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부터,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으니 문득 도미에의 만평 가르강튀아가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도미에는 19세기 사실주의 화가입니다. 서민들의 생활이 언제나 그랬겠지만, 그 시기도 서민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아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의 배경 시기 정도 상상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도미에는 그런 시기에 완전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온갖 지금으로 치면 잡일과 알바를 전전하다 뒤늦게 그림을 그린 케이스입니다.
도미에가 어렵던 시기에 도미에를 먹고 살게 해 준 수단의 하나가 지금으로 치면 시사잡지에 그린 만평이었는데요, 제가 지금 보여드린 ‘가르강튀아’ 때문에 깜빵생활도 하고 뭐 삶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뭐 한마디로 하면 정치가, 귀족, 권력자, 성직자, 언론!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아주 잘 드러납니다. 시사만평의 시초이자 창시자라고 생각하면 되실 거 같아요.
가르강튀아를 보시면... 그 당시 왕인..누구였더라; 잠시만요 검색하고 올께요;
,...........왔습니다. 루이 필립이라는군요. ㅎㅎ;;; 루이 필립을 (두 거인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가르강튀아란 탐욕스러운 거인 괴물에 비유해 그렸습니다. 거인의 얼굴이.. 누가 봐도 왕인 루이 필립의 얼굴로 그렸다더군요.

서민들이 가르강튀아의 입으로 성직자의 감독 하에서 먹을 것을 계속 올려보내고.. 나오는 배설물은 언론들이 받아먹고, 올려보내는 사다리에서 흘러내려오는 것은 또 정치가들이 받아 쳐먹고 뭐 그런 그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여하튼간에 어둡고 비열했던 시대가 지나가고, 희망찬 새해가 밝았나 싶었는데, 어제 이재용 석방 소식을 들으니 참 여러 감정이 생기더군요. 장도리 만평 보다가 문득 도미에를 떠올렸습니다. 도미에의 시대에도 지금도 민주주의는 끝없이 경계하고 노력해야 되는 건가 싶습니다.
덧말 1.
도미에의 시사만평 외 딴 그림들 보면 또 인간을 보는 시선이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세탁부를 같이 보시면... 그림이 어둑어둑한데 너무 따뜻해서 눈물날 거 같죠. 사심을 담자면, 제일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인생과 그림 모두 다요.

덧말 2.
사실주의는 아름다운 것만 미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고 싶은 게 사회의 밝지 않은 현실이면 그것도 그리겠다는데 왜? 뭐 이런 생각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농민의 현실을 그린 밀레, 도시 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도미에, 쿠르베 등이 있습니다.
덧말 3.
극사실주의는 철학 자체가 완전 달라요. 오전에 미대 입시생같은데.. 완전 사진같은 사과 그림을 자랑한 글이 모공에 올라와서 여러 분이 감탄하셨죠. 극사실주의는 완전 진짜같이 그리는 그림이고.. 사진/그림/현실의 경계와 그리는 것에 대한 약간 존재론적인 의문에서 시작하는 그림.....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실제로는 그냥 사진같이 잘 그리는 거에 사람들이 감탄하죠;;;; 이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리히텐슈테인 찾아보시면 좀 더 즐기면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덧말 4.
이런 근대 이후 미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좀 써 볼까 생각만 하고 못하고 있네요; 게을러서;;;
도미에 만평 보면 법정 모습이 많더군요. 그때도 법쪽 사람들은 풍자 대상이었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