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는 일본 위키피디아에 자세히 나와있네요. 내용을 대강 번역해봤습니다..
子(こ, 코)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개인명에 자주 사용되어 온 접미사다. 상고(上古)를 제외하고 여성명에 사용된다[1]. 시대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의 일부가 아니고 여성을 향한 경칭이 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약간의 기록이 있다.
한편, 「子」로 끝나는 개인명을 「子型」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한다[2].
일본
고대 초기
역사서 『일본서기』의 시대에는 오노노 이모코, 소가노 우마코, 나카토미노 카마코(카마타리), 아베 토리코 등 주로 남성에게 子型의 이름이 붙었다.
문헌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여성 子型은 『일본서기』 케이코 4년(서기 74년)의 「에토오코」다[3]. 당시의 「子(코)」는 「히메」 「이라쯔메」 「토베」 「키미」와 동일하게 상류·중류 여성의 본명 또는 자(字)의 뒤에 붙이는 존칭이었다[4].
오래전에는 접미사 「코」를 「子」가 아니라 「古」라고 쓰는 경우도 있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
子型이 널리 퍼지다
헤이안 시대 초기, 사가 덴노가 왕녀를 향한 명명법을 바꾸었다. 종래는 유모(乳母)와 연관되게 명명하고 있었던 것을 변경하여 佳字(かじ, 카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자) 1글자에 「子」를 붙인 「○子」라고 하는 子型의 이름을 내친왕에게 주었다. 한편 이것에 대하여 신하로 신분 강하한 왕녀에게는 姫型의 이름(○姫(히메))을 주었다. 내친왕에게 子型의 이름을 주는 관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헤이안 시대 이후 子型의 여성명이 귀족 사회에 널리 퍼지고 헤이안 후기에는 기록에 남아 있는 모든 귀족의 여성명이 子型이 될 정도였다[5].
단, 여기에서 말하는 子型의 이름이란 휘자(본명)이다. 이것은 남성의 겐부쿠(元服, 나라 시대 이후의 남성이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식)에 상당하는 모기(裳着)를 할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으로 어릴 때는 아동명으로 불렸다. 모기(裳着)의 뒤에도 당시는 여성을 본명으로 부르는 것을 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공문서를 따로 제외하면 실제로 子型의 휘자로 불리는 일은 거의 없고 다양한 子型 이외의 이름으로 불렸다.
子型의 이름은 귀족에서만 사용되었다고 하는 서술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이다[6]. 실제로는 귀족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평민의 사이에서도 子型의 이름은 널리 퍼졌다. 단 귀족과 달리 子型은 몇가지 어떤 여성명의 유형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유형
귀족사회에서의 子型의 이름의 어간 (「○코」의 「○」)은 대부분이 한자 한 문자로 가나 두 음의 훈독(뜻 읽기)이었다. 초기에는 약간의 만요가나풍의 두 문자 두 음의 이름도 있었다.
아버지의 편휘자. 즉, 아버지의 휘자에 사용된 한자 두 문자를 장녀와 차녀에게 준다. 삼녀 이후는 할아버지 등의 편휘자를 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골랐다[7]. 학자(음양사·유학자(유교의 학자) 등)에게 고르게 한 글자. 어려운 글자가 많다. 공가읽기(公家読み, 공가(조정(朝廷))에서 사용된 한자 읽기 방법을 가리키는 듯.). 한자로서는 평이하지만 한자 본래의 훈과는 무관계인 난독(難読)을 한다.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
무로마치 시대가 되어 귀족사회가 혼란하면 여성의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식인 모기(裳着)는 행하여지지 않게 되고 모기(裳着)와 함께 본명을 주는 일도 없어졌다. 본명은 서위(벼슬자리를 내려 줌)·임관되는 일이 있거나 할 때에 붙여지는 특별한 이름이 되었다.
이것에 의해 여성의 본명을 子型으로 하는 풍습은 계속되었지만 본명 자체가 드물게 되고 대부분의 여성은 子型의 이름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한편, 무로마치 시대에는 종래의 「한자 한 문자의 훈독(뜻 읽기)+子」라고 하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토쿠코」 「차코」와 같은 「음독(음 읽기)+子」라고 하는 이름도 나타났다[8]. 한편 이 시대 「아코」라고 하는 여성명도 나타났지만 이것은 「와가코(나의 아이)」를 의미하는 아동명이 통칭(속칭?)이 된 이름으로 어원적으로는 「음독+子」가 아니다.
子型의 본명으로 변하여 사용되게 된 여성명은 조정이나 다이묘(지방 세력가)에게서는 「姫」로 끝나는 이름, 서민에게서는 두 음(가나로 두 문자, 요음을 포함할 때는 세 문자)의 이름이 되었다.
1872년(메이지 5년)에 임신호적(壬申戸籍, 임신년에 만들어져 흔히 임신 호적이라고 부르게 됨.)이 만들어지면 다시 여성에게 본명이 주어지게 되었다. 화족(그전의 조정이나 다이묘)은 종래의 여성명 접미사 「姫」를 「子」로 바꾸어서 본명으로 해 호적에 등록했다. 메이지에 편찬된 사료 중에는 호적 이전에 죽은 여성에게까지 거슬러 올라서 「姫」를 「子」로 고친 것도 있다.
메이지 중간으로부터는 서민의 사이에도 종래 두 음의 이름에 「코」를 붙인 세 음의 子型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당초에는 본명에 「子」가 없어도 통칭으로서 「子」를 붙이는 일도 있었다 (다만 이미 본명에 「子」가 있으면 이중으로는 붙이지 않는다).
당초에는 이 「子」는 여성의 이름에 붙이는 경칭으로 간주되고 있었던 것 같다.
1900년, 고이즈미 야쿠모는 『그림자(Shadowings)』의 한 구절 「Japanese Female Names」에서 상류계급에서 경칭으로서 종래의 「お(오)○○」의 대신 「○○子」가 사용되게 되었지만 자칭으로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또 이 문장에서는 「도쿄에 있는 신문지」가 1889년에 기생이 「子」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주장했다고 하고 있지만(반대로 말하면 기생이 「子」를 사용하고 있었던 증거가 된다) 실제의 신문명 등 상세한 것은 불분명하다[9].
한편, 子를 경칭에 한하지 않고 사용하려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1899년, 오오구치 타이지가 『여자학 강의』에 보낸 「부인(婦人)의 이름에 붙는 〈子〉 글자의 설(說)」에서 「子」가 귀인의 이름에 사용되는 것으로부터 「子」는 존칭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일은 없고 상하 귀천·자칭 타칭을 막론하고 사용해도 좋다고 하고 있다[10].
1905년에는 시모나카 야사부로가 『부녀신문』에 보낸 「부인의 이름에 대해서」에서 여성의 이름에는 본명에 관계 없이 또 자칭·타칭에 관계 없이 「子」를 붙이는 것과 추가로 이제부터 태어나는 여성에게는 반드시 子型의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11].
다이쇼로부터 쇼와
조사에 의해 시기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子型의 여성명의 비율은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 크게 늘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사이에 둔 1930년대[12]로부터 1940년대[13]에 80% 초과의 피크가 된 후 감소로 바뀌었다.
메이지야스다 생명에 의해 매년 조사되고 있는 이름 랭킹에서는 여성명에서는 1913년에서 1964년까지 연속해서 子型이 1위이었지만 1965년부터는 다른 이름이 섞여 1982년이 子型의 1위의 최후가 되고 있다[14].
중국
고대 중국에서는 남성을 향한 경칭으로서 사용되었다. 노자·공자·손자·묵자·맹자·장자·순자·한비자 등이 있다.
송대의 장작(莊綽)에 의한 서 『계륵편』에는 연산(燕山)(베이징)에서는
凡娼皆用子爲名、若香子・花子之類 (창기(娼妓)는 모두 香子・花子와 같이 이름에 子를 붙인다)
1부터 끝까지 자기의 인생을 성실히 할 수 있도록 이라는 의미가 있답니다
"사랑스럽다" " 아이를 출산한다" 등의 의미가 있기에 여성들의 이름 뒤에 많이 붙었습니다 .아이코´요시코´마사코´노리코´´쥰코´키요코´미치코´´요오코´ 등등.....
그러나´198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코」라고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적어져 현재는 거의 붙이지 않고 있습니다
내용을 대강 번역해봤습니다..
子(こ, 코)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개인명에 자주 사용되어 온 접미사다. 상고(上古)를 제외하고 여성명에 사용된다[1]. 시대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의 일부가 아니고 여성을 향한 경칭이 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약간의 기록이 있다.
한편, 「子」로 끝나는 개인명을 「子型」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한다[2].
일본
고대 초기
역사서 『일본서기』의 시대에는 오노노 이모코, 소가노 우마코, 나카토미노 카마코(카마타리), 아베 토리코 등 주로 남성에게 子型의 이름이 붙었다.
문헌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여성 子型은 『일본서기』 케이코 4년(서기 74년)의 「에토오코」다[3]. 당시의 「子(코)」는 「히메」 「이라쯔메」 「토베」 「키미」와 동일하게 상류·중류 여성의 본명 또는 자(字)의 뒤에 붙이는 존칭이었다[4].
오래전에는 접미사 「코」를 「子」가 아니라 「古」라고 쓰는 경우도 있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
子型이 널리 퍼지다
헤이안 시대 초기, 사가 덴노가 왕녀를 향한 명명법을 바꾸었다. 종래는 유모(乳母)와 연관되게 명명하고 있었던 것을 변경하여 佳字(かじ, 카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자) 1글자에 「子」를 붙인 「○子」라고 하는 子型의 이름을 내친왕에게 주었다. 한편 이것에 대하여 신하로 신분 강하한 왕녀에게는 姫型의 이름(○姫(히메))을 주었다. 내친왕에게 子型의 이름을 주는 관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헤이안 시대 이후 子型의 여성명이 귀족 사회에 널리 퍼지고 헤이안 후기에는 기록에 남아 있는 모든 귀족의 여성명이 子型이 될 정도였다[5].
단, 여기에서 말하는 子型의 이름이란 휘자(본명)이다. 이것은 남성의 겐부쿠(元服, 나라 시대 이후의 남성이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식)에 상당하는 모기(裳着)를 할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으로 어릴 때는 아동명으로 불렸다. 모기(裳着)의 뒤에도 당시는 여성을 본명으로 부르는 것을 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공문서를 따로 제외하면 실제로 子型의 휘자로 불리는 일은 거의 없고 다양한 子型 이외의 이름으로 불렸다.
子型의 이름은 귀족에서만 사용되었다고 하는 서술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이다[6]. 실제로는 귀족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평민의 사이에서도 子型의 이름은 널리 퍼졌다. 단 귀족과 달리 子型은 몇가지 어떤 여성명의 유형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유형
귀족사회에서의 子型의 이름의 어간 (「○코」의 「○」)은 대부분이 한자 한 문자로 가나 두 음의 훈독(뜻 읽기)이었다. 초기에는 약간의 만요가나풍의 두 문자 두 음의 이름도 있었다.
(만요가나 관련글: http://ko.wikipedia.org/wiki/%EB%A7%8C%EC%9A%94%EA%B0%80%EB%82%98 )
어간의 한자에는 몇가지의 유형이 있었다:
아버지의 편휘자. 즉, 아버지의 휘자에 사용된 한자 두 문자를 장녀와 차녀에게 준다. 삼녀 이후는 할아버지 등의 편휘자를 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골랐다[7].
학자(음양사·유학자(유교의 학자) 등)에게 고르게 한 글자. 어려운 글자가 많다.
공가읽기(公家読み, 공가(조정(朝廷))에서 사용된 한자 읽기 방법을 가리키는 듯.). 한자로서는 평이하지만 한자 본래의 훈과는 무관계인 난독(難読)을 한다.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
무로마치 시대가 되어 귀족사회가 혼란하면 여성의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식인 모기(裳着)는 행하여지지 않게 되고 모기(裳着)와 함께 본명을 주는 일도 없어졌다. 본명은 서위(벼슬자리를 내려 줌)·임관되는 일이 있거나 할 때에 붙여지는 특별한 이름이 되었다.
이것에 의해 여성의 본명을 子型으로 하는 풍습은 계속되었지만 본명 자체가 드물게 되고 대부분의 여성은 子型의 이름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한편, 무로마치 시대에는 종래의 「한자 한 문자의 훈독(뜻 읽기)+子」라고 하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토쿠코」 「차코」와 같은 「음독(음 읽기)+子」라고 하는 이름도 나타났다[8]. 한편 이 시대 「아코」라고 하는 여성명도 나타났지만 이것은 「와가코(나의 아이)」를 의미하는 아동명이 통칭(속칭?)이 된 이름으로 어원적으로는 「음독+子」가 아니다.
子型의 본명으로 변하여 사용되게 된 여성명은 조정이나 다이묘(지방 세력가)에게서는 「姫」로 끝나는 이름, 서민에게서는 두 음(가나로 두 문자, 요음을 포함할 때는 세 문자)의 이름이 되었다.
(요음 관련글: http://ko.wikipedia.org/wiki/%EC%9A%94%EC%9D%8C )
메이지
1872년(메이지 5년)에 임신호적(壬申戸籍, 임신년에 만들어져 흔히 임신 호적이라고 부르게 됨.)이 만들어지면 다시 여성에게 본명이 주어지게 되었다. 화족(그전의 조정이나 다이묘)은 종래의 여성명 접미사 「姫」를 「子」로 바꾸어서 본명으로 해 호적에 등록했다. 메이지에 편찬된 사료 중에는 호적 이전에 죽은 여성에게까지 거슬러 올라서 「姫」를 「子」로 고친 것도 있다.
메이지 중간으로부터는 서민의 사이에도 종래 두 음의 이름에 「코」를 붙인 세 음의 子型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당초에는 본명에 「子」가 없어도 통칭으로서 「子」를 붙이는 일도 있었다 (다만 이미 본명에 「子」가 있으면 이중으로는 붙이지 않는다).
당초에는 이 「子」는 여성의 이름에 붙이는 경칭으로 간주되고 있었던 것 같다.
1900년, 고이즈미 야쿠모는 『그림자(Shadowings)』의 한 구절 「Japanese Female Names」에서 상류계급에서 경칭으로서 종래의 「お(오)○○」의 대신 「○○子」가 사용되게 되었지만 자칭으로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또 이 문장에서는 「도쿄에 있는 신문지」가 1889년에 기생이 「子」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주장했다고 하고 있지만(반대로 말하면 기생이 「子」를 사용하고 있었던 증거가 된다) 실제의 신문명 등 상세한 것은 불분명하다[9].
한편, 子를 경칭에 한하지 않고 사용하려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1899년, 오오구치 타이지가 『여자학 강의』에 보낸 「부인(婦人)의 이름에 붙는 〈子〉 글자의 설(說)」에서 「子」가 귀인의 이름에 사용되는 것으로부터 「子」는 존칭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일은 없고 상하 귀천·자칭 타칭을 막론하고 사용해도 좋다고 하고 있다[10].
1905년에는 시모나카 야사부로가 『부녀신문』에 보낸 「부인의 이름에 대해서」에서 여성의 이름에는 본명에 관계 없이 또 자칭·타칭에 관계 없이 「子」를 붙이는 것과 추가로 이제부터 태어나는 여성에게는 반드시 子型의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11].
다이쇼로부터 쇼와
조사에 의해 시기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子型의 여성명의 비율은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 크게 늘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사이에 둔 1930년대[12]로부터 1940년대[13]에 80% 초과의 피크가 된 후 감소로 바뀌었다.
메이지야스다 생명에 의해 매년 조사되고 있는 이름 랭킹에서는 여성명에서는 1913년에서 1964년까지 연속해서 子型이 1위이었지만 1965년부터는 다른 이름이 섞여 1982년이 子型의 1위의 최후가 되고 있다[14].
중국
고대 중국에서는 남성을 향한 경칭으로서 사용되었다. 노자·공자·손자·묵자·맹자·장자·순자·한비자 등이 있다.
송대의 장작(莊綽)에 의한 서 『계륵편』에는 연산(燕山)(베이징)에서는
凡娼皆用子爲名、若香子・花子之類
(창기(娼妓)는 모두 香子・花子와 같이 이름에 子를 붙인다)
라는 서술이 있다.
http://ja.wikipedia.org/wiki/%E5%AD%90_%28%E4%BA%BA%E5%90%8D%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