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 MAX 사태의 먼지가 어느정도 가라앉은 지금, 물론 저는 개조개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A330같은 걸작들도 개조개발의 산물이니까요) 적어도 737에 한정해서만 본다면 737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확장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아시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보잉도 그걸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은 사실 737 MAX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아 했습니다.
737 MAX의 꼬리날개. 윙렛이 스플릿 시미터가 아닌 것을 보면 프로젝트 초기의 이미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737 MAX를 런칭하던 당시의 보잉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고, 거기에 제가 다른 기사나 포럼에서 읽었던 내용을 포함해 2010년대 초 당시, 민항기 양대 제조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팁과 강좌에 올라갈 가치가 있음직한 글이었으면 합니다 😊
때는 2010년, A320이 상업비행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가던 시점이었습니다. 보통 여객기의 개발 사이클을 보면, 이때가 슬슬 후계 기종을 생각할 때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일례로 A330은 A300과는 20년 정도, A300-600R과는 십수년 남짓의 시기 차이를 보입니다. 보잉도 마찬가지로, 727과 757 사이에 20여년의 시대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A320neo
에어버스는 비교적 손쉽게 A320의 엔진 교체 버전을 내놓기로 결정합니다. 이 계획은 A320neo (New Engine Option: 아무래도 neo라고 먼저 짓고 뜻을 부여한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을겁니다) 로 명명되었고, 2010년 말 프로그램을 런칭합니다. 당연히 경쟁사인 보잉은 이 계획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합니다.
첫 비행을 실시하는 A320neo
A320neo가 발표된 지 몇달 뒤인 2011년 1월 14일, 보잉 민항기 사업부의 사장이었던 Jim Albaugh는 직원 회의를 소집합니다. Albaugh는 이 자리에서 A320neo와 자사가 당시 갖고 있었던 737NG의 경쟁력 분석 결과를 내보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어버스는 A320의 엔진 교체가 매우 쉬울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는 이어서, A320의 엔진을 교체한다고 하더라도, 연비 등의 운항성능에서 737NG와 비슷한 수준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죠. 그는 그런 고로, 737NG의 점진적인 변화 (역자 주: 여객기는 런칭된 이후에도 지속해서 무게 저감, 이륙중량 증대, 엔진의 성능 개선 등을 통해 성능을 개선합니다. 777도, A330도, 심지어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은 A350도 출시 당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성능을 갖고 있습니다)만으로도 A320neo를 능가하는 여객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우리는 엔진 교체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737의 엔진 교체는 유력한 옵션이 아니다. 737의 엔진 교체는 큰 시장성이 없는 선택이다. 나는 최선의 선택은 2010년대 말쯤 완전히 새로운 협동체기를 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개발 결정은 올해(2011년) 중반쯤 내려질 것이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이어서 A320neo가 왜 멍청한 선택인지에 대한 그의 장광설을 늘어 놓습니다.
“우리 고객들은 엔진 교체 버전이 현명한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말합니다. “에어버스는 엔진 교체가 10억 유로 정도의 비용밖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실제로 프로젝트 실행에 돌입하면 그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형 엔진은 더 크다. 그들은 날개를 완전히 재설계해야 할 것이고, 랜딩 기어 역시 바꿔야 할 것이다. 엔진만 바꾸는 계획으로 시작했겠지만, 그들은 결국 여객기 전반에 걸친 재설계를 실행하게 될 것이다.”
뒤이어서 그는 A320neo의 비용 효율성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들은 설계 변경의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해야 할 것이다. A320neo는 기존과 다른 엔진을 갖게 된다. 따라서 A320neo를 주문하는 회사들은 이전과는 다른 엔진 부품을 구비하여야 한다. 이는 유지보수와 스페어 부품 관리에 있어서 어려움을 더하게 된다”
라이언에어의 737NG. 737NG의 상업운항은 1997년 말 개시됩니다.
아, 아직 Albaugh의 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서, 그는 왜 737NG가 여전히 경쟁력 있는 여객기인지를 설파합니다.
“더 자세히 보면, A320neo는 기존 A320에 비해(에어버스 용어대로 A320ceo라고 부르겠습니다) 2~3%정도의 운용비용 절감을 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계산대로라면 737NG는 이미 A320보다 5~6%정도 낮은 운용비용을 보인다. 따라서, neo사업을 하더라도 737NG에 비해 크게 경쟁력을 갖지는 못한다. 게다가 737NG의 점진적인 업그레이드가 지속된다면 이 격차는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 양강체제에서, 보잉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보잉은 737RE라고 부르는, 훗날 737 MAX가 되는 737의 엔진 교체 버전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합니다. 동시에 완전 신형 협동체기에 대한 초기 연구 역시 진행합니다. Albaugh CEO는 완전 신형을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엔지니어들이 그렇겠죠.
잘못된 생각
이미 A320neo와 737 MAX 모두가 출시되었고, 하늘을 날고 있……던 적이 있는 지금 2010년을 다시 돌아본다면, Albaugh는 합당한 정보에 기반한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Albaugh가 A320neo, 그리고 더 나아가 협동체기의 엔진 교체 버전의 시장성을 무시한 이유들을 가독성 좋게 숫자를 매겨서 하나하나 살펴보고, 훗날 드러난 현실과 비교해 보도록 합시다.
1) A320의 엔진 교체는 에어버스의 생각보다 훨씬 비싼 작업일 것이다
거의 완전히 빗나간 생각이었습니다. A320neo 의 개발비용은 초기 예상되었던 10억 유로를 살짝 넘겼을 뿐이었습니다.
2) A320의 엔진 교체를 위해선 여객기의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할 것이다
완전히 빗나가진 않았지만, Albaugh의 기대와는 다르게 에어버스가 초기에 산정한 개발 범위와 예산 내에서 처리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Albaugh는 “예를 들어, 날개의 재설계와 랜딩기어의 강화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날개와 랜딩기어의 강화가 필요하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그 두 가지 말곤 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날개는 기존 A320에 대한 sharklet 설치 작업과 함께 개발되어 A320neo가 공개되기도 전인 2014년에 이미 완성되어 대량생산이 실시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A320neo 시리즈는 별 탈 없이 첫 비행을 마치게 됩니다.
Sharklet 버전 A320의 날개 변경 사항. 이미 neo 공개 이전, Sharklet과 함께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엔진 교체가 골치아픈 계획이 될 것이라는 것은 오히려 737MAX에서 사실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저바이패스 엔진을 고려하여 설계된 737은 더 커진 엔진을 설치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노즈기어의 길이를 늘리는 한편 엔진을 더 앞으로, 더 위로 옮겨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체의 양력 특성이 변하게 되고(기수를 들어 올리려는 성향을 보입니다) 전설의 MCAS가 탄생하게 됩니다.
737 오리지널은 매우 작은 엔진을 갖고 있었습니다(왼쪽). 737이 엔진을 앞에 놓게 된 것은 사실 737 Classic부터 계속되어 오던 일입니다.
3) 운용비용에 대한 문제
Albaugh는 737NG가 기존 A320에 비해 5~6%의 운용비용 우위를 보인다고 말했지만, 실질적으로 737NG와 A320의 차이는 1%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한쪽의 일관된 우위가 아닌, 상황에 따라 승자가 바뀌는 수준이었습니다. 주로 장거리에서 공력특성과 엔진효율이 좋은 A320이, 단거리에서 작고 날렵한 737이 더 유리한 정도였죠. 에어버스 말대로, 737이 계속해서 5%정도의 압도적인 연비 우위를 보였다면, A320이 팔렸을 리가 없었겠죠.
A320neo의 연비에 대해서도 Albaugh는 잘못된 판단을 내립니다. A320neo 시리즈가 2016년 상업운항을 시작한 뒤, A320ceo와 neo를 모두 운용하는 항공사들은 neo가 ceo에 비해서 연료를 15~20%정도 덜 소모한다고 밝힙니다. PW GTF 엔진과 CFM LEAP 모두가요. 이는 A320neo 런칭 당시 에어버스의 약속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은 수준입니다. 보잉에게는 다행스럽게도, 737 MAX역시 비슷한 정도의 연료 절감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확실히 보잉은 신형 엔진의 포텐셜을 심각하게 평가 절하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737의 엔진 교체 과정에서 겪게 될 문제를 A320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 역시 범하고 있었습니다. A320과 737 사이에 2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보잉의 생각
보잉의 내부자는, 보잉이 “737RE 계획을 플랜 B로 계속 살려 두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그것이 굉장히 다행인 일이었다고 증언합니다. A320neo가 보잉의 기대와는 다르게 굉장히 좋은 실적을 냈기 때문입니다. 에어버스는 미국의 레거시 항공사 중 하나인 아메리칸 항공으로부터 대량의 협동체기 주문을 받는 데에 성공하면서, 보잉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시장에 당장 내놓을 수 있는 대응책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죠.
게다가 초기 연구에서, 완전 신형 협동체기 개발이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 내부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완전 신형 협동체기는 737의 엔진 교체 버전에 비해 큰 성능적 이득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787에 적용한 카본 복합재를 적용한다면, 737에 요구되는 생산속도(737기는 한달에 50기 이상 만들어집니다)를 맞출 수 없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747-8F의 탄소 복합재 날개. 여전히, 탄소 복합재 날개는 금속제 날개에 비해서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리하여 보잉은 737NG의 엔진 교체 버전을 내놓는다는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보잉은 엔진 교체 버전의 성능 개선 폭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 신형 협동체기에 대해서 확실히 마음을 정했냐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767같은 광동체기로(복도가 두줄인) 만드는 방안까지 고려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37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한동안 회사 내부의 분위기는 완전 신형을 만드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내부자에 따르면, 737은 구식입니다. 기수의 형상은 707과 다를 것이 없고, 동체의 규격 역시 같습니다. (역자 주: 심지어 737은 플라이 바이 와이어 구조도 아닙니다)이 기체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737RE 계획은 다시 수면 밑으로 잠수합니다.
선택지
당시 737 기종의 제품개발 수장이었던 Mike Bair는 2011년 3월 Aircraft Technology지와의 인터뷰에서 엔지니어들이 737에 신형 엔진인 프랫 & 휘트니 GTF나 CFM LEAP-X를 얹을 방법을 찾았다고 밝힙니다.
“우리는 많은 연구를 거쳤고, 737의 엔진 교체가 상당히 복잡한 작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방향으로 간다고 결정한다면, 어떤 작업을 거쳐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즈음해서, 보잉은 “개념 타당성 조사”에서 737의 엔진 교체가 실현 가능한 옵션이라고 결정합니다.
Bair는 “737의 엔진 교체는 가능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큰 엔진 – 더 많은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 큰 엔진을 달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 을 달 방법을 찾았습니다.”
Bair는 이를 위해 노즈기어가 8인치정도 길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실제로 737MAX의 설계에 반영된 내용입니다.
737 MAX 8. 노즈기어가 길어졌다고 합니다. 고개를 픽 숙인것 같은 A330과는(320의 오타가 아님) 살짝 다른 인상입니다.
737MAX운항비용 감소는 10%대 초반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이는 잘못된 예측이었는데, 실제로 737MAX의 연비는 기존 737NG에 비해 15~16%정도 더 좋았습니다.)
Bair는 보잉이 P&W와 CFM, 그리고 롤스로이스의 엔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잉의 내부자들에 따르면 엔진 교체 비용은 10~20억 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보잉사의 CFO James Bell은 엔진 교체비용이 완전 신형기 개발 비용의 10% 수준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보잉은 이 시점에서도 737의 엔진 교체 버전에 큰 확신을 갖고 있진 못했습니다. 실질적인 운항비용 감소는 연료비 절감으로 감소하는 비용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연료비에서 10%가 절감되더라도 실질적인 비용 절감은 5%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737RE는 737NG에 비해 5000파운드 정도 더 무겁습니다. 이는 랜딩기어와 브레이크에 더 큰 부담을 줍니다. 신형 여객기를 구입함으로써 추가되는 자본비용 부담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인 비용 이득은 2~3%로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거기에 엔진 종류 추가로 인한 유지보수 비용의 실질적 증가 등의 여러 요소들을 종합해 본다면, 총비용의 절감은 1%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였습니다. Bair는 당시, “진짜 이런걸 원한다고?”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현실을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A320neo와 737 MAX 두 기종 모두 보잉의 예측보다는 에어버스의 예측에 가까운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15%~16%정도의 연료비 절감 효과를 냈던 것이죠.
우유부단함
보잉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엔지니어들은 완전 신형을 선호하고 있었지만, 불확실한 상황이 그런 담대한 결정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A320neo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엔진 교체 버전인 737MAX가 발표되는 시점에 787 드림라이너는 3년 이상 늦어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수십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투입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연으로 인해 드림라이너는 그 어떤 고객에게도 인도되지 못하던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전 신형 여객기 계획이 보잉 이사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당시 월스트리트의 정설일 정도였습니다. 이사회가 보잉 민항기 사업부가 제 시간에, 주어진 예산 하에서 완전 신형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었죠.
737 MAX 프로젝트의 진행 직전의 이 인터뷰에서, Bair은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엔진 교체는 옵션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옵션을 잠시 치워 둔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 옵션은 완전히 버려진 옵션이 아닙니다. 만약 그 옵션이 더 나은 선택으로 판단된다거나, 항공산업에 ‘어떤 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언제나 엔진 교체 쪽으로 마음을 바꿔 먹을 수 있습니다”라고요.
그 ‘어떤 큰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아메리칸 항공은 A320neo와, 샤크렛 옵션이 적용된 A320ceo를 대량으로 주문합니다. 결국 보잉은 737 MAX를 출시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다음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항공의 A321neo(출처: 아메리칸항공)
한편, 툴루즈에서는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에어버스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A320의 엔진을 바꿔 내놓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본설계가 1960년대로 흘러가는 737과는 다르게, 1980년대 말 완성된 A320은 훨씬 여유가 넘치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지름 49.2인치 정도의 저바이패스 엔진인 프랫엔 휘트니 JT8D에 맞춰 설계된 737과는 달리 지름 6~70인치의 고바이패스 엔진인 CFM56이나 IAE V2500엔진에 맞춰 설계된 A320에는 지름이 87인치에 달하는 PW1100G 엔진 정도는 달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있었습니다. 날개의 보강 정도와 랜딩기어의 강화 정도가 필요했을 뿐. 게다가 플라이 바이 와이어(줄여서 FBW) 기체였기 때문에 비행특성의 변화를 737보다 훨씬 부드럽게 상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보잉과는 다르게 에어버스에서는 엔진교체가 항상 더 유력한 옵션이었습니다.
A320과 737NG의 클리어런스 비교. A320이 확실히 키가 더 큽니다.(출처: Vox)
보잉과 다르게 에어버스는 확실히 해당 시점에 엔진 교체가 더 나은 옵션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에어버스는 당시 사용할 수 있었던 엔진에 ‘완전 신형 기체를 매칭하기는 좀 아깝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엔진 교체가 15% 정도의 성능 향상을 보일 수 있다면, (협동체기에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의 범위가 값비싸고 생산량이 적은 광동체기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완전 신형은 20%정도의 성능 향상만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완전 신형기는 ‘엔진이 좀 더 나아진 다음’에 선택할 방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에어버스는 보잉이 완전 신형 기체를 내놓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훗날 양사 모두 엔진 교체형을 내놓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이후, 에어버스의 CEO는 당시 보잉이 완전 신형 기체를 내놓는다면 (원치는 않았지만) 에어버스 역시 완전 신형 기체를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만약 드림라이너 프로젝트가 빨리 제 자리를 잡았다면, 그리고 만약 AA가 에어버스의 최혜 고객 대우에도 불구하고(역사에 나오는 최혜국 대우와 같습니다. AA보다 더 값사게 A320을 사가는 고객이 생긴다면 AA에게도 그만큼의 할인을 제공해줘야 하는 딜) A320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보잉이 완전 신형기를 내놓았다면, 반대로 겁을 먹은 에어버스 역시 A320이 갖고 있는 확장성의 우위를 모두 뒤로하고 완전 신형 협동체기를 개발하는 선택을 했어야 할 겁니다. 당시 에어버스는 아직 A350XWB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에어버스 입장에서도 부담은 엄청났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델타의 A350XWB. 787과는 반대로, 프로젝트 초반의 스코프 결정에서 난맥상을 겪었지만, 개발은 의외로 순조로웠던 케이스. 참고로 A350의 개발사도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써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
A320neo: 전략적 승리
A320neo 프로그램은 큰 돈을 들인 프로젝트가 아니었음에도, 에어버스에게 전술적인 승리 뿐만이 아닌 전략적인 승리도 안겨다 주었습니다. 큰 돈을 들이지 않은 A320neo 프로젝트로 인해 보잉은 737 MAX를 만들 것을 강요당했고, 비용상으로나 뭐로나 보잉 입장에서 불리한 판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판매에서 선수를 치고, 미국 시장에 안착하는 전술적인 승리로 시작했지만, 737 MAX의 MCAS가 737 시리즈의 운명을 옭아매면서 에어버스조차 예상하지 못한 나비효과로 전이되는 느낌입니다.
737 MAX의 MCAS. 737 MAX의 비행특성을 NG와 비슷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대충 받음각이 너무 높다 싶으면 그걸 상쇄하는 장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잉의 협동체 전략이 확장 가능성이 낮은 737 MAX에 발이 묶이면서, A320neo 시리즈는 LR이나 XLR과 같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확장판을 통해 보잉 757의 부재가 낳은 빈 공간을 NMA의 등장 이전까지 조금이나마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NMA는 파리 에어쇼에 등장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장거리 협동체기의 등장으로 인해 NMA가 공략할 수 있는 입지는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적어도, 협동체 포멧으로 나오기는 어려워 졌습니다).
A321XLR. 8700km를 날 수 있습니다. 서울-델리나, 뉴욕-로마노선도 커버 가능한 기종입니다. 현실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 기종으로 인해 NMA의 운신의 폭이 매우 협소해졌다고 말합니다.
보잉도, 에어버스도 그들의 역사 속에 많은 전략적 성공과 실패를 남겨 왔고, 앞으로 에어버스가 큰 오점을 남길 가능성도, 보잉이 큰 족적을 남길 가능성도 물론 상존합니다. 장거리 광동체기 시장에서는 보잉이 확실히 좀 더 나은 결정을 내린 바 있죠 (물론 실행 과정상의 실책으로 많이 상쇄되었지만).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협동체와 Middle of Market(이전에 757과 767이 담당하던 시장)에서의 전략에서는, 에어버스가 판정승을 거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 방법은 사실 이전에도 737의 업그레이드형이 나올때 마다 사용되던 방법이었습니다.
내년이나 정식 발표될 NMA가 훨씬 빨리 개발이 시작됬을테고
737-800,900정도는 NMA 짧은 모델로 대체하고 -700은 리저널기를 사와서(지금은 결국 샀지만..) 대체했을듯....
개인적으로는 787다음에 777X를 시작할게 아니라 NMA를 먼저 했었어야한다고봅니다...
777-300ER로도 A350-1000을 상대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굳이 777x를 먼저 개발하고있는지....
덕분에 에어버스는 이번에 발표한 321XLR까지 먼저 투입해서 NMA가 노리던 시장을 선점할꺼같은...
우리나라 카이를 보면 오히려 그게 기업을 망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787과의 비교도 살짝 부탁드립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A320의 경우 FBW 기종이기 때문에 조종 특성 변화를 소프트웨어가 더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737은 그렇지 않다보니 MCAS를 애드온으로 얹게 되었고요. 여러모로 737에는 한계점이 도래하고 있다는 점은 불변의 사실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윗분이랑 비슷한생각했었는데 댓글보니까 왜 도입했는지 이해가가네요. 배워갑니다
다음편 기대해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보잉(이 한것으로 추정되는)의 A350디스 동영상은 꼭...^_^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737의 역사나 단편적으로만 들어본 CFM, GENX, Trent 등 엔진 역사도 흥미진진할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737 맥스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결국엔 도입되지않을까싶네요.. ㅠ.ㅠ
/Vollago
요즘엔 강좌글이 많아지긴했는데 시대의 흐름인건지 예전같지 않습니다.
많은 글이 유툽홍보글이고, 또 많은분들이 유툽으로 넘어가셨겠죠. ^^
역시 마켓에서의 시장성은 알다가도 모를 변수가 많네요.
보잉이나 에어버스 외에 러시아나 기타브랜드도 연재 가능하실런지!!!! ㅎ
항공쪽 비지니스 이야기해주시면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김포 항공산업단지에 있는 GE On Wing Support 센터에 교육 받으러 가봤는데
아시아쪽 항공사에서 엔진 유지보수를 위해 전부 다 이곳 공장으로 보내더군요.
최근 에어버스가 전략적으로 시장분석이나 판단을 잘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737은 800에서 마무리를 지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800까지가 대충 기존 설계에서 큰 특성변경 없이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이 아닐까 해요. 결국 이후에 900시리즈 몰고 다니는 조종사분들도 타기종에 비해 피로를 많이 호소하시고... MAX가 여러모로 737의 수많은 업적을 깎아먹는 무리수가 되어 버렸네요.
이전에 -900이 착륙속도가 빠른 편이어서 까다롭다고 조종사 회원님께서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죠.
에어버스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어디서 보기론 보잉이 타격을 입은 건 사실이지만 에어버스도 몇년치 주문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생산 캐파를 확 늘릴 수 없는 상황이고 보잉 또한 무너지지 않고 근시일내로 회복하여 다시금 몇년치 주문 쌓인 것 팔텐데 오히려 그 시간 동안 737max로 중장거리 장사를 모색했던 LCC(저가항공사)들에게 차질이 생겨 FSC(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같은 풀서비스 항공사)에게 호재라 들었어요...
예를 들어 부산-싱가폴 노선의 경우 올 해 슬롯이 열렸는데 실크에어(싱가폴), 제주항공, 이스타항공로 모두 LCC입니다. (전 재주항공보단 에어부산이 될 줄 알았는데... 후술하겠지만 에어부산 만이 애어버스 신기종 적용 하려 했더라구요) 공교롭게도 세 항공사 모두 737max로 노선을 운영하려 했더라구요..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737로 좌석을 줄여 운행하던가 발만 동동 굴리며 737max가 안정화 되길 기다려야죠... 이 사태를 보며 웃고 있는건 경쟁력을 빼앗기며 인천-싱가폴을 독점하는 대한항공이겠죠...
이런 사태가 기술의 발전으로 협동체가 중장거리 노선에서 경제성을 갖고 있고 LCC가 꾸준히 성장하며 확장해 가는 시기랑 맞물려 일어나 몇몇 FSC들은 좋은 것 같기도하고 똑같이 max 못 받아서 손해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어찌 되었던 Max가 복귀하는건 When의 문제이지 If는 아니라고 봅니다. 방금 전 IAG(International Airlines Group)가 737 Max 200기의 구매의향서를 보냈는데, 구매'의향'일 뿐이긴 합니다만 여전히 (협상 카드로써라도) MAX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항공사는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LCC와 FSC의 경쟁에서는 그래도 FSC보단 LCC가 타격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 협동체가 보잉-온리인 FSC도 많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전 플릿이 737-온리인 FSC는 거의 없을테니 말입니다. 뭐 사실 가장 득보는건 뭐니뭐니해도 A320 패밀리를 인도받고 있는 LCC가 되겠군요 (-_-) 여담으로 LCC는 정비부품 재고 관리라던가 파일럿 인적자원 관리 등의 편의성 도모를 위해 같은 사이즈에선 원메이크로 굴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라이언에어, 사우스웨스트도 그래서 원메이크고요. 우리나라는 아시아나 계열이 에어버스 원메이크고(이쪽은 장기적으로 FSC인 아시아나도 화물기 빼곤 원메이크로 가고자 합니다) 나머지는 올 보잉이었는데, 칼이 A320neo 패밀리와 A220을 주문하게 되어서, 진에어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항공기 개발에서 비용 초과는 늘 있어왔던 일이라 보잉의 예측이 완전 잘못됬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도 있겠네요. 어쩌면 A380을 개발하면서 쏟아부은 비용으로 얻은 기술을 적용해서 개발비용을 절감한 걸 수 도 있고요.
아이러니한건 보잉이 원래 Pilot Flying을 중시하는 회사라서 FBW니 FBL같은 조종 보조 혹은 조종 개입을 꺼려왔고 오히려 에어버스는 조종사 입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안하던 짓을 하다가 사단이 났다는거죠.
A350관련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MCAS는 어떻게 보면 737이 FBW 항공기가 아니기 때문에 애드온으로 들어가다 보니 별도의 이름을 갖게 되어서 주목을 받는 면이 크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여객기의 FBW 시스템도 비슷한 일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만 그냥 FBW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센서 구성을 왜 그런 식으로 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비슷한 기능을 에어버스는 3개의 센서 입력을 바탕으로 유사한 정보를 보내는 2개를 킵하고 좀 동떨어진 정보를 보내는 1개를 버리는 식으로 운영되거든요.
더군다나 전문적이고 사전에 기본지식이 부족하면 이해하기 힘든 분야도 이슈와 연결해 정리하고 독자에게 나름 입장과 견해를 갖게 해줘서 매우 좋습니다
잘봤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고 시간되시면 부탁드립니다
비즈니스 프이코 이코노미 가 대부분 항공사에서 죄석 포지션으로 설정할테고
개인적으로 벌크기종을 싫어하는건 기체 성능을 떠나서
항공사의 돌려막기에 정말 최적화된 모델이 737 321 벌크기종이라 오즈의 마법으로도 해결못할 비행기하나 퍼지면 돌려막기신공하느라 에휴 한숨만나옴 벌크기는
잘 봤습니다.
내공과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역시 신규 플랫폼이 좋군요. 사골 플랫폼은 그만 우려먹었으면.
어?????????????? 보잉만의 문제가 아니어보이는 이 기시감은 뭘까요 ㅎㅎㅎㅎㅎ
결과는 한쪽의 승리로 굳어졌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니 그 누구도 일방적인 비난을 할수 없는 상황이네요
사람들이 불안해해서 국내LCC에 들어와도 골라서 안탈것 같은 느낌입니다.
결국 737기종의 물리적 한계를 다른 방법(MCSA)으로 극복하려다 실패한것으로 보이네요.
보잉이 737 잘나갈때 다음을 위해 완전 새로운 설계를 준비했어야하는데, 아쉽네요. 물론 너무 많은 자원이 투입되어야하고 드림라이너로 인해 추가자원을 동원하기 어려워서 그랬겠지만요.
종종 이런 포스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