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로 임신 5개월, 이제 막 17주차에 들어선 임산부입니다.
남들은 이 시기면 입덧도 다 괜찮아지고 안정기에 들어선다는데, 왜 저는 아직도 미슥거리는 속을 간신히 부여잡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리라....하고 매일 참으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업무상 외근이 있어서 사무실에서 좀 멀리 나왔다가 귀갓길에 택시를 탔습니다. 낮부터 속이 안좋았는데 그 신호를 무시한 탓인지, 몸상태가 점점 안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지하철역 근처에서 그냥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마침 내린 곳에 벤치 같은 의자가 있어서 거기에 앉았는데....
꽤 오래 입덧을 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밖에선 늘 어떻게든 참았고, 거의 집에서만 토했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안정기 들어선다고 방심한 탓에 가방엔 비닐봉투도 없었고, 무방비로 쏟아져나오는 위 속의 음식물은 그대로 길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벤치에 앉아서 그렇게 토악질을 하는데, 지나가던 어린 여자애들이 놀랐는지 꺅!!!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들으라는 듯 소리를 치더군요.
"아 이 미친 X이 대낮부터 술처먹었는지 왜 토를 하고 지X이야 지X은!!!"
......얘들아 나는 술 한방울도 먹지 않았단다.... 길에 토한 건 미안해...
골목도 아니고, 6차선의 차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합정역 교차로 벤치에 앉아서 그렇게 토하는 제가 너무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미 나온 걸 되돌릴 수도 없고, 그렇게 수그려서 다 게워내는데 갑자기 어떤 외국 여자가 다가오더니 종이컵에 담긴 물과 티슈 한움큼을 건네줍니다. 뒤편에 커다란 카페가 있었는데 제가 토하는 걸 보고 거기서 가져왔나봐요.
이미 얼굴은 침범벅, 눈물 범벅인데 낯선 사람이 건네준 친절에 어쩔 줄 몰라 어버버하고 있으니 여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혹시나 내가 아파서 그런 걸로 오해할지도 모르니 아임 오케이, 아임 프레그넌트(..) 하고 얘기하고는 고맙다고 하고 주섬주섬 얼굴을 닦고 물을 마셨습니다. 여자는 축하한다면서 자리를 뜨더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사람이 엄청나게 오가는 번화가 한복판에, 그것도 새벽도 아닌 대낮에 제가 길에 남긴 흔적이 너무 처참해서 도무지 어쩔 줄 모르고 앉아있는데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듯한 할머니 한분이 다가오더니 말을 겁니다.
"아가씨, 입덧하는 거지? 그냥 자리 안뜨는 거 보고 양심이 있구나 싶어서 왔어. 여기 사람들이 많이 다니니까 휴지로 살짝 덮어만 놔."
도저히 치울 엄두가 안나서 어쩌지 싶었는데 티슈로라도 덮어두면 확실히 좀 낫겠다 싶어서 얼른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어디선가 커다란 벽돌과 돌멩이를 가져옵니다..? (대체 어디서 ㄷㄷ)
"이걸로라도 좀 눌러두면 휴지가 날아가진 않을거야" 하고 제가 덮어둔 휴지(와 토사물 ㅠㅠ) 위에 살포시 돌멩이를 눌러둡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님.... ㅠㅠㅠㅠㅠ 인사를 하고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는데 할머니의 마지막 말.
"아기 순산하고, 아들 낳아, 아들. " (.....할머니 저 아들이 둘인데요ㅠㅠ..이제 아들 그만..)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휴지를 갖다준 그 외국인이 따릉이를 타고 어디 가려는지 친구랑 얘기중인 모습이 보였습니다.
너무 고마웠던 터라 물이라도 한병 줄까 하고 편의점을 둘러보는데, 곧 출발하려는 것 같아서 급히 달려가서 아까는 정말 너무 고마웠는데 보답할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보답은 괜찮다면서 임신 축하하고 건강하게 지내라는 말만 남기고는 자전거를 타고 쓩 사라지네요. ㅠ_ㅠ... 예쁜데 성격도 착해.........
비록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직 멋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또 다시 느낀 하루였습니다.
혹시나 오늘 합정역 6번출구 할리스 앞을 지나면서 휴지로 덮인 ㅠㅠ 무언가를 보시고 기분이 언짢으신 클량분들이 계셨다면 미처 제가 다 치우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ㅠㅠㅠ....
여자애들은... 본인들이 평소에 많이 퍼마시나봐요.. 당연히 과음일거라고 생각하다니-_-;;;;
저도 나중에 누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꼭 친절을 베풀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ㅠㅠ
순산 하시고 건강하세요!
순산하시길 기원합니다!
(옥스포든가 어디선가에서 아들 하나당 엄마 수명이 7개월식 줄어든다는 연국 결과가....)
정말 힘들어 하더군요 ㅠㅠ
디클렉틴인가 그거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 했어요 ...
한번 처방 받아보시는것도 ...
고마워서 그분들 가신 방향으로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아직 따뜻한 분들 많아요ㅜㅜ
입덧 어서 가라앉으시길 빕니다. 저희 마눌님은 5주부터 분만 당일까지 입덧하시던 분이라 그 고통이 말로 형언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힘내세요.
누군가는 뭐 좀 그랬겠지만 닭둘기들은 오늘 동네잔치? 였겠네요. 화이팅 입니다^^
아내가 이제 23주차에 접어든터라 남얘기같지 않네요.
순산하시길 기원할게요.
순산하세요..
여자애들이 그런 시각을 갖게된게... 결국 직간접적인 교육일텐데... 많이 안타깝네요.
사람이 토하면 도와줄 생각부터 들어야하는데 말이죠.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