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콘크리트 건물보다는 옥수수 밭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지루한 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학기가 끝나고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을 좋아해서 어딘가 바람은 쐬러 가고 싶은데 혼자 돌아다니긴 너무 지루해서 흔히 말하는 XX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큰 기대를 안고 말했기 보단 그냥 가볍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한 번 놀러와라, 엘에이 천문대에서 City of stars 듣고 베가스 가서 머신 좀 돌리고 캐년 가서 별 보면 딱 일주일 되겄다"
당연히 그냥 잊혀져 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오는 것도 아니고 10시간을 넘게 날라 여행하고 가라니... 주변에 가까운 곳이나 혼자 돌아다니고 말아야겠다 하던 참에 한 친구가 갑자기 오겠답니다. 불과 보름 정도 뒤로 티켓을 끊고 일정을 제가 알아서 다 짰습니다. 결과적으로 LA-Las Vegas-Grand Canyon-Monument valley-Antelop canyon-Zion canyon-Las vegas 이러한 일정이었지만 중간중간 여백을 조금 뒀었고 얼추 경로에만 맞춰 그날 그날 루트를 짜기도 했습니다. 몇 군데 빼고는 몇 년 전 이미 한 번 돌았던 코스라 크게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LA 천문대 야경은 역시나 아름다웠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날 저녁 1년 만에 먹어 본 족발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라스베가스는 역시나 참 신기한 분위기의 도시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도시 같으면서도 또 나름 로맨틱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그 로맨틱도 결국 돈이겠지만요...).
그랜드 캐년은 처음 갔을 때도 도착 후 5분 동안만 우와 하다가 덤덤해졌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아 크다... 이 정도에서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의 절정은 Monument valley camping ground에 도착한 그 순간이었습니다. 원래 일정은 Monument valley에서 석양을 보는 것이었는데 그 전 일정이 늦어져서 정말 정말 불빛 하나도 없는 도로를 한참을 달렸습니다. 오는 길에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경찰에 잡혀 마음이 초조했었는데 다행히 티켓 끊은 거 없이 보내줘서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렸습니다. 대체 여기가 어딘가 하면서 끊임 없이 달리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 라이트를 끄는 순간 하늘 가득 수 놓아진 별들을 보는데 그 순간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한밤 중에 달빛만으로도 상대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더군요...
밤엔 실루엣 밖에 안 보였었는데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주변이 이런 풍경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인싸 인증샷 중에 하나인 horseshoe bend 입니다. 인종 국가 성별 막론하고 모두 열심히 난간에 어떻게든 앉아 뒷태샷을 찍는 모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고 물론 저도 앉아 사진 찍는데 정말 오금이 저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사진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데 사진으로 가장 만족한 곳은 Antelop Canyon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또 거친 벽들의 질감이 너무나 신기하고 빛을 받는 각도, 서로 다른 미네랄로 협곡의 돌들이 미묘하게 다른 색을 비추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원래 일정에는 없었지만 Monument valley 때의 캠핑이 너무 좋아서 다시 Zion Canyon 주변에서 캠핑을 했습니다. 이번엔 넉넉하게 도착해서 차콜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해질녘 캐년의 풍경부터 밤 야경까지 보며 맥주 한 잔을 하는데 그 어디서 먹었던 스테이크와 맥주보다 맛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순간순간들이 있지만 특히 기억 남았던 몇 순간들을 올렸는데 사실 이처럼 짤막한 글과 사진을 올리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예상치 못했던 쓸쓸함을 조금은 달래고 위로하고자였습니다.
주로 늘 누군가를 남기고 혼자 떠나는 입장에 있었는데 먼 타지에서 친구를 맞이하고 저도 그 비행편에 같이 함께하고픈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친구를 보는데 마음이 참 쓸쓸했습니다... 방학 때 한국에 돌아갈 수 있으면서도 다시 돌아올 때 느낄 것 같은 그 싱숭생숭함이 싫어 일부러 잘 안 들어가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가 있는 곳에서 누군가를 떠나 보낼 때도 비슷한 기분을 받을지 예상을 못했었는데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다보니 오히려 여파가 강하면서도 또 잔잔하게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물론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고, 여행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가 가장 좋구나 싶었던 순간이었고 또 이런 쓸쓸함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동안 다시 또 이런 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유럽뽕에 취해있는 성격인데.. 그리고 나서는 미국뽕에 취했네요 ㄸㄸㄷ
저의 경우는 캠핑은 생각도 못했던지라 해가 지고 어두워진후에 숙소까지 몇시간 남았을때가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암튼 사용기에 올리셔도 좋았을것 같은 글입니다.
/Vollago
달이 너무 밝아요
오랫만에 만나 1-2주 같이 즐겁게 여행다니고 공항에서 비행기 태워 한국으로 보내드리고 난 뒤 몇일간의 그 먹먹한 느낌이 오랫만에 생각나네요..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이 한국에서 보다 외국에서 훨씬 오래가는거 같아요.
저도 외국 생활 3년 넘어가니 그 심정 약간은 이해가 가네요
처음 여기로 와서 사귀게 된 친구들의 말도 이제 이해가 가더라구요. '이제 사람들한테 정을 못주겠어. 곧 다들 돌아갈 사람들이거든. 하나 둘 돌아가고 나면 너무 슬프더라. 너한테 우리가 그러더라도 이해해라.'
저는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들어갔다 옵니다
하지만 갈 때의 기쁨보다 돌아 올 때의 슬픔이 항상 컸던거 같아요. 매년 그 슬픔과 쓸쓸함이 더커지는 느낌도 들구요.
가족들과 친구들은 항상 거기에서 날 반기고 기다려 주지만 지리적 거리감이 주는 동떨어짐은 어쩔 수가 없네요.
저도 친구들 한테 놀러와라 내가 가이드 다 해줄게
빈방도 넉넉하다~ 가끔 이야기 하지만 이제 친구들도 나이가 있고 가족도 있고 직장 생활도 있으니 쉽게 오겠다는 소리는 못하네요. 저도 이해하구요.
내년에 한국 다녀 올 때는 얼마나 더 쓸쓸해질지 두렵습니다만 그래도 다녀올려구요
사진과 글많이 올려주세요~ 보는대로 댓글이라도 열심히 달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요즘은 미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