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에 '등자'를 쳐서 서술된 글을 보면,
"기원전 4세기경 북방 유목민들이 처음 개발했다고 전해지며, 중국에서는 서기 2세기~3세기부터 사용되었다. 그리고 유럽에는 8세기경에야 등자가 전해졌..."
이렇게 되어 있고 아마 이게 통설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며칠전에 TV프로 '차이나는 클라스'에 강인욱 교수라는 고고학자분이 나와서 강의하는데, "등자는 고구려에서 처음 발명해서, 역으로 북방 유목민족을 통해서 세계로 퍼져나갔다"라고 하는거에요.
http://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770
이 분의 설명으로는, 유목민족들은 평생동안 말을 타기 때문에 성기능이 퇴화해서 거의 고자(?)가 되는데 그걸 감수하고 그냥 등자 따위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익숙하게 말을 탔는데, 고구려는 정주민이었기 때문에 유목민족들만큼 말을 익숙하게 타지 못했고,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등자를 발명해서 동급의 기마 전투력을 확보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해 주시더군요.
아무튼 유목민 쪽에서 등자가 일찍부터 나왔다는 '물증'이 없기 때문에 '기원전 4세기 경에 유목민이 등자를 발명했다'는 나무위키 서술의 근거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중국에서 2~3세기에 등자를 발명했다'는 건 물증이 있나봐요.
중국 후난성(호남성) 장사시의 금분령 고분에서 서진시대 도용에 등자가 있다는거죠.
검색해 봤더니 해당 유물이 진짜로 있네요.
http://hist.pku.edu.cn/person/yanbuke/Tongshi/x05/Cankao/an_deng.htm

그런데 좌우를 모두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면, 왼쪽편에는 삼각형 링 모양의 등자는 확실히 확인되는데, 오른쪽편에는 등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합니다.
같은 고분에서 나온 것이 베이징 국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데
http://m.blog.daum.net/donghong/408?np_nil_b=-2

여기서는 "말 한 필에 등자가 하나씩 있는데, 말을 진상할 때 쓴 것"
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말을 높은 분에게 진상할 때 타기 편하시라고 한쪽에만 등자가 있어서 그걸 딛고 올라타는 용도라는거죠. 말을 달릴 때 양 발을 모두 등자에 딱 고정하고 전투하는 목적이 아니고요.
아무튼 '발걸이'라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쪽이 진짜 초기 형태인가봐요.
그런데 호남성 장사시의 위치는 전혀 북쪽 지역이 아니고, 중국 내륙 깊숙이 약간 남쪽 지방입니다.

따라서 이건 승마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남쪽 사람들이 말을 제대로 올라타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보니 좀 편하게 올라타게 해 주려는 목적은 맞지 않나 싶어요.
또 서진시대보다 더 앞선 서한시대(기원전 2세기?)의 등자도 있나 봅니다.
https://forums.spacebattles.com/threads/armies-of-the-three-kingdoms-period.604561/page-2
간략한 설명으로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한쪽에만 달려있는 올라타기용 등자로 생각한다"라고 되어 있네요. (이 유물이 진품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넘쳐나는 가품인지 뭐 그런 내용은 확인이 안됩니다. 출토지나 소장지에 대한 정보를 못 찾겠어요.)
중국에서는 대충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나 봅니다.
http://www.sohu.com/a/138141322_160800
"호남성 장사시에서 발굴된 서진시대 기마도용은, 안장의 왼쪽 안짱다리 근처에 삼각형 등자가 매달려 있다. 馮素弗이라는 북연의 장수 무덤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등자가 발견되었다. 즉, 완전한 등자를 장비한 완전한 개마기병은 전연,후연,북연의 삼연시대에 확립되어서 고구려에 퍼져나갔다."

북연 馮素弗 묘에서 출토된 등자
그런데, 북연은 아시다시피 고구려 장수왕이 괴뢰국가로 만든 나라라는 점은 좀 기억을 해 둬야겠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고구려 기원설은 우리나라 일각에서 주장을 하는 모양인데요.
기본적으로 4C에 이미 안악3호분 벽화로 확실하게 개마기병이 완전하게 편제되어 있는게 확인이 됩니다.
이 사실은 일단 아무도 부정하지 않죠.
선비족 모용씨의 전연은 AD337년에 개국했으므로 비슷한 시기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안악3호분 개마기병이 제일 빠른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나봐요.
한편, 삼국사기에는 AD3세기에 고구려에서 '철기'를 동원해서 위나라 관구검이라 한 판 뜨는 기사가 있죠.
여기서 보수적인 학자들에 의해 '철기'라는건 그냥 단순한 수식어일 뿐이고 개마기병은 아니다라는게 통설이었는데...
최근에 북한에서 뜽금없이 강원도 철령유적을 발굴해서 발표했죠.
이 유적지는 조선시대 지층, 고려시대 지층, 그리고 제일 밑에 고구려 시대 지층이 있는데 고구려 시대는 AD3세기로 비정했나봅니다.
(북한에서 발표한 거라서 대한민국이나 또는 다른 나라 학자들에 의한 교차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게 치명적인 약점이라 아직 정설화되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시간이 지나면 차차 검증받겠죠.)
아무튼 여기서 철,청동으로 만든 말 모형 58개가 나왔는데 이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www.cybernk.net/infoText/InfoRelicDetail.aspx?mc=DR0107&sc=A405350&tid=DR010900009885
"말모형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갈을 물리고 안장을 얹고 등자가 달린 것이며 그중에는 개마도 적지 않다"
실물확인 안되나 싶어서 구글링을 열라 해 봤더니 대충 다음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http://egloos.zum.com/roks821/v/8001271

녹이 슬어서 상태가 좀 메롱하긴 해도, 일단 마갑을 씌운 것은 확실한 것 같이 보이네요.

또 등자가 표현된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게 진짜 AD3세기 것인지가 문제 같네요.
진짜라면, 삼국사기의 '철기'가 완편된 개마기병대를 말하는게 확실해진다고 볼 수 있으므로 기존 학설을 뒤집어야 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완전하게 발달된 개마기병을 고구려가 최초로 운용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등자는 고구려에서 세계최초로 나왔다고 주장할 근거도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철령유적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성이 높은 것 같은데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등자를 인도에서 만들었다, 유목민족이 만들었다, 중국이 만들었다 별 소리가 다 있는데 실제 유물로 확인 가능한 제일 빠른 것은 고구려다 라는게 골자입니다. 심지어 아이작 아시모프는 3세기에 이미 고트족이 등자를 사용해서 로마군을 박살냈다 이런 소리도 있던데 결국 증거는 없더군요.
다만 인터넷으로 서핑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나봅니다.
설명을 읽어보면 안장에 가죽줄 올가미를 연결해서 거기 엄지발가락을 끼우고 탔을 거라고 합니다. 즉, 후대의 등자처럼 체중을 완전히 실을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는거죠.
등자의 발전은 안장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데, 체중을 실을 정도의 등자를 안장에 고정하려면 안장도 튼튼해야 하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재질이라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말의 크기가 무거운 안장을 얹을만하지 않았던 거죠. 따라서 가벼운 안장에 끈이나 다름 없는 등자를 설치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대인들도 바보가 아니었으니 등자라는 물건의 아이디어는 여러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으나 말의 품종개량과 맞물려야 했으므로 지역마다 다른시기에 나타나지 않았나(이건 제 사견입니다) 합니다.
http://m.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