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관련 기사들을 읽다보면 전공자나 업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용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 야매(?) 글을 읽기 전에 포스코에서 설명하는 철강 생산공정을 읽고 오시는 것을 강력히 권유합니다. 사실상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이해의 바탕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좋은 자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차적이고 교과서적으로, 철강의 생산공정은 크게 제선(製銑) - 제강(製鋼) - 연주(連鑄) - 압연(壓延)의 4개 공정으로 구분됩니다.
가장 먼저 제선 공정은 철광석과 원료탄(유연탄)을 고로(高爐, 혹은 용광로)에 넣어 쇳물을 만드는 공정입니다. 크고 아름다운 고로에 철광석과 원료탄을 넣고 매우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으면 원료탄이 타면서 나오는 열에 의해 철광석이 녹아 '쇳물'이 됩니다. 여기서 원료탄의 역할은 열원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가 철광석과 환원반응을 일으킨다 어쩐다 하는데 이렇게 디테일하게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냥 커다란(고로는 높이가 100m를 넘는다고 합니다) 원통형 설비에 석탄과 철광석을 넣고 열을 받게 만들면 원료탄의 열에 의해 철광석이 녹는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흔히 포스코나 현대제철에 대한 분석 리포트를 살펴보시면 철광석과 함께 유연탄 가격을 언급하는 것을 많이 보실 수 있었을 텐데요, 이는 고로 사업자들이 쇳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투입되는데 그 두 가지가 원가로서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제강 공정은 아주 간단하게, 제선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선공정만을 거친 쇳물은 탄소, 인, 유황 같은 불순물이 많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불순물이 많은 쇳물을 '용선'이라고 하는데, 용선을 항아리를 닮은(?) 전로에 넣고 순수한 산소를 불어넣으면 마법 같은 작용으로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쇳물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강 공정을 걸쳐 순수해진 쇳물을 '용강'이라고 부릅니다.
연주 공정은 설명하는 자료에 따라 생략되기도 하는데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쇳물을 고체로 굳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순수한 쇳물인 용강을 주형(mold)에 주입하고 연속주조기(?)를 통과하여 냉각, 응고되어 고체 상태로 만듭니다. 주형이나 연속주조기가 구체적으로 무슨 설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짐작하자면 뜨거운 쇳물을 식히고 용도에 맞는 모양으로 굳히는 그런 설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깐, 철강 관련 기사에서 매우 빈번하게 언급되는 '조강(Crude steel)'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흔히 한 국가나 기업의 철강 생산 능력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조강이란 바로 이 연주 공정에서 만들어진 고체가 된 쇳덩이들을 의미합니다.
언론에서 - 아마 기자들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은데 - 조강을 쇳물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성형가공 공정 이전의 강괴(鋼塊)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저도 보통 헷갈린 게 아니었는데 생산 공정을 보고 나니 전부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쇳물을 굳혀서 만든 것이 강괴이니, 중간에 작업 관리자가 쇳물이나 강괴를 빼돌리지 않은 이상(?!) 결국 쇳물의 생산량이 곧 강괴의 생산량이 될 테니까요. 다만 단순히 쇳물이라고 하면 불순물을 제거하기 이전의 용선과 헷갈릴 수도 있으니 성형가공(바로 밑에 후술할 중간재를 만드는 과정) 이전의 강괴라는 설명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다만 쇳물 쪽이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네요.
한편으로 이 강괴는 쇳물을 굳혀서 고체 상태로 만들었을 뿐인, 철강의 중간재 중에서도 이전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괴는 다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용도에 따른 세 종류의 중간재로 가공되는데, 이것이 슬래브(Slab), 빌릿(Billet), 블룸(Bloom)입니다. 이러한 중간재들은 용도가 다른 만큼 생긴 것도 다르고 그런데, 자세한 부분은 여기서 설명해봤자 별로 재미도 없을 테고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검색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압연 과정은 앞서 설명한 중간재들을 열과 압력으로 용도에 맞는 형태로 두께와 폭으로 만드는, 최종 과정입니다. 최종 가공에 해당되는 만큼 중간재를 단순히 늘리고 펴서 만든 가장 단순한 열연(그 자체로 쓰이기도 하고 또다른 공정을 거쳐 냉연 등을 생산하는데 쓰이는 중간재가 되기도 합니다)에서부터 이 열연을 다시 차갑게(?) 압연한 고부가가치 냉연 제품, 이 냉연 제품에 아연 따위를 도금하여 내식성을 늘린 도금강판, 표면과 미관의 유려함을 위하여 색깔을 입힌 컬러강판, 판재(판 모양 철강제품?) 외에 건설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봉형강(강관, H형강 등등)까지 가공 과정과 기술부터 최종적으로 생산된 제품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그 분류와 형태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우리가 언론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여러 철강 완제품들을 만드는 과정이지요. 현대제철 홈페이지에 가면 https://www.hyundai-steel.com/kr/products-technology/products/hotrolledsteel.hds 그 다양한 제품들을 잘 소개하고 있으니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전통적인 고로 방식의 철강 생산 공정을 기반으로 한, 기본적인 설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쇳물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고로(용광로) 외에 전로, 즉 전기로가 하나 더 존재합니다. 전기로는 쇠를 녹이는 원료로 유연탄 대신 전기를 사용하며, 철광석이 아닌 고철(철 스크랩)을 이용한다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앞서 설명한 4개의 공정에서 '제선' 공정은 전기로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전기로 철강업체들은 제강 - 연주 - 압연의 세가지 과정만을 거쳐 철강 제품을 생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로에서 제강은 제선 과정에서 생산된 불순물이 많은 쇳물(용선)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수한 쇳물(용강)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만, 전기로에서 제강은 고철(철 스크랩)을 전기로에서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수한 쇳물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무슨 차이가 있겠냐 싶으시겠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전기로에서 생산하는 쇳물은 고로에서 생산하는 쇳물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제품에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인 자동차용 강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로에서 생산된 반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현대제철이 전사적으로 일관제철소를 구축하는데 노력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적인 한계에 기인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한 차례 생산 공정을 걸친 다음인 고철을 사용하기 때문인지, 전기로라는 에너지의 한계인지, 아마 둘 다일 것 같긴 합니다만 하여튼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철강 산업의 Value chain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도식적으로 철강 업체를 크게 3개의 그룹으로 분리하는데요.
1. 고로(용광로) 업체
2. 전기로 업체
3. 단순 압연 업체
이 분류는 위에서 설명한 철강 생산 공정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분류된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1번의 고로 업체는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일관제철소'입니다. 제선-제강-연주-압연의 생산 공정을 모두 보유한 업체로서, 국내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포스코가 유일했고 2010년 현대제철이 고로를 준공하면서 이강 체제로 개편되었습니다.
전기로 업체는 고로 업체보다는 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3위의 조강 생산 업체인 동국제강부터 세아베스틸, 한국철강, 대한제강, YK스틸 등이 있습니다. 이들 업체는 제한적인 용도이지만 쇳물을 뽑아내 반제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순 압연 업체는 제선-제강-연주-압연의 공정에서 압연 공정만을 보유한 업체들입니다. 지극히 당연히도, 이들 업체는 고로나 전기로 업체로부터 중간재(슬래브, 빌릿, 볼룸)을 구입하여 압연 공정을 거쳐 완성된 제품을 판매합니다.
이러한 철강 산업의 Value chain을 모두 이해하셨다면 지금까지 그냥 막연히 읽고 지나쳤던 철강 관련 기사들을 보다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근 몇 년 동안 국내외 철강산업의 공급과잉 이슈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국내 양강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신경전 또한 볼 만합니다.
http://www.woly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20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16년 9월 태국 자동차 강판 공장 준공식에서 자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고로 업체가 한 군데 더 나타남으로써 공급과잉이 심화되었다며 친히 동종업체 디스를 시전하신 바 있습니다. 당연히도 국내에 포스코 외의 고로 업체는 현대제철 뿐이므로 사실상 현대제철을 지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정 산업에서 경쟁 업체를 여러 가지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뭐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2010년 현대제철이 고로에 진출하기 이전 포스코가 누려왔던 독점적인 지위를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습니다. 현대제철이 고로를 준공하기 이전에는 전기로 업체든 단순 압연 업체든 고로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철강 중간재들은 수입하거나 아니면 반드시 포스코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말하자면 포스코는 국내에서 기술적으로 독점적인 시장 지위를 확보한 업체였던 겁니다. 당연히 고로에 진출하여 이런 독점적 지위를 박살낸 현대제철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겠지요.
한편으로 후공정 업체들의 전공정 진출에 대한 의지는 철강산업에서 거의 필수요소 비슷한 존재라고 볼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후공정 업체들로서는 원가 절감이나 부가가치 내재화 측면에서 전공정 진출에 대한 강한 동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포스코나 현대제철 같은 일관제철소 사업자들은 중간재를 판매할 수도 있고, 최종 제품을 생산-판매할 때도 중간재를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으니 부가가치를 내재화할 수 있으며, 외부에서 구입할 때에 비해 원가 경쟁력도 갖출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중간재를 조달하려면 당연히 해당 업체에 마진을 붙여줘야 할 테니까요.
각각 국내 3위, 5위의 철강업체인 동국제강과 동부제철도 그랬습니다. 동국제강은 전기로를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 산업인 후판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슬래브는 전기로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모양인지 주로 포스코나 일본의 JFE스틸에 의존했지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브라질에 포스코, 발레(브라질의 국영 회사이자 세계 TOP 3 광산회사)와 합작하여 일관제철소를 건설했습니다. 냉연-도금을 주력으로 하는 동부제철은 열연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1조 넘는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 전기로에 진출했고요.
철강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는 것처럼, 그 결말이 썩 바람직하지는 못했습니다. 동국제강은 전방산업(조선업) 부진으로 인한 후판산업 손실 및 브라질 제철소의 준공 지연으로 실적 및 재무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회사가 휘청휘청 하다가 건설산업 호황으로 간신히 망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위태로운 상황이고요. 동부제철은 더 나아가서 아예 이 전기로 투자에 의한 재무구조 악화로 그룹 자체가 반쯤 해체됐습니다. 동부제철 자체도 그룹에서 분리되어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고요.(기업 자체가 청산되지는 않았습니다)
동부제철과 동국제강이 위기를 맞은 것 또한 이렇듯 철강산업의 Value chain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셈이지요.
http://www.sedaily.com/NewsView/1L1HPQTA1A/GD01
기사를 하나 더 가져와 봤습니다. 철강재의 원산지 표기에 대한 논란을 다룬 기사인데, 중국에서 들여온 중간재인 빌릿을 국내의 단순 압연 업체들이 압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철근은 현재 국내산으로 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 다룬 기사이지요. 물론 전로나 고로 없이 국내든 외국이든 중간재를 구입해서 철근을 만드는 업체들로서는 기존의 표기법을 유지하는 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http://www.g-enews.com/ko-kr/news/article/news_003/201612161003511425801_1/article.html
앞서 설명했듯 현대제철의 고로 진출로 독점은 깨졌습니다만, 조강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포스코의 지위는 압도적입니다. 완제품 판매도 그렇도 후공정 업체들에 대한 열연 등 중간재 판매도 그러한데요, 포스코가 열연 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하면서 이를 구매하는 고객사들(동국제강, 동부제철, 세아제강 등)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철강산업의 공급과잉 이슈에 대한 글을 쓰다가 먼저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포스팅이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야매로나마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보다 잘아시네요 ㅎㅎ
저보다 잘 아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중국쪽 구조조정(중국의 중소 제철사들의 덤핑 축소)에 따른 가격 인상을
반영시킨 결과라고 봐야할듯 합니다.
열연코일 인상의 원인으로 한국정부의 사드정책과도 물려있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유통업체도 있더라구요..
w.ClienS
철강산업의 재미있는 특징은 한 공정이 지날때마다 제품의 부피와 무게가 팍팍 줄어든다는 겁니다.
가령 호주에서 철광석을 사와서 포스코에서 후판으로 만들어서 현대중공업에서 배를 만드는것보다 호주 철강사에서 후판을 실어와서 현대중공업에서 배를 만드는게 더 싸게 먹힙니다. 문제는 호주는 환경보호때문에 공장이 아예 허가가 안 난 다는 거죠.
포스코가 인도에 제철소를 짓고, 동국제강이 머나먼 브라질까지 가서 공장을 짓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한단계라도 철광석 원산지에서 가공을 거쳐서 가져오는 것이 길게보면 더 이득이거든요.
저도 귀동냥으로 4-5년 넘어들었던 얘기들을 상세하게 잘 짚어주신거 같습니다^^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w.ClienS
흔히 말하는 용광로(고로)에서 나오는 것을 일반적으로 "쇠"라고 부르고, 전로에서 나온 것을 "철"이라고 합니다. 용광로의 쇳물을 전로로 옮기는 수단을 토피도(어뢰 처럼 생겨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전로에서 나온 철물(?)을 틀에 부어 식힌후 연주-압연으로 보내는데 틀에 부어 성형하는 공정을 분괴라고 불렀었습니다.
고로, 전로의 내부는 내화벽돌로 쌓는데 이 내화벽돌은 내구 연한이 있어서 수명이 다할 때 즈음에는 로를 끄고 내화벽돌을 교체합니다. 로를 한번 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작업입니다. 로가 식은 다음에 교체작업을 위해서 내부로 들어가면 그 동안 그 안에 쌓였던 부산물을 얻게 됩니다. 바로 "금"입니다. 이 "금"을 모아서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