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깎던 노인을 패러디 해봤습니다.
기안문 쓰던 노인
벌써 10여 년 전이다. 내가 임용되어 근무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옆 사무실 한 켠에 별 다른 업무를 하지 않고 기안문 잘 쓰는 노인이 있었다. 팀장이 내가 쓴 초안을 던지고 다시 써오라 해서 가져갔다. 우리 사무실엔 죄다 휴가에 출장이라 옆 사무실로 찾아 갔다. 그랬더니 별다방 커피에 샷 추가를 해서 티라미슈를 사오라는 것이었다.
"좀 싼 거 드시면 안됩니까?"
했더니,
"기안문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면 그냥 결재 올리던가."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다방에 다녀오고 나서도 그는 잠자코 열심히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작성해 보고 저리 작성해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내용을 오렸다 붙였다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퇴근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다듬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올릴 사람이 좋다는 무얼 더 쓰신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퇴근시간이라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물어봐. 난 검토 안 해."
하고 파일을 지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퇴근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편하신 대로 보시지요."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기안이란 제대로 상신해야지, 얼렁뚱땅 써서 올리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쓰던 것을 작업창에 내려놓고 태연스럽게 프로야구를 관람하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옆에서 같이 보고 말았다. 그러다가 이국의 도시를 검색하곤 얼마 후에야 기안문을 열고 이리저리 올렸다 내렸다보더니 파일을 건네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기안문이다. 그렇게 9시 뉴스 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을 놓치고 기안도 못한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업무협조를 해 가지고 승진이 될 턱이 없다.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맛있는 음식만 찾는다. 정시퇴근(定時退勤)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사무실 밖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서 있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다음날 기안문을 내놨더니 팀장은 잘 작성했다고 야단이다. 자리에 없는 선배들이 작성한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글꼴이 바뀐 것 말고는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팀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내용이 너무 중구난방이면 잘 읽히지가 않고, 너무 간결하면 알고자 하는 내용이 없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퇴근(退勤)은 윗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직급 별로 퇴근한 후에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요새 직원들은 유시(酉時)만 되면 짐을 싸기 시작하며 한명이 나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남들보다 두어 시간 빨리 출근하여 상사들의 책상을 닦고 피로회복제를 하나씩 올려다 두었다. 이것을 “아부”라고 하더라. 물론 동기들에게 악담을 듣는다. 그러나 요새는 워라벨, 육아남이다 뭐다 해서 도통 자리에 붙어 있진 않는다. 집중해서 제 할 일만 하고 가는 것이다. 어느 누가 보지 않는데 일찍 나오거나 늦게까지 일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지시했다간 윤리위원회라던가 언론(言論)에 제보하니 그렇게 시킬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회식(會食)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윗사람이 ‘어흠’ 소리를 내면 세 번 장소를 옮길 곳까지 알아봐 놓았다. 다음 날 집에 들어갔는지 바로 출근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오늘만 보고 사는 것이다. 근성이다. 지금은 그런 곤조를 찾아 볼 수 없다. 다이어트니 선약이니 제사(祭祀)니, 이런저런 핑계로 다 빠져 나간다. 옛날 사람들은 회식하는 그 순간만큼은 오직 ‘우리가 남이가’라는 의리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다음 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으어’하면서 오후 일과쯤에야 나타났다. 그렇게 야근문화와 회식문화를 만들어냈다.
이 기안문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월급을 받아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기안문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치킨에 맥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월요일에 출근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건물의 옥상에 연초하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듯 한 담배연기 끝으로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비행기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승무패를 예측 하다가 유연히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는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내가 이러려고...”라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한참을 멍하기 서 있다가 지나가던 직원에게 노인이 어디로 갔는지를 물었다.
“여기 앉아 있던 노인 어디 갔는지 모르오?”
“아 그 분 오늘 발령 났어요”
“아니, 정년이 다된 사람을 왜?”
“그 노인 업무처리도 그렇지만 툭하면 부동산 보러 자리를 비우고 사설토토 하느라 분위기를 흐려서 단합해서 다른 곳 보냈소이다”
“...”
오늘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신입사원이 작년에 선임이 쓰던 기안문을 복사해서 연도만 바꿔 붙이고 있었다. 전에 날짜와 결재라인을 틀려서 두들겨 맞던 생각이 난다. 기안문 쓰느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들은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메신져로 이야기 할 때나 키보드 두드리지 복사해서 붙이느라 키보드 두들긴 지 이미 오래다. 문득 10년 전 기안문 쓰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제 시 삭제하겠습니다.
직원은 아무쪼록 시간을 때우면서도 야근해야
좋은 기안이 나온다는 건가요?
페러디는 기존의 내용에 대한 비틀기 인데요..
원작의 방망이 깍는 노인은 천천히 해도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오히려 일 하지 않아도 자리를 잡고 일하고, 별다른 일을 안하고도 기안을 밍기적 거리다 내놓은 노인을 좋은 사원으로 묘사하고, 신입직원을 대충 일하는 사람, 회식 자리에 빠지는 직원,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을 비꼬고 있습니다.
이건 방망이 깍는 노인의 장인정신을 빗댄것이 아니라, 요즘 일하는 젊은이들의 개인주의를 비하하는 내용인데요
덕분에 매번 까이고 있는...
공감드립니다.
리얼하네요 ㅋㅋㅋㅋ
젊은 사람도 일잘하는 사람 많죠 아쉬우면 안뽑고 그 노인 쓰면 되는거... 그 노인이 여태 거기 그모냥으로 앉어 있는 이유가 있죠
그리고 요즘은 워라밸이나 회식이 어쩌고 저쩌고..그리고 노인도 부동산에 토토에 짤리는..
모두다 망하는 이야기고 그냥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