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9월 10일, 텍사스주 브룩 육군병원
좌측은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 대장
1968년 5월 2일 베트남에서 작전중이던 12인 규모의 미군 특수부대 순찰조가 북베트남군 1개 대대에 포위되어 헬리콥터들이 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출동했다가 격렬한 총격에 착륙하지 못하고 돌아오자 구급낭과 대검만 들고 헬리콥터에 뛰어올라 현장에 뛰어내려 전사자로부터 기밀문서를 회수하고 부상자들을 치료, 6시간 후 다른 헬리콥터가 인근에 착륙해 이탈할 때까지 북베트남군과 육박전을 벌였으며 도착했을 때 이미 숨져 있었던 4명을 제외한 8명을 구조
당시 베나비데스의 활약을 묘사한 그림
헬리콥터에 실려 기지로 귀환한 베나비데스의 몸에는 총상 7군데(등에서 심장 밑으로 뚫린 7.62mm 관통상 포함), 파편상 28군데, 양 팔에 총검으로 찔린 열상, 입과 목 뒤에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은 타박상이 있었으며, 베나비데스는 상처가 너무 심해 시체로 생각하고 운구 주머니에 넣으려던 의사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아직 안 죽었다고 알림
부대 지휘관은 베나비데스가 최고 영예인 의회 명예훈장(메달 오브 아너)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부상이 워낙 위중해 심사가 오래 걸리는 의회 명예훈장을 살아서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 그 다음으로 높은 수훈 십자장 수여를 건의했으며 상부에서도 이의 없이 이를 승인해 육군 참모총장 웨스트모얼랜드가 직접 수여
베나비데스는 이후 기적적으로 부상에서 회복되었으며 그의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진 1973년 그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해 달라는 건의가 제출되었으나 당시 신청 기한(공훈으로부터 2년)이 지난 상태. 미 의회에서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 기한을 연장하기로 특별 결정. 군 포상위원회는 당시 베나비데스가 구출한 사람들 중 현지 병력을 제외하고 당시까지 생존한 미군이 없으므로 공적을 증명할 수 없다며 명예훈장 수여가 불가능하다고 판정하였으나 사실 다른 곳으로 이사하여 살고 있었던 생존 부대원이 1980년에 신문에서 그의 일화를 읽고 직접 1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증거로 제출하여 명예훈장 수여 결정
의회 명예훈장을 수여받는 로이 베나비데스 퇴역 육군 상사, 1981년 2월 24일
오른쪽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 왼쪽은 캐스퍼 와인버거 당시 미국 국방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