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최근 책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정리해보면서 글을 써보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항상 주장이라는 것은 반대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우리는 늘 이성적인 판단,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어 합니다.
-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차갑게
- 논리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보면
- 어딘가 더 믿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하고요.
- 그런데 정말 감정을 쏙 빼낸 판단이라는 게 가능한 걸까요?
□ 먼저 우리는 왜 판단을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 결국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일이 잘 풀리게 하거나
- 손해를 줄이고 이득을 늘리기 위해서겠지요.
- 판단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더 좋은 결과로 가기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 그럼 판단이란 무엇일까요?
- 사전을 찾아보면 판단은
-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이라고 나옵니다.
-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건 ‘논리나 기준’이라는 표현입니다.
- 사전조차 판단을 논리의 영역으로 설명하고 있는 셈이죠.
- 그렇다면 좋은 판단이란 결국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일까요?
□ 아무리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정리한다고 해도
- 맨 마지막 순간 ㅡ 그러니까 ‘그래서 이걸로 한다’고 결정을 찍는 순간 ㅡ 에는 사람의 감정이 끼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 감정을 완전히 빼고 판단한다는 건
- 생각보다 우리 뇌가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 이걸 잘 보여주는 게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입니다.
-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에서 엘리엇이라는 환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엘리엇은 전두엽 근처의 작은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 수술은 잘 끝났고, 지능 검사 결과도 수술 전과 다름없이 멀쩡했습니다.
-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죠.
□ 그런데 딱 한 가지가 망가졌습니다.
-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가 함께 손상된 겁니다.
- 엘리엇은 끔찍한 사진을 봐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아주 사소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게 되는거에요.
- 어떤 서류부터 정리할지, 약속을 언제로 잡을지 같은 일상적인 판단 앞에서 끝없이 머뭇거렸습니다.
- 논리적으로 따질 머리는 멀쩡했지만
- ‘이걸로 하자’고 매듭지어 줄 감정이 사라지자 판단 자체가 멈춰버린 거죠.
□ 결구 판단이라는 건, 아무리 적게 잡아도 감정 한소끔 정도는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 그게 사람이라는 존재의 특성이 아닐까 싶어요.
- 감정은 판단을 흐리는 불순물이 아니라
- 오히려 판단을 끝맺게 해주는 마침표에 가깝습니다.
□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 감정이 판단에 꼭 필요한 것라면
- ‘감정을 없애자’는 건 애초에 답이 될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 화가 난 채로 내린 결정, 불안에 쫓겨 서두른 선택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는 걸요.
- 그러니까 두 가지가 동시에 참입니다.
- 감정은 판단에 반드시 필요하고, 동시에 감정은 판단을 망치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감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감정이냐’로 바뀌어야 합니다,.
- 모든 감정이 같은 무게를 갖는 건 아니고
- 감정이 없는 판단은 가능하지도 않고
-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게 더 낫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 감정이 빠진 판단은 엘리엇처럼 영원히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 그래서 감정의 객관화가 필요합니다.
- 객관화는 감정을 지우는 작업이 아니라
- 감정을 가려내는 작업이에요.
- 생각을 그로 적어보고, 기준을 세우고, 하룻밤 묵혀뒀다 다시 보는 이유는
- 그 사이에 잡음 같은 감정은 가라앉고 진짜 신호가 또렷해지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과정을 객관화해두면, 판단이 끼어드는 감정 중에서도
- ‘잘못된 감정’ ㅡ 순간의 욱함이나 막연한 불안 ㅡ 을 줄일 수 있습니다.
- 감정을 지우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감정만 남기는 셈이죠.
- 그게 판단에서 좌충우돌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