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잡아 늘려서 철사를 만드는 공법'은, 제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원래 가지고 있는 공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 한국 유물 중에, 황금으로 만든 황금철사로 각종 장신구 만든거 많이 보이는데, 이는 황금이 연성이 매우 좋기 때문에 용이하게 와이어로 만들수 있기 때문이죠. 이집트 같은데서는 뭐 기원전 수천년에 이미 다 되는거고요.
철의 경우에는 연성이 황금보다는 안좋기 때문에 난이도는 상승합니다만, 공법 자체는 거의 동일합니다. 즉 황금으로 와이어를 만든게 있다면 당연히 철로도 와이어를 만드는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장인이 좀 더 고생은 하겠지만요)
금속을 잡아늘리는 인발(드로잉) 가공을 위해, 다이(Die) 공구를 준비해야 하는데 아래의 예를 보시면 됩니다.
바이킹족 유물이긴 한데, 원시적인(?) 게르만족들의 기술이므로 당연히 동아시아에서도 되는 겁니다.
맨 왼쪽부터, AD50년 오스트리아 지역, AD1000년 독일 지역, AD1000년 노르웨이 지역의 바이킹 유물이라고 하는데요. 구멍에 금속 봉을 집어넣고 반대편으로 튀어 나오는 쪽을 공구로 잡고 잡아 땡기는 겁니다. 구멍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는 쪽으로 순차적으로 계속 반복해서 잡아땡기는거죠.
이렇게 해서 와이어가 만들어지면, 그 와이어를 지름 약간 가느다란 나무 봉을 틀 삼아서 스프링처럼 감습니다.
스프링 모양의 철사 형상이 되면, 그걸 세로로 뚝뚝 끊어내면 반지 처럼 동그란 모양의 쇠사슬들이 뚝뚝 나오죠.
이걸 모아서 연결해서 체인메일(쇄자갑)을 만듭니다.
아니면 기다란 가는 철사를 만들려면, 구멍이 더 작은 다이로 계속 더 잡아땡겨서 가늘게 만듭니다.
백제시대 황금 와이어 중에는 지름 0.25mm 짜리도 있죠.
철의 경우에는 황금보다 연성이 좋지 않으므로 그렇게까지 가늘게 뽑아내기는 힘들겠지만, 필요한 만큼의 지름을 가진 와이어 생산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연성을 가진 무른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에 함유된 탄소를 빼내야 하는데, 주철을 원재료로 하기는 힘들고, 대신 사철로 만든 괴련철을 씁니다. 조선시대 정부에서 관리하는 제철소의 약 30~40%가 사철을 썼고 나머지는 철광석을 썼습니다. (세종시대 기록 기반)
사철로 괴련철을 뽑아내면 탄소함량이 처음부터 상당히 낮은 편이고, 여기서 추가로 단조 및 초강법을 적용하면(달구어진 철을 황토나 철광석 가루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두들기는 것을 반복) 탈탄작용이 일어나 탄소함량을 계속 줄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철사를 만드는 장인을 '철사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던데요. (실록 등)
이 사람들은 철사를 이렇게 인발하는 작업을 열라게 했었겠죠.
현재는 철사장 전승은 완전히 끊겼기 때문에, 철사를 이용한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은 그냥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철사를 사다 쓰겠죠.
그리고 철사장인들이 안 남아있기 때문에 황교익씨처럼 철사를 만드는 전통기술이 없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분들도 나오는 것 같아요.
탈탄도 인력을 통한 단조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데, 이 경우에 사회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일부 계층에서만 사용가능할 뿐이니,
결국 대중적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조리기구를 이용한 요리도 보편적일 수 없었을 것이고요.
황교익의 저의는 그러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요인은 외국에서 신기술이 들어온게 아니고 원래 있던 기술인데 그냥 그걸로 석쇠를 만들어 먹은 거란는게 저의 논지 입니다.
1800년에 증기기관으로 돌리는 영국산 인발 기계를 조선이 들여왔을리가 없쟎아요. 아니면 철사를 영국에서 수입했을리도 없고요.
그렇다고 청나라 통해서 뭔가 들어왔다는 내용도 없고. 청나라도 조선이랑 뭐 별 차이 없는데 말이죠.
다시 요약하면 19세기 들어오면서, 관 주도가 아닌 민간 공업/상업이 확산되면서 철사를 이용한 조리기구도 등장해서 일반화되었다 라고 보는게 맞는 것 같아염.
좀 상상을 해 보자면, 1800년 경에 어떤 철사를 만드는 장인이, 자기가 만든 철사로 석쇠를 만들어서 고기를 구워먹으니 여러모로 좋다 하면서 신제품을 개발.... 전국적으로 대히트를 쳐서 대박났다 이런 시나리오.
죄송합니다만 제가 잘 몰라서 여쭙습니다.
당시에 보편적으로 석쇠구이 요리가 있었는지요?
그렇다면 황교익의 언급자체가 잘못된 정보에 기반된 오류가 맞게되겠네요.
'임원경제지'에 “지금은 철망을 쓰니 꼬챙이가 필요 없어졌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네요.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8445
19세기 전반기에 나온 백과사전이라고.
그러니까 철망으로 고기를 구워먹는게 일반화된 상태라고 봐도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추가로, 석쇠라는 게 꼭 철사로만 만드는 것도 아니고
3-4 세기 그리스만 해도 손가락만한 파이프가 달린 형태의 석쇠를 사용했습니다.
석쇠가 없어서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 먹었다?
1) 석쇠는 철사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오류
2) 철사도 18세기에나 나오는 엄청난 신기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 오류죠.
조선 후기에 전국민이 소고기를 미친듯이 먹어치운 것 처럼 나오더라고요.
1인당 평균 소비량이 현대인에 육박하는 수치도 간혹 나오는 것 같고요.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80412000264
(그게 풍족함의 증거는 될 수 없겠지만 암튼 고기 많이 먹었다는 건 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