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예정설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닙니다. 단지 예정설을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인 장로교에서
말하는 예정설 (글에 나오는 칼빈의 주장이 예수교 장로회 합동, 통합, 및 군소신학)과 감리교, 루터교에서 말하는 예정설 (글에 나오는 알미니안을 의미합니다)을 구분하고 예정설에 대해서도 상세히 구분했습니다.
글의 내용과 상관없는 비아냥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논쟁은 제 능력이 닿는한 최대한 감당하려 합니다. 긍정적인 어투와 배려하는 문체를 부탁드립니다.
예정설에 대한 정리입니다. 교단마다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타락전 예정설 (supralapslianism) 이중예정설이라 호칭되며 지옥도 섭리에 의해 간다는 이론
천지창조의 순서
1. 하나님이 예정하심
일부는 구원받도록 예정 election 일부는 멸망하도록 예정 pretertion
2. 창조
3. 타락 허용적 섭리에 의해 인간타락을 허용
4. 대속의 역사 (limited atonement theory)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는 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한 역사이다.
5. 구원의 적용
성령의 확신하시는 역사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able grace)
성령도 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에게만 임하시고, 예정에 포함된 은혜가 임하기에 죄인이라도
예정에 포함되었기에 항거없이 받아들임
=> 칼빈주의자는 이 이론을 지지, 하나님의 속성 중 존엄성을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체택
한결과 칼빈의 5대 교리를 확립하게 되었다.
완전타락, 무제한적 선택,제한적 속죄: 예정된 이들에게만 대속의 능력이 적용됨
불가항력적 은혜: 예정된 성령의 은혜 성도의 견인: 구원받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성령의 도움이 필요없다
= 성경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누구든지..영생을..요한복음 3:16
= 누구든지를 예정된 사람만으로 제한하기는 어려움 모든 사람을 지칭
= 하나님의 공의로움이 심각하게 훼손된 이론이지만, 하나님의 존엄성을 통해 피조물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평과 공의로움의 도전을 무시함
타락전 예정설
이중 예정설로 불림 구원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이 예정됨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의 역사는
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성령의 책망하시는 역사도 을 사람도 예정된 사람에게만 적용되어
제한적 속죄와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장하게 되고 로 인해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가 또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삼위 하나님의 역사가 이상 필요가 없으므로 성도의 견인보다는 구원의 확실성이 더 강조됨
요한복음 3:16을 기준으로 본다면
믿지 못할 사람 믿지 않을 사람을 전제하지 않고 누구나 믿을 수 있음을 전제함 따라서 이 성경을 타락전 예정설주의자들은 예정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원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타락전 예정설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결론이 나옴
베드로후서 3:9 실제로 타락전 예정설과 상반되었지만 지금까지는 오역되었기에 정정해야 함
주의 약속은 ..오직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 하나님이 의지적으로 멸망하게 결정하시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가능
아무도 멸망치 않고 라는 말은 해석이 불분명하지만, 아무도 멸망하지 않도록 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멸망하도록 예정했도록 주장하는 경우 하나님의 모독행위로 해당하며, 개인의 의지로만 타락함이 가능함을 설명
타락전 예정설은 이미 구원받은 상태로 출생하여 믿음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나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이론이므로 태어난지 8일만에 유아세례를 줌으로 이미 구원 받은 상태에 태어난 어린아이의 구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타락전 예정설에서는 중생이라는 개념을 신학에서 제외하고 중생보다는, 칭의를 강조하고 중생과 혼동하여 취급하게 된다.
타락후예정설
알미니안주의적 예정설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시고 타락을 허용하신 후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를 통해 우주적인 대속이 행해지게 되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역사 즉 은혜가 우주적인 역사이며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누가 믿을지 안 믿을지 예지하시고 예정하셔서 믿을 사람은 구원하시고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못하고 예정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죄 많은 인간이기에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가 항상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의 예지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결정으로 취급되어있지, 인간의 믿고 안 믿고를 근거로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다 따라서 인간이 하는 일을 하나님이 뒤쫓아 다니며 처리해준다는 것도 이론상 문제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주적인 사역이었다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실패한 사역으로 매도당할 가능성이 있다.
궁극적 예정은 사람의 선택상의 문제라는 이론이며, 에베소서1장이나 로마서 5장의 하나님이 결정하실 문제에 대한 사람의 결정권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결론이 되어 이성적이며 논리적일지는 몰라도, 성서적인 이론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주장할 수 있다는 논거를 제공한다. 요한계시록 3:11에 기록된 면류관은 죄인의 구원과 다르다. 고린도후서 4:3~4 롬3:11 누가복음 19:10절을 오인하여 믿음과
구원 상급과 구원의 상관관계를 오해하고 있으며 로마서 8장과 에베소서 1장에서 예정은
항상 하나님의 존엄하신 결정으로 주장하고 있음을 간과하는 이론이 된다.
타락후 예정설은 하나님의 속성 중 사랑을 강조하여 우주론적 대속의 역사를 통해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다 구원받는 우주론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개념은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타락중예정설
창조하여 타락한 후 우주적 대속의 역사를 통해 구원을 받게 되고 이로인해 성령의 은혜로 우주적이며 성도들의 견인을 위해서 항상 성령의 도우심이 항상 필요함을 주장하게 된다.
예정설에 대한 논쟁 중 성령의 도우심에 대한 설명은 예정설만을 가지고 보면 오류에 빠질 수 있기에 교회론에서 성찬식의 의미를 가지고 해석하자면 성찬식에 화체설 공재설이 있는데 공재설을 가지고 보면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하고 영재설은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는 불가능하여 성령론은 칼빈주의가 지지하는 영재설로는 내주하시는 성령론을 주장할 수 없다. 이를 엑스트라칼비니즘이라 부른다.
이에 반해 공재설을 주장하는 루터란 신학자들은 이성주의적인 영향을 받아. 성령의 도우심이라는 주장이 구원론에서 축출되어 주장할 수 없다 이를 인프라루터란이라 부른다.
따라서 성도들의 견인이라는 교리는 성령의 내주하심이나 성령의 도우심이라는 교리를 필요로 하기에 이에 반대하는 칼빈주의에서는 성도들의 견인이라는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알미니안주의는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 성령의 내주하심을 주장하게 됨
선천적 장애인들의 구원에 대해 타락전 예정설은 구원이 불가능한 이론이 됨
사산된 아이의 경우나 혹은 생후 1년 이내에 사망한 경우에도 구원이 불가능
타락중예정설의 경우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지만 우주적 그리스도의 역사나 성령의 역사가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해졌다고 주장하기에 천국에 갈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 가능
의도했느냐 안하였느냐 라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서요.
자유의지를 왜 주었느냐. 라는 부분인거죠 결국
망한다고 했는데 무조건적인 믿음만 강조하니;;; 답변은 공부 후 달아드리겠습니다.
1> 영적 근사론:
찰스 핫지: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을 닮았다.
2> 도덕적 근사론 프린스턴 출신 신장로교신학자 윌리엄 GT 세드
도덕성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Dogmatic thology 중 3권 (교의신학=장로교신학)책을 출판함
거룩하게 지음받았다.라고 주장함 그러나 성경엔 거룩하게 지음받았다는 기록이 없음
순수한 무죄가 아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기능이 없었다면, 거룩한
상태로 지음받았다는 것이 옳은 것이다. 중생한 상태라는 것은 타락 전 상태의 환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 구원론에 중요한 문제
중생= 50년대까지 한국신학에 없었던 개념 칼빈주의 신학의 문제점
빌리 그래함의 부흥집회의 이후 복음주의자들의 활동에 의해 한국에 소개됨
칭의를 받는다 = 원래 의로움을 타락함으로 잏어다가 은혜로 받아서 의로움으로 회복된다.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님
중생 = 타락해서 원래 의로움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되는 것이다.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소망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
에베소서 2:15
이방인과 이스라엘과는 원수였지만 그리스도가 오셔서 보혈의 피로 중간의 막힌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화목케 만드사 한 새사람을 만드심
기독교는 원래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중생으로 보지 않음 중생은 고전 5:17의 말씀대로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함 회복이 아닌 새 사람으로 자녀가 되고 옛날과 같은 원래의
의로운 상태가 아닌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가족이 됨
성경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생겼다고 기록됨
= 타락 전에는 무죄한 피조물이어서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상태, 그 상태에게 우주를
통치하라고 하는 것은 비논리적임 하지만 선과악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우주를 통치 하기 위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물어보는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음
사탄의 유혹 = 가치판단의 능력을 가질 것이다.
타락 전: 가치판단의 능력이 없음
아담은 에덴동산의 관리자 타락전의 인간은 양심과 가치판단의 능력이 없지만
자연을 통치하라는 의미는 모든 일의 판단은 하나님께 물어보길 원하신대로 됨
사탄도 이를 알고 있음 =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유혹함
독립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생기게 됨 하나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음
=> 사람마다 다른 가치판단이 생김 가치판단의 충돌이 심해짐 => 가인이 아벨을 쳐 죽임
원래 타락전에 도덕성은 없었음 이상주의에 근거해서 영혼이 있는 인간은 의례 도덕성이
있을 것은 사실이라 판단한 것 뿐 성서적 내용이 아님 도덕성이 없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도덕적 개념이라는 이론은 허구가 되기에 이상주의적 영향을 받아 도덕성이
있을것이라 주장하게 됨= 칼빈주의 신학의 한계
3> 사회적 근사론: 헨리 티슨
Lectual systemic theology= 존스 홉킨스의 이론의 영향 => 김기동의 귀신론에 영향
신적 진화론 및 알미니안 주의 신학의 영향이 있음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품성적 존재가 한 분이로 계시는 까닭에 사회성을
가지고 계신다. 밀접한 관계가 맺어져서 사랑하고 존재하는 관계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회성이다. 이간도 타락하기 전에 에덴을 지으시고 아담이 독처하는 것은 좋지 않아
하와를 창조해주심 = 인간도 사회적 존재
미.소간 냉전 중 공산주의와 비슷한 사회주의에 대한 언급을 불가능했기에 과거
인간들의 사회성을 소홀히한 까닭에 성도들의 교제라는 것이 약화됨
한국 개신교에서 성도간 교제가 약화됨 => 이민교회에도 약화되는 영향을 줌
성도들간 교제는 사역의 중요한 일환 => 상호교제
산업화된 사회 덕분에 모든 이들이 소외감, 외로움 대중속의 고독에 심취함
= 교회의 중요한 사역 제 2사회의 구조를 제시할 수 있는 구조
4> 품성적 근사론 = 에릭슨
품성성 = 근대 심리학에서 품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지성, 감성, 의지. 외향성 (내향성)
지성,감성,의지를 외내향성으로 구분함 외내향성은 지정의에 대한 행동양식의 기준
아담과 하와가 창조 받았을 때 품성적 요소가 있었는가?
창2:18 =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줌
구약에서 이름을 짓는 것은 성경을 분석한 후 이름을 지어줌
성격을 묘사하는 것이 특징 = 에서 = 붉고 털이 많음 야곱 = 약탈자..
지성적 존재 짐승의 이름을 아담이 지어줌
아담이 동물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었고 적합한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음
감성적 존재 창2:24 뱀의 유혹을 받아 과일을 본 즉 먹음직.... 보암직....
= 사탄의 유혹에 빠짐 감정이 있어서 감정적 반응을 보인 증거
의지적 존재 하와가 베어먹은 후 아담에게 줌 아담이 하와를 봤을 때 하와가 죽은 후에
먹으면 죽을 것을 알면서 베어먹음 하와하고 같이 죽을지언정 혼자 있기
싫어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
인간은 지 정 의를 가진 품성적 존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품성성을 가진 것이다.
재세례파는 근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고
근본주의는 알미니안주의를 배격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칼빈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않나요 제가 잘 몰라 여쭤보는거에요
침례교의 뿌리는 재세례파이고 (지금의 침례교는 재세례파와 상당히 다릅니다만)
칼빈은 재세례파를 상당히 싫어해서 극단적인 방법으로 박해를 했고
그래서 재세례파는 칼빈을 상당히 싫어하게 되었죠.
지금은 칼빈주의가 가장 뿌리를 내린 장로교와 재세례파의 후예인 침례교가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습니다.
본문글에서.. 제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글쓰신 분께서 잘못 아시는 것인지...
칼빈주의에서는 '성도의 견인'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성령의 도움이 필요없다'라고 하셨지만
성도를 견인 하는 주체가 성령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의 근거가 되는 것 역시 '성도의 견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아세례는 구원을 확인하는 예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생후 8일 만에 하지도 않습니다.
유아세례의 근거가 되는 것이 구약의 할례이고, 할례는 생후 8일 만에 했지요.
유아세례는 그 아이가 구원받은 상태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인, 아이의 부모가 자신들의 아이를 신앙으로 양육하겠다는 서약입니다.
즉, 유아세례는 아이의 믿음에 근거해서 베푸는 예식이 아니라
부모의 믿음에 근거해서 베푸는 예식입니다.
않기로 예정된 사람의 경우를 구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정의가 다를 듯 합니다
아이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유아세례를 8일만에 하지 않는건 맞습니다 ㅎㅎ
'구원받기로 예정된 성도'와 '구원받지 않기로 예정된 사람'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구원의 과정에서 성도의 견인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예수를 믿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상태에서 적용이 되는 것이니까요.
당연히 예정설을 신봉하는 입장이지만, 그 성도의 견인이라는 것이 반드시 구원받은 자와 받지 못한자를 구분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예정하신 것도 맞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인류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시며, '너는 내 알바 아님' 의 태도로 대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건축자의 버린 모퉁이 돌로 머릿돌을 세우심으로, 세상의 지혜있는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 교만한자를 부끄럽게 하실 뿐이라고 생각.
이런분들로 인한 우리나라의 좋은 종교문화가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 김에, 짧게 근본 주의 침례교에서는 이러한 "예정론"이 아닌 다른 것을 믿는다는 걸 소개할께요.
소위 "예지론(미리 아심)"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즉 하나님은 미리 알고 계신다는 거죠.
마치 부모가 아이를 키울때 아이가 아장아장 걸음을 배울때 많이 넘어지게 될 것을 미리 아는 것 처럼 말이죠..
예를 들면 아래의 구절을 들 수 있겠지요.:
(1Pet 1:2 [흠정역])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
(1Pet 1:2 [KJV])
Elect according to the foreknowledge of God the Father, through sanctification of the Spirit, unto obedience and sprinkling of the blood of Jesus Christ: Grace unto you, and peace, be multiplied.
위 구절의 foreknowledge 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