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때에 어차피 핵을 쓸거였으면, 소련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전쟁 다 이겨놓고, 전리품을 엉뚱한 놈에게 다 넘겨준 멍청한 실수였다고 봅니다.
괜히 소련 끌어들여서 한국 분단되고, 당시 중국에서 가장 자원이 풍부한 만주가 공산당놈들에게 넘아가버렸지요. (소련이 만주지역을 공산당에게 넘김)
그 바람에 만주지역에 쌓여있던 일제 군사물자가 공산당에게 넘어가고, 공산당이 만주지역에서 민간인 징병해서 병력 우위를 찾으면서 국민당군과의 전력 차이가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일본에게 뺏기는 걸 경계해서 일본과 태평양 전쟁을 벌였는데, 일본보다 더 위험한 중국 공산당에게 중국이 통째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미국은 나찌를 이기긴 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는 중국만 놓고 본다면 왜 전쟁을 했는지 모를 상황이 된거죠.
장개석은 소련에서 공산당이 하는 짓거리를 보고, 격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어 일본보다 공산당 토벌하는 걸 더 우선시한 이유로.
일본에게 지면 잠깐 노예가 될지 모르지만, 공산당에게 지면 영원히 미래가 없다고 했다네요.
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소련 개입 없이 미국은 핵을 준비중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단독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겁니다. 나치랑 상관없이요.
당연히 독소전이야 미국과 상관없이 이미 한창 진행중이었으니까요.
ㅎ핵을 준비중이었기 때문에 굳이 끌어들일 이유가 없었다고 봅니다. 전쟁에서도 이기고 있었거든요.물론 그당시 중국 본토에서 일제의 이치고 작전으로 장개석이 참패한 영향도 있긴 합니다만. 핵을 어치피 쓸거였고. 일본도 항복을 준비중이었거든요.
몇년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치른 전쟁도 그 판단미스의 댓가였고. 한국의 분단여부도 그 때 결론이 난거죠.
그 당시에 일본은 임팔 작전 실패로, 버마를 뺏겼는데요. 그 바람에 버마를 통해 장개석군에게 중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보급로가 뚫려버렸습니다.
아시다 시피 장개석군에게 셔먼 전차만 가도 일본군은 못막아요.
소련군의 만주 레이스 없어도 장개석군이 충분히 했을거에요.
할수만 있으면 그랬으면 좋았을겁니다
문제는 스탈린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라서...
소련의 중재 하에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종전협상을 이끌어내려고 했는데, 소련마저 총구를 돌리면서 마지막 남은 보루(라고 생각했지만 알짜배기는 빠졌던)인 관동군을 단 며칠만에 아작내버렸으니까요.
중지시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 그때 버마루트를 통한 장개석 군 무장이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마무리가 엉망이었다는 겁니다.
독소전이야 소련이 다 해먹은 거지만, 태평양 전쟁의 주역은 미국인데.
전쟁의 원인이자 가장 큰 목표였던 중국을 장개석 정부에게 통치하게 하는 전략적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니까요.
그러니 패착이라는 건데.
패착이 아니라고 하니까 답답하네요. ㅎㅎ
만주 지역은 어차피 미국이 먹을 수 있는 성격의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중국 및 소련과 바로 붙어있는 그 땅 말이죠.
가정과 가정을 덧붙이면...
원폭 직전에 항복 및 딜을 했으면 한국은 여전히 독립을 못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의 거점 및 완충지대로 생각했고,
실제로 포츠담 선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등 일본의 편의를 많이 봐주었고요.
오히려 소련과 딜을 했기에 우리가 독립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본이 대륙타통작전한게 그 루트 막으려는 거였는데, 실패했지요.
국민당의 요구가 반영된 미국의 종전 조건이었죠. 역사에는 만약 이라는 것이 없지만, 원폭 이전에 항복했으면 식민지의 일부는 보장받았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전후 미국이 그리던 모습은 막부라...
님과 제가 말하는 그 모든 것이 가정과 가정이고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님이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 대로 흘러갔을 것 같지는 않네요.
미국은 이미 전쟁을 이기고 있었고, 핵도 있었고. 버마를 통해서 장개석군에게 중장비를 공급할 루트도 뚫렸지요.
핵을 맞은 일본이 버텼어도. 장개석군이 육전으로 쓸어버렸을 겁니다.
셔먼으로 무장한 장개석군도 비슷하게 했을거라 봅니다.
뭐 그전에 핵맞고 항복했겠지만요.
그러니까 소련에게 참전 요청을 한게 바보짓이었다는 겁니다.
이기는 전쟁에서요. 나중에라도 막았어야지요.
위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우리의 독립도 통수의 달인 장제스의 욕심으로 가능해진 측면도 있고, 일본이 정신 못차리고 총옥쇄 바로 직전까지 갔기에 가능해진 측면도 있고, 미국의 막부 구상도 있기에 가능해진 측면이 있고요. 물론 대한독립군의 역활이 없으면 그 가능성 조차 열지 못했을 거지만 말이죠.
일본이 패전한다는 가정하에 최악의 선택을 미국이 했다는 겁니다.
만주를 소련이 공산당에게 줬기 때문에 무너진겁니다. 만주군에게서 노획한 군사물자랑 같이요.
그전에는 이기고 있었고, 공산당이 만주로 간 이후에도 이기고 있었습니다. 만주 적진 한가운데를 돌파한 상황에서 미국의 휴전명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역포위 당해서 무너진겁니다.
만드는데, 시간 벌고 옮기는데도 도움을 주고요.
소련때문에 일본군이 상당수 만주에 묶여있어야 하거든요.
몇년후 미군은 다시 한반도에서 3년간 지긋지긋한 전쟁을 했지요.
중국은 일본보다 더 나쁜 공산당놈들에게 뺏기고.
결과론이지만 뻔한 결론이죠.
트리니티 실험이 1945년 7월에 성공했는데, 소련의 대일 참전을 요구한 얄타회담은 2월이에요. 원폭이 성공할지 안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플랜B를 만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겠죠.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라면 생각해서는 안될 끔찍한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다.
결과를 놓고 보니까, 바보짓이라는 겁니다.
최악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니 바보짓이라는 겁니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를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하시나봅니다.
그 댓가로 미국은 불과 몇년후에 최악의 전쟁을 한반도에서 겪죠.
민주주의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과 절차를 중요시합니다. '천안문 항쟁의 유혈진압을 댓가로 중국은 불과 몇 년 후에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겪습니다' 이게 님의 얘기 방식입니다.
님 바둑에서 한수 한수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이것은 패착이고, 이 수는 여기에 두지 말고 여기에 두었어야했다는 계가를 항상 합니다.
계가를 잘해야 발전이 있는 것이지요.
님의 논리는 그런 계가조차 하지말자는 소리에요.
미국이 내린 선택은 민주주의랑은 상관없는 전략전 판단이에요.
전쟁에서 지휘관이 내린 선택에 무슨 민주주의를 따지나요? 전쟁에서 졌는데 민주적으로 졌으니 승리 이렇게 정신 승리합니까?
님은 그런 정신승리에 만족하시나 봅니다.
밑에도 적었는데, 무슨 민주주의 타령하시네요.
소련 참전 여부가 무슨 민주주의 절차랑 상관있는 결정인지 이야기 해보시죠?
그건 민주주의랑 상관없다니까요?
이승만같은 말종을 미국이 대통령 시킨게, 민주주의랑 상관있던가요?
중국 공산장이 정권 잡은게 민주주의랑 상관있던가요?
엉뚱한 곳에서 민주주의 타령하시는데, 그게 논리 비약이라는 거에요.
저는 2번 갑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목표로 했던 중국땅을 공산당이 먹었으니까요.
그 과정에 중대한 판단착오가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절차랑 상관없었습니다.
희생타령하는데, 그래서 핵을 쓴것이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한국전쟁으로 더 많은 희생을 미국은 했습니다.
자 그럼 충분히 그 결정이 패착인지 아닌지 평가를 할 수있습니까 못합니까?
여기에 어디 민주주의를 들먹입니까?
이런 걸 미국은 하지 않죠. 중공과 같은 독재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결정이죠.
거참 엉뚱한 곳에서 민주타령하시네요. 논리비약인거 못 느끼시나요?
독재랑 상관없이 국익 뿐만 아니라, 주변국에게도 최선의 선택이라는 겁니다. 그냥 전쟁 지휘관의 전략전 선택이라는 거에요.
잘못된 전략전 판단이냐 아니냐를 평가하는데 자꾸 민주타령이 나와서 어이가 없습니다.
그 바람에 적진 한가운데에서 뜬금없이 공세를 중단한 장개석군을 상대로 전력을 재정비하도록 공산당군에게 여유를 주었지요.
그리고 만주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국민당군을 역포위해서 전쟁을 한방에 끝냅니다.
자 전쟁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민주적 절차니까 바보짓이 아니네요?
질문에 먼저 답해보세요. 미군이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합니까? 미국의 우방이자, 반드시 이기길 원했을 장개석군이 박살났는데. 미국의 국익과도 관련된.
미군이 있으면 멍청한 선택이 아니고, 없었으면 멍청한 선택이 되나요?
아무리 이기고 이기고 이겨도 미군이 있어서 희생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정계는 그걸 감당못하죠. 그런 희생이 아니면 정치가들의 정략/전략적인 목표가 우선시 되겠죠.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시민인 군인을 희생에 대해 고민하는 건 멍청하고 말고의 것이 아니죠.
질문에 동문서답하지 마시고요.
저게 멍청한 선택이었는지 여부를 먼저 밝히시라니까요.
장개석군 진격을 쓸데없이 전후사정 가리지 않고, 중지시키는 바람에 동맹군이 전멸했는데. 무슨 미군이 있으면 옳은 선택, 없으면 나쁜 선택이라는 논리가 어디에 있나요?
미국이 무슨 영세 중립국이에요? 미국이 병사한명 죽을 때마다 경기일으켜서 전쟁을 아예 안하는 나라에요?
그런것도 판단못해요?
의회의결을 통해서 전쟁을 하기로 한 이상. 미군이 희생을 여부가 중요한게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고 목표를 관철하는게 중요한거에요.
그걸 몰라요?
자국민 군인들의 참전 때문에 국민의 희생이 요구될 때였던 2차 대전에 대해서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자국민이 제대로 참전하지도 않은 국공 내전에서의 판단을 같이 엮는 건, 자국민의 희생에 관계없이 전략적 판단이 더 중요하다라는 걸로 덮는 건가요?
질문 제대로 했잖아요.
의회가 의결을 통해서 전쟁선전포고 했으면 그걸로 끝난거지.
그다음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전쟁을 이기고 목표를 달성하는게. 민주주의랑 상관없이 군대가 정부가 할일이에요.
그걸 이해 못해요?
장개석군 진격 멈추게 해서 전멸하게 만든거 패착입니까? 아닙니까?
전투한번 할때마다 의회승인 받습니까?
병사 한명 죽을때마다 2차대전에서 청문회 하던가요?
그것도 답변 못해요?
그리고 장개석군 진격 멈추게 해서 전멸한 건지, 아니면 애초에 장개석군의 문제인지도 모르는 문제를 왜 미국 의회 의결과 엮어요?
그럼 여론 한번 악화된다고 꼬리내리는 지도자랑 지휘관이 잘하는 건가요?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전쟁에서 지지 않고, 최선의 목표를 달성하는 이상 지휘관의 할일은 끝난거에요.
왜 질문에 답변 안해요?
장개석군 만주 진격 중간에 멈추게 한거 멍청한 패착입니까? 아닙니까?
글 못 읽어요?
그 당시 미국의 멍청한 선택이 한두개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아 그러니까, 그 지도자가 장개석 군 진격 멈추게 해서, 우방국이 망했는데
멍청한 선택이었는지 왜 판단을 못하냐고요?
비슷하게 소련의 참전을 용인한게 패착이라는 겁니다. 그거 이해 못해요?
님이 미군 희생 피하기 위해서라고 자꾸 강변하는데, 장개석 패망하고 한국전쟁으로 미군의 희생이 늘어나는 결과만 낳았으니까요.
자 이런 평가 이해 못해요?
태평양 전쟁의 목표가 미군 한명도 안죽는거에요?
미군의 희생이 있더라도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게 목표에요.
태평양 전쟁의 전략적 목표는 중국이에요. 그거 몰라요?
전략적 목표 달성에 실패했는데, 왜 그걸 패착이라고 못하나요?
이미 의회 승인을 얻어서 돌입한 전쟁에서 말도 안되는 민주타령을 하질 않나.
근데 소련의 참전을 요청한 건 태평양 전쟁에 자국민이 들어가서라니까요. 그 상황에서 원폭은 실험조차 없었고, 그래서 소련의 참전이 없을 경우 희생이 얼마만큼 발생할지 모른다는 게 당시 미국이었으니, 막연한 외교적 전리품 이런 거로 사람의 희생을 감내할 수 없으니, 그건 당연한 결정이라는 거에요.
당연한 결정이든 아니든 나중에 그로인해 더 큰 희생이 발생하면 패착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무를 찬스가 있었고, 버마 루트가 뚫리면서 장개석군 무장하면서 전세가 중국본토에서도 기우는 판이었습니다.
소련은 그냥 마지막까지 참전하지 않고, 미국이 전쟁 다 이길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들어간거에요. 그걸 이해하지 못하시네요.
미국이 일본에게 중국의 유일한 정부는 장개석 정부라는 걸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거기에는 만주도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만주도 장개석 정부에 넘기라는 것이었죠.
그것을 일본이 거부해서 석유금수조치를 취하자. 일본이 인도네시아의 석유를 노리고 선빵을 때린겁니다.
애초에 전쟁 발발 원인이 중국이었던 거에요.
태평양 전쟁의 최고 전략적 목표는 중국에서 일본 몰아내는 거였어요. 미국이 일본 정복해서 땅따먹기하는게 목표였는줄 아시나요?
그리고 장개석 정부를 중국의 유일 정부로 인정하는 것이었지요.
그걸 공산당이 차지했는데, 당연히 목표 미달인겁니다.
한국은 별 전리품 축에도 안들어요.
애초에 미국이 맺은 조약 같은걸 보면 일본만을 방어선으로 생각한걸 알 수 있죠.
만주니 한국이니 생각 없었는데 소련이 급하게 내려오니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위협하고 일본까지 먹을지 싶어서 진출한거죠.
장개석이라는 우방이 중국을 먹게끔 하는 것도 전리품입니다.
장개석은 조선 독립을 강하게 희망한 사람입니다.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북한이 소련과 상관없는 독립국이고, 미국의 위성국가인 이승만 정권치하 한국도 엄연한 동아시아 정치 선진국으로 독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통일 한국으로 남았겠지요. 독립을 유지한채로요.
그리고 중국도 지금의 공산당 천하는 아닐겁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을 공산당이 차지한게 최선이라는 겁니까?
그게 미국의 최악의 결과를 내놓은 선택이였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일뿐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승리한게 좋으신가 봅니다.
과거에 대한 평가를 명확하게 내려야 미래에서 유사한 실수를 하지 않겠지요.
이번 미중 무역분쟁에서 그때와 같은 실수를 트럼프가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평가를 해본겁니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평가는 합니다.
근데 말이죠.
현대 중국에게 최선이 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그 당시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게는 최선이 아니란 말이죠. 미국이 왜 그래야 해요? 현대 중국이 최선이 되기 위해서 자국 시민이 주축인 국민이 더 많이 희생될 수도 있는 결과를 선택해야 해요?
중공 사람이신가 봅니다. 미국은 그런 과정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인 거고, 자국 시민 희생시킨다면 그건 미국이 아니라 중공인 겁니다.
제가 볼때에는 님이 중공인 같은데요?
미국뿐만아니라, 한국, 중국 전세계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인데.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 글이 뭐가 문제라고, 그때 미국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강변하는지 오히려 이해가 안되네요.
전쟁에서 내린 전략전 판단에 무슨 민주주의 타령하나요?
무슨 소련 참전을 미국이 국민 표결을 붙였나요? 의회에서 법으로 제정해서 요구를 했나요?
어이없는 데서 민주주의가 나오네요.
지휘관이 그럼 판단 하나 내릴때마다 국민투표 하나요?
소련을 참전요구하는데에, 무슨 민주주의적 절차가 있었는지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그냥 높으신 분들의 전략적 판단일 뿐이지. 어이가 없네요.
한반도 분단되고, 이승만이 남한 대통령되는데에 무슨 민주주의 절차를 통했는지 한번 이야기 해보시죠.
그러면 당연히 그에 따른 평가를 할 수 있는거죠.
그리고 전혀 상관없는 민주적 정당성 어쩌구 말도 안되는 걸 붙이지 마세요.
그거랑 상관없는 전략전 판단 미스였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되는데 전략전 판단 미스인 건가요?
소련이 참전안했으면 일본이 핵을 맞고 항복.
만주를 장개석군이 접수. 공산당 패망
통일 조선 독립. 김구 대통령.
미국은 한국전쟁 희생 없음.
자 이해 되십니까?
일본이 핵맞고 바로 항복안했어도. 버마 루트가 뚫리면서 장개석군이 치하 킬러 셔먼전차 등으로 무장할 시점이었습니다.
일본의 대륙타통작전 일명 이치고 작전이 그것을 막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는데, 실패하였지요.
그리고 시간차이 얼마안났을거에요. 이미 버마루트 뚫려서 보급이 진행되어, 중국본토에서도 일본군이 장개석군에게 털리던 시점이었어요.
그걸 보고 소련도 만주 턴겁니다. 체리픽킹한거죠.
이해 못하세요?
님은 전투에서 이겼는데, 전쟁에 졌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나봅니다.
전형적인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케이스나 마찬가지에요.
전쟁에서 이겼지만, 중국에서의 미국 우방 보호라는 목표는 완전히 실패했던 사례입니다.
이게 왜 타당한 판단이에요?
되짚어보니 전혀 필요없었는데.
한국전쟁으로 죽은 미군만해도 얼마인데.
루즈벨트와 스탈린, 처칠이 얄타회담을 가진게 1945년 4월이구요.
당시 맨하튼 프로젝트 완료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최초 핵실험이 7월에 있었고 급하게 8월에 떨군겁니다.
1. 위에 언급하신 대륙타통작전은 실패했지만 장제스군은 최소 50만의 피해를 입었고, 공업지역과 곡창지대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반면 공산당은 오히려 120만으로 불어났구요.
2. 국공내전때 만주를 통해 소련이 지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국민당이 털렸을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마오만 소련에서 지원받은게 아니라 장제스도 미국에서 지원받았어요. 근데 지원금 반이 유용되고
심지어 공산당으로 흘러들어간걸 미국쪽에서 알고 걍 포기한거죠.
소련의 지원은 국공내전의 결과를 만든 여러 요소들중 '하나'일뿐입니다.
3. 얄타회담에서 소련을 끌어들인건 일본 빨리 항복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미국입장에서 영국 도움은 받을 것도 없었고(이미 타격이 커서...)
일본은 소련쪽에서 붙어서 샤바샤바하고 있는 상황이었던터라 소련을 움직이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했겠죠.
4. 말씀하신것처럼 미국이 훨씬 우세였죠. 핵이 미완성이었지만 완성 직전이었던건 맞구요.
일본이 포츠담 회담을 가볍게 씹어주는 바람에, 미국은 핵탄두 20개 + 100만 병력 투입을 계획합니다.
일명 '몰락 작전'이었는데 사실 미국쪽에서는 이 카드 쓰기 어려웠죠.
당시 일본이라는 놈들이 점령하지 않는 이상 항복을 안할 태세였고,
투석기에 죽창까지 쓴다고 본토에서 때를 쓰고 있었죠. 게다가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국이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일본 씨를 말려버리려고 준비한 작전이었으나~
국제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고, 무엇보다도 적지않은 국력소모가 문제였죠.
5. 미국 입장에서는 다행이지만 8월 원폭 투하 + 소련군 남하 결정으로 일본이 항복하면서
'몰락 작전'은 취소되었죠.
몇년에 걸쳐 전쟁에 국력을 쏟아붓고 있었고, 유럽쪽은 정리가 거의 된 상태였는지라
태평양쪽도 빨리 정리하고 싶었을겁니다. 다만 분명히 일본보다는 월등히 우세함에도
섬멸하려니 상처뿐인 영광인지라... 이러저러한 정세를 살펴본후 소련을 움직이기로 한거죠.
뭐 우리 입장에서야 소련의 개입이 나비효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저게 최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맨하탄 프로젝트 완성 시점에서, 중국 전선의 전세도 확달라졌기 때문에 소련의 참전을 막을 타임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버마루트 개통이전에 장개석 군에게 들어간 미국의 지원이 중간의 군벌을 통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당연히 횡령이 일어났던겁니다.
버마루트 이후로는 장개석군에게 직접적으로 지원이 가능했고요. 그때부터 중장비로 무장한 국민당군이 일본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일본이 말로는 본토 결전 어쩌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쟁에서 졌을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더 좋은 조건으로 항복하려고 했을 뿐이었지요.
소련의 개입이 불러온 가장 결정적인 나비 효과는 만주로 공산당군이 이동한 것이었습니다. 그전에는 공산당군이 많아봐야 낙후된 곳에 갇혀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입장이었다면. 만주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산업화가 진행된 지역들이고, 실질적으로 막대한 일본군의 군수물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 진짜 군대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국공내전의 승패는 진짜 모르게 된거지요.
또한 위에도 적었는데, 장개석이 만주로 진격할때만 하더라도 공산당군이 오히려 위기였습니다. 뜬금없이 미국이 장개석에게 공세중지 명령 내리기 전까지는요.
만주 적진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공격을 중지하면, 역포위밖에 더 당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당시에는 손쉬운 선택이었는데, 조금만 지나보니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독 독수였던 겁니다.
그걸 이야기 한겁니다.
애초에 장개석을 파트너로 삼지 말고 다른 자본주의자를 선택하든가의 문제이지, 소련 참전 요청은 그 전략의 실패에 한 요소일 뿐이지, 소련 참전 요청 안했어도는 가정 필요없이 처절하게 무너져내린 장개석군의 전설만 남죠.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만주로 이동 안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마오쩌둥이 이길일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미국이 국민당군에게 만주한복판에서 회군하라는 지시만 안했어도요.
국민당군은 만주를 바탕으로 한 일본군을 압도하기 시작했죠. 근데 왜 일본 대신 만주를 차진 중공군에게는 압도 못한 겁니까. 그리고 만주 한복판에서 회군하라는 지시로 포위궤멸됐다 칩시다. 그때의 장개석군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 만주보다 얼마나 넓은데, 국가 총력전 시대에 거기에 진공한 군대가 섬멸됐다고 그 뒤부터 속절없이 무너지는 겁니까.
버마루트도 뚫려서 일본군도 압도하기 시작했고, 공세 종말점에 다다른 거 꺾였다 쳐도 그거 무너졌다고 1948년부터 공세에 돌입한 중공군이 단 2년만에 그 넓은 중국 전역을 차지할 동안 처절하게 무너져내리면서 군대가 그저 오합지졸로 뿔뿔이 흩어져버린 게 소련 탓인가요.
장개석군의 만주 진격은 초반에 위세가 대단해서, 중국 공산당 수뇌부도 공포에 질려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모든 걸 건 작전이었던 것이죠. 미군의 회군지시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맥없이 끝나지 않았을겁니다.
1.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은 미국의 우방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미 중일전쟁때부터 국민당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좋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진정 국민당을 우방으로 생각했다면 중국 공산당 로비에 반응을 했을까요?
분명 미국의 소극적 태도 또한 국민당 패배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근데 당시 미국이 왜 그랬을까요?
그리스 내전에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위에 RanomA님이 언급하신것처럼 전략적으로 중국은 후순위였어요.
(물론 중국 공산당 승리로 인해 김일성이 적화통일에 대한 대책없는 착각을 하게 될줄은 몰랐겠죠)
2. 만주에서 공산당이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정황'이 확실하긴 합니다. 근데 미국측에서 물증을 못 잡았답니다.
소련측에서는 오히려 일본군수물자 남은것들을 국민당에게 인계했다고 우겼다는군요.
국제관계에서 심증만으로 상대국에 이래라저래라 하긴 어렵겠죠. 게다가 2차대전 끝난 직후라
미소 양국 관계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때였죠. 위에서 언급하신 '소련의 참전'은 언급할 실체가 없었던거죠.
'참전'이 아니라 '지원'을 했던 심증만 가지고 있었는데 무슨 명분으로 저지를 하나요?
저도 지나간 역사에 대해 '만약에 만약에...' 하면서 이리저리 상상하고 친구들과 담론하는거 좋아합니다.
다만 님의 글을 주욱 읽어보면 아쉬운게... 의견 표출을 넘어 강요하는 느낌이 다분하신 것 같네요.
님의 애초 본글도 '만약에 만약에...' 중 가능한 하나의 루트입니다. 다른 반론이 있는건 당연하겠죠?
1. 그리스 내전은 만주의 요심 전역이 끝난 다음이 일이지요. 그때쯤이면 공산당군이 양쯔강 건널때였나요? 미국이 이후에 동아시아가 송두리째 공산화되는 걸 보고 깜짝 놀라지요. 패착의 대가가 그런겁니다. 그리고 2차 국공내전 발발 시점이야 당연히 2차대전이 끝났으니까, 미국이 느슨해진 게 어찌보면 당연하지요. 근데 그런게 잘한거는 아닙니다. 나중에 혹독한 댓가를 치뤘으니까요.
그러면 그때의 판단은 당연히 타당한 판단이 아닌겁니다. 쉬운 판단일 뿐이었던 것이죠.
동맹의 대우를 말씀하셨는데 종전후 강력한 우방 영국도 벗겨먹은게 미국입니다. 애시당초 이후의 평가가 어쨌든 간에 태평양전쟁의 발발원인이 미국이 장제스 정부만 중국의 유일 정부라고 고집부린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 장제스 정부가 지배력을 행사하는것이 당연히 미국의 국익에 가장 부합됐을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지금의 상황만 보더라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2. 뭔가 요점을 잘못 읽으셨는데, 소련의 지원이 문제가 아니라 태평양 전쟁에서 소련이 만주로 들어오게 미국이 용인한게 실수라는 겁니다. 미국의 판단 미스라는 거지요. 이후의 소련의 지원등은 그냥 당연한 흐름으로 따라오는 한묶음의 사건인 것이지요.
요심전역에서 휴전지시를 한것과 마찬가지로요.
전쟁을 일찍 끝내고 싶어하는 쉬운 길이 더 큰 전쟁을 불러왔다는 평가 정도로 받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흠... 제가 요점을 잘못읽는다고 하셨는데... 일단 아는 내용을 적어보죠.1. 그리스 내전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을 선언한게 46년 3월입니다. 당시 영국이 관리하고 있다가감당이 안되자 미국에 요청을 했고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으로 화답하죠.비슷한 시기에 중국은 2차 국공내전이 시작됩니다. 46년 6월이죠. 공산당의 하얼빈 철수는 6월 6일부터일겁니다.만주가 공산당쪽으로 넘어온게 48년쯤이구요. 알고 계신 전후관계와 좀 다르죠?2. 태평양 전쟁의 발발 원인이 미국의 장제스 정부 두둔이라구요?그 공산당 싫어하던 장제스도 국공합작하자고 하던 시기가 태평양 전쟁인데 당시 미국이 대놓고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고집부렸다고 치더라도,태평양 전쟁의 주요 당사자는 일본과 미국이고, 그 배경에 중국영토가 있는거죠.일본측에서 대놓고 중국 못 먹으니 답답해서 미국 진주만 공습하는 바람에 벌어진 전쟁인디...알고 계신 내용을 말씀하시는건 자유입니다만, 객관적인 내용과 배치되는지 본인이 확인을 해야하지 않을까요?3. 요점은 누가 잘못읽는지 모르겠네요.연합군측의 참전 요청에 묵묵부답이던 소련이 원폭 투하이후 놀라서 8월 8일에 선전포고후 만주 침공을 합니다.당시 소련의 참전은 연합군 측에서 매우매우 원하던 상황이었습니다.그런 소련이 당시 만주말고 어디로 와야했을까요? 바다건너 홋카이도로 다이렉트로 갈 수 있었을까요?당시 소련이 만주쪽으로 내려온걸 놔둔게 잘못이라면 그게 미국만의 판단미스는 아니겠죠.영국, 호주 등등... 일본이 공공의 적이었는데 그거부터 몰아내기 급급했죠.4. 그리고 결과적으로 2차 국공내전에서 소련의 만주지역 활동(?)이 공산당에게 큰 도움이 된건 맞습니다만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기도 전에 국민당/공산당 이분법적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었다면그 전쟁 자체가 끝나기 어려웠겠죠. 일본이 중국 포기 못한다고 생때쓰는 마당에당시 일본한테 줘터지고 너덜너덜해진(정말 이 표현이 딱 맞는것 같습니다)장제스 이하 국민당에 지원하고 힘을 실어준다? 얘들이 일본 몰아낼 정도의 역량이 있으면 몰랐겠죠.근데 이미 국민당 내부 부패는 상상을 초월했고, 미국은 '얘들 안돼~'라고 생각했다죠.
(그리고 위에서 제가 언급을 했습니다만, 일본 항복 당시 공산당 병력이 예상외로 늘어있었습니다.)역사라는게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만, 너무 관점이 치우치면 대화가 힘들어지는 법입니다.소련이 만주 안내려왔으면 그 땅이 오롯이 국민당에게 갔다고 쳐도~얼척없는 화폐개혁 등으로 자금줄 셀프로 말아먹은 국민당이 공산당을 이겼을지 장담 못합니다.역사적 사건이라는게 케이스 별로 선택지가 있으면 그게 다 대 다로 신경망처럼 엮이는것 아닌가요?A 케이스에서 1의 결과가 나왔으니 이후 B 케이스는 무조건 2의 결과가 나올것이다~?그게 아닐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분들이 하시는데 본인 고집이신지 전혀 받아들이질 않으시네요.전후관계도 파악이 완전히 되신건 아닌듯한데... 역사를 이런식으로 논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 핵 한발을 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전략적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있었을지 생각도 안하고
먼 미래에서 "어차피 핵 쏠거 왜 그럼?" 이라니 ㅋㅋ
지금 와서 그건 멍청한 결정이었다 하시면 결과론적인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미래는 현재에 존재하는 무한에 가까운 불확실성으로 구성됩니다, 그걸 모두 파악하고 말씀하시는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신가요?
현재 2019년에 미래를 구성할 당연한 요소들을 보실 수 있나요?
대체역사를 토론하시는 건 좋지만 답정너의 기운이 가득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