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처음 시작한건, 아버지가 어느날 테니스 라켓을 주시며 가지고 놀라고 하셨을 때였습니다.
학생이니 공부에 집중하고, 스트레스 받을때 나가서 벽이나 치고 오라는 말씀과 함께 주셨는데 그게 이렇게 될 줄은 둘 다 몰랐죠.
1. Wilson, Prostaff 6.0 95sq.in / 27in. / 95sq.in / 330g (unstrung) / 16x18 / 14pts HL / 20mm box-flat
가혹한 라켓이었습니다. 무게는 무겁고, 밸런스는 과도한 헤드라이트라 plow-through가 없는 탓에 스윙 속도가 느린 초보자 시절엔 스윙을 그려서 해야 하는 그런 라켓이었죠. 지금 다시 쓰라고 하면 정말로 편안할 것 같은데 구할 수가 없으니 문제입니다. 20mm 빔은 반발력이 참 애매했고, 때리면 공이 나가긴 하지만 예쁜 스윙으로 공을 잘 눌러야 컨트롤이 되는 그런 라켓이었습니다.
애초에 6.0에서 95는 그냥 파생모델 취급이었기 때문에, 이후 나오는 6.0 계열 라켓들에선 95가 나오지 않다가 2012년 딱 한번 비슷한 모델이 나오게 됩니다.
2. Babolat, Pure Drive Team / 27in. / 100sq.in / 300g (unstrung) / 16x/19 / 5pts HL / 22mm~26mm tapered
카를로스 모야 포핸드가 부러워서 사다가 썼던 라켓이었습니다. 당시 디자인 트랜드 상으로는 참 예쁜 모양이었죠. 반발력도 팔로스로도 늘어나서 라켓을 신나게 돌려잡고 스핀을 걸어댔는데, 대충 2-3년차까지 이 라켓을 잘 썼던 것 같습니다. 라켓 성능도 성능이지만 결국 애정이 있어야 오래 쓰게 되는것 같아요. 문제는 빌어먹을 반발력이었는데, 당시엔 폴리모노계열 줄들이 유행하기 전이라 멀티필라멘트나 나일론 줄을 썼는데 텐션을 60 넘게 계속 올려도 잡히지 않는 반발력 - 뭔가 통제되지 않는 듯한 튕겨나가는 느낌 - 때문에 결국 라켓을 바꾸게 됩니다.
재미있는건, 카를로스 모야가 실제로 썼던 라켓은 퓨어드라이브가 아니라 소프트 드라이브 프레임에 커스텀 버전이었고, 무게는 320g 정도에 1 pts HH 였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프로선수들이 선호하던 340g+ / 5~10pts HL에 비하면 꽤 독특한 세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후 모야가 나달을 코칭하게 되면서 나달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라켓 세팅을 하게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의 알카라즈도 비슷한 mid-weight / head heavy 셋업을 사용한다고 알고있습니다.
3. Wilson, Prostaff TOUR 90 / 27in. / 90sq.in / 315g (unstrung, Asia ver.) / 16x19 / 7pts HL / 17mm box-flat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 라켓은 프로스테프 투어 90이었습니다. 95도 있었지만, 95부터는 박스빔이 아니라 라운드 플랫 빔이라 이건 6.0이 아니라 6.1의 후계 같더라고요. 여튼 확실히 잡힌 반발력으로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치는 재미를 줬습니다. 이때부턴 라켓 탓을 할 수 없게 되었죠. 시간이 지나서 다시 기억을 되돌려보면 사실 반발력이 잡힌게 아니라, 이 프레임 자체가 반발력이 지독하게 없어서 온전히 내 스윙으로 공을 쳐야 했던 프레임이었네요.
공교롭게 이후 나오는 모든 TOUR 90 계열은 320g (혹은 319g, oz 기준 표기라 그런듯 합니다만) 으로 발매되었는데, 첫 번째 TOUR90 아시아버전 (미국에선 일본 버전이라고 부르더군요) 은 315g 으로 나온게 특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샘프라스가 선수생활을 계속 했다면 6.0 85의 후속으로 쓰게 될 라켓이었다고 하는데, 당시에 6.0을 쓰던 선수가 샘프라스와 페더러 뿐이라 아직 랭킹이 조금 낮았던 페더러한테 이 페인트잡이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페더러는 계속 6.0 85 + PJ를 사용했습니다.)
4. 중간 라켓들 몇가지
이 기간에는 라켓을 상당히 자주 바꿨습니다. 대충 4-7년차 사이였는데요, 아직 스펙에 따른 라켓 느낌 변화를 모르던 시기이기 때문에 다양한 라켓들을 테스트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실력은 거기서 거기였고 플레이스타일도 안잡혀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라켓 바꿀때마다 오만것들이 바뀌는게 신기했었습니다.
- Wilson, H-TOUR 95sq.in / 27.25in. / 95 sq.in / 295g (unstrung) / 16x19 / 1pts HH / 22mm round-flat
윌슨 투어95 프레임에 무게만 줄여놓은것같은 라켓이었습니다. 투어95에 비해 가벼워진만큼 밸런스도 올라갔는데, 그 밸런스 때문에 팔로스로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투어95의 팡팡 튀는 반발력이 잡히는 케이스였죠.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고 편안한 라켓이었습니다.
- Yonex, RD TOUR 95 / 27in./ 95 sq.in / 335g (unstrung) / 16x19 / 12pts HL / 20-22mm
미친듯이 안나가는 라켓이었습니다. 이 라켓 이후 요넥스는 아예 안쳐다보게 되었죠. 스윗스팟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느낌고 정말 시원하게 후두려 깠을때만 나오는 단단한 느낌. 전 지금까지도 빠따가 안좋은 편이라 요넥스 라켓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 Wilson, nCode six-one TEAM / 95sq.in / 305g (unstrung) / 18x20 / 1pts HL / 22mm round-flat
윌슨 투어95 프레임 기반 변형 중 하나입니다. 덴스패턴으로 넘치는 반발력을 잡고 덕분에 늘어난 줄 무게로 팔로스루도 얻었죠.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괜찮은 조합의 셋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BLX Prostaff 시기까지 이 라켓은 꾸준히 나왔죠. 당시엔 단순 파생형이라고 생각해서 곧 사라질 것 같은 모델이었는데, 윌슨에서도 생각보다 잘나왔다고 판단했던 듯 합니다.
- Prince, Graphite Classic Oversize / 107sq.in / 330g (unstrung) / 16x18 / 5pts HL / 19mm box-flat
명성이 궁금해서 사다 써봤었습니다. 종이에 연필로 글씨를 쓰는듯한 스핀능력 - 심지어 플랫드라이브도 시원하게 나갑니다 - 면 안정성은 부족하지만 뛰어난 컨트롤, 무지막지한 팔로스로우 정말 좋은 라켓인데 문제는 제 몸이 멸치라서 세 게임 하고 나니까 스윙이 엄청 느려지더라고요...
-Wilson, Prostaff 6.1 classic 95sq.in / 95sq.in / 340g(unstrung) / 16 x 19 / 13pts HL / 22mm box-flat
아버지가 준 다른 라켓이었습니다. 단단한 프레임에 충분하지만 통제된 반발력이 특징이었는데 그냥 흥미로운 라켓 하나 정도로만 써봤습니다. 재미있는건 원그립을 벗겨내고 버트캡을 제거하면 안쪽에 5g 가량의 추가 두 개 들어있는데 그거 빼면 뺀 만큼 무게가 줄어들었습니다.
- Wilson, Hyper Prostaff 6.1 95sq.in / 스펙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프로스테프 클래식 6.1에 비하면 상당히 현대화된 프레임이었습니다. 완전히 원형에 가까워진 프레임은 반발력이 더 좋아야 정상인데, 하이퍼 카본인지 브레이디드 공법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통제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마음껏 휘두를 수 없었다는거겠네요.
5. nCode six-one TOUR 90 / 27in. / 90sq.in / 320g (unstrung) / 16x19 / 7pts HL / 17mm box-flat
결국 돌고돌아 TOUR90 시리즈로 정착했습니다. 시작할 때 들고 시작한 라켓이 참 중요하다 싶었네요. 적당히 부드럽고, 면 안정성 좋고, 휘두르기에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은 라켓이었습니다. 다시 라켓 탓을 할 수 없게 되었죠. 더이상 나오지 않는 라켓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겁이 나서, 이때부터 중고로 라켓이 나올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사다모았습니다. 다섯 자루 정도를 들고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두 자루가 공을 치면서 부러졌습니다. 라켓의 12시 방향이 주저앉는 케이스였는데 같은 증상이 두 번 정도 나왔을땐 그냥 이 라켓 특성인갑다 싶었죠. 다음 라켓으로 옮기기 전까지 세 자루를 죽 썼습니다.
페더러는 04년부터 이 PJ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물론 속 알맹이는 6.0 85와 같은 스펙이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n6.1 TOUR 90의 미국판도 6.0 85의 직계 후속이니 사실상 같은거네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요, nCoded Graphite같은건 싹 빼고, 6.0과 같은 braided graphite + kevlar로만 되어있다고 하네요. 요크 모양을 보면 6.0 85에 PJ를 올린건 아닌게 맞습니다. 추가로 05년부터였나? 클레이 시즌을 위해서 라켓 헤드사이즈를 85에서 88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공교롭게도 K-factor에서 BLX로 넘어가는 사이에 K88 이라는 라켓이 나오는데 이게 사실 페더러가 쓰던 스펙이 아니냐- 라는 카더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샘프라스가 이 라켓을 쓰죠. (샘프라스는 은퇴 이후에도 90들을 계속 써오긴 했습니다.)
6. BLX Prostaff six-one 95 / 27.in / 95sq.in / 313g (unstrung) / 16x19 / 11pts HL / 18mm box-flat
당시에 돌고폴로프와 디미트로프가 사용한다고 광고하던 그 라켓입니다. (실제로 돌고폴로프는 6.0 95 PJ를 썼고, 디미트로프는 H22를 쓴걸로 알고있습니다.) 윌슨 90들을 계속 쓰면서 느꼈던 "아주 조금만 가벼웠으면 좋겠다" 와 "아주 조금만 크면 좋겠다" 모두를 만족시킬 것 같아서 사게 된 라켓이었는데, 결론만 말하면 대실패였습니다. 대충 다섯자루를 3년정도 사용했었고, 납테이프 등으로 여러번 튜닝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네요. 실패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무게가 가벼워졌는데 밸런스는 더 헤드라이트가 되었고, 라켓 머리는 너무 가볍고 팔로스로는 부족했습니다. 그걸 납으로 잡으려고 polarized, depolarized, 그 외 별의 별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원하는 느낌을 찾는데에는 실패했죠.
곁다리로, 윌슨측에선 실패한 라켓 취급하는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6.0 95의 직계 후속이 나온 느낌이긴 한데 이게 사실 프레임 무게가 너무 가볍고 또 얇아서 조금만 쓰면 요크 안쪽에 크랙이 가는 결함이 있었죠. 바로 이후인 BLX Prostaff 95 (다른 페인트잡 모델) 그리고 남는 재고분을 100주년 기념 라켓으로 발매하고 그 뒤로는 사라진 라켓입니다. 물론 RF97 시기부터 바뀐 윌슨 라인업 정책하고도 관련이 있겠지만요.
7. BLX Prostaff six-one 90 / 27.in / 90sq.in / 320g (unstrung) / 16x19 / 7pts HL / 17mm box-flat
결국 돌고돌아 다시 돌아왔습니다. 뭐 별다른 설명할건 없고, nCode 대비 K-factor 이후로 바뀐 스트링 패턴 (가운데가 조금 더 조밀합니다.) 그리고 BLX six-one 시기부터 basalt인가 뭔가가 들어가서 (실제로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K-factor의 날카로운 느낌에 비하면 조금 더 nCode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BLX six-one 90과 BLX Prostaff six-one 90을 포함해서 대충 다섯자루 정도를 운용하다가 대회나가서 홧김에 한자루, 동네 월례대회하다가 홧김에 한자루를 해먹으면서 결국 세자루가 남았고, 불안함을 느낀 나머지 중고를 긁어모아서 BLX six-one 90 두자루, BLX prostaff six-one 90 두자루, K-factor TOUR 90 한자루, nCode TOUR 90 한자루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바로 다음 라켓으로 옮기게 되면서 신품 컨디션인 애들을 중고로 팔아버리게 되는 큰 실수를 합니다.
8. Prince, Phantom 100G / 27.in / 100sq.in / 310g (unstrung) / 16x19 / 11pts HL / 16.5mm-20mm box-tapered(?)
나이가 39가 되며 갑자기 느려진 눈과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한 근력으로 앞서 Prostaff 95와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조금만 큰 헤드사이즈에 조금만 가벼운 라켓을 찾다가, 우연히 전부터 써보고 싶어했던 Prince Graphite Classic 100 (107과는 상당히 다른 라켓입니다.) 을 써보고 어느정도 적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 라켓의 직계 후속모델을 산게 화근이었네요. 약 2년간 세자루를 사용했는데, 90시리즈를 쓸때보다 확연하게 스핀량이 늘어나고 파워도 늘어났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만족스럽게 사용하는듯 했지만...
대회를 나가서 극도의 긴장 아래에서 게임할때는 라켓 특유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좁은 스윗스팟과 미묘하게 높은 발사각으로 공이 뜨거나 혹은 아웃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스윙이 점점 작아지기도 했고 네트로 나가는게 불안해졌죠. 같은 패턴으로 매번 두들겨 맞는 느낌이 들어 결국 라켓들은 창고로 가버렸습니다.
9. 다시 라켓을 바꾸기 위해 다양하 라켓들을 시타했습니다.
- Wilson, RF97 Autograph v.11 / 27in. / 97sq.in / 340g (unstrung) / 16x19 / 12pts HL / 21.5mm box-flat
21.5mm에서 나오는 반발력을 찍어누르는 미친듯한 팔로스로우, 훌륭한 안정성, ㅈ나 무거운 무게 정도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 Wilson, Blade 98 v.5 / 27in. / 98sq.in / 305g (unstrung) / 18x19 / 3pts HL / 20.5mm box-flat
어느새 블레이드가 프로스테프보다 얇아져 버렸습니다. 안그래도 밸런스가 이븐인데 줄까지 덴스니까 라켓 머리가 정말 무거워집니다. BLX Prostaff 90 아시아보다도 스윙웨이트가 더 나가버리네요. 덴스 특유의 절제된 반발력과 낮은 발사각도는 좋지만, 스윙이 조금만 늦어져도 손목질은 불가능합니다.
- Wilson, Prostaff 97 v.12 / 27in. / 97sq.in / 315g (unstrung) / 16x19 / 10pts HL / 21.5mm box-flat
RF97A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라켓 머리는 너무 가볍고 팔로스루는 없어서 예쁘게 스윙해야 합니다. v.8 시절 문제가 되었었던 면 안정성 문제 - 특정 스팟에서 과도한 반발력 혹은 특정 스팟에서 과소한 반발력 - 은 상당수 줄어든 것 같고, 안정성은 초기 버전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가지고 놀기엔 좋지만, 공을 눌러가면서 치기엔 머리가 너무 가벼운 느낌입니다. 통제하기에 조금은 까다로운 반발력은 덤이고요. 이게 비교대상이 90이라 그렇지 보통 라켓에 비하면 안나가는 편이긴 할 것 같습니다. 6.0의 후속이라기보단 6.1의 후속인 느낌이네요.
10. 결국 현재는 돌고돌아 BLX Prostaff six-one 90 Asia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중고를 긁어모아야 하는데 이제는 구할 수가 없네요. 집에는 남는 라켓들이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하나씩 정리해야겠습니다.
처분 대상 라켓들
- Prince, Graphite Classic 100 / 27in. / 100sq.in. / 315g / 10pts HL / 20mm box-flat X 1
- Prince, Phantom 100G / 27in. / 100sq.in. / 310g / 11pts HL / 16.5mm ~ 20mm box-tapered X 3
- Volkl, V10 (295g) / 27in. / 97sq.in. / 295g / 3pts HL / 21mm round-flat X 2
- BLX six-one 95 (asia ver.) / 27in. / 95sq.in / 310g / 7pts HL / 22mm round-flat X 2
그 외 다수...
한줄요약 : 조강지처가 좋더라
저희 동네는 55로 매달라고해도 아저씨가 깜짝놀라요.
ㅋㅋ 48이 국룰이라면서 세게 매지 말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