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홀로 여행하는 편이지만 어머니께서 코로나로 너무나 재미없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어머니와 함께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참고로 한여름의 경주는 굉장히 더워 결코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봄, 가을 추천)
하지만 어머니께서 문화 해설사일을 하셨기도 하고 제가 아주 어릴 때 다녀왔는데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어머니를 중심으로 몇가지 깨달은 점이 있어 공유하고자 글을 남깁니다.
ㅇ 어머니와 나란히 걷는 건 은근히 쉽지 않다.
-어머니와 단 둘이 여행을 한지 거의 8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나이도 65세 이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한번 부산에 갔을 때는 어머니는 신나게 걷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제 기억은 그 때의 어머니에 머물러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는 어머니와 나란히 걸었다면 지금은 조금만 빨리 걸어도 바로 뒤쳐지고 제가 천천히 속도를 맞춰서 걸어야 했습니다. 매일 보는 어머니이기에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함께 여행하기 보다는 '모시며' 여행하는 쪽에 가까워 지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어머니와 나란히 걷는 것은 꽤 많은 집중이 필요합니다. 조금만이라도 내 생각에 빠져 걷는 순간 어머니는 뒤로 가버립니다. 최대한 숨을 들이키고 보폭과 속도를 어머니께 맞춥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휠체어에 할머니를 모시고 걷는 가족과 마주칩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ㅇ 어머니는 자식에게 계속 베풀고 싶어하신다.
이게 여행하면서 제일 화(?)가 나고 짜증났던 부분입니다. 자식으로서 아주 좋은 호텔은 아니지만 리조트를 예약해 드리고 모든 여행에서 최대한 편하게 이동하고 맛있는걸 사드려도 계속 돈을 내시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계속 "너무 비싸다" "너가 정말 돈을 많이 쓰는구나" 하면서 최대한 싼 것을 드시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이 점이 제일 짜증이 납니다. 아무리 맛있는걸 사드리려고 해도 계속 먼저 돈을 내십니다. 이점이 싫지만 화를 낼 수도 없습니다.
예전에 지인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아무말 없이 서울로 올라와 병원에 들렸다 간 것에 대해 굉장히 서운해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뭐 자식에게 부담되지 않으려고 그러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인은 저에게,
"나중에 네가 나이들어보면 알거야. 부모님이 자식에게 아무말도 안하고 혼자서 병원 들렸다 내려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충분히 베풀고 싶은데, 잘해드리고 싶은데 정작 부모님에게는 자식에게 부담되는걸 싫어합니다. 자식은 '내가 능력이 없어 보여서, 돈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매번 식사를 해도 "너 많이 먹어" 하면서 본인은 자꾸 싼 반찬이나 리필되는 전을 먼저 배불리 먹는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신경질이 났습니다. 차라리 완전한 타인이라면 서로 덜 불편할 텐데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제가 의지하고픈 상대라기 보다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라는 그 감정 자체가, 제 자신이 덜 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좀 먹으면 안돼?”
“그냥 좀 받으면 안돼?”
“제발, 그냥 좀 미안해하지 말고, 부담갖지 말고 당연하게좀 받아줘”
어머니께 너무나 하고 싶었던, 하지만 할 수 없었던 말입니다.
ㅇ 나이가 들어도 호기심 천국이 존재한다.
한여름의 경주는 정말 정말 너무나 덥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름에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너무나 가보고 싶어했습니다.
불국사, 석굴암, 안압지, 포석정… 참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예전에 봤던 것들이라 밋밋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벌써 30년도 더 된거 같다. 너 어릴때 왔었는데 너무 좋다” 라고 하시면서 어린아이처럼 이곳 저곳을 봤습니다.
저는 기억도 안나는 과거지만 어머니는 “세상에 저 돌다리가 저기였구나. 지금보니까 엄청 작네” 라고 하시면서 곳곳을 둘러보며 과거의 데이터와 동기화를 했습니다.
ㅇ 어머니와 최고의 대화 콘텐츠는 ‘어린시절’ 입니다.
막상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여행을 오니 처음에 할 말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제외하고 뭔가 재잘재잘, 딸처럼 살갑지도 장남처럼 듬직한 아들도 아닌 그저 어리광부리고 철없는 막내의 모습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불국사를 둘러보면서 제 어린시절을 물어봤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계속 말해주셨습니다.
여행지 어디든 제 어린시절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 때 나는 저기서 뭐하고 있었어?” “그때 형은 뭐하고 있었어?”
자식들은 스마트폰으로 맛집이나 관광지를 검색하는데 능숙합니다.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스마트폰 검색을 하는 동안 어머니는 그저 을의 입장에서 기다리는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어린시절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면 정보의 갑과 을은 뒤바뀝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제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 내가 어릴 때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혹시나 부모님과 여행지에서 대화할게 없다면 어린 시적을 꼭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ㅇ 한여름에 경주를 가신다면 밤길을 꼭 걸으세요.
지난 2년간 계속 혼자 경주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름밤의 경주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절대로 오래 있지 못합니다. 황리단길 = 황천길 입니다.
하지만 노을이 지고 밤이 되면 경주의 숨겨진 모습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경주는 밤에 찬란한 도시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유적지에 조명을 잘 설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쪽샘유적지입니다. 아직은 계속 조사중인 지역이지만 그곳도 조명으로 길을 잘 마련해 놨습니다. 2년 전 야간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했을 때 별 생각없이 걷고서 반한 곳이었습니다. 마치 눈 앞에 별천지, 별빛 바다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어머니와 함께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고요하면서도 무덤(?)들이 있어도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습니다. 선선한 바람과 잔잔한 노란 조명, 고즈넉한 분위기, 이따금 산책하는 관광객들, 이 모든게 완벽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여행 내내 효자는 커녕 못난 아들 역할만 톡톡히 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또 언제 올지 모르니 더 보고 싶다” 라며 많은 곳을 보고 싶어하셨습니다. 나중에 가을에 잠깐이라도 다시 들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만약 더 여유가 되었다면 더 좋은 호텔에, 더 맛있는 곳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되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흐르고 있다는 것과, 그에 발맞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도 빠르게 흐르는 걸 경험했습니다.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단순해지고 반복적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즐길것이 그래도 많지만 부모님 세대는 많지 않습니다. 혹시나 부모님(또는 편부, 편모)과 여행을 계획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글은 읽지.못했지만. 느끼는점이 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편히 모시고 다녀와야겠어요 어제 고향가서 보고 왔는데 다시 보고싶은 우리엄마^^~
제 경우 오히려 자주 뵙기에 변화가 더 느껴져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황리단길 걸으러 또 가야겠내요.
저희도 잘 못 걸으셔서 드라이브 위주로 여행합니다.
부모님은 보통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시다보니 어르신 관광 스타일로 주로 다니셨는데요. 저희 부부가 다니는 스타일로 모시고 다녔더니 그걸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보통 부모님이나 처가 부모님 모시고 여행 하면 어디 아파도 꼭 더 다니시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이번이 여기는 마지막이라고 꼭 말씀들 하시더라고요
부모님과 함께 하실수 있을때 최선을 다하시길~ 항상 후회는 남지만 그래도 그때의 소중한 추억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니까요^^
경주 야경으로 동궁과 월지를 빼놓을 수가 없죠.
첨성대에서 계림을 거쳐 월정교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좋구요.
나이가들수록 점점더 친구가 되어가고 말동무가 되어가더군요. 그렇게 어머님과 많은 시간, 대화 보내세요!
이제조금 어머니와 친해질무렵 하늘로 가신 어머니가 많이 그립네요
클리앙의 모든 효자분들 화이팅 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뒤쳐지다가 나중엔 다리 아프다고
등에 안겨가곤 했는데
이제는 연로해지신 어머니 발걸음이
느려져서 걷다가 뒤 돌아 보고 기다렸다
가고 길건널땐 옆에서 같이 템포 맞춰서
가야 사고 안 나겠더라구요 ㅠ
다행이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라 그런지 제가 숙소를 예약하면 엄마가 식대를 제공하는 포지션으로 다니고 있네요 ㅎㅎ
자주 다니시다보면 모시는 여행이 아닌 함께하는 여행이 되실거예요. 처음이다보니 어색해서 그러신거거든요.
거기다 딸도 아니고 아들이다보니 더 조심스러워하셨을거구요. 시간이 지나고 함께한 추억이 많아지다보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되서 좋아요. 참고로 저는 엄마와의 여행에 80 넘으신 이모, 70이신 숙모까지 모십니다 ㅋㅋㅋ
다행이 제가 가자는곳, 먹자는것 잔소리없이 다 드시고 식사비도 내시고 싼거먹는다고 혼내십니다 ㅋㅋㅋㅋㅋㅋ
해가지고 밤길에 걸었던 첨성대 근처가 생각납니다. 밤에 매우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너무 비싼거 아니냐"
"이거 비싼데 양이 너무 적다"
"나 배부르니깐 너 먹어"
부모님이 이런 말 한다고 부모님에게 짜증과 화내는 사람들 있던데.
그거 자녀에게 미안해서 하는 말이니 거기서 짜증이나 화내면 진짜 미안해 지십니다.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거나
그냥 "와하하하핫~~" 넉살좋게 웃으면서 좋게 좋게 넘기세요.
기분 좋게 대접해드리는데 짜증낼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안되는 사람들 정말 많더라고요.
대접해드릴려고 생각한 순간 그냥 그 사람의 모든걸 받아 들이셔야 합니다.
ps. 개인적으로 야경포인트는 동궁과 월지 입니다.
환상적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만 늘어갑니다. 부럽고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출발전 짐챙길때 안맞는게 있으면 짜증도 썩이게 말을 뱉는게 있는데 이제 화 안내도록 이거 하나 부터 다음행동으로 차근차근 실천해야겠네요
갠히 가슴이 아려오네요
잘 봣습니다^^
자식에게 뭐든 좋은거 먹이고 싶고, 사주고 싶은게 부모님 마음인가 봅니다. 예전부터 그런게 너무 짜증나서 맛있는게 나와도 넘치게 먹지 않는 습관이 생겼어요. 엄마가 안먹으면 그냥 남기다보니, 이젠 엄마도 쟤 더이상 안먹나 보다~ 하며 양껏, 넘치게 드시더라구요. (그게 좋은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계산은 그냥 하게 둡니다. 동생과 그 문제로 서로 힘들어 하던때가 있었는데.. 계산 하시는것도 '부모의 낙'이라는 결론이 서서.. 그냥 용돈을 드리자 로 합의 봤어요 ~ㅎ
다시 한번 생각해게끔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엄마,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와 최고의 대화 콘텐츠는 ‘어린시절’ 입니다" 이부분에서 울컥했네요
더늦기전에 빠르게 날을 잡아봐야겠습니다.
작성자님의 인생팁 감사합니다 :)
결혼하고 살면서 후회된 것 중 하나가 미혼일 때 엄마랑 둘이 여행을 가지 못한거였거든요.
다음에도 어머님과 여행간 이야기 들려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한결 같이 부모님들께서는 아들딸 나이가 20. 30.40.50.60이 넘어도 늘 아이같이 대해주시지요... 그저 부모님 눈엔 나이를 먹어도 아이같은 자식들입니다~
얼마전 어머니와 이모님들 모시고 날 잡아서 하루 여행하고 왔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왜 자주 해드리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는 못가더라도 일년에 한 두번 정도는 여행을 가보려고 합니다.
저희 부모님의 고정 레파토리는 "다른집 자식은 이것도 해줬다더라. 저것도 사줬다더라" 이고 절대 만족을 모르시죠.
행복한 모자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어머니께 불만이 많고 그런지 여행가거나 밖에 나갈때 마다 화가나고 싸우고 그러네요..
제 성격을 바꿔서라도 더 노력해서 좋은 모습 좋은 장면만 보여드려야 겠다고 한번 더 다짐해봅니다.
아버님이 초기암으로 고생하시고 다행이 회복하셨는데..
그뒤로 경험하실수 있는 모든걸 경험 시켜드려야지하고 매달 모시고 돌아다니는데 저희부모님은 놀이공원을 그렇게 즐거워 하실지 몰랐습니다.
진짜 왜 이 간단한걸 이제야 모시고 왔나 후회할 정도 였습니다.
꼭 시간 내셔서 근처 공원이라도 간단한 곳이라도, 에이 이런대가뭘~ 하실 곳도 꼭 가보세요.
부모님에겐 생소하시고 처음 겪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자식들 돈을 당신위해 쓴다면 그게 그렇게 아까우신지
비싸다. 내가 낸다...
자식이 몇번을 해드렸다고 마음편히 즐기셔도 좋을껀데요.
그래도 부럽습니다.
부모님과 여행한지가 언제인지...가물가물하네요.
어머님이랑 가까운 산책로라도 함꼐 다녀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