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에서 어떻게든 서해로 진출하려던 일본 수군을 모조리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버린 이순신이 아니었으면 조선은 정말 큰일 났을 수도요.
일본군이 왜란을 일으키고 초반에 2년 남짓 반짝한 후 내내 경상도를 위시한 남부 지방에서 버티고 있던 이유가 보급 때문이죠. 서해 쪽으로 보급을 해야 위로 밀고 나가는 일본 군대를 먹여 살릴 수가 있는데 그걸 이순신이 단 한 번도 허용을 안 한 ㄷㄷ
나라가 자신을 버려도 끝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
이순신 장군 만세!!
전국시대가 뭔지 모르는것같아요
이 방법은 19세기 후반까지 쓰였죠.
그런가요.. 혹 관련 자료가 있을까요? ㄷㄷㄷ
http://lyuen.egloos.com/v/5546567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알았었는데 나무위키나 다른 구글에 나오는 글들은 근거가 좀 부족해서리...ㄷㄷㄷ
■ 1593년 명나라 <경략복국요편> 倘倭奴用分番休迭之法■ 1595년 조선 <선조실록> 若分三運, 次次放砲■ 1603년 조선 <신기비결> 輪班點放■ 1603년 명나라 <신기보> 火器更番撃打■ 1635년 명나라 <군기도설> 輪班發銃之法, 更番迭進■ 1636년 조선 <동계집> 則前隊炮一千先放。放後坐而藏藥。後隊一千又放이상의 기록 중에서 조총 연속 사격술과 관련 있는 가장 빠른 기록인 <경략복국요편>의 1593년 2월조에 실린 서신은 명나라군이 벽제관 전투에서 패전한 후 더 이상 진격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즉 일본군이 사용하는 分番休迭之法 때문에 명군이 쉽게 전진하기 힘들다고 변명한 대목이다. 조선측 기록에서 조총 연속 사격술과 관련이 있는 기록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사료인 1595년 선조의 발언도 일본군을 경시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다. 즉 이 두 기록은 중국과 한국에서 조총 연속 사격술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통해 인지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전국시대기록이 거의 나중에 써진것들이 대부분이라 과장되고 뻥이 상당합니다.
링크 속에는 당시 조선이나 명나라 기록을 토대로 유추했더라구요..ㄷㄷㄷ 일본애들이나 중국애들이나 뻥카 심한데 저 부분에서는 서로 얘기가 맞아서...ㄷㄷ
그런데 초반에 경상도 해군은 지는게 아니라 자폭을 했을 뿐이고 (...)
통일한 왜구의 병력의 전투 기술도 최강이었는데
그걸 해군에서 모조리 무패로 쳐바른게 이순신장군님이었다는게ㄷㄷ
이순신장군님 없었으면 지금 우리는 일본어 쓰고 있을꺼에요
오키나와 처럼요
오키나와(류큐국)가 임진왜란즈음에 일본에게 잡아먹혔거든요
본문의 인포그래픽에도 있지만 그에 맞상대할 병력을 파병하는 것으로 명나라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할 정도였으니.
ㅡ 정조, 《홍재전서》
/Voll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