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클리앙에 이미 제텔카스텐에 대한 게시물들이 꽤 있지만 <제텔카스텐: 글 쓰는 인간을 위한 두 번째 뇌>를 출간한 편집자로서 독자들의 반응을 봤을 때 아직도 제텔카스텐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제가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과도한 단순화일수도 있지만 제텔카스텐은 "이게 다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단순합니다. 이 단순한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일 뿐이죠.
그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바람으로 글을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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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은 무수하게 많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는 문구들, 기억해야 할 업무 지침 등등, 메모를 해두면 나중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혹은 그냥 습관적으로 착실하게 메모들 모아두는 사람들도 주변에 흔치 않게 있다.
물론 꼼꼼하게 메모를 모아두는 습관은 긍정적이다. 일단 기록해 두면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새로운 정보나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메모를 모아두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문제점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
바로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다. 루만은 고심 끝에 그 동안 사람들이 해왔던 일반적인 메모 앞에 "임시(fleeting)"라는 단어를 덧붙이기로 한다.
이런 임시 메모는 아무리 쌓아놓아 봤자 나중에 활용하기가 몹시 어렵다. '내가 이만큼 메모를 많이 했구나'하는 심리적인 만족감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논문을 쓴다거나, 책을 집필한다거나, 보고서를 작성한다거나 하는 실제적인 작업을 하려고 할 때면 뿔뿔이 흩어져 있는 메모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니클라스 루만의 문제 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메모는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발전시켜야 한다.
책에서 얻은 내용은 문헌 메모로,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담은 내용은 영구 메모로,
이렇게 임시 메모를 탈바꿈시켜 두지 않으면
나중에 그 수많은 메모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메모"라고 퉁쳐서 부르던 것들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임시 메모
문헌 메모
영구 메모
그리고 각각의 메모가 가진 특성들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분류 |
언제 |
보관 |
형식 |
관련 도구 |
임시 메모 |
독서 중/독서 후/ |
X |
X |
임시 메모를 보관하지 않는 이유는 신속하게 문헌 메모나 영구 메모로 발전시키라는 의미. 임시메모가 쌓였다는 건 그만큼 메모를 자신만의 생각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게을리 했다는 뜻. |
문헌 메모 |
임시 메모가 모였을 때 |
O |
본문을 단순히 |
문헌 메모를 abc나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검색할 수 있는 어플들. |
기계적인 분류가 |
||||
영구 메모 |
임시 메모와 모였을 때 |
O |
임시 메모와 문헌 메모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생각을 자기만의 |
하이퍼링크, 해시태그, 백링크 등으로 영구 메모를 체계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어플들. |
최초의 메모는 1번, 그 이후의 메모는 기존 메모와 관련성을 생각하여 1a, 1b..2... 등으로 |
"이 문구는 정말 좋으니 그대로 옮겨 적어야겠다", "나만 알아 볼 수 있으면 되지 뭐..."와 같은 생각은 임시 메모 단계에서나 통하는 변명이다. 책을 통해 이해한 내용은 그대로 베껴 적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로 "번역"하여 적어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헌 메모의 핵심이다.
그리고 임시 메모는 나만 알아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보면 암호 같이 보이는 문장도 상관 없지만 더 발전된 자기만의 생각을 담으려면 내가 아닌 다른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완전한 문장으로 적어야 한다. 이것이 영구 메모의 핵심이다.
위와 같은 내용이 제텔카스텐 메모법의 거의 모든 것이다. <제텔카스텐: 글 쓰는 인간을 위한 두 번째 뇌>의 저자 숀케 아렌스는 "뭔가 엄청난 결과는 낳으려면 그 과정도 굉장히 어렵고 복잡해야 한다"는 착각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제텔카스텐 메모법 자체는 너무나 심플해서 "이게 다야?"하는 의아함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런데 정말 이게 다다. 그러니 뭐가 더 있지 않을까 하면서 기발한 메모법 찾아 헤매는 일은 더 이상 그만 두길 바란다.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있다면 영구 메모를 서로 어떻게 연결시킬까 하는 데 더 많이 몰두하기를 바란다. 제텔카스텐의 핵심은 각각의 아이디어를 미리 연결시켜놓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날로그 시대에 온갖 기호들을 통해 생짜로 메모들을 연결시켰던 니클라스 루만 박사보다 우리는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한 번의 클릭으로 관련 사항들을 주욱 펼쳐주는 간편한 디지털 어플들이 있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메모생활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메모들을 그냥 남겨두지 말고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문헌 메모와 영구 메모로 바꿔두는 습관을 들이자. 당신의 메모생활은 지지부진했던 어제와 영원히 이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