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주말이라는 말이 얼마나 귀한지 모를 때 였다.
집에서 엄마가 주는 밥을 먹고, 옷더미를 쌓아놓으면 빨래가 자동으로 되고
적당히 용돈만 드리면 엄마가 방청소는 물론 양말까지도 다 짝을 맞춰 주었으니까.
아프면 엄마가 약도 챙겨주고,
심야에 하는 축구경기도 아무때나 볼 수 있었고 말이다.
그때도 역시 주말이 좋았는데, 이제 내가 사는 이 집에서는
같은 여자이지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무서운 그녀가 있다.
그녀는 시간을 허투로 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퇴직이후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때에는 특히 더 그런거 같다.
그래서 새벽에 티비를 보거나 하는 것은 당연히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다. 라고 아내는 여러번 말했지만
일도 안하면서 늦잠까지 자는 것에 대한 긴 타박을 감내하고
몰티비를 하다가 몇번이나 걸려 호되게 잔소리를 두어번 듣고 난 이후로는 그것 역시 포기했다.
그런 그녀가 일요일 저녁이면 운동을 나가 두어시간쯤 이따가 오는데
그때나 되어야 나에게는 한가로운 주말이 시작되었고 그녀가 오면 그 주말이 끝이 났다.
그날은 멕시코와 국대 경기가 있는 날이였다.
날이 꽤 추웠었다. 코감기는 나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지 벌써 며칠째였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 없었다.
나는 오늘 간만에 여유로운 국대경기시청을 할테고 약도 아까 먹었으니까.
경기 시작 시간은 8시 그녀가 7시에 운동을 나가니 후반전 정도는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가슴이 두근 거렸다. 그리스 놈들은 새벽에만 축구하던데 역시 유럽보단 아메리카지! 라고
혼자서 킥킥 거렸다.
그녀와 같이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눈은 티비를 보되 머리속으로는 오늘 멕시코에선 스쿼드가 어찌될까를 생각하다가
아내와 손이 닿았다.
손을 슬그머니 잡자
징그럽게 왜 이래 티비나 봐라는 말에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티비에 집중하는 척을 하기 위해 어떤 젊은 한의사가 나와서 건강과 다이어트라는 심심한 주제로
패널측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 의사를 내가 눈여겨 보고 있었걸 들켰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벌을 받는 거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나 요즘 살찐거 같아
라는 무겁고 겹겹이 쌓이였는 어려운 질문에 가까스로 대답한 것은
음 그런가?? 그래도 운동 계속하고 있으니까 몸은 더 건강해졌을꺼야
라는 내 대답에 아내는 무언가 부족한듯 방에 들어가더니
역시 소금을 더 줄여야겠어.
저기 나 운동 다녀올 동안 감자 좀 삶아 주겠어??
라더니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럼 내가 오늘 저녁에 후반전만 보려고 예상했던
멕시코전을 전반도 볼 수 있다니!!!!
감자를 삶기 위해 물을 올렸다.
감자를 몇개나 삶아야 하지?
한 두개만 삶으면 그거 밖에 안 삶았냐고 혼나겠지?
구박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냉장고에 있떤 감자를 모두 솥에 넣고 물을 넣었다.
익숙한 스포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파로 몸을 던져 자세를 잡았다.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광고들도 재밌었다.
무슨 광고를 이렇게 많이해 하며
핸드폰으로 오늘 나오는 선수들 명단을 보았다.
아 약기운이 좀 도네...
라고 생각을 하는 중에
갑자기 문이 쾅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잠깐 잠들었구나.
또 문이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다 깼는지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
그런데 집에 왜 이렇게 뿌였지
렌즈도 끼고 잤나 아닌데
쾅쾅 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201호 아저씨 문 좀 열어보세요.
집에 연기가 자욱하다
쾅쾅 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매운 냄새도 난다.
머리를 돌려본다.
오늘은 멕시코전 축구를 하는 날이고 나는
광고를 기다리다 누웠고
감자를 삶.......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다 말더니
번호키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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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허투로 => 허투루 가 맞는 말... (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