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인들의 사랑싸움, 왜 이별싸움으로 번지는 걸까?
초등학교 시절, 동네 공터에서 두 명의 고등학생이 싸우는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본 일이 있었다. 까만 교복에 학사모를 쓰고, 검정 가방을 옆구리에 낀 호리호리한 남학생 두 명이 공터로 들어서더니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갑자기 한 남학생이 이단옆차기로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육탄전이 벌어졌다.
치고 박고 때리고 피하고 구르고 넘어지며 한참을 싸우더니, 마침내 상대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쓰러진 남학생이 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자 주먹을 날린 남학생이 손을 내밀어 쓰러진 남학생을 일으켜 세웠고, 둘은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더니 서로 손을 내밀어 힘차게 악수를 하고는 사이좋게 공터의 담을 넘어 사라졌다.
두 고등학생은 이미 시야에서 멀리 사라졌지만, 두 사람이 싸우던 장면은 머릿속에 남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고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이 굉장히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포츠의 페이플레이 정신의 실제를 본 것처럼 멋있어 보였다.
살다 보니 물론 남성들의 싸움 모두가 그 고등학생들처럼 페어하지도 않았고, 뒤에서 칼을 대거나 뒤통수를 후려치는 비겁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들의 싸움’ 하면 그 날의 신사적인 결투 장면이 하나의 로망처럼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이런 남-남의 멋진 대결이 여-남의 전투가 된다면 과연 어떨까?
연애를 하다 보면 지갑 속의 동전처럼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남녀 간의 ‘사랑 싸움’이다. ‘Lover’s quarrel’, 즉, 서로 각자의 월드에서 제각각의 취향대로 살아온 남녀가 서로에 대한 이질감을 마주하며 맞추고 적응해 가는 과정이 바로 ‘사랑 싸움’인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연인이라면 연애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자질구레한 사랑 싸움들을 벌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싸움’에 대한 남녀 간의 타고난 성향 차이가 생각보다 매우 커서, 때로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켜 ‘사랑을 위한 싸움’이 ‘이별을 위한 싸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 싸움을 둘러싼 남녀 차이 - 대체 이 남자는 왜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행동하죠?
그렇다면 대체 어떤 남녀차이가 있길래, 싸움 후에 갈라서는 커플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먼저, 대부분의 여성들이라면 “맞아, 맞아” 하면서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얘기다. 대체 왜 남성들은 싸우고 난 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냐는 것.
“아주 기막혀 죽겠어요. 그렇게 대판 싸우고는 사과 한 마디 없더니 슬그머니 내 곁에 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말을 걸고, 심지어는 스킨십까지 시도하며 그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정말 너무 화가 나는 거죠. 지금 자기 때문에 화가 나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스킨십을 하다니. 나는 미워서 말도 하기 싫은데. 날 뭘로 아는지... 모욕감과 수치심이 들었어요. 내가 몸 파는 여자도 아니고 말이예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분이 여성이라면, 위 여성이 왜 이렇게 흥분해 있는지 십분 이해가 될 것이다. 여성으로서는 서로 대립하는 의견으로 싸움을 벌인 후, 어떤 해결도 결론도 내려지지 않은 채 서로 거리를 두는 냉각기를 보내고 있었던 차인지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대체 뭐가 해결된 거죠? 그가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싸운 뒤로 서로 얘기를 나눠 갈등에 대해 서로 해결책을 합의했거나 감정을 푼 것도 아니고. 지금은 잠시의 휴전기나 마찬가지고, 갈등으로 인한 감정은 그대로인데 저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거 보면 진짜 이해가 안돼요.”
여성들이 이런 불만을 토로하면 남성들은 아마도 대개는 이런 식으로 반응할 것이다.
“아. 뭐 사과를 꼭 말로 해야 하나요? 내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건 서로 풀고 화해하자는 의미잖아요. 난 이제 이전 일은 잘 기억도 안나는구만. 거 되게 까다롭게 구네. 아무튼지 여자들은 피곤해.”
■ 정서와 감정을 잘 기억 못하는 남자 vs 소소한 감정까지 기억하는 여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루안 브리젠딘 교수 등 일련의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서기억에 대한 남녀 차이에 기인하기 때문이란다. 뇌에는 두 가지 독립적인 기억 시스템이 있는데, 하나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이 더해진 기능이다.
남성들은 이 중에서 주로 사실에 대한 기억만을 하지만, 여성들은 사실뿐 아니라 세세한 감정까지 다 기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에 대한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남성들은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싸웠다는 사실조차도 점차 희미해져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싸움 당시의 상황은 물론이고, 그 상황에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구체적이고 소상히 기억하고 있는 여성들의 경우는 이 또렷하게 남아있는 감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싸움은 결코 해결되지가 않은 것이다.
“물론 제가 외도를 했으니 잘못한 게 맞아요. 하지만 그건 10년 전 일이예요. 그간 세월도 많이 흘렀고, 수도 없이 사과를 했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정말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절 용서하지 못하나 봐요. 여전히 저와의 잠자리를 피하거든요. 전 건강한 남자인데 아내가 계속 잠자리를 피하니 너무 괴롭습니다. 아내 말로는 저에 대한 미움은 많이 가셨지만, 잠자리를 하고 싶은 기분까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아내가 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40대 중반의 한 남성의 고백으로, 여성들의 정서기억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여성들이라면 이 이야기 속 아내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용서해줘도 되지 않나 생각은 하지만, 마음이 생각처럼 안따라주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그만큼 여성들에게는 감정과 정서에 대한 기억이 강하고 오래 가는 것이다.
따라서 싸움 후에 여성에게는 무엇보다 충분한 사과의 표현이 필요하고, 감정의 앙금이 가실 때까지 충분한 공감과 소통의 작업이 필요하다. 여성은 감정이 풀려야 모든 것이 풀린다. 태생적으로 정서에 대한 공감력이 부족한 남성들로서는 이런 말에 머리가 아프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결국 그 화살은 누구도 아닌 남성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 싸우고 더 친해지는 남자 vs 싸우면 영영 결별하는 여자
이와 같은 정서 기억에 대한 남녀 차이 외에도 남성들은 싸움 그 자체를 하나의 문제해결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싸움을 통해 갈등을 드러내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 자체로 이미 갈등의 해소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서두에 등장한 두 고등학생의 공터 격투에서처럼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힘겨루기를 통해 서열을 가리고, 그 서열관계에 복종함으로써 수직적인 질서를 만들어가려는 특성이 있다. 이는 ‘남성성’의 상징으로서 그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본능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모든 깡패 영화가 사실은 그래서 큰 인기가 있다).
이렇듯 남성들에게 싸움이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이를 통해 위계 서열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런데, 남성 심리에서 여성의 존재는 이미 서열화가 끝난 대상이다. 즉, 겨루기를 통해 서열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약자인 것. 따라서 여성과의 ‘싸움’이란 위계 서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자신의 서열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하나의 전시효과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남성에게 여성과의 싸움은 분노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상위 서열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그 효용가치를 다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남자의 싸움에 뒤끝이 없는 이유가 아닐까. "까불지 마라. 내가 니보다 서열 위다. 끝."
진화심리학자들이 이와 관련한 재밌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일군의 남성 청소년 집단과 여성 청소년 집단의 싸움 후 모습을 관찰한 것인데, 남자 청소년들은 서로 싸운 후 오히려 더 친해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자 청소년들은 싸움까지도 아니고 서로 장기간 갈등상태에만 있어도 서로 결별해서 다시는 친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싸운 후 남녀차이>
이런 결과 역시 남성들은 싸움을 통해 관계의 위계를 정하고 나면 그에 복속하면서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는 반면, 위계보다는 개인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들은 역시 감정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싸움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는 예는 드문 것 같다.
“친구와 좋지 않은 일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나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반드시 화해를 해서 좋게 지내야지, 때를 놓치면 감정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긴 힘들거든요.”
고등학교 때 죽마고우 친한 친구와 싸운 이후로 결별해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한 50대 주부의 경험담이다. 이처럼 치고 박고 싸우고 나면 외려 더 친해져 "우린 친구 아이가" 혹은 "형님요, 동생아" 하며 막역해지는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심각한 갈등 양상이나 나아가 대판 싸움이라도 벌어져 감정적으로 골이 깊어지게 되면 다시 이전의 관계로 돌이키기가 어려워진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여성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심각하게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감정상태가 이전처럼 돌아가지는 않는 경험 말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싸움’은 그야말로 관계 그 자체를 걸고 행해지는 승부에 다름 아니다. “여자들이 대놓고 싸우는 건 다시는 안보겠다는 소리”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 남과 여는 요철, 서로 달라서 사랑한다!
여성들의 이런 특성은 감정 처리에 미숙하고 선천적으로 공감력 부족한 남성들에게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임에는 틀림없다. 자신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상대는 여전히 감정이 풀어지지 않아 삐쳐 있으니, 그렇잖아도 정서를 잘 다룰 줄 모르는 남성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하고 피곤하게 느껴질 만도 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대체 저 인간이 로봇인지 사람인지, 미운 짓해서 대판 싸워 더 미워 죽겠는데 사과를 해도 감정이 풀어질 똥 말 똥 하는 판에,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며 심지어 섹스까지 요구해 대니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은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태가 이러하니 ‘사랑싸움’이 이별싸움이 되어 헤어지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싸움’을 둘러싼 남녀의 차이가 결국 남녀를 헤어지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감정에 둔감하고, 감정에 대한 기억인자도, 용량도 적어서 잘 잊어버리는 남성의 특성이 감정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여성의 특성과 잘 어우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로봇(?)같은 남성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다가와 건드리고 시시덕거리기도 하니 그 와중에 태격태격하며 화해의 물꼬도 트이고 다시 애정도 확인하고 그러면서 사랑이 다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차이는 서로를 매우 피로하게 하고 관계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결합해주는 요철과도 같은 것이다. 상대와 나의 요철 홈이 서로 어긋나 있어야, 태엽바퀴의 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이, 남녀 간의 어긋난 차이 또한 서로를 결합시켜주는 요철 홈으로 작용한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연애상담 커뮤니티 러베로우
여자는 그 감정까지 생생하게 기억해요...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싸움..
그 뒷수습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커플들에게
이번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는 미칠 노릇임...
#CLiOS
뭐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다만 기억은 감정과 결합될 때 가장 강하던데 러베로우님 댓글처럼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는지는 잘모르겠네요.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 말고도 쇼프로그램에서 흔히 나오는 공감적인 에피소드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정답을 나누어놓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from CV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맞지않는 것 같은 부분도 있지만 좋은 글을 참고로 노력해야죠 ^^;
제가 할머니한테도 여쭤봤는데,,,올해 연세가 83세이신가 그런데,,,
60여년전에 할아버지한테 서운했던것까지 전부 기억하신다고 ㄷㄷㄷㄷ;;; ㅜㅜ
#CLiOS
여성에게 맞춰줘야한다는 결론인 듯 한데요.
사귀는 것이 상호간에 맞춰나가야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남성이 여성에게 더 많이 맞출것을 요구하는게 되는걸까요?
여성이 남성은 감정적으로 무딘 존재이니, 내가 그러한 존재에 맞추어서 잘 해봐야지 라는 결론이 나오면 안되는걸까요?
제가 본 어떤 연애 카운셀링글에서도 여성이 남성에게 맞춰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내용을 못 본 것 같습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글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남자가 감정처리에 미숙하다고 나와있는데, 아주 오래된 옛날 옛적의 사건-그것도 용서받은 일을 몇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고 그걸로 꼬투리 잡는 여자쪽이 (남녀평등 무시한 발언 죄송합니다;) 감정처리가 미숙한게 아닌가요?
감정의 처리라는 것이 감정을 잊어버린느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잊어버리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처리방법이죠.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감정의 처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