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실록에 나오는 기사입니다
流朴抵生于泗州。 抵生居父喪, 除護軍起復, 旋拜知三陟郡事, 居官而淫于妓, 憲府劾聞罷之。 到京又私其婢, 其妻妬, 抵生以炙鐵擊之。 其妻, 宰臣李舒原之女也。 舒原告于憲府, 憲府劾聞, 流抵生于泗州, 其妻于金堤。
박저생(朴抵生)을 사주(泗州)로 귀양보내었다. 박저생은 부상(父喪)을 당했을 때 호군(護軍)에 임명되어 기복(起復)060) 되었고, 지삼척군사(知三陟郡事)로 임명을 받았는데, 관(官)에 있으면서 기생에게 빠지매 사헌부에서 탄핵하여 임금에게 아뢰어 그를 파면하였다. 서울에 당도하자, 또 그 계집종[婢]을 가까이하여 그 아내가 질투하므로 박저생이 적쇠[炙鐵]로 아내를 때렸다. 그 아내는 재신(宰臣) 이서원(李舒原)의 딸이었다. 이서원이 사헌부에 고발하니 사헌부에서 탄핵하여 아뢰어서 저생은 사주(泗州)로, 그 아내는 김제(金堤)로 귀양보내었다.
기사에 적쇠로 때렸다 라고 나옵니다.
석쇠인데 요즘 사람들이 보면
이걸로 때렸겠구나 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이런 석쇠는 1800년대 이후에나 등장하고,
저기서 말하는 적쇠는 설하멱등 화로에 고기등을 굽기 위해 사용되는 쇠꼬챙이를 의미합니다.
이건 부젓가락인데요. 적쇠에 대한 이미지가 없어 가져왔습니다. 적쇠는 비슷한 모양에 이보다 두배는 크고 통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길이가 40cm 이상되는 가는 철근을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위 기사를 다시 보면 요즘으로 치면 쇠파이프 를 꺼내 폭행한거니 강한 처벌이 나온 겁니다.
이 석쇠란 물건은 설하멱의 시대를 끝으로 우리가 아는 철사로 만든 석쇠가 나오기 시작하며 사라지고 석쇠란게 고기를 굽기 위한 도구니 그 이름을 우리가 아는 석쇠에게 물려 주고 그렇게 사라집니다.
과거의 단어를 읽을 때 우리는 쉽게 현재 사용되는 의미로 파악하려 하는데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는 경우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지칭되던 사물이 세월에 따라 변경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