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후기 롤즈의 대표작 정치적 자유주의와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간단하게 요약해보려고합니다
저는 일단 롤즈 전공자는 아니기에 엄밀한 해석은 아닐 수 있다는 점 염두에 두시길 바라옵고
정치적 자유주의와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내용들은 상당 부분 겹쳐서 둘을 적당히 섞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말로 하면 간단한(?) 내용들인데 글로 적으려면 오래 걸려서 몇 편으로 나눠서 쓸 것 같습니다
일단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뭔지 간단히 요약만 해놓고 시작하겠습니다
0. 요약
- 공정(fairness)으로서의 정의란,
a) 어느 특정한 누군가의 가치관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며,
b)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관을 얘기합니다
- 특정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가치관이기 때문에 공정하다고하는거고요.
- 그럼 이런 정의에 부합하는 정의의 원칙들을 어떻게 도출하는가
: 원초적 입장 속에서 무지의 베일 뒤로 나의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인종적, 성별적 배경을 집어넣음으로써,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의 원칙들
-> 이런 정의의 원칙들은 내가 도출했지만,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인종적, 성별적 사실을 갖고 있는지 밝혀지더라도 여전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정의의 원칙들이겠죠
(가령, 내가 백인일거야~ 생각하면서 백인우월주의와 부합하는 정의의 원칙들을 수립하는 건 내가 바보라는 뜻이겠죠.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라면, 나는 아주 높은 확률로 내가 어떤 인종이든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 정의의 원칙을 수립하겠죠.)
- 그리고 여기서 도달할 것으로 생각되는 정의의 원칙들은
1. 평등한 기본 권리들(평등한 자유)
2.a. 기회 균등
2.b 차등의 원칙(최소수혜자에게 최대혜택)
이렇게 두 가지라는 겁니다
(*) 우리가 공정성이라는 단어를 어쩌다보니 인터넷에서 자주 쓰고 있지만, 이렇게 보면 적어도 그 공정성이라는 단어가 롤즈식 공정성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죠. 어떤 정책 X가 롤즈식으로 공정하려면, X를 내가 나이기에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돈이 YY만큼 있고, 직업이 PP고, 인종, 성별, 종교는 뭐고 등등), X가 내가 누구이든 (직업, 종교, 소득 다 상관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는거죠.
- 참고로 정의론에서의 롤즈는 이런 무지의 베일 뒤에 숨겨야할 조건들 중에 인종과 성별은 뺐습니다. 왜냐면 그가 생각하는 정의의 원칙들은 이상적인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정의의 원칙들이고,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소득, 재산, 종교에 따른 갈등은 존재해도 인종과 성별에 따른 갈등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 근데 이러면 매우 명확한 문제점이 생기죠. 롤즈의 정의론은 우리 현실사회를 위한 정의론이 아니라는거요.(관심 있으시면 Charles Mills를 읽어보십셔)
(*) 이렇게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강조한 다른 유명한 사람이 바로 하버마스입니다. Ideal speech situation을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롤즈와의 차이점은, 하버마스는 보편적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논변에 초점 맞췄다는 거겠죠.
(*) 여타 사회계약론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원초적 입장 또한 일종의 사고실험입니다. 단, 전통적인 사회계약론이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을 특정 권력(왕 또는 국민)의 정당성(legitimacy)을 위한 설명도구로 생각했다면, 롤즈식 원초적 입장은
a) 사회의 기본구조의 기반으로서의 정의의 원칙들, 뿐만이 아니라
b) 각 개인들이 자신의 모든 행동의 궁극적인 대원칙으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원칙들을 발견하는 사고실험으로 제안됐다는거죠.
- b의 경우, 가령, '내가 여기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할까' 물을 때, 그렇게 원초적 입장에서 발견되는 정의의 원칙들과 부합하도록 (반성적 평형이 이뤄지도록) 행동해야한다는, 일종의 실천적 규범이 되는거죠.
1. 문제 의식
현대 사회와 과거 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흔히 말하는 다원주의(pluralism)죠
간단히 말해, 사람들은 더이상 하나의 종교, 하나의 문화, 하나의 언어, 하나의 정체성 등을 갖고 살지 않는다는 겁니다
각자는 각자의 가치관을 갖고 세계를 바라보며, 이런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각자는 '무엇이 좋은가'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해야하는가'와 같은 물음들에 대답합니다
롤즈는 이런 가치관에 해당하는 걸 포괄적 교리(comprehensive doctrine)라고 부릅니다
각 개인들은 각자의 포괄적 교리를 갖고 살아간다는거고, 이 말은 사람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거죠
(낙태, 자살, 교육, 소득 분배 등에 대해 사람들이 서로 다른 대답을 주장하는 걸 생각해봅시다)
이런 다원적인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를 유지할 수 있냐는 겁니다
흔히 안정성(stability)의 문제라고 표현되는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협동체제로서의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겠냐는 거죠
정의론에서 롤즈가 언급하는 최악의 역사적 사례가 바로 영국 종교전쟁인데요, 가치관(포괄적 교리)의 대표적인 차이가 바로 종교의 차이였는데,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내전까지 이어졌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사회의 안정성 문제는 단순히 가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정치철학자들이 고민해봐야할 문제라는거죠
그럼 사회는 언제 안정성을 갖고 언제 불안정성을 갖느냐.
시발점은 사회의 기본제도들이죠 가령 헌법, 정치체제 같은 것들이요
우리가 사회 내의 특정 집단들에게만 이익을 주는걸 정의롭다고 판단하는 가치관에 따라 사회의 기본 제도들을 구성한다면?
가령, 헌법이 재산/소득 상위 1퍼센트의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걸 정의롭다는 식으로 쓰여있다면, 나머지 99퍼센트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 헌법에 따라 구성된 세금/복지 제도 등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할테고, 갈등으로 이어지겠죠
이러면 사회는 불안정성을 갖게 되겠죠
그러면 사회의 안정성을 위해, 사회의 기본제도들은 어떤 가치관에 기반해서 수립되어야하는가 물어봐야겠죠
대략 두 가지 경우를 놓고봅시다
1) 사회의 힘있는 소수가 받아들이는 가치관
: 엘리트, 귀족, 자본가 등의 권력을 가진 소수집단들이 공유하는 가치관
2) 사회의 다수가 받아들이는 가치관
: 대다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가치관이겠죠
일단 여기서 당연히 1은 아니겠죠
그럼 2에 해당할텐데, 문제는 단순히 '다수'가 받아들이는 세계관에 따라 사회의 기본구조(헌법, 정치체제 등)를 구성한다면 그 사회가 안정성을 가질 것이냐는거죠
가령, 그 '다수'에 속하지 않는 소수는 과연 다수의 의지에 따라 형성된 헌법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단지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아니면 적어도 그 제도가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만들어졌다고 생각할테고요
그럼 이 소수들은 다수와 갈등을 겪을테고, 사회는 불안정해지겠죠
이런 이유 때문에 롤즈는 단순히 다수가 받아들이는 가치관에 기반해서 정의의 원칙들을 세우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보는거죠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냐
3)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관들의 교차점에 속하는 일종의 '공통된' 가치관
: 가령, 기독교와 불교라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놓고, 우리는 그 둘의 공통된 영역, 가령 생명 존중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있겠죠
이 수준까지 오면 우리는 사회의 안정성은 어느 정도 확보할 수도 있겠죠
왜냐면 사회의 모든 가치관들의 공통적인 영역에서 발견되는 가치들에 따라 사회의 법과 제도를 만들테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존재하죠
a) 과연 그런 공통된 영역이 존재하냐
: 가령, 백인우월주의라는 가치관과 인종평등주의라는 세계관은 공통된 영역이 없을 가능성이 높죠. 이 경우엔 그럼 사회의 모든 가치관들이 수용하는 공통된 가치 같은 건 존재하지 않게되겠죠
b) 설령 그런 공통된 영역이 존재하더라도, 과연 그 공통된 영역이 옳은 가치를 갖는가?
: 가령, 사회의 모든 가치관 또는 다수의 가치관이 잘못됐다면? 모든 가치관이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라면, 그들의 공통영역 또한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가치를 가질 가능성이 높겠죠
따라서 롤즈의 대답은 위의 문제점들을 피하는 쪽으로 갑니다
4)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이성적인(reasonable)' 가치관들의 교차점에 속하는 가치들
- '이성적인 가치관'이라는 조건을 통해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관들은 배제됩니다. 앞서 말한 인종차별주의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겠죠.
- '이성적'이란 간단히 말해,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가치들을 받아들인다는 말로 이해하시면 됩니다(가령, 자유, 평등, 인권 등의 가치들을 받아들이는거죠). 롤즈는 자신의 철학이 형이상학적 주장으로 읽히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이성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는 방식으로 '이성적'이라는 개념이 설명되죠
- 따라서 4번의 가치들은 결국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들에 해당하게되겠죠
- 롤즈는 바로 이렇게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공공성(publicity)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가령,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reason)는 바로 공적 이유들(public reasons)이 되는 식. 그리고 그런 공적 이유들에 의해 정당화되는 정치적 결정(법/정책 등등)이 바로 공적으로 정당화된 결정(publicly justified decision)이 되고요.
- 이렇게 4번의 가치들은 흔히 중첩적으로 합의된 가치들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건, 중첩적 합의란 실제 합의가 아니라 일종의 이상적 교차지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 합의가 아닌 이유는, 앞서 봤듯이 4번은 '이성적인' 가치관들의 교차지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죠. 가령, 다수의 가치관들이 비이성적이라면, 실제로 중첩적으로 합의된 부분은 이성적인 가치관들이 교차하는 지점과 다르겠죠.
- 따라서 중첩적으로 합의된 가치들은, 이성적인 가치관을 가진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들이 됩니다 (이성적이지 않은 시민들,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가치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민들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요)
여기까지 오면 대략 롤즈의 플랜이 보이죠
사회의 안정성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사회의 기본구조들은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들에 기반해서 수립되었으며,
정치적 결정들은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들에 의해 정당화되었을 때,
그 사회는 안정성을 갖는다
(*) 읽다보면 당연히 들 생각은, '그럼 자유민주주의 헌법적 가치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다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무시되냐' 겠죠. 일단 롤즈의 정치철학이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은 자유주의자들입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담긴 가치들이 자유주의의 초기본적인 가치들이라고 보는거고요. 따라서 비자유주의자라면, 롤즈의 논리에 설득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이어지겠죠.
(*) 또다른 우려점(?)은 정말로 '모든' 이성적인 시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있느냐는거죠. 설령, 자유, 평등, 인권 같은 기본적인 가치들에는 모든 사람들이 합의하더라도, 개별적인 정치적 결정들, 그러니까 그런 가치들을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책들에 대해서, '그 정책이 진짜로 평등을 실현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성적인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겠죠. 여기서 흔히 말하는 contestatory democracy로 이어지고요 (관심 있으신 분은 Philip Pettit을 보십셔).
(*) 롤즈식 공공성 이론들은 Joshua Cohen에서 숙의 민주주의 이론으로 발전됩니다. Gerald Gaus에서 정당화에 초점 맞춘 이론으로 발전하고, 그를 따라서 흔히 말하는 public justification 이론들이 넘치게 되고요 (Jonathan Quong, Kevin Vallier, Andrew LIster 등, 하나의 진영처럼 자리잡습니다)
우리의 사고는 지극히 이성적이라는 가정은 논리를 풀어나가는데 매우 훌륭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이러한 괴리를 어떻게 좁혀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드네요.
사람의 행동을 이론화한 게임이론에서도 우리 모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가정을 놓고 설명하지만
아쉽게도 인간의 합리적인 호모이코노미쿠스 같은 성질은 아주 드물게 나오니까요(설령 본인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요)
롤스의 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에게 공정/평등 할수 없는 존재인것 같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ㅎㅎ
이런 얘기들은 정의 공정 평등에 대한 정의들이 흥미로운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