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건국100주년 기념 독립운동 프로젝트 제8탄 :
‘홍범도 장군과 봉오동 전투’
올해는 1920년 6월 7일 독립군 최초의 승전보인 봉오동 전투의 99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봉오동 전투의 주역인 홍범도 장군과 대한독립군의 모습을 브릭으로 재현하여
후세에 역사적 사실들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6일~6월 7일 만주에 주둔 중이던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와 중국 지린성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1개 중대와 싸운 전투입니다.
대한독립군이 매복공격을 감행하여 일본군 측 피해는 전사자 157, 중상 200, 경상 100명이며 독립군 측 피해는 전사자 4, 중상 2명에 불과하였으며, 이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 북로독군부군은 청산리로 옮겨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연합하여 청산리 대첩을 전개해 나가게 됩니다.
한국인들에게 청산리 대첩에 대해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김좌진 장군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1895년경부터 무장투쟁을 해온 홍범도 장군이 각 독립군 세력을 연합하여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독립군 활동이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들 쪽에 가까웠고 해방이후 사회 분위기에서 그에대한 평가가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홍범도 장군이 오랜 시절동안 무장투쟁을 할 수 있었던 소신의 원천은 바로 철저한 민족의식이었습니다. 그가 의병을 조직하고 가장 먼저 처단한 부류가 매국노였습니다. 일진회를 비롯한 매국노들의 행위는 그에게 용납되지 않는 반민족적 행위였기에 이들을 처단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그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전공을 세우려기 보다는 강력한 연합을 만들어 독립군이 세력을 강대하게 만들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의병을 조직할 때나 대한독립군을 조직하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수행할 때에도 다른 독립군 단체와 연합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독립운동사의 대표적 승전 가운데 하나인 청산리전투에서도 홍범도 연합부대와 북로군정서 부대의 연합작전은 일본군을 궤멸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날아다니는 호랑이라는 칭호와 함께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선물 받을 정도로 용맹한 장군이었지만, 자유시 참변 이후 카자흐스탄의 집단 농장에서 생활하였고 1943년 조국의 독립을 몇해 앞두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하루속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기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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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의 장난감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레고로 이렇게 시대의 정신과 기록을 담은 작품으로 승화하다니...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작품 활동 부탁드립니다!
항상 멋진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