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피 몇방울이면 수백가지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식의 광고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종양 표지자 검진 서비스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피검사만 하면 굳이 내시경을 힘들게 하지 않아도 위암이나 대장암같은 암들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구태여 뇌 MRI같은 고가의 영상검사나 방사선을 맞아야 하는 검사들을 하지 않아도 될테구요.
실제로 많이 시도되는 최신 종양표지자나 암유전자검사들 중에는 암을 발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검사들이 있음에도, 그런 시도들의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위양성(false positive)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위양성률이라는 게 뭐냐면, 실제로는 환자의 몸 속에 암이 없는데도 암이 있다고 결과가 잘못 나오는 확률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위양성률이라는게 검사의 정확도나 민감도 같이 피부에 팍팍 와닿는 수치만큼 중요한가 싶은 의문이 들겠지만, 암이라는 게 각각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생각보다 발생하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게 문제입니다.
1만명 중 1명정도가 발생하는 암이 있다고 치고, 특정 암검사의 위양성률이 1%라고 쳐봅시다. 그러면, 성인인구 2천만명이 해당 검진을 한다고 치면 실제로 암이 존재하는 사람은 이 중 2천명일겁니다. 이 때 위양성률 1%라고 한다면, 암이 없는데 암이 있다고 검사가 나오는 사람은 2천만명의 1%인 20만명이 됩니다. 실제 암환자는 2천명인데, 암환자라고 오진받는 사람은 그 백배가 넘는 20만명이 나와서, 이들 20만명은 쓸데없는 고가의 정밀검사를 잔뜩 하는 와중에서 자칫 그 정밀검사로 인해 치명적인 합병증을 얻거나 사망하게 될 수 있는거지요. 말 그대로 공연히 생사람 잡는 검사가 되버리는 거지요.
하지만,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사람들이 오랜동안 노력을 하다보면, 궁극적으로는 고가의 영상장비나 고통과 위험을 수반하는 내시경같은 장비 보다는 간단하게 피 몇방울로 대부분의 암을 발견하는 방식이 가장 유망한 방향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관건은 과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겠죠. 궁극적으로는 유병률이 낮은 질환들에서 문제될수 있는 위양성률을 감내할 수 있는 영역까지 낮추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높은 위양성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치적인 노력도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위양성률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아서 암이 존재한다고 오진되는 경우가 실제 암이 존재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오진사례가 사회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 관리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일정수준의 정보로서 등록되어서 국가 차원에서 이들을 추적관찰하는 시스템을 만든다거나, 두 종류나 세 종류의 암검사를 동시에 병용해서 이들 검사들이 모든 경우에서 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정밀검사를 제안하는 것과 같은 정책이 마련될 수도 있을겁니다.
이런 식의 시도가 지금 당장 시도되는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피 몇방울로 대다수의 암이 세포 몇백개 수준으로 증식되는 단계에서 발견되어서 관리될 수 있다면, 인간의 수명은 획기적으로 연장될 수 있을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게 되느냐면, 현재 널리 보편화되고 있는 암검사 방법인 영상검사들로는 “조기발견”이라는 측면에서는 명백하게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포 수백개 단위의 조기 암을 발견하는 건 영상가지고선 불가능하기도 할 뿐 아니라, 전국민 내지 위험연령대의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검사를 하는 것도 금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결국 남은 길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혈액검사의 기술진보에 힘을 싣는거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또한 너무 갈길이 멀고 험하기 때문에, 중간 단계에서 정치적인 모험이 개입되어야만 진보가 지속될 수 있는 국면이 언젠가는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뻘글을 써봤습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럴 수준이 아니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