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은 원자재 가격이 과연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가격인지 묻는다. 경제학이 말하는 균형가격은 합리적인 경제주체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물가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빌미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치솟고 있다. 경제학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원인으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꼽곤 한다.
저자는 프랑스·독일 합작 국영 방송국인 아르테(ARTE)의 지원을 받아 '가격'의 흑막을 찾아 전 세계를 취재했다. 책은 2008년 대침체, 2011년 아랍의 봄과 이라크 내전, 2016년 브렉시트, 2022년 러·우 전쟁까지 일련의 사건과 원자재 가격의 상관 관계를 풀어냈다.
1장은 2011년 중동에서 발발한 '아랍의 봄'을 조명한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중동의 독재자는 공포로 국민을 제압하려 했고, 그 결과 아랍의 봄이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세계에는 식량 부족은커녕 역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었다. 어찌 된 일일까? 이토록 풍요로운 시대에 빈곤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 저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찾는다.
2장 '원자재'에서는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원자재를 다룬다. 기관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을 찾다가 원자재 수요를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선점해 선물과 같은 파생 상품을 쥐락펴락한다. 이들은 실제로 가격이 오르는 이유가 없더라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가격을 조정했다.
3장부터는 원자재의 범주를 식량에서 석유로 확장했다. 책에 따르면 IS의 폭력 사태로 고유가 시대가 열리면서 석유 시장에서 벌어진 투기 게임의 승자와 산유국에게 그 몫이 고스란히 돌아갔다.
투기 게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산유국의 독재자들은 그 몫을 또 다른 '혼란'으로 이어갔다. 예를 들어,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전투기를 팔아 또 다른 혼란을 부추겼고 중국은 원자재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일대일로'를 시작했다.
4장 러·우 전쟁은 원자재 강국의 확장적 행보를 잘 드러냈다. 5장은 원유 가격과 전 세계 분쟁 확률의 상관 관계를 보여준다.
원자재 가격 상승의 여파는 지구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6장 베네수엘라와 7장 케냐에서는 독재자가 금융화와 투기에 심취해 국민이 더욱 굶주려가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금융 자본이 문제였다. 카오스(혼돈)이론처럼 전 세계의 혼란과 혼란의 증폭에는 처음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금융 자본의 날갯짓이 그 원인이었다. 저자는 금융 자본의 날개짓이 오늘날 무제한 양적완화와 그 여파로 이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금융자본들이 거래소에서 선물이라는 위험천만한 상품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지구 곳곳에서는 실제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불평등, 금융 불안정, 기후 변화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세상을 혼돈의 가장자리로 몰아가고 있다.
저자는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더라도 £와 € 같은 기호가 찍힌 종잇조각이 가치를 잃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미로 한가운데 있는 괴물 미노타우로스이자 시장의 진정한 광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