은 모스크바에서 공수를 해왔고, 1개에 40kg가 넘어가는 흑연블록을
어두운 터널 안에서 군인들이 서로 손으로 주고 받아 옮겨서, 기계공업부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조립을 완료했답니다.
하지만 원전하단의 온도가 자연스레 하락하면서 가동을 안 했다는군요. -_-
ClienKit3 . iPXSMax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놈을 못 잡고 있어요.
아이러니한
참으로 참사 중에 참사죠
성과에 눈이 멀어 결함을 덮고, 결과를 얻어내기위해 무리한 실험을 강행하다 폭발.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잖아요?
그게 원전이 위험한 이유고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다룬다는것
계획경제 할당으로 인한 무리한 실적채우기
지역당위원회에 의한 정보관제통제
스위치를 당긴 건 개인이라도
시스템도 잘한건 없습니다.
사건 터지고 은폐는 개인이 한게 아니고 소련이 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으니까 시인한거고(그것도 축소발표)
무리한 실적 채우기로 인한 사고 역시 소련이라 터진 문제가 아니죠.
원전이 아니라 그냥 세상의 수많은 사건사고로 생각해보세요. 문제를 덮고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사고 터지고 은폐한다. 이런 사고가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소련의 문제가 아닌겁니다. 소련이라 무식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건 맞지만...
체르노빌 사건은 사고 양상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흔한 사건사고입니다. 발생한 장소가 재수없게도 원전이었을 뿐이죠.
중요한건 다른 사건사고는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한데, 원전 사고는 수습이 안된다는거죠. 그게 탈원전 하자는 이유고요.
욕심에서 비롯된 재난을 보니..
경제체제와는 무관한 것 같아요.
비단 한국만 봐도,
무자격자가 해도 된다는
원전관련 자격자들의 헛소리가 있으니까요.
이건, 의사가 보고 있으면
영업사원이 수술해도 된다는거나
마찬가지의 발상이라고 봅니다.
조선일보에서 5.18 어떻게 다루는지 함 볼까요.
체르노빌 사태를 막아낸 공로로 방송 하는겁니다
한편으로는 '희생과 승리의 역사'거든요.
어떤 분들은 미국이 만들고 영국이 연기한 이 드라마를 가리켜 '서방의 러시아 폄하'라고
평을 하기도 합니다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저는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비춰지는 모습도 러시아 국민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한다는
소위 '대조국 전쟁'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봐요.
엄청난 대가를 치른 초기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국민 모두가 일신상의 안위를 돌보지
않으며 하나가 되서 재난을 수습한다는 점에서는 체르노빌도 '전형적인 러시아 스토리'라고
봅니다.
물론 고통과 희생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입니다.
부조리한 권력과 불합리한 권위주의 체제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있어 항상 "숙명"과도
같은 존재였습지요. 비극속에서도 이런 상황에 치여만 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한층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체르노빌이 과거 소련 연방 때 일이었던만큼
앞세대의 과오를 좀더 객관화해서 냉철하게 곱씹어볼만큼 충분한 세월이 흐른 시점이
아닐까 싶어요.
군부 입장에서는 대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체르노빌 사태는 어느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당시 정부에서는 발전량을 향상시키는걸 목표로 함)
일어난 일이지 소련의 잘못은 아닌거죠
근데 그걸 막기위한 대규모 투쟁은 말그대로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당시 가용 가능한 소련의 모든것을 다 동원한 어찌보면 총력전이고
상상도 불가능한 재난을 어느정도 막아낸거죠
군과 소련입장에서는 승리한 전투입니다.
사건초기의 문제점들은 어느 국가에서나 일어날수 있는 상황이라
표현상 큰 문제는 되지 않을겁니다 거기에 그 관련자들도 처벌은 받기는 했죠
공로는 맞지만, 애초에 사태의 원인을 보면 인재도 있었지만, RBMK방식 원자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게 결론이었으니 말입니다.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간건 인재가 맞지만, 그때 제대로 설계된 원자로였다면 저런 사고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이라는게 위에도 나오는 V. Lasarov 박사의 결론이었고, IAEA의 결론이었습니다.
컨트롤 로드의 팁이 그래파이트였다는게 결국 폭발을 일으켰다는것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도 뒷수습의 노력은 칭찬받아야할만한 일이지만, 애초에 원인제공이 기술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굳이 들춰봐야 좋을 일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건 공감합니다.
저들 덕분에 어쩌면 그나마 그정도로 끝난거니 말입니다.
자랑스러워해야죠.
다만 국가적인 입장에서, RT같은 관영 매체에서 국가의 치부 같은 사안에서 저렇게 자세히 인터뷰를 해서 실어주는게 대단하다는겁니다.
왜곡과 조작으로 일관하는 국내 모 언론사와는 다르게 말이죠.
중국이 오히려 무섭죠.
중국은...그저 기도할 도리밖에 없겠군요...
디아틀로프 이 xx끼 같은 놈
레가소프, 내가 그 입장이어도 소신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본문중에 '실재 핵전쟁 상황'이였다는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요인들로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다가옵니다.
내용은 스크랩하여 정독하겠습니다.
남한의 국토가 협소해서 핵재난이 발생했다고 후쿠시마처럼 버려둘수가 없어요
대통령과 장관 및 일선 지휘관들이 먼저 가서 한삽씩 떠야합니다
국회의원들도 가서 한삽씩 떠야 할겁니다
아마 대한민국 대기업 정제계 인사들도 한국에서 장사 계속할려면 저위험군 작업장에 가서 한삽씩 떠야 할겁니다
그리고 그후로 고위험군 작업장에 장병들과 예비군들을 갈아넣어서 어떻게든 복구를 해야지 나라가 안망하고 살아남을수가 있겠죠
시간당 1만 뢴트겐이라니 상상이 안되네요
작업한 장병들이 정말 영웅들입니다
우리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죠.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나라가 워낙 좁아서 비슷한 규모의 사고라도 터진다면
그때는 진짜 온국민이 십시일반 하며 참여해야할 듯 싶습니다.
면역체계가 맛이 갔겠는데요..
진짜 무서운 겁니다.. 평생 약 달고 살아야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리라 싶어서 주말을 빌어 옮겨와봤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흥미진진 잘 봤습니다.
인간의 힘이 한없이 약해 보였습니다
오히려 병사들은 단기간에 강력한 방사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서 교대 작업을 실시했기에 실제 있는 시간이 적어서 누적되는 양으로 보면 차이가 좀 있죠
드라마에서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질 않네요.
잘 봤습니다.
그런데 (스포) 표시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간날때 꼭 봐야겠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있었군요
스크랩 해야 겠네요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정성스러운 글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