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자로 자동차보험의 교통사고 대인 진료시 진료비의 심사가 각 보험사에서 전문심사기관(심사평가원)으로 위탁 심사가 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아마도 경미한 교통사고의 경우 대인 접수를 통한 과도한 보험금 지급, 이에 따른 보험료 상승을 제한하겠다는 의도로 실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로 인하여 교통사고로 인한 진료 형태가 크게 변화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 글을 읽으시면서 주의하실 점은 위탁 심사의 목적은 환자의 적절한 진료가 아니라 비용의 절감에 있다는 것, 그리고 개개인의 의사가 심평원의 지침에 반하여 진료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주지하시고 읽으시면 이해가 좀 더 확실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심사평가원의 심사 기준은 적정 진료보다는 최소 진료를 지향하고 있으며, 진료와 치료의 주체가 아닌 심사평가원은 진료 결과에 대한 책임 없이 최소 진료를 강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심사평가원이 최소 진료 지침에 따라 치료하여 증가하는 합병증에 대해서는 심사평가원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의사와 병원에 책임을 지우지요.)
심사의 주체가 바뀜으로써 진료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역학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전에 개별 보험사가 심사를 하게 될 때에는 의사와 피해자가 같은 편에 서서 의사는 진료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고 이 근거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그에 대한 보상을 보험사에 요구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사의 주체가 심사평가원으로 바뀌게 되면 피해자와 의사와 심사평가원이 각자의 위치에 서서 피해자는 의사에게 진료를 요구하고 심사평가원은 의사에게 자기들의 심사 기준에 맞는 진료(보통은 최소진료)를 강제하게 됩니다. 즉, 의사와 심사평가원이 대립하고 심사평가원의 진료지침과 피해자의 요구의 간극에 대하여 또다시 의사와 피해자가 대립하게 되는 구도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째, 대인 교통사고 진료에 대한 심평원의 심사 범위가 일반적 의료보험 진료의 심사 범위보다 훨씬 포괄적이어서 모든 비급여 재료, 검사(초음파, MRI...) 등에 대해서도 심사가 진행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의사와 심사평가원의 대립 관계가 동등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조정을 하는 관계가 아니라 심사평가원이 의사와 병원에 대하여 무소불위의 권위를 강제하는 불평등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진료와 교통사고 피해자의 진료는 매우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국민 의료보험 진료의 경우 질환의 귀책사유가 환자 본인에게 있고 그에 대한 진료, 치료의 선택, 또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 (특별한 의료사고가 없는 한) 역시 환자 본인이 감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피해자의 경우 상해의 귀책사유가 본인에게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사고가 없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피해나 후유증에 대하여 본인이 감수할 정당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교통사고 피해자의 경우 특별히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 경우라도 일반 의료보험 진료 환자에 비하여 상당히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진료 및 치료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머리를 부딪혀 두통이 발생한 경우 뇌손상이 있을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 때 일반 의료보험 환자의 경우 경과 관찰을 선택할 가능성이 많지만 교통사고 피해자의 경우 그 손상의 가능성을 방치하여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자신이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즉시 정밀검사를 요구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심사평가원의 진료 지침은 거의 항의나 조정의 여지가 없이 실질적으로 의사와 병원에 강제되기 때문에, 더구나 그로 인한 피해자와의 마찰에 대해서는 심사평가원은 관여하지 않아서 결국 의사는 꼭두각시처럼 심평원의 지침대로 진료할 수밖에 없고, 이 최소 진료로 인한 피해자와의 마찰은 의사와 환자간에 발생하게 됩니다.
심평원에서 제시한 심사 지침 중 한가지를 예시로 말씀드리자면, "교통사고 환자의 척추 촬영시 신경학적 이상 소견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관찰기간 없이 촬영이 가능하나, 신경학적 소견 없이 통증만으로는 보존적 치료하에 통상적인 관찰기간(적어도 CT는 3,4일, MRI는 7일)이 필요하며, 관찰기간 이후에도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될 경우에 촬영할 수 있다"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간단히 풀어서 보자면 딱 보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CT나 MRI는 바로 찍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디스크라고 부르는 추간판 탈출증의 경우 통증 외의 신경학적 이상 소견(근력 약화, 마비, 감각 이상 등)이 나타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따라서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CT나 MRI는 위의 기간동안 경과 관찰 이후로 미뤄지게 됩니다.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간단히 결론지어 말씀드리면, 심사 주체가 심평원으로 옮겨지게 되고 일반 의료보험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진료지침을 강제함으로써 의사와 병원은 교통사고 피해자의 진료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고, 피해자의 주관적인 증상이나 요구에 따른 입원 치료, 정밀 검사 등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수적으로 이에 따른 의사와 피해자간의 마찰은 잦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ps. 이와같은 변화가 옳은 것이나 아니냐를 판정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닙니다. 과도한 보험금 지급으로 인한 전체적인 자동차 보험료의 인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나이롱 환자의 비율은 확실히 줄어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람직하게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피해자가 적극적인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고 판단할 부분도 상당히 큽니다. 다만 그 방법론적인 부분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인 심평원은 그 책임에서 쏙 빠지고 의사와 환자간의 분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매우 부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야구 방망이로 사람 때리고나서 '난 잘못 없음. 방망이 책임임'이라고 하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이게 의외로 잘 먹혀들어가서, 전통적으로 심평원이 의사를 컨트롤하는 방법이지요.
ps. 보험과 관계없이 자기 돈으로 검사나 치료받으면 어떤가...하면 불가능합니다. 의료보험의 경우 비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심평원이 관여하지 않지만, 교통사고 보험에 관해서는 비급여 부분까지 모두 관여하기 때문에 혹여 '내돈으로 낼테니 MRI를 찍어달라' 고 하여 자기돈 내고 촬영한다 한들 이후 심사과정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 병원측에서는 환자나 보험사측에 모두 환불을 해줘야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교통사고 보험으로 수술을 받는 경우 오로지 심평원에서 인정하는 수술재료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뼈이식이 필요한 경우 멀쩡한 다른 뼈에서 뼈를 떼내는 별도의 수술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인공뼈를 사용할 의사가 있는 경우에도 교통사고 보험시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뼈이식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자기뼈를 떼내어 사용해야 합니다.)
출처 명기 후 펌이 가능할까요?
사고 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제 치료도 제대로 못받게 생겼군요.
제가 너무 무관심했었나 봅니다. 금시초문이네요..
그런데, 이미 시행된 지 1년도 지났단 말씀이신데
개정안 시행 이후 1년동안 보험업계와 피해자, 또는 보험 가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심평원에서 심사하게끔 하면 될텐데요.
일반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는 정책... 정말 맘에 안드네요
벼룩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우는 격으로 밖에 보이질 않네요.
의사도 아니고 책임도 안지지만 항목을 정하고 강권한다니 난감하네요.
with ClienS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국가에서 판단하기에 많은 검사를 하면 의사들한테 돈을 물린다는 말이군요..
#CLiOS
딱 보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바뀌어서 이익을 가장 크게 보는 주체는 보험사입니다.
민간 보험회사에서 해야 할 일을
국가에서 대신해주는
재밌는 세상이죠.
얼마나 로비를 했을지 불 보듯 뻔하죠 ?
대략적인 소식만 알고 있었는데, 이리보니 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