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먼저 저의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마 작년이었던 걸로 생각합니다.
평소처럼 지하철 계단을 올랐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편이었고 제 앞에는 무릎 위보다 조금 짧은 정도의 치마를 입은 분이 먼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아 치마가 짧은 분이네. 빨리 걸어서 지나쳐가야하나 사람이 많아서 쉽지 않겠는데'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제 앞으로 어떤 남자분이 끼어들더군요. 제가 딱 붙어서 가고 있었던것은 아니니 당연히 틈은 있었지만 사람이 붐빈다고 해도 그 정도로 낑겨서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상당히 무례하게 끼어들길래
'이 무례한 인간은 또 뭐람?'하면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 더 신경써서 보다보니 이 남자분(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중년)이 가방을 든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서 터치를 하는데 그 가방을 든 손이 부자연스럽게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휴대전화를 터치하려면 화면을 보면서 해야하기 때문에 가슴께에 들고 터치를 하는게 자연스러운데 그 남자분은 허리 밑에서 터치를 하더군요.
뭔가 낌새가 이상했죠. 아무래도 몰카를 찍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화면을 본 것도 아니고 증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체포권도 없는 일반인인 제가 섣불리 물리적으로 제제를 가한다거나 휴대전화 좀 보자고 하기도 안좋고 오해일 수도 있고 해서 일단 가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여자분과 저, 그리고 의심스러운 중년남자분이 모두 같은 방향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때 거의 확신했습니다.
남자분이 유독 그 여자분 뒤로 따라 붙더군요. 계단에서 바로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는게 아니라 몇 십 걸음은 걸어야 하는 넓은 통로가 있고 출근길이라 각자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데 굳이 그 여자분 뒤에 딱 따라붙는게 아주 티가 나더군요.
중년남이 변태라는 확신을 갖기는 했지만 여전히 어떤 행동을 취해야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혹시나 남자분이 변태가 아니라면?
내게 권리가 없는데 남자분의 휴대전화를 보여달라고 해야하나?
일단 남자를 붙들고 주위 사람에게 경찰 부르라고 해야하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에스컬레이터가 끝나고 여자분과 중년남이 다 사라지고 개찰구 밖에 나와서까지 고민을 하다가 개찰구 밖에 있던 지하철 직원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 분들도 별다른 방법은 없다고 하더군요. 현행범의 경우엔 어떻게 방법이 있는데 심증만으로는 쉽지 않다고 해서
불편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직도 종종 저를 괴롭힙니다. 과연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나.
과연 저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그 여자분은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
1.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죠.
계단을 오르며 치마를 가리는 행위에 대한 수많은 논의에는 여러 가지 관점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관점을 제가 기억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 또는 떠오르는 부분에 대해 하나씩 얘기해 보기로 하죠.
2. 먼저 왜 여자들은 계단을 오르며 치마를 가리는가
아마 많은 남성이 계단 오르는 여성의 치맛속을 보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추정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그럴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여성분들 입장에서 누가 내 치맛속을 보려는 변태인지 그냥 계단을 오르는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죠
그리고 뒤에서 오는 사람이 남자여서가 아니라 여자라도 굳이 내 속옷이 보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도죠.
예를 남자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남자입니다. 여름에 반바지도 잘입고 다닙니다.
가끔 통이 넓은 바지를 입을 땐 앉을 때나 다리를 올려야 하거나 할 때 좀 더 주의를 합니다.
원치않게 내 속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일단 크고 그게 이성일 경우 더더군다나 불쾌함을 유발할 수도 있어서 주의합니다.
여자분들도 마찬가지 이리라 생각합니다. 남녀를 떠나서 내 속옷을 굳이 보이고 싶지 않다, 덧붙여서 굳이 굳이 속을 보려고 드는 변태는 이마에 나 변태요 라고 붙이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대할 때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그럼 자칫 속을 보여 타인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으니 짧은 치마를 입지 말아야 하는가
에이 그럴리가요.
아예 노출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또 예를 들어보죠.
저는 여름이면 반팔티를 자주 입습니다. 그 중에는 팔이 통이 넓은 것도 있고 좁은 것도 있습니다.
좁은 경우에는 덜한데 넓은 통의 경우엔 종종 고민하게 됩니다.
지하철 손잡이라도 잡을라치면 키가 작은 여자분들의 시선 위치에, 또는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 위치에 제 반팔티의 구멍이 놓이게 됩니다.
그럼 혹시라도 원치 않게 저의 겨드랑이를 그 분들의 눈 앞에 들이대게 될까봐 일부러 시선이 안닿을 것 같은 쪽으로 팔을 옮기던가 겉옷 한 벌을 팔에 걸쳐서 겨드랑이를 가리던가 합니다.
그럼 저는 그런 가리는 행위나 주의를 하지 말고 타인을 내 겨드랑이로 불쾌하게 할 수 있으니 반팔티셔츠를 입지 말아야 할까요?
전혀 아니죠. 그냥 내가 좀 주의하거나 가리면 될 일입니다.
4. 짧은 치마가 없던 변태심을 만들기 때문에 입으면 안될까요?
정말 노출이 있는 옷이 없던 변태심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암흑을 뿌릴까요?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노출도와 성범죄의 발생에 인과관계가 아니라고 합니다, 즉 "노출도가 높아지면 성범죄율이 증가한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라고 합니다.
http://seethrough.tistory.com/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59672
하지만 도촬의 경우는 범죄의 특성상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을 때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download.jsp?attach_no=116485
따라서 짧은 치마를 입을 때면 좀 더 몸가짐을 조심해서 계단을 오를 때 가려주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서울역이 주요몰카 구역이라고 하니 특히 조심하시기 바립니다.
5. 그럼 이제 계단을 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될까요?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남자고 여자고 타인에게 과도한 신경은 끄고 내 갈길을 가면 됩니다.
그러니 여성분들은 계단을 오를 때 치마를 잡고 가든, 가방으로 가리든 그냥 편히 올라가시던 원하시는 대로 갑시다.
남자분들도 혹여나 먼저 오르고 계신 분이 치마를 잡고 가는 여자분이거나 가방으로 가린 분이어도
나를 범죄자로 보는거냐고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그냥 계단만 열심히 오르시면 됩니다.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필요 없습니다.
6. 추신
저도 예전에는 대체 왜 여자분들이 가리는 지 이해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짧은 치마 입고 가릴 바에는 왜 입어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생각을 하다보니 바뀌더군요.
이해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혹시 지금은 이해 안가신다는 분들도 나중에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서로 이해에 살아온 경험의 차이에 따라 시간이 좀 들 수 있으니 너무 적대시 하지 말고 "선의"를 갖고 바라봤으면 합니다.
물론 저 역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항상 조심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아직도 잘못하는 일들이 수두룩 하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앞으로도 꼰대가 되지 말자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만...쉽지 않겠죠^^
아직도 서두에 썼던 그 상황에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를 고민 중인거 보면요.ㅎㅎ
1줄 요약
1. 여자분들이 가방으로 뒤를 가린다고 그걸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서 기분 나빠하지 말고 그냥 제 갈 길 갑시다.
길거리에 돈다발이 뒹굴어도 남의 물건이니 안 주워가면 됩니다와 같이 들리네요
전혀요.
여기서 누구를 도둑으로 비유하고 무엇을 길거리의 돈다발로 비유하시는 건지도 감이 안잡힙니다.
계단에서 치마를 가리는 여자분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가 글의 핵심이고 아마도 그 이유는
제가 반팔을 입을 때 겨를 가리듯
1)성별 떠나서 남에게 굳이 속을 보이고 싶지 않고
2) 혹시나 모를 변태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 보편적으로 조심하는 행위라는 두 줄 요약 드립니다.
길거리의 돈다발 = 짧은치마
이렇게 연상하신건가요. 그렇다면 길거리에 돈다발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취지 정도로 이해하셔야겠네요. (=치마 아래를 가리는 행위)
돈다발을 들고다니지 말라는게 아니고요.
건강한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눈이 가거든요. 피해를 주지 말아야한다는 천사와 본능이라는 악마사이의 줄타기..
오딧세이님// 시선이 한 번 갈 수는 있습니다. 저도 시선 돌리다보면 모르는 남자 분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그게 길어지면 서로 어깨빵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번 시선이 갔다가도 다시 내 갈길을 가지요. 계속 쳐다본다던가 도구를 사용해서 촬영까지 하겠다고 드는 경우는 드물죠. 선의악의는 모호하지만 행동은 명확합니다. 서로를 대할 때는 선의를 갖어야 하지만 분명한 상대의, 또 나의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어야겠죠.
짧은 치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옷은 서서 있는 것을 기본 전제로 만듭니다.
상대방도 마주 서 있다고 생각하겠죠.
그럼 치마 밑이 보일리가 없죠.
이건 남자 반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하면 남자 반바지도 보여요. 여러 조건이 겹쳐지면 말이죠.
그런데 그거 가린다고 남자한테 유난떤다고 합니까?
계단, 에스컬레이터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치마밑이 보일까봐 가리는 행위를 불편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신경 끄고 갈 길 가면 됩니다.
그걸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서 기분 나빠하면 나만 손해입니다.
뒤에 가는 남자가 무슨 댓가를 집니까?
여자분이 가리면 그냥 가리는구나 하면 되는거고
안가리면 안가렸구나 하고 가면 됩니다.
치마밑을 계속 보지만 않으면 됩니다.
가린다로 뭐라하는건 이해가 잘 안가요.
범죄자 취급하는거다->신경끄시고 갈길가세요.
가릴거면 입지마->그냥 신경끄시고 갈길가세요.
그래서 가능한 저도 계단 올라갈 때 다른 곳을 보거나.. 아예 바닥을 보거나.. 핸드폰을 아예 코에 처박고 봅니다. -_-ㅋ
계단에서는 위험하니까 계단 보고 걷는데 가끔 앞에 짧은 옷 입은 분이 계시면 시선을 돌리곤 합니다.
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고개 한 번 돌리는게.
여성에게 이해가 안가는 게 아니고, 사회적 통념이 이해가 안갑니다...
티백도 아니고 그냥 빤스인데 뭐 민망할 것도 없고 시야각상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남성-여성 전부가 대범하고 개방적으로 생각해줫으면 하는데요.
그깟 빤스... 서구는 티백 레깅스로 엉덩이골 적나라하게 보이며 피둥피둥 걸어다녀도 누가 신경하나 안쓴다던데...
전 이런 것 자체가 여성을 구속하는 유교적인 폐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아직 첨예한 부분이 있으니 어쩔 수 없겠죠.
또한 변태를 두려워해서 셀프 방어 한다기보다는
그냥 내 속옷을 보이고 싶지 않다 정도로 이해 하시면 어떨까요.
저도 제 겨드랑이 보이기 싫어서 셀프방어 하는걸요.
도촬도 성범죄인데, 노출이 증가하면 성범죄가 증가한다가 되어버리네요...
특히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발생율이 높다고 합니다.
노출을 해서 많이 일어나는게 아니라 도촬 피해자가 높은 확률로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거겠죠.
(안가리면 뭐가 문제인줄도 모르고 그냥 머뭇거리는 1인...)
눈이 안좋아서 보여봤자 뇌가 인식을 못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