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미 몇차례 글을 올렸습니다만, 최근 뉴스와 함께 재정리해서 올려 봅니다.
핀란드 경제의 어려움: The sick man of the eurozone
핀란드는 유로존 18개국 중에서 가장 경제회복이 더디고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가 되면서 작년 말 FT의 칼럼리스트 토니 바버에 의해 '유로존의 병자'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http://blogs.ft.com/the-world/2014/12/economic-chill-set-to-make-finland-the-sick-man-of-europe/
비록 2015년 2분기 0.2%의 성장을 보이기는 했으나 2010년말 이래 지속된 경기하강을 되돌릴 정도의 반등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핀란드의 경제성장률 추이
핀란드 경제가 얼마나 안 좋은지는 이웃 국가들과 비교하면 보다 명확합니다. 2012년 1분기를 기준으로 GDP의 변화를 보면 핀란드는 3.4%나 수축되었지만 같은 시기 스웨덴은 5.6%, 노르웨이는 4.1% 성장하였습니다.
* 노르딕국가들의 경제성장 비교
2차대전 이후 핀란드의 가장 큰 경제침체 시기로 배급제까지 시행했던 소비에트 블록 붕괴 시점과 지금을 비교하면 핀란드 경제침체의 문제를 보다 잘 알 수 있습니다.
소비에트 블록 붕괴시 V자의 급격한 침체와 급반등을 보였던 것에 비해 현재는 비록 추락정도는 심하지 않았지만 회복세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에는 S&P가 핀란드의 신용등급 AAA를 강등하면서 유럽 최우등국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 핀란드 실질GDP 비교
핀란드의 실업률은 2015년 7월 기준으로 9.7%로 프랑스 10.4%에 비해 다소 낮긴 하지만 독일의 4.7%에 비해서는 두배나 높으며 인접한 스웨덴의 7.4%, 덴마크의 6.2%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 유럽 주요 국가의 실업률 현황
경기침체와 실업이 지속되다 보니 핀란드에서도 절대적 빈곤 문제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FT는 2015년 3월 기사에서 겨울 어느날 오전 9시 30분 헬싱키의 푸드뱅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계란, 식빵, 바나나, 과일쥬스를 타기위해 긴 줄을 선 수백명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시간 반이나 추운 겨울날 줄을 서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료 음식을 타간 사람이 2,6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핀란드 전체 인구가 540만명 정도인 점과 1인당 소득이 4만5천달러를 넘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빈곤층의 증가가 이례적인 현상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핀란드의 이 같은 경제침체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된 결과입니다. 어떻게 보면 스티브 잡스와 푸틴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침체 요인 1. 노키아 효과
노키아가 잘나갈때 노키아의 핀란드 내 비중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2000년도 핀란드 GDP 성장의 반은 노키아의 몫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2003년 법인세 수입의 1/4 가까이가 노키아가 낸 것이 었습니다.
수출입 실적으로 노키아는 2010년 제조업 생산의 80%를 담당하고 GDP의 24.6%, 수출의 15%, R&D의 1/3, 세수 20%, 고용 10%를 차지하였습니다.
노키아가 이미 위축되고 있던 2011년에도 노키아 매출은 핀란드 GDP에서 20%나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자국경제에 비해 규모가 큰 대기업들이 주로 로얄더치쉘, 차이나 모바일, 글렌코어 처럼 에너지, 통신, 원자재 기업인 점을 생각하면 제조업체로 국제경쟁을 통해 성장한 노키아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주요 대기업의 자국 경제 위상(2011년)
그런데 핀란드 경제는 공교롭게도 노키아 몰락과 함께 경제가 빠르게 침체하였습니다.
핀란드의 Aalto 대학 Matti 경제학교수에 따르면 예전에는 IT가 GDP의 10%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노키아 몰락 이후 현재는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노키아 여파가 작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MS의 대량 감원으로 핀란드에서도 1,100명 정도가 해고되면서 당시 핀란드의 Stubb 총리까지 불만을 표명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Oulu의 R&D 센터에는 500명이 있었는데 합병으로 인해 오히려 MS의 유럽 R&D 센터로 커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가졌다가 작년 감원으로 전체 부서가 날아가면셔 20만명 인구의 Oulu시는 재정적으로도 수천만 유로의 세수감소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의 GDP 성장률 추이와 핀란드 경제에서 IT 비중의 감소
노키아가 한창 때 고용한 인력이 13만명이고 MS 인수 이후 통신장비에 집중하면서 6만명 정도 고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7만명의 노키아 출신들이 노키아 이외의 직장을 찾아 헤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적지 않은 노키아 출신들이 새로운 일터에 정착하면서 해당 산업의 활력이 증가한 것도 사실입니다.
FT의 2015년 3월 기사를 보면 핀란드 스타트업 기업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람 채용에 있어서 여건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고용하는 스타트업의 수용 인력이 매우 제한적이다보니 핀란드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정말 치열한 경쟁을 치룰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전례 없는 우수한 인재를 고를 수 있었겠지만 과연 노키아 출신 구직자 입장에서 긍정적이었을까는 의문입니다.
한때 핀란드 스타트업의 대표주자였던 앵그리버드의 로비오는 잘 나갈 때조차 고용인원이 800명에 불과했으며 현재 잘나가는 수퍼셀의 총 고용 인력도 200명이 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로비오는 2014년 하반기 실적부진으로 16%인 130명을 해고하였으며, 2015년 8월 다시 260명 해고를 발표하면서 핀란드 스타트업의 상황이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우수한 인력의 공급이 넘쳐나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경쟁과 더 낮아진 급여 그리고 스타트업 특성인 노동시간의 증가를 감내해야 하고 그나마도 로비오 사례처럼 안정적 일자리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온 주요한 요인임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침체 요인 2. 러시아 경제제재
1990년대 이후 핀란드 경제의 급성장 뒤에는 사실 노키아 이외에도 러시아가 있었습니다. 소련해체 이후 1992년 바닥까지 러시아 교역이 떨어졌다가 2000년대 이후 러시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핀란드도 그 수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시행되고 러시아의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핀란드 경제가 함께 부진에 빠지는 모습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러시아 GDP가 3% 하락하면 핀란드 경제는 0.5% 하락할 정도로 핀란드의 러시아 의존도는 높은 편입니다.
* 대러시아 교역 추이와 국가별 교역 규모(국제금융센터 자료 참조): 러시아는 핀란드의 최대 무역국이었습니다.
* 핀란드 수출 비중 증감 추이
경제침체 요인 3. 제지산업의 침체
핀란드 산업의 또 다른 축은 제지업이었습니다. 풍부한 침엽수림을 기반으로 종이를 많이 생산했는데 세계적으로 종이 소비가 줄면서 핀란드 제지업이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제지산업은 전자문서의 발달과 온라인 산업 성장 등으로 후퇴하고 있는데 2014년 핀란드 제지산업은 3~5% 위축이 점쳐지기도 했습니다.
* 1인당 종이 소비량: 생산량에서 수입을 뺀 수치로 핀란드, 독일, 스웨덴은 생산된 종이로 포장 등 산업에 사용하는 양이 많아서 1인당 소비량이 크게 잡히고 있습니다. 핀란드, 독일, 스웨덴은 모두 제지산업의 강국입니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문제들
잘 알려져있다 시피 핀란드는 교육강국으로 휴먼캐피탈에 투자를 집중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여러 국제기관에서 핀란드의 장기 전망을 모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핀란드 사람들의 눈 높이에 맞는 고부가가치의 일자리를 쉽게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핀란드 사람들의 단위노동비용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왔습니다.
* 단위노동비용 추이 비교 1
* 단위노동비용 추이 비교 2
또한 핀란드의 고령화는 일본에 이어 심각한 수준으로 경제활동연령의 인구 비중이 2012년 65%에서 점점 낮아져 2020년에는 58%로 하락하고 65세 이상 비중은 18%에서 26%로 급증할 전망입니다.
* 경제활동연령대 인구 비중
사실 저성장 속에서 고임금 일자리의 부족과 고령화의 진전은 덴마크,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 공통의 문제이긴 합니다.
* 노르딕 국가의 성장률, 생산성, 노동시간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노르딕 국가들의 생산성은 1990년대 2-3%에서 최근 1%대로 떨어졌습니다.
노르딕 국가들의 생산성 하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국가의 상대적 고임금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생산성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생산성 하락과 고임금체계는 결과적으로 실업률 개선을 방해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한 생산성 하락은 노르딕 국가의 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전되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는 해석입니다.
우파의 승리와 고조되는 긴장
암담한 핀란드 경제 여건 속에 치뤄진 2015년 4월의 총선은 우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직전 정권은 좌우 연립이었으나 새로 들어선 정권은 우파로만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반EU 세력(Eurosceptics)이자 반이민 정당인 핀란드당이 19%를 득표하며 원내 2당으로 연립정권의 한축이 된 것은 유의할 변화입니다.
지난 7월 중순의 그리스 협상때도 독일보다 더 완강히 추가 구제금융에 반대했던 나라는 핀란드였습니다. 당시 핀란드 총리는 그리스의 강력한 구조개혁 없이 3차 구제금융이 결정되면 핀란드당이 연정을 이탈하게 되기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강경론에 힘을 더했습니다.
한편 핀란드 우파정권은 경제성장을 이끌기 위해 휴일과 질병수당 감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기존 38일의 휴일이 30일로 줄어들 예정이며 최소한 2일의 공휴일(bank holidays)이 없어질 전망입니다.
정부는 질병휴가(sick leave)도 손을 봐서 질병휴가 첫날의 임금을 주지않고 나머지 기한에 대해서도 80%의 임금만 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지난 좌우 연립정권에서도 법인세를 24.5%에서 20%로 내리기도 했습니다.
핀란드는 전통적으로 매우 높은 노조가입률을 보이는 노르딕 국가 중 하나인데, 우파 정부의 휴일 축소와 비용 절감안에 대한 반발이 커질 전망입니다.
다만 직접적 투쟁 보다는 법률논쟁이 먼저 벌어질 것 같습니다. 얼마전 의료보험 개혁안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결로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 노르딕 국가들의 노조 가입률 추이
핀란드가 우울한 경제여건 속에 커져가는 갈등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하여 다시 성장가도를 달릴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기존 글의 백업과 원할한 자료 관리를 위해 빈약하지만 별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의 글은 원칙적으로 모공 및 팁게글과 동일하지만 일부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참조문헌 등은 블로그를 통해 관리할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방문해주셔서 덧글 등의 자취를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행 테스트 베드로써의 모범을 보여주던 나라인데 지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우리나라도 삼성의 비중이 엄청난데 삼성 망하면 우리나라도 엄청난 타격을 받겠네요... 워낙 재벌 위주의 산업체계라 무시무시하네요
현재 한국은 삼성에 대한 GDP 의존율이 한창때의 핀란드/노키아의 비율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구요.
#CLiOS
신문을 좀 보니 삼전만 따지면 아직 16% 정도로 노키아 만큼은 아닌듯 하네요.
핀란드가 현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는 저도 참 궁금합니다. 우파 정권의 노동시간 늘이기와 비용 축소 전략이 본질적 해법이 될지는 좀 의문이지만 그 마저도 사회적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고 치유되는지는 지켜볼 대목같습니다.
아무래도 러시아와 교역이 정상화되고 러시아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나마 빠른 경제회복의 길 같긴 합니다.
노키아와 같은 새로운 제조업 공룡을 또 키워낼 수 있을지는 의문인데 워낙 교육에 투자를 해둔 것이 많다보니 의외의 혁신사업을 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핀란드 교육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이상한 쪽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이 몇몇 계신데 이 글은 특정 기업에 대한 한나라의 경제 편중에 대한 반박이 되지 못합니다.
몇몇 분들이 주장하시는 것처럼 노키아가 망하면 국가경제에 타격이 크니까 잘나가던 노키아를 핀란드 경제를 좌지우지 못하도록 각종 규제를 통해 성장을 억제 했어야할까요?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노키아가 망했을때 핀란드 경제에서 깍아먹을 GDP자체도 없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