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9번_제보
엄마가 재혼을 한다. 봄이 예고된 어느 날, 내 엄마의 사랑이 모란으로 피어나고 있다. 동시에 그 날은 겨울이 종료를 알리고, 아빠의 사랑이 동백으로 져버린 날이었다.
새 아빠가 될 사람을 만난 것은 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의 모양새가 보슬하기보다는 추적스러워서 처연했다. 겨울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구나 싶었다. 그런 날씨 속에서 유달리 두 가지가 빛을 발했다. 형형색색의 벚꽃과 내 엄마의 웃음이었다. 둘 다 여러 색들을 절묘하게 배색해 찬란한 봄기운을 뿜어냈다. 아니, 아니다. 벚꽃마저 엄마의 웃음에서 색들을 빌려온 듯 했다. 그 정도로 내 엄마가 눈부시게 웃고 있었다. 엄마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늘 자식들이 최대의 기쁨이라던 엄마였다. 그렇지만 저 웃음은 내가 서울대를 합격한 날도, 누나가 공무원이 되던 날도 보지 못한 눈부신 웃음이었다.
그 정도로, 자식이 최고라던 엄마가 자식 아닌 일에 웃을 정도로, 새 아빠가 될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 정직한 눈매, 믿음직스러운 목소리, 듬직한 어깨에, 그 역시 엄마처럼 인고의 세월을 견뎠음을 짐작하게 하는 손등까지,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진 사람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엄마를 챙기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냅킨 위에 수저를 얹는 현대식 매너를 부릴 줄 알았고, 물부터 시작해서 샐러드, 스테이크, 밥에 후식까지 모든 것에 엄마를 먼저 배려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엄마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같은 남자로서 느껴졌다. 저 눈은 첫사랑을 쳐다보는 눈이고, 동시에 내 삶을 전부 걸어도 좋을 여자한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대화 끝무렵에는 나와 누나를 ‘내 자식들’이라고 먼저 표현해줌으로써, 그가 우리 가족에게 느끼는 책임감에 나부터 벌써 이 만남에 설렜을 정도이다. 화목한 ‘가정’의 대화가 오고갔고, 봄꽃은 활짝 피어있었고, 그보다 더 눈부신 내 엄마가 웃고 있었다. 그 날은 모든 요소가 완벽히 색을 발하는 한 채의 수채화였다.
아름다운 물감들을 잔뜩 풀어버린 탓이었을까. 수채화의 뒷면이 혼탁한 색으로 번졌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것은 아빠의 슬픔이라는 색으로 칠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새 아빠가 될 사람이 보여준 그 모든 덕목들은 내 아빠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자식들이 아빠에게 실망했던 부분이었다. 또 그의 아내가 그로부터 고통받은 이유였고, 끝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아빠는 여러 면에서 책임감이 부족했다. 결혼 초기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가정을 책임지지 못했다. 사업 실패로 본인의 야망을 이루지 못한 가장은 늘 술에 절어 살았다. 자식들이 유치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밤새 돈을 벌어오신 엄마 덕분이었다. 또 유치원에 가기 전에 밥을 먹여준 이도 역시 밤새 돈을 벌고 돌아오신 엄마였다. 잠을 몰라가며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의 허벅지에는 무수한 상처들이 있다. 그것은 잠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자해함으로써 잠을 이겨냈던 엄마의 노력이라는 것을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내 엄마, 그 피나는 세월은 기록되어질 수 없다. 그저 엄마와 나와 누나의 마음에 아픔으로 기억되어질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아빠가 일을 시작했다. 일이 잘 되면서부터 아빠는 엄마가 일을 못하게 했다. 본인도 지난 세월에 대한 책임감을 무던히 느낀 탓이었다. 그 당시 아빠에게는 주말도, 공휴일도 없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만’ 했다. 불쌍한 내 아빠, 그저 돈이 지난 세월에 대한 만회이자 가장으로서 떳떳한 유일한 방법인 줄 아셨다. 오랜 일로 지쳐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보며 힘들어한 자식들이 가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위로였다.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에게 ‘좋은 아침’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온 자식에게 ‘수고했다’ 안아줄 수 있는 그런 가장의 모습을 기대했다. 아빠는 그러지 못했다. 정신적인 면에서, 또 정서적인 면에서 책임감이 부족했다. 아빠와 엄마의 갈등은 계속됐다. 순간마다의 갈등이 쌓여 하루 끝의 다툼을 만들었고, 그 다툼들이 쌓여 불행한 가정을 낳았다. 소설 의 첫마디,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말은 틀렸다. 내가 주변에서 본 모든 불행한 가족들의 저마다의 이유들이 우리 가정에서만큼은 전부 혼재했다. 그런 가정의 말로는 뻔했다. 이혼. 그나마 내 입시가 끝날 때까지 그 결정을 미룬 것은 두 분이 자식에게만큼은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감사했다. 동시에 두 분이 안쓰러웠다.
이혼 후에, 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해서 나와 누나를 보살폈다. 그리고 아빠는 하시던 일을 접고 외딴 곳에서 새 일을 시작하셨다. 엄마도 고생했고, 아빠도 많이 고생했다. 두세달에 한번 씩은 아빠를 봤는데, 많이 우울해보이셨다. 본인 스스로는 ‘새로 배우는 일이 편하다’, ‘새 지역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을 내뱉는 표정에는 외로움이 담겼다. 그렇게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던 아빠가 지인 하나 없는 타지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우울하리라는 것은 막연한 내 추측이었고, 그것이 사고무친의 본인 처지에 대한 외로움인줄만 알았다. 그러다 며칠 전에서야 모든 것을 알았다. 새 아빠가 될 사람과의 완벽한 만남이 있고 바로 다음날이었다. 모처럼 아빠가 일을 쉬고 나를 보러 올라온 날이었다. 나는 밥을 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아빠에게 엄마의 재혼 소식을 전하려 했다. 아빠에게 엄마는 결혼 생활 내내 증오의 대상이었고, 이제는 아빠와는 상관없는 타인일 뿐이니까.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아빠가 먼저 조심스럽게,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운듯이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잘 사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일은 어떠한지, 혹시 내 안부를 묻지는 않았는지 ...
무뚝뚝한 아빠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며,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어쨌든 두 사람의 시작은 사랑이었고, 엄마는 아빠의 첫 사랑이자 유일한 여자였다. 이혼 후에 아빠가 소주 한잔마다 내게 늘어놓았던 푸념들도 드디어 해석이 되었다. 결혼 초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당신에게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술에 절던 그 날들이 숙취보다 더한 쓰라림으로 당신에게 박여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일만 하던 그 모든 날들이 속죄가 되기를 당신은 바랐다. 따뜻한 위로 하나 보내지 못한 날들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아픔으로 남아있음을 알았고, 그것보다 더 많이 당신이 아팠다. 굳이 외딴 타지로 내려간 것도 엄마에게서 멀어져서 용서의 여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내려가서 쓰던 모든 사랑시들이, 내가 농담으로 “아빠, 거기서 연애하나보네~” 했던 그 서정시들이 모두 엄마와의 화해를 기대하며 쓰던 것들임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지금까지 엄마의 아픔만 생각했었기에, 아빠의 아픔이라는 주제는 내게 사뭇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아빠에게 차마 엄마의 재혼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그저 “응 엄마 잘 지내. 가끔씩 아빠 안부 묻고 그러더라...” 라며 말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안도하는 아빠의 표정과, 봄날을 빛나던 엄마의 웃음과, 그런 엄마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새 아빠 될 사람의 눈망울이 오버랩 되었다. 혼란스러웠다. 아빠 때문에 겪었던 엄마의 상처와, 그런 엄마의 상처를 알고 새살이 돋기만을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엄마의 웃음이 의미했던, 끝내 이루어질 새로운 사랑 앞에, 나를 낳아준 두 분이 겪는 정반대의 감정들 때문에 내 고민이 짙어져간다. 나는 아빠에게 엄마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맞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정말 글 잘쓰네요.
슬프게도...
그냥 아빠가 사랑의 실천방법이 가족에게 안좋았던거죠.
아빠의 아빠처럼 살면 되는줄 안모양이네요.
그냥 두 분 모두, 살면서 운이 없었던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Vollago
어떤 부모의 고통의 경우엔 자식들이 헤아리기엔 성장과 경험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모른채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에게 상처입히고.. 그래도 그런 걸 이해하고 사랑의 눈으로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모의 몫이겠지요..
물론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시대가 바뀌고 혼자 남아 쓸쓸히 지내는 아버지들에 대한 칭찬이 아닌 연민은 잘못된 감정은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아빠도... 돈만 벌어서는 안되는 것을 깨달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나퐁님 말대로 칭찬할 수는 없지만 연민은 잘못된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술에 쩔어지낸동안 엄마는 자신을 자해해서
잠을 이기려 노력하며
자식들을 키웠으니까요
그기간이 1년 정도 였음 아마도
저정도 까진 안갔을 것이고
그리고 중간에 분명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죠
한명이 못 벌면 한명이 나가서 벌어도 됩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러면 집에 있는 사람이 아이를 챙겨야죠. 가사는 안해도 돼요. 대충 살아도 되지만 아이는 아닙니다. 돈만 벌어오면 가정은 아무 관심 두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결과는 이런 거죠. All or nothing.
느껴지는 감정이.. 아직 어머니의 재혼을 받아들일 수 없어 보이기도 하구요. 머리만 납득했다는 느낌이.
자식의 입장에서 안타깝겠어요.
아버지 세대들의 무거운 책임감과 짐들을 어떻게 다 이해 할수 있을까요?
모든 아버지들이 슈퍼맨이면 좋겠지만...그렇지 못한 그 시대의 아버지들 또한 계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대가 만들어낸 아타까운 우리들의 자화상 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글을 정말 잘쓰시는 분이네요.
사람이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것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우리 나라 근대는 그걸 깨부수고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사회적인 변화가 더 빠른 세상이여서...
에효...
어머니/아버지 세대가 그러시고...
저 또한 그 부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
저는 많이 비틀린 인간인 듯 합니다.
이 문장때문에 다른 부분은 눈에 안들어왔네요.
요컨데 어머니도 결국은 여자고, 자식이 가져다줄 수 있는 기쁨은 결국 여자로서의 기쁨을 넘길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받아들여져서 뭔가 서글프기도합니다.
과거 가족들을 힘들게 했어도...지금 당장 외로운 친아빠가 눈에 밟히고....
글을 화려하게 썼지만..제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네요...
화려함속에 진심을 너무 숨긴글이라...
돈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했다니...ㅡㅡ;;;
필력 칭찬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제가 보기엔 쓴 사람이 느낀
정서상의 혼란함이 그대로 담겨있어서
글 조차도 너무 수식어의 과잉, 뒤죽박죽인 것 같니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많이 거슬립니다.
자식으로서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현재 시야의 편협함은 어떻게 보정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네요
나중에 본인이 이 글 다시 보시면 흠....
모든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전제 입니다.
쌀이 없는데 밥솥 걱정 할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전부인줄 알았다가 아니고 돈이 없으면
부수적인 부분은 고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아빠는 아마 결혼전 부인에게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다짐과
실패에 대한 미안함에 감히 미안하다는 말도 못꺼냈을겁니다
"고생 안시킬거라고 했잖아요? 날 왜이렇게 힘들게 하는거에요?"
아마도 이런 대답을 도저히 견딜수 없었을거에요
그저 침묵하고 만회할 생각이었을뿐... 그러면 되돌릴수 있을거라 기대할뿐... 남자란 그런 족속이죠
살다보면 너무 미안하면 미안하다는 말도 감히 입밖에 못꺼낼때도 있더군요
어쩌면 아빠가 쓴 글들이 엄마에게 전달이 됐더라면 회복이 되었을까? 희망을 가져보지만
한번 깊이 새겨진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해도 결국 되돌릴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애 아빠를 나무라진 맙시다.. 지금 세대도 충분히 한번의 실패로 가족에게 씻을수 없는 고통을 줄수있는 시대이고
여전히 남자들은 그런 짐을 지고 있지요
엄마가 재혼해서 잘 살면 좋은거고. 아빠도 안아프고 잘지내면 미래가 밝은데 자식으로서 안타까워할 필요가 무언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겠죠
개고생한 인생이지만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중년의 아버지라는 소재가 클량회원들에게 공감가는 소재이긴 한데
글이 전체적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것 같은 느낌의 글이라 덜 와닿는 것 같네요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너의(아버지)의 잘못이니 너는 동정 받을 자격도 없어] 에 가까운 극단적인 생각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본문 작성자분도 [그 시대의 가장들은 그랬다]고 합리화 한 거라면 어머니께 다시 만나보라고 했겠죠.
하지만 본문 작성자는 '어쨌든 아버지가 잘 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도 힘든 시기를 보냈음을 이해하기에 어머니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을 말해줘도 될까?'를 고민하는 거라고 봅니다.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딴청이신것 같지만 돈 많이 벌면 가정에서 균형을 잘 이룬다는 얘기가 아라 그 시절 가정에서 균형잡힌 삶을 꾸려가신 아버지들 비율이 연봉 1억 이상 비율만큼 현실성이 없고 평균치에서 많이 벗어나 있단 얘기지 싶어요.
40대인 저의 노년은 과연 얼마나 달라질지.. 마음 한켠이 무겁네요
아빠의 역할은 윗세대의 아버지보다
더 다양하게 가족에게 표현해야 하는 시대라 봅니다.
어떤 이유던 살아내는 분들에 대한 존경은 변하지 않아요.
다들 힘내시고 열심히 살아요. 모두. 건강하게
저는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자업자득일뿐...
문인으로도 대성 가능할 듯.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새 사람은 새 사랑과... 새로운 환경에서...
내용 전개도 좋고, 수미쌍관도 세련되게 했네요.
모 변호사 말 처럼 이혼할때 한쪽말만 들어보면 상대가 너무 나쁜 사람인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아 이랬구나 라고 이해된다 하더라고요
어렸을땐 아버지가 가게를 하시느라 주말에도 나가 일을 하셨어요 그땐 정말 아버지가 왜 나랑 일요일에 놀아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거 같습니다 물론 중 고생이 되면서 그런 생각은 차차 사라졌지만요..
지금 초등학생과 어린이집을 다니는 세 남자아이가 된 현재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아이들에게 여러경험을 심어주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곧 아이들도 저 처럼 부모보단 또래가 즐거워지는 시기가 오겠지만 ‘어렷을때 아빠랑 여기저기 많이 다니며 재미있었어’ 라는 추억만이라도 남는거 하나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 수록 더 담백하고 멋진 글을 쓰실 분입니다. 가족이야기 이기에 최대한 진솔하게 쓰고자 애쓴 흔적도 많아요.
지금의 과한 미사여구와 아쉬운 마무리 또한 스스로 '내가 이렇게 썼어? 정말 오글거린다'며 금방 깨달으실 거라 믿습니다.
일찍 출근하는 날이 아니면 아버지 출근 시간에 맞추어 마당을 나가는 아버지를 향해 잘 다녀오시라는 가족들의 인사, 환하게 웃으시며 흔들어 주시던 손. 그게 진짜 가정이고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댓글 달리는거 보고 충격받았어요. 이 글을 읽고 어떻게 저런 곳에 포인트를 맞추죠?
돈두 벌어야되
다정해야되
다 잘해야 이혼두 안당하고 살수있네요
내생각에는 남자두 초반에 잘못했지만 엄마두 된장녀가 베이스에 깔려있네요
님 매형이나 사위가 돈 안벌어오고 술독에 빠져 살며
애 둘을 누나 또는 딸이 혼자 벌어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봐요
한국남자가 힘든게 아니라 결혼한 부부 둘 모두에게 가족을 부양하고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는겁니다
실패를 했더라도 부인이 돈을 벌어오면 애들을 건사했어야죠. 다정하지 않은 건 그 당시 한국 남자들 대분이 그러니 넘어간다 쳐요.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술만 마신 건 그당시든 지금이든 용서 안 되는 겁니다.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던 전업주부들도 애들 중학교 가면 다들 직업구하는 세상이에요. 남편이 평생직장 아닌 거 아니까 미리 미리 준비하는거죠. 여성은 그래도 50대에 저임금이어도 일할 곳이 있으니까요. 서로 서로 할 수 있을때 자기 역할을 하는게 부부에요. 돈만 벌어오면 장땡 그런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뭐 근대화 어쩌구 할 것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라는 분들도 60년대 후반 정도일텐데 그 정도면 그렇게 옛날 사람들도 아닌데 그 시대는 이해해 줘야한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가정 유지를 위해 남편이 술독에 빠져 힘들어 해도 참고 버티며 가정을 지킨건 아내에요.
아빠가 한게 뭐있죠??
이후 돈때문에 힘들었을 가족이라 생각해.. 돈이면 만사 오케이 생각하고 돈만 쫒아가다 가족을 잃은건 역시 아빠인데요.
도대체 엄마는 무조건 참고 견뎌야만 하는 존재인가요???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인생이 있는거죠 누굴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먼 얘기겠지만 혼자계신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잘 해드리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저 집 가족사정을 남인 우리가 맞다. 틀리다, 왜 안미워하냐? 왜 용서하냐? 라고 함부로 평가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어머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고, 아버지도 본인의 삶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네요.
이해라는게 상호조치해야하는 것이지 한쪽이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생각하고
그 이해를 하게 되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왜 이리 날선 댓글들이 많은지...
아직 아이라서... 또래 아이들에게는 울림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른의 관점에서는... 아이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 어른이 되는거란다... 싶은...
그런데 이런 글을 왜 인터넷에 올릴까요... 일기장도 아니고...
임금님은 당나귀 귀 동화에 나오는 대나무 숲처럼, 하고 싶지만 쉽게 털어놓기는 어려운 이야기를 인터넷 공간에 공유하는 것이죠. 저는 각자의 처지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와~ 님 글 참 잘쓰시네요" 라는 말을 듣고 싶어 쓴 글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와~ 저분 참 글 잘쓰시네요" 라고 하고 싶습니다. ^^
어줍잖은 평론가들이랑
못벌어도 못번 가운데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거죠.
'니가 아직~', '그게 아니라~' 류의 댓글들 무엇...
나중에 누군가가 본인들의 인생을 평할때도 반드시 나올 말입니다
그렇기에 쉽게 쓸 수 없는 말입니다.
서울대생으로서 인생 뭐 별거 있나 하는 자신감이 깔려있구요...
그저... 이제 다른 길로 접어든 그 두 분이 각자 행복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좀 더 일찍, 자존심을 조금 접어 상대방이 들어올 여지를 남기는 법을 배웠더라면,
좀 더 일찍, 마음과 짐을 나누는 것이 함께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좀 유치해도 괜찮으니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이 또한 지나가리니...
각자의 인생에 새로운 사랑이 깃들기를 바랄 뿐이네요...
아버지를 이해한 딸.
아버지나 남편으로선 별로였네요.
그나저나 필력 두둔하다니...그건 좀 아닌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