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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조선 500년, 그 피와 시체의 역사.txt 18

3
2015-11-01 22:35:46 218.♡.165.103
pope_peace

1394년(태조 2년) 공양왕 왕요 및 아들 처형, 전국의 왕씨 집단학살


1398년(태조 6년) 제1차 왕자의 난
이방원, 정적인 정도전, 남은, 심효생, 유만수, 박위, 이제와 이복동생 이방번, 이방석 등을 살해


1400년(정종 2년) 제2차 왕자의 난
이성계의 4남 이방간, 동생 방원을 상대로 군사행동 강행했으나 실패
방간의 최측근 박포 처형, 방간의 아들 맹종은 귀양후 자결


1401년(태종 1년) 한성판윤 변남룡, 아들 변혼 처형


1407년(태종 7년) 이방원의 처남 민무구, 민무질 처형


1416년(태종 16년) 민무구, 무질 형제의 동생 무휼, 무회 처형


1418년(세종 원년) 강상인의 옥
궁궐수비병력교대를 상왕인 태종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병조참판 강상인 처형
아무 관련없는 병조판서 박습, 영의정 심온, 온의 동생 심정까지 처형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우찬성 이양, 이조판서 민신, 병조판서 조극관, 충청도관찰사 조수량, 안평대군과 그 아들 등 최대 107명이 수양대군 일파에 의해 피살
김종서의 측근 함길도절제사 이징옥도 피살됨


1454년(단종 2년)
황보인, 김종서 일파인 우의정 정분, 귀양지에서 사사됨


1456년(세조 1년) 사육신
승지 성삼문, 형조참판 박팽년, 하위지, 이개, 집현전학사 유성원, 동지중추원사 유응부, 공조판서 김문기, 성삼문의 부친 성승 등이 수양대군 살해하고 단종 복위 시도. 유성원은 집에서 자결, 박팽년은 옥중에서 자결했으며 사육신과 그 가문의 모든 남자들 포함해 70여명이 처형당함


1456년(세조 1년) 단종의 장인 송현수, 교살당함


1457년(세조 2년) 제2차 단종복위운동
수양의 친동생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 및 순흥부 양반 700여명이 학살됨


1457년 10월 24일 단종, 강원도 영월에서 살해됨


1461년(세조 6년) 단종의 매형 정종, 피살됨


1466년(세조 11년)
공조판서 양정, "이제 왕도 지겨워지니 양위하고 싶다"는 수양대군의 농에 장단 맞춰 세자에게 양위할 것을 종용했다 참수됨


1467년(세조 12년) 이시애의 난. 함길도 일대 대학살


1468년(예종 원년) 남이의 옥
전 병조판서 남이, 영의정 강순, 조경치, 변영수, 변자의, 문효랑, 고복로, 오치권, 박자하 처형됨


1470년(성종 1년) 구성군사건
김윤생, 윤경의, 최세호 등이 "구성군이 왕의 재목"이라고 말했다가 드러나 세명은 처형되고 구성군은 유배됨


1482년(성종 13년)
폐비 윤씨 사사됨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
평소 김종직에 원한을 품은 유자광과 이극돈,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세조가 노산군(단종)을 죽인 것을 비난하는 글"이라며 모함. 이를 사초에 수록한 종직의 제자 김일손도 연루. 김종직은 부관참시되고 김일손, 권오복, 권경유, 이목, 허반은 참형을 당함. 종직의 제자 김굉필과 정여창도 귀양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 폐비윤씨가 사약을 마시고 처형된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갑자기 이를 빌미삼아 성종의 후궁 2명과 서자 2명을 처형. 윤씨 사사와 관련된 윤필상, 이세겸 등 모든 중신과 무오사화 생존자들까지 떼로 몰아 처형. 한명회, 한치형 등은 부관참시


1506년 중종반정
병조판서 임사홍, 좌의정 신수근, 수근의 동생 신수영 등 처형
중종의 부인 신씨를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강제 폐비시킴


1519년 기묘사화
조광조, 김정 등 사림파 신료 8명 사사


1521년
조광조에 동정적이던 우의정 안당, 훈구파 남곤과 심정의 모함으로 사사됨


1531년
경빈 박씨와 훈구파 실권자 심정, 김안로에 의해 탄핵되고 사사됨


1537년
김안로 사사


1545년 을사사화
인종의 외숙부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이 새로 즉위한 명종의 외숙부 윤원형의 공작으로 사사됨
2년후 벽서사건으로 추가 유혈 발생


1589~90년 정여립의 난, 기축옥사
호남지방의 개혁성향 유학자 정여립이 세운 조직 대동계 숙청, 정여립은 자결
서인 정철의 주도 하에 우의정 노수신, 이발, 조대중 등 동인 100여명 사망


1592년(선조 25년)
부원수 신각, 계유령 전투에서 승전하고도 도원수 김명원의 모함으로 참수당함


1596년(선조 29년)
의병장 김덕령, 최담령,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됨


1608년(광해군 원년)
영창대군 옹립을 주장한 소북파의 영수 영의정 유영경 사사됨


1609년(광해군 1년)
평소 광해군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친형 임해군 사사됨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
대북파,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에게 역모를 씌워 사사
영창대군은 강화부사 강항에 의해 살해됨
김제남 역모 조작에 이용된 강변칠우도 모두 처형됨


1618년(광해군 10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처형됨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
광해군 폐위되어 제주도 유배, 세자는 강화도에 유배되어 자결함
대북파 이이첨, 유희분, 정인홍 등 200여명 처형됨


1624년(인조 1년) 이괄의 난
함경도병마절도사 이괄,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품고 반란
한양을 점령했으나 후속전투에서 패하고 수하들에 의해 피살됨
이괄의 부장 한명련도 피살
임진왜란의 의병장 정문부, 이시언 등 관련자 처형


1644년(인조 21년) 심기원의 옥
좌의정 겸 남한산성수어사 심기원, 회은군 이덕인을 왕으로 추대하려다 김자점 일파에 적발되어 처형
회은군, 이일원, 권억 등이 처형되고 임경업도 중국에서 강제 송환되어 고문수사 끝에 사망


1645년(인조 22년)
소현세자 의문사


1646년(인조 23년)
소현세자의 세자빈 강씨, 폐위되고 사사됨. 많은 궁녀들이 문초 끝에 사망
소현세자-강빈 부부의 아들 3명 중 2명 의문사


1651년(효종 2년) 김자점의 옥
김자점 처형(아들 김경징은 1637년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수비를 게을리해 처형됨)


1680년(숙종 6년) 경신대출척
남인의 일원인 영의정 허적, 숙종으로부터 궤장과 시호를 하사받아 벌인 축하연에서 멋대로 궁중의 장막을 빌려다씀
서인으로부터 탄핵당하여 파직, 허적의 서자 허견이 노골적으로 불만 터트리며 역모
허적, 허견, 남인의 영수 윤휴 등이 처형됨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
숙종의 애첩 소의 장씨(장희빈)와 남인세력의 반격으로 서인 숙청
서인의 영수 송시열, 영의정 김수항 등이 유배후 사사, 수항의 형제 김수흥도 유배지에서 사망
인현왕후 민씨 폐위되고 소의 장씨가 중전에 책봉됨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
숙종, 중전 장씨에게 싫증 느끼고 폐위시켜 희빈으로 강등, 폐비 민씨를 다시 중전으로 복귀시킴
남인 일파 우의정 민암, 아들 민장도 사사되고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민흥도 유배됨


1697년(숙종 23년)
인현왕후 복위의 주역이었던 서인 한중혁, 다른 서인 남구만 유상운으로부터 미움받아 곤장맞고 죽음


1701년(숙종 27년)
희빈 장씨,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사됨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 안세정 등 처형됨


1721~22년 신임사화

경종이 노론측 대신들의 종용으로 이복동생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려하자 소론파가 강하게 반대하여 취소. 소론의 강경파 김일경, 지관 목호룡을 매수해 노론 4대신과 그 가신들이 경종 시해를 도모했다 모함. 노론의 4대신(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전임 좌의정 이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등 사사. 이이명의 아들 이기지, 조카 이천기, 이희지, 김민택, 김성행, 김용택, 백망, 심상길, 오서종, 유경유, 정인중, 조흡, 홍의인, 홍철인 등이 사사, 장살, 교형을 당하고 노론측 신료들의 부인 7명이 자살함


1724년(영조 원년)

신임사화 희생자들 모두 관작 복구. 소론 김일경, 목호룡 처형,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10여 회의 고문을 당했으나 죄를 인정치 않고 증거가 없어 유배됨


1728년(영조 4년) 이인좌의 난

소론 출신 이인좌, 충청도와 경상도 각지의 양반, 중간계급에 도적단까지 규합해 반란
진압되어 이인좌, 박필현, 정희량 등 처형


1762년(영조 38년) 임오화변

사도세자, 나경언의 고변으로 영조에게 모든 비행이 알려짐. 나경언은 무고죄로 참수당했으나 사도세자도 궁비 내시를 죽이고 기행을 일삼은 죄를 추궁당해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사망. 세자를 따른 내시, 궁녀 다수 처형


1776년(정조 원년)

세손 시절의 정조를 모함한 정후겸, 홍인한 등 처형


1791년(정조 15년) 기해박해

남인 출신 선비 윤지충, 권상연, 천주교 교리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 등을 소각. 사회도덕을 문란케 하고 무부무군의 사상을 따랐다는 죄로 처형됨. 조선내 천주교인의 지도자 권일신은 유배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대비 정순왕후와 경주김씨 노론벽파의 주도로 천주교 대탄압 강행. 중국인 신부 주문모 참형, 이승훈, 이가환, 정약종 등 천주교를 믿었던 진보적 사상가들과 교인 100여명 처형.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정약종의 조카사위 황사영, 중국의 천주교 주교에게 조선 침공을 요청했다 발각되어 참형(황사영백서사건)


1811년(순조 11년) 홍경래의 난

서북지방 사람은 인재로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방침에 불만을 품은 평안도 양반 홍경래. 우군칙, 이제초 등 주변 양반들을 규합하여 대반란 일으킴. 청천강 이북 일대를 모두 장악했으나 점차 밀려 정주성에서 농성. 1812년 4월 함락되고 홍경래는 전사, 우군칙 이제초 등은 모두 참형을 당함. 홍경래에 투항한 선천부사 김익순도 참수됨


1839년(헌종 5년) 기해박해

풍양조씨가 천주교에 동정적인 안동김씨로부터 정권 탈취할 목적으로 대규모 천주교 박해 강행. 천주교인 남명혁, 박희순, 정하상, 유진길 등 118명 사형, 옥사 1명, 외국인 주교 앵베르, 모방, 샤스탕도 참형되어 군문효수됨. 현석문의 '기해일기'에는 참형 54명, 장살과 옥사 60명으로 기록


1846년(헌종 12년)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새남터에서 참수되고 군문효수


1849년(철종 원년)

헌종의 승하로 풍양조씨 세도가 끝나고 안동김씨 재득세. 풍양조씨의 대표인물 조병현 사사됨


1862년(철종 13년) 진주민란

경상우병사 백낙신, 진주 및 부근 농민들로부터 4~5만냥을 수탈. 진주목사 홍병원은 도결 8만 4천냥을 일시에 호별로 배당해 강제 징수, 백낙신도 환포 7만 2천냥을 농가에 분담시킴. 유계춘이 농민 수만명을 동원해 난을 일으켜 진주성 점령하고 백낙신, 홍병원 생포, 부정관리 권준범과 김희순을 화형에 처함. 조정에서는 진주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백낙신은 귀양조치, 그러나 주모자인 유계춘, 김수만, 이귀재 등 10명을 참형에 처함


1864년(고종 1년)

동학 창설자 최제우 처형됨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

집권자 흥선대원군, 러시아의 남하를 프랑스의 힘을 빌려 막고자 천주교 신자 남종삼을 통해 프랑스 가톨릭 주교들과 접촉하고자 했으나 실패. 조정에서 흥선군이 친가톨릭이라는 주장이 퍼지자 이를 부정하며 베르뇌 주교 등 천주교 사제 9명, 전국의 신자 8천명을 처형함. 살아남은 신부 3명은 프랑스 본국에 이 사실을 알려 병인양요


1874년(고종 11년)

중전 민씨의 오빠 형조판서 민승호, 폭탄테러로 사망


1881년 위정척사운동

강원도 유생 홍재학, 서양 문호개방을 반대하며 이에 침묵하는 고종까지 비난하다 능지처참


1882년 임오군란

구훈련도감 군병들, 차별대우와 모욕에 불만 품고 반란 일으켜 민겸호, 김보현, 이최응 등 살해하고 흥선대원군 재집권. 명성황후, 청군을 개입시켜 군란 진압. 군병 170명중 11명이 청군에 살해되고 공치원, 손순길, 최봉규 등 3명 효수. 흥선대원군은 청국으로 납치되고 명성황후가 재집권해 조병창(趙秉昌)·조우희(趙宇熙)·이회정(李會正)·임응준(任應準)·정현덕(鄭顯德)·조채하(趙采夏)·이재만(李載晩)등을 처형함


1884년 갑신정변

김옥균 등의 개화파, 수구파를 상대로 봉기하여 민태호, 민영목, 윤태준, 이조연, 한규직 등 살해하고 문벌 폐지, 지조법 개혁, 내시 폐지, 혜상공국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혁신정강 발표. 청군 1500명이 일본군과 개화당을 공격해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망명하고 홍영식, 박영교 등은 청군에게 살해됨. 중전 민씨 세력 강화



1894년 동학혁명, 갑오농민전쟁

동학접주 전봉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을 규탄하며 봉기해 고부군 점령. 각지에서 동학의 지도를 받는 농민봉기 일어나 전라도 일원을 장악하고 민씨 세도 타도를 외침. 정부, 동학측의 요구사항을 수용해 집강소를 설치하여 1차 봉기 무마시킴. 고종과 민씨의 요청을 받고 출병한 일본군, 청나라를 격퇴하고 조선의 수도 한양 장악.

전봉준과 충청도의 동학접주 최시형, 일본의 침략에 대응해 2차 봉기. 고종은 동학군 진압을 윤허하고 관군을 보내 일본군과 합류케 함. 우금치전투, 웅치전투에서 동학군 참패해 20만명의 희생자를 내고 진압. 전봉준, 최시형, 김개남, 손화중 등이 체포되어 처형



1895년 을미사변

청일전쟁 이후 명성황후가 일본 견제를 위해 러시아에 접근하자 신임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관 수비대와 낭인들을 동원해 궁궐을 습격,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 궁내부대신 이경직, 명성황후와 궁녀 수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모욕함



1896년 아관파천

고종, 일본의 압박을 벗어날 생각으로 이범진, 이완용 등의 건의에 따라 러시아공사관으로 몰래 도주. 친일관료들을 숙청하라는 명을 내려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농상공부대신 정병하를 참수하고 탁지부대신 어윤중은 달아나다 성난 군중에 붙들려 타살당함. 조선에서 일본의 세력 크게 위축되고 러시아 득세하여 온갖 이권 획득. 1년후 고종은 환궁해 대한제국 선포하고 보수적 성격의 광무개혁 추진



1900년 이재수의 난

제주도 봉세관 강봉헌, 제주도민들에게 온갖 잡세 부과하고 집행업무에 가톨릭교도들을 대거 기용. 강봉헌과 천주교에 불만품은 제주도민들이 관노 이재수를 중심으로 봉기. 조정에서 파견한 관군에 진압되어 이재수, 강우백, 오대현 등이 교수형당함.



1905년 을사조약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의 한반도내 기득권을 빼앗은 일본, 고종황제에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넘기고 통감의 조언을 받아 통치하라는 한일신협약을 강요해 체결함. 시종무관장 민영환이 자결하고 원임대신 조병세, 전참판 홍만식, 학부주사 이상철, 평양대 일등병 김봉학과 민영환의 인력거꾼도 자결함. 전국 작기에서 항일 의병 봉기


1906년 의병장 최익현, 일본 대마도에서 사망


1907년 정미의병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황제 강제 퇴위, 군대해산. 친위대, 군대해산에 항거해 일본군과 교전했으나 40명의 전사자를 내고 진압됨. 최대 14만명이 참여한 의병전쟁 시작됨. 13도 창의군, 평민 출신 신돌석, 홍범도 등을 배제하고 양반출신 의병장들로 구성되어 서울진공을 계획했으나 총대장 이인영의 이탈로 실패


1908년

의병장 민긍호, 허위, 이강년 등 피살. 신돌석, 일본에 매수된 옛 부하 김상렬에 의해 취침중에 살해됨


1909년 남한대토벌작전

2개월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에서 일본군에 의한 대규모 학살. 의병장 103명 포함 최소 500명 이상 피살, 전해산 등 의병장 23명은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


1910년

안중근 의사, 여순감옥에서 순국(당시 32세)
이완용 암살을 시도한 이재명 의사,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1890년생으로 당시 21세)

pope_peace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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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
pope_peace
IP 218.♡.165.103
11-01 2015-11-01 22:39:46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첨언하면 홍경래의 반란군은 관군에 밀려 정주성으로 퇴각해 농성에 들어갔고 1812년 4월 29일 화약으로 성벽을 무너트린 관군에 의해 진압됐습니다. 홍경래는 전투중에 총에 맞아 죽었고 우군칙, 이희저 등 정주성의 장정 1917명이 모두 한꺼번에 참수를 당했다고 합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gospelofjohn
IP 175.♡.105.3
11-02 2015-11-02 08:20:03 / 수정일: 2017-04-30 16:06:09
·
1791년, 윤지충을 비롯하여 천주교 탄압으로 사사된 사건 이름이 기해박해로 잘못나와있습니다. 신해박해로 고쳐주세용~
삭제 되었습니다.
warak
IP 49.♡.64.62
11-02 2015-11-02 09:29:07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정권 위해 상대방 죽이는 건 어느 나라든 다 있었지 않나요?
레미앤코
IP 115.♡.103.92
11-02 2015-11-02 09:48:44 / 수정일: 2017-04-30 16:06:09
·
근현대사도 .. 많은 분들이 죽지 않았나 싶습니다...
blancshe
IP 110.♡.54.154
11-02 2015-11-02 10:03:18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일본사 중국사 로마사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죠
다만 교과서에서는 밝은면을 보여주는게 많아 덜 보이는거죠
이준표
IP 211.♡.130.130
11-02 2015-11-02 10:10:36 / 수정일: 2017-04-30 16:06:09
·
500년동안 저정도면 별로 많은거 같지는 않은데요 ;;
왕좌의게임만 봐도 저정도는 죽은거 같은데 ;;
헨두릭수
IP 112.♡.44.188
11-02 2015-11-02 10:52:31 / 수정일: 2017-04-30 16:06:09
·
피와 시체의 역사 어쩌구 하기엔 저 정도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죠.
오히려 동시대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당히 평화로웠던 나라라 봅니다.
솔직히 조선조 중 암군에 속하는 임금이 다른 나라 명군 내지 화평했던 치세와 비교하여 킬카운트가 훨 따딸리는 경우도 꽤 많을걸요?
칼도
IP 219.♡.165.53
11-02 2015-11-02 14:06:46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중국의 경우는 잘 알려져 있는데, 서양의 경우는 마녀 사냥, 개신교나 천주교측에서 상대 신도들에게 자행한 학살, 농민반란군과 귀족 진압군이 자행한 학살 외에는 딱히 떠 오르는, 정적을 대규모로 살해한 사례가 없네요. 서양 역사에 밝은 분이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뭔일이긴개뿔
IP 112.♡.134.89
11-02 2015-11-02 16:46:35 / 수정일: 2017-04-30 16:06:09
·
로마시대 때 심심하면 벌어지던 피의 대숙청은 다 적자면 분량이 이 글의 백 배(?)는 너끈히 될걸요.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콤모두스가 정권잡으면서부터 골로 갈 때까지 얼마나 조져댔었는지 한번 떠올려보세요. 극도로 정국이 불안하던 로마제국 후반기 군인황제 시절에는 그 정도의 학살이 거의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어졌어요.

다 야만적인 고대 얘기 아니냐고요?
이 글과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는 그 유명한 로베스 피에르가 꼴랑 1년 동안 반혁명 반동분자라고 잡아다 죽인 수가 무려 2만여명에 육박하죠. 그 유명한 기요틴으로 모가지 땡강 짤라서.

그다지 서양사에 밝지 않은 저도 당장 이렇게 떠오르는걸요?
from CV
제이슨팍
IP 112.♡.72.187
11-02 2015-11-02 15:01:06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일본은 훨씬 심하지 않나요?
예전에 일본사 강의 들을때 우와.. 이건뭐
맨날 친인척이나 심복이 암살하고 할복 하고 깜놀했던 기억ㅇ...
내갈께하와이
IP 180.♡.192.10
11-02 2015-11-02 15:27:58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이정도면 껌이죠
뭔일이긴개뿔
IP 112.♡.134.89
11-02 2015-11-02 16:24:22 / 수정일: 2017-04-30 16:06:09
·
바로 앞 고려 무신정권 때가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알차게(?) 지지고 볶고 했을텐데요. 제 오래된 기억으로는 조선왕조만큼 긴 세월동안 정치적으로 안정된 왕조도 드물었을걸요?
from CV
asd828
IP 182.♡.34.202
11-02 2015-11-02 19:14:17 / 수정일: 2017-04-30 16:06:09
·
뭐 사실 저런건 전근대적 국가의 미성숙함에서 온 바가 크죠...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안 저랬던 나라도 없죠 뭐
포르코로쏘
IP 182.♡.133.72
11-02 2015-11-02 19:36:40 / 수정일: 2017-04-30 16:06:09
·
다 합쳐도 중국이나 일본 "무슨무슨 적의 난" 한번보다 수가 적음

그리고 저게 다 실록이 "올바래서" 많아 보이는 것임

이런 글 쓰는것도 일제의 자학사관의 영향이 큼
찌옹이
IP 49.♡.253.166
11-03 2015-11-03 01:09:00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우금치전투에서 10만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20만이나 됐었군요...
찌옹이
IP 49.♡.253.166
11-03 2015-11-03 01:10:45 / 수정일: 2017-04-30 16:06:09
·
남한대토벌이 경상도 충청도인가요?
아르케
IP 115.♡.236.118
11-03 2015-11-03 09:08:27 / 수정일: 2017-04-30 16:06:09
·
제목이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이렇게 자세하게 써져있다는 사실자체가

현재 국정화를 진행하는 윗분들이 알고 생각해봐야 할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써야지 저걸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꾼다는 거 자체가...에휴ㅠ
누운누난롸
IP 42.♡.67.107
11-04 2015-11-04 16:27:04 / 수정일: 2017-04-30 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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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법인가요?? 이정도밖에 안됐다라는??
w.Cl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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