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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한당

잡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 (번역) 19

18
2022-06-20 10:56:27 수정일 : 2022-06-20 10:57:26 175.♡.76.139
마카로니아


본 칼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짧은 이야기이다.


지난 73년 동안 미국에 일어난 일들은 매우 간단하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가운데, 호황과 불황을 거듭해 겪었고 그 모든 과정이 뒤얽혀 현재가 만들어졌다.


본 글은 전쟁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개별의 사건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주요 사건들이 어떠한 연관성을 가졌고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만약, 당신이 1945년에 잠들었다가 2018년에 깨어났다면 급변한 세상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주요 도시인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부의 수준은 과거와 비교조차 할 수 없으며, 집값, 대학 등록금, 의료비 또한 말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 


1. 1945년 8월, 연합군의 승리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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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뉴욕타임스는 일본이 항복한 날을 ‘미국 역사상 가장 행복한 날’로 묘사했다.


그러나 ‘역사는 지긋지긋한 일의 연속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의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 인구의 11%였던 1,600만 명이 전쟁에 참전했다. 종전 당시 약 8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해외에 있었고, 그들의 평균 나이는 23세였다. 전쟁 이후 미국은 군복무를 지속하는 150만 명의 군인을 제외한 전역자들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 그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 그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요?


· 그들은 어디서 일을 해야 하지요?


· 그들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요?



전쟁이 끝난 직후, 수많은 사람은 아무 준비조차 되지 않은 미국 경제로 유입되었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는 미국 경제에 대공황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미국은 전쟁을 겪은 이후 세 가지 상황에 직면했다.


· 전쟁 중, 대부분 생산능력이 전쟁물자를 만드는 데 집중되면서 주택 건설은 현저히 줄었다. 1943년 당시 미국 내 신규 주택 건설은 매달 12,000채 미만을 짓는 데 불과했는데, 이는 미국 도시 한 곳당 1채의 신규 주택을 짓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귀환한 군인들은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 전쟁 중에 생겨난 특수 산업(선박, 탱크, 탄환, 비행기 등)은 갑작스레 쓸모가 없어졌고, 관련 산업에서 근무하던 군인 또는 노동자들은 대거 실직 상태가 되었다.


· 혼인율은 전쟁을 전후로 급증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좋은 직업을 얻기를 원했고, 새로운 집을 구해 가정을 꾸리기를 희망했다.


당시는 1929년부터 발생한 경제 대공황의 여파가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것이라는 정책 입안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컸다.


1946년, 미 경제 자문 위원회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향후 1년~4년 안에 경기 침체가 본격화될 것입니다.”라는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경제국이었던 유럽과 일본은 전쟁 피해를 수습하느라 미국의 물건을 사줄 수 없었다. 미국은 수출에 의존해 경제 회복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로 인해 불안감은 더욱 켜졌다. 또한, 미국은 전쟁 비용으로 생겨난 수많은 부채를 떠안고 있었고, 직접적인 부양책을 펼 수도 없는 상태였다. 



2. 트루먼 정부의 특별한 조치 : 저금리 환경과 소비자 계층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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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 트루먼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허나, 많은 인구가 경제로 다시 유입되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미국 전반에 두 자리가 넘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결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그리고 물가 폭등 때문에 트루먼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추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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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금리(파란선), 소비자물가지수(CPI, 빨간선)>



1951년 이전의 연준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관이 아니었다. 즉, 당시의 미 대통령과 연준은 정책을 함께 조율할 수 있었다. 1942년, 연준은 정부의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단기금리를 0.38%로 유지한다고 발표했고, 이를 시작으로 금리는 7년간 단 한 차례도 움직이지 않았다. 1950년대 중반까지 미 국채 3개월물의 수익률은 2% 미만으로 유지되었다.(YCC 실행)


※ 보충설명 : 당시 연준은 재정증권 금리를 0.375%, 1년물 국채금리를 0.875%, 10년물 국채금리를 2%, 16년물 국채금리를 2.25%, 최장기물 국채금리를 2.5%로 고정했습니다.


이 당시 연준의 YCC 도입 목적은 명백하게 시장금리를 낮게 유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장기국채를 매입하는데 집중했습니다(금리가 낮아질 수록 국채가격은 상승하죠). 그래서 연준은 만기가 짧은 재정증권을 주로 매입했습니다.


당시 뉴욕 연준에 따르면, 1945년 말 즈음에 미국 재정증권 발행 잔액의 약 75%가 연준 계정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당시 연준이 금리를 낮게 유지해야만 했던 이유는 전쟁 중 미국이 빌려 쓴 6조 달러 규모의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이 같은 저금리 정책은 전쟁에서 귀환한 군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돈을 빌려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정책 입안자들의 관점에서 이는 매우 훌륭한 정책이었고,


소비를 중심으로 한 경제 부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 년간 주요 경제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절약과 저축을 장려했던 사회 분위기는 소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시작했으며,


프린스턴 대학의 역사학자 셸던 개런은 1940년대 당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1945년 이후, 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성행하던 저축 장려 정책에서 벗어나 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노동 지도자 모두는 미국인들에게 경제 성장을 위해 돈을 쓰도록 장려했다.



소비 중심의 경제 부양은 다음 두 가지 정책에 의해 추진력을 얻었다.



첫 번째는 GI 법안으로, 1,600만 명의 참전군인들에게 전례 없는 담보 대출 기회를 제공했다. 첫해에는 계약금과 이자가 없었으며 금리 또한 매우 낮아서 이자 비용이 임대료보다 적었다. 이는 군인들이 쉽사리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나머지 정책은 정부가 소비자 신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며 폭발적인 소비를 이끈 것이다. 1950년대에 최초로 신용카드가 도입되었고, 세금 공제와 더불어 가계, 기업 대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며 소비 증진을 유발했다.


정부의 정책은 여러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다만 부작용으로 1950년대 미국의 가계 부채는 2000년대 증가세에 비해 1.5배나 빠르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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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용 호황과 억눌렸던 수요가 결합하며 경제 호황을 불러왔다.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 미국 경제는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30년대에는 대공황을 겪은 이후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는 데 집중했고, 40년대에 들어서는 전쟁을 겪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며 미국 경제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전쟁 기간에 억눌렸던 수요는 소비자 신용 증가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전쟁 기간에 미국 내 모든 공장은 전쟁물자를 만들기 위해 개조되었다. 


이로 인해 종전 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물건을 바로 만들 수가 없었다. 이는 수요를 억제했고, 전쟁이 끝나며 억눌린 수요는 다시 폭발했다.


Frederick Lewis Allan은 자신의 책 Big Change를 통해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전쟁 이후 농부는 새로운 트랙터, 옥수수 수확기, 자동 유착기를 구입했다.


농부의 아내는 그동안 살 수 없었던 하얀색 전기냉장고, 최신식 세탁기 그리고 급속 냉장기를 사들였다.


교외의 한 가족은 식기세척기와 제초기를 구매했다. 당시 소비의 급증이 얼마나 컸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상업용 자동차와 트럭 제조는 전쟁으로 인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사실상 중단되었다. 종전 이후 45년부터 4년간 2,140만 대의 자동차가 판매되었고, 이후 1955년까지는 추가로 3,700만 대가 팔렸다.


주택의 경우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고작 190만 채의 집이 지어졌지만, 전쟁 이후 1945년부터 1950년까지 700만 개의 주택이 건설되었고, 1955년까지 800만 개가 더 지어졌다.


전쟁 이후 생산능력이 급속도로 증가했고, 여기에 물품에 대한 억눌린 수요가 더해지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소비자 신용까지 더해져 미국의 소비 여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연준은 1951년 트루먼 대통령에게 “1950년까지의 총소비자 지출이 약 2,030억 달러에 달하고, 이는 1944년의 수준보다 약 40% 정도 높다.”라고 보고했다.


“전쟁이 끝난 뒤 전쟁에서 복귀한 군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백해졌다. 그들은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물건을 샀고, 낮은 비용으로 빌린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가질 수 있었다.



4. 이익이 그 어느 때 보다 동등하게 분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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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가난했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덜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미국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1948년에 1940년 대비 두 배가 되었고, 1963년에는 1948년 대비 그 두 배가 되었다.


이러한 이익은 대부분 가난했던 사람들에게 돌아갔고, 빈부격차는 이례적인 수준으로 줄었다.


1955년 기준, 임금 상위 1%가 벌어들인 소득이 총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45년 13%에서 7%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단기적인 추세로 끝나지 않았다. 임금 하위 20%의 실질 소득은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상위 5%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평등은 임금 이외의 부문에서도 이루어졌다.


기록적인 숫자의 여성들이 직업을 갖게 되었다. 미국 여성의 노동력 참여율은 전쟁 직후 31%에서 1955년에 37%로, 1965년에는 40%까지 증가했다.


또한 교육의 평준화는 생활양식의 평준화로 나타났다. 일반인들은 쉐보레를 몰았고, 부자들은 캐딜락을 몰았다. TV와 라디오는 계층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과 문화를 평등하게 만들었다.


하퍼스 매거진은 1957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같은 종류의 담배를 피웠고, 같은 종류의 면도기로 사용했으며, 같은 종류의 전화기, 청소기, 라디오, TV를 사용했다. 잘사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소유한 자동차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본질적으로 비슷한 엔진과 부속품으로 만들어져있다. 허나, 20세기 초만 해도 사람들이 보유한 자동차에 계층이 존재한다.


전쟁 이후 1945년부터 1980년대까지 빈부격차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가진 것의 대부분을 소유할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삶이 그들의 임금만큼이나 평등해졌다는 것은 본 이야기의 핵심이다.



5. 대신 그만큼 부채도 엄청나게 늘었다. 허나, 소득도 마찬가지로 늘어서 부채로 인한 영향은 당시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로운 소비문화, 대출상품 그리고 정부의 부양책과 더불어 연준의 저금리 정책까지 결합되었고, 이로 인해 1947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의 가계 부채는 5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가계 소득 증가가 동반되었기 때문에 부채 증가의 영향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 직후 가계 부채가 매우 적었던 것도 한몫하였다. 1920년대 대공황은 많은 것을 앗아갔고, 전쟁 중 가계 지출은 급격히 줄어들었기에 부채 부담도 적었다. 즉, 증가하는 소득이 동반된 가계 부채의 증가는 당시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0%를 조금 넘는다.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에는 이 비율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60% 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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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1975)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



전쟁 이후 급격하게 가계 부채가 증가한 주된 이유는 가계 주택 보유율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1900년 기준, 가계 주택 보유율은 46.5%에 불과했다. 그 후 이 비율은 40년 동안 그대로였다.


1945년이 되자 53%, 1970년에는 62%를 기록했다. 당시 인구의 상당수는 이전 세대는 사용하지 못했던 부채를 끌어다 쓸 수 있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그의 책 ‘The Fifties’를 통해 1950년대 미국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그들은 힘든 시기를 견디면서 자라난 덕분에 미래를 자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모 세대처럼 빚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집을 샀고, 가구나 가전제품도 구매했다. 그들은 집을 가졌다는 성취감을 통해 다른 많은 것들을 사들였다.



이제 여기서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몇 가지 상황을 서로 연결해보자.


당시(1950년대) 미국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모두가 함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는 부채로 만들어진 호황이었으나,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늘어나는 부채만큼 실질 소득이 함께 늘어났기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고, 빚을 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정서가 문화적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6. 하지만 영원히라는 건 없이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1973년. 미국 경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첫해였다.


그 해 시작된 경기 침체는 실업률을 1930년대 이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인플레이션도 급등했다. 하지만 1940년대 전쟁 직후 일시적으로 상승했던 인플레이션과 달리, 높은 수준이 계속 이어졌다.


1973년에 단기금리는 8% 수준이었는데, 이는 10년 전 2.5%였던 것에 비하면 3배가 넘었다.


갑자기 모든 게 황량해졌다.


미국은 전쟁 이후 20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유럽 등의 경제 대국이 폭격을 맞아 제조업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러나 1970년대가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본에는 경제적 호황이 찾아왔고, 중국 경제는 개방되었으며, 중동은 석유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미국은 대공황과 전쟁을 겪은 이후 경제적 순풍을 타고 약 20년간 경제 호황을 누렸으나, 그 시대는 막을 내렸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사회와 경제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반영되어 현실로 나타난다. 전쟁 이후 몇십 년간 경제의 규모, 형태는 많이 달라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라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소득이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생활 수준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45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국민의 대부분은 생활 방식과 소비 수준이 모두 평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즉, 소득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모두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다.


사람들의 기대는 항상 현실이 바뀌는 것보다 천천히 변화한다.


한편, 197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다. 다만, 빠른 성장과 더불어 계층 간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7. 호황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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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당시 미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한 잡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미국의 아침이 다시 밝았습니다. 오늘날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구가 출근길에 나서고 있습니다. 금리는 1980년 최고치의 절반으로 줄었고, 거의 2,000가구가 새로운 주택에서 살게 되었으며, 지난 4년 중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이 새로운 주택을 구입했습니다. 오늘 오후에만 6,500명의 젊은 남녀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며, 인플레이션이 불과 4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미래를 자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과장된 게 아니다. 1980~90년대 당시, 미국의 GDP 성장률은 1950년대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989년 실업자 수는 7년 전보다 6백만 명이나 줄었고, S&P500 지수는 1982년부터 1990년까지 거의 4배나 상승했다. 1990년대의 총 실질 GDP 성장률은 40%로 1950년대의 42%와 거의 같았다. (폴 볼커가 물가를 잡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국정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자랑했다.


-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 2천만 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 30년 이상 동안 가장 빠른 경제 성장, 30년 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 20년 만에 가장 낮은 빈곤율, 역사상 가장 낮은 아프리카계와 히스패닉계 미국인의 실업률, 42년 만에 첫 연속 흑자 그리고 다음 달에 달성하게 될 역사상 최장기간의 연속 흑자와 함께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경제를 건설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중요했다. 바로 ‘새로운 경제’였다. 1945~1973년의 경제와 1982~2000년의 경제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성장의 규모는 같았으나, 문제는 그 성장이 완전히 다른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1993년과 2012년 사이, 소득 상위 1%의 자산은 86.1%나 증가한 반면, 하위 99%의 소득은 6.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전쟁 이후 미국 경제에 일어났던 평등과는 거의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은 경제학에서 가장 불쾌한 논쟁 중 하나이며, 이는 항상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끝났다.



불평등 문제는 지난 35년간 지속되어 미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는 미국인들이 전쟁 이후 경제에 뿌리를 둔 두 가지 생각


1) 다른 미국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삶을 영위해야 하며,


2) 그러한 생활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는 ‘빚을 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과 함께 일어났다.



(그간 미국인들은 ‘삶의 평등’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앞세워 빚을 지고 소비했다.)



8. 다시 벌어지는 빈부격차


일부 미국인들의 소득 증가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그들은 더 큰 집, 더 좋은 차를 샀고, 자녀들을 비싼 학교에 보냈으며, 휴가를 즐겼다.


‘일부’에 속하지 않은 다른 모든 이들은 부자들의 생활을 광고와 인터넷을 통해 모두 지켜봤다.


소수의 부유층이 보여준 생활 방식은 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부유하지 않은 대다수 미국인의 열망에 불을 지폈다.


1950년대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평등’과 ‘다 함께’라는 문화는


‘존스네 따라 하기(Keeping Up With The Joneses effect)로 변질했다.


존스네 따라 하기(Keeping Up With The Joneses effect) :


‘이웃 효과’로 불리며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웃의 과시적 소비행태를 따라 하는 풍조를 말한다. 


문제는 명확해졌다.


연간 90만 달러를 버는 투자 은행가인 ‘조’는 메르세데스 2대를 보유하고 있고, 4,000㎡짜리 주택을 구매했으며, 자녀 3명을 모두 페퍼다인 명문 대학에 보냈다. 그는 그럴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연간 8만 달러를 버는 은행 지점장 ‘피터’의 삶은 어땠을까?


‘피터’는 ‘조’를 보며 자신도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그의 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피터의 ‘기대’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피터가 사는 세상은 그의 부모가 살았던 세상과는 크게 달라졌다. 


피터는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신용카드 빚이 4만 5천 달러나 있음에도 거액의 대출을 받고, 자동차 두 대를 임대했다. 그의 아이들은 많은 학자금 대출을 떠안고 학교를 졸업할 것이다. 피터는 그의 이웃 ‘조’만큼 여유는 없었지만, 같은 생활 방식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의 가랑이를 찢었다.


앞선 이야기는 1930년대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허나, 미국은 전쟁 이후 반세기를 보내며 가계 부채를 당연한 문화로 받아들였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중산층의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던 반면, 미국의 신규 주택가격은 50%나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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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2006) 미국 내 신규 주택 평균 가격>



2006년 미국에서 새로 지어지는 신규 주택은 1970~80년대보다 침실과 화장실 개수가 더 많았고, 4개 이상의 침실을 보유한 주택은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1983년에 18%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집은 놀랄 만큼 거대해졌다.


1975년과 2003년 사이, 인플레이션을 적용한 평균 자동차 담보 대출 금액은 12,300달러에서 27,900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대학 학비와 학자금 대출 금액도 마찬가지였다.


총소득 대비 가계 부채는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제자리걸음이었으나, 이후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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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소득 대비 가계 부채율>


2008년이 가까워진 시점에서, 과거에 비해 금리는 매우 낮았으나, 소득 대비 채무 상환액 비율은 훨씬 높아졌는데, 특히 이러한 상황은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소득 대비 부채 상환액 및 임대료 지급 비율은 최상위 소득 계층(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은)의 경우 8%를 조금 넘었지만, 50분위(소득 증가율이 50% 이하) 이하 계층은 21%를 넘어섰다.


최근 미국에 나타나는 부채의 증가세가 1950년대~60년대와 다른 점은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부채가 적은 상황에서 증가세가 시작되었지만, 최근에는 이미 부채가 많이 축적된 상태에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경제학자 하이만 민스키는 ‘부채 위기’가 시작되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부채 위기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빚을 떠안는 순간에 시작된다. 추악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이는 마치 와일리 코요테(만화 캐릭터)가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자신이 절벽에 다다랐음을 깨닫는 순간 아래로 추락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는 2008년에 일어난 일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9. 일단 패러다임이 정해지면 다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2008년, 미국은 금융위기를 겪었고, 많은 부채가 탕감되었다. 여기에 더해, 금리는 폭락했으며, 소득 대비 가계 채무 상환액은 35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이행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내놓았던 방안들은 현재의 여러 문제를 만들어냈다.


연준의 양적완화(QE)는 당시 경제의 붕괴를 막을 수는 있었지만, 동시에 현재의 자산 가격을 만들어냈고, 이는 주로 부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었다.


2008년, 연준은 파산 직전 기업들의 부채를 지원했다. 이는 부채를 소유한 사람들 즉, 부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또한, 지난 20년간의 감세 정책은 주로 고소득층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연준과 정부가 지원해준 혜택을 받아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고, 남아도는 자금으로 다양한 자산들을 사들일 수 있었다. 경제학자 바쉬카르 마줌더는 형제들 간의 소득 수준이 키나 몸무게보다 더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당신이 부유하고 키가 큰 사람이라면, 당신의 남동생도 부자일 가능성이 크다. (키는 모르겠고)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나, 이렇게 쌓여온 조각들은 모여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 


성공은 예전만큼 능력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게 되었고, 대신 성공에 대한 보상은 이전보다 더 컸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또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치 않다.


단지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전쟁 이후의 ‘평등한’ 경제는 사람들이 동등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당시의 전반적인 중산층은 체계적 불평등 없이 살았고, 몇 마일 떨어져 사는 이웃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계속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경제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좋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인상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평등하게, 똑같이 무언가를 누리고자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10. 티파티(Tea Party), 월가를 점령하라, 브렉시트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은 모두


     “달리는 차를 세워라, 나는 내릴 테니”라고 외치는 집단을 상징한다.


         (불이익과 불평등에 맞서 평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집단)



티파티(Tea Party):


미국에서 정부의 건전한 재정 운용을 위한 세금 감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 중심의 신생 보수 단체.



그들이 요구하고 외치는 것들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사회로 인해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치고 있다.


트럼프의 부상과 소득 불평등을 연결 짓는다면 비웃음을 살 수 있다. 모든 것이 복잡한 연결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사람들이 “나는 더 이상 내가 기대했던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는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뉴스 등의 매체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불에 휘발유를 붓는 것과 같다. 베네딕트 에반스는 “인터넷이 사람들을 새로운 관점에 더 많이 노출시킬수록, 사람들은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더 분노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전쟁 이후 사람들의 삶은 비슷했고, 그들의 노력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물의 차이는 적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사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 차이도 작았다. 현재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이 모든 것이 비관적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는 돌고 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사라지면 무언가가 다시 생겨난다.


실업률이 수십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실제로 이제는 부자들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을 적용한 실질소득은 하락중이지만) 또한, 학비에 대한 지원금이 증가하며 대체로 대학 학비의 상승세도 일단은 멈춘 듯하다. 



이 글의 중심 주제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현실보다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었던 기대감이 향후 35년간 지속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일 앞으로 중산층의 호황이 시작된다고 해도, 부유층을 제외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평등에 대한 기대가 계속 남아있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엔 “이건 작동하지 않는다. (This is not work)”는 레짐으로 계속 이어지곤 한다. 


또한, “우리는 지금 당장,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라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역사는 지긋지긋한 일들의 연속이다.”


출처 : https://www.collaborativefund.com/blog/how-this-all-happened/
마카로니아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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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9]
40대
IP 218.♡.195.146
06-20 2022-06-20 12:26:43
·
너무 좋은 글이라 스크랩했습니다
UMP
IP 172.♡.252.19
06-20 2022-06-20 13:09:29
·
아 이건 점심시간내에 읽을 스케일이 아니네요 ㄷㄷ
코코자
IP 148.♡.20.7
06-20 2022-06-20 13:24:44
·
ㅇㄷ 읽을거리. 감사합니다
Raul
IP 203.♡.9.16
06-20 2022-06-20 13:25:33
·
요약 : 부채와 불평등. 맞나요? ^^
꼬날도
IP 125.♡.235.165
06-20 2022-06-20 13:57:06
·
와~ 스케일이 장난 아니네요.
경제는 역사와 사회라는 큰 맥락에서 읽힐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로마목욕탕
IP 61.♡.122.58
06-20 2022-06-20 14:02:52 / 수정일: 2022-06-20 14:03:15
·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공산주의네 빨갱이네 시끄러워지지만 사실은 다르죠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고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소비자 계층 전반의 소비 여력(부채 포함)이 증가하고 호황이 옵니다
저소득층 2찍들은 그걸 모르니 평생 저 모양으로 지내는거죠
마카로니아
IP 175.♡.76.139
06-20 2022-06-20 14:10:43
·
@로마목욕탕님 이미 연준을 통해서 현대화폐이론은 실패했는데요? 불평등 좋은데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자원이 무한정으로 생산되어야합니다.
마카로니아
IP 175.♡.76.139
06-20 2022-06-20 14:11:08
·
@로마목욕탕님 지금 스태그플레이션이 왜 터졌는데요 과열 수요로 자원 공급이 부족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푸른한별
IP 211.♡.254.46
06-20 2022-06-20 14:32:11 / 수정일: 2022-06-20 14:36:27
·
@로마목욕탕님 지금 문제는 사람들이 자산이 너무 많아지니 일은 안하고 소비만하려하더라..
. ㅡ 현재 미국에서 벌어진일이죠(..)

돈이 왕창풀리고 자산가격이 두둑해지니
어 그러게 지금 보니 나 일안해도될듯 ?... .이란사람들이 생각보다많아서(..)

그래서 자산가격후려패면서 사람들 일하러가게만드는게 지금하고있는일이구여/.
로마목욕탕
IP 61.♡.122.58
06-20 2022-06-20 14:32:19 / 수정일: 2022-06-20 14:33:23
·
@마카로니아님
어... 저는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에 관해서 말씀드리는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을 손 대고자 할 때 나오는 빨갱이 논란에 대해 말씀드리는겁니다.
그래서 현대화폐이론이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제 경제적 식견이 너무 짧아서 뭐라 말씀 못 드리겠구요.

다만 위 글을 제가 이해한 건 다음과 같습니다.

위 글에 나오는 '존스네 따라하기' 풍조에 의해 저소득층이 감당 못할 부채까지 늘어나는게 '이웃 효과'라고 설명되어 있네요.
1) 그것이 수요 폭발-과열 수요이고, 그로 인해 부채가 급등했다
2) 이 과다 부채로 인한 각종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특히 90년대 이후에는 저금리-양적완화로 대응했다
3) 이것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위기가 발생했다
저는 이렇게 이해했어요. (잘못 이해했다면 제가 독해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에 필요한 자원이 무한정으로 생산되어야 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만...
그 생산된 자원이 저소득층에 골고루 분배되어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어 '이웃 효과'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다한 부채가 발생하고, 그로 인한 대응 과정에서 양털을 깎고...
지금의 '양털 깎기' 퍼레이드가 무한정으로 지속되겠죠.
그런데 무한정 양털 깎기 퍼레이드가 지속가능하겠습니까?
양털이 점점 줄어드는 판국인데요...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코뮤니즘 in USA 얘기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망상입니다 망상 ㅋㅋㅋ)

아~ 그리고 첫 댓글에 이렇게 좋은 글을 공유해주신데 대한 감사의 문장을 남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로마목욕탕
IP 61.♡.122.58
06-20 2022-06-20 14:40:37 / 수정일: 2022-06-20 14:47:08
·
@푸른한별님
뭐 그것도 노동 소득보다는 자산 투자 소득이 아득히 앞서니까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거 아니겠습니까?
일반적인 저소득층은 투자 소득보다는 노동 소득의 비중이 더 높습니다.
주변의 고소득층이 투자 소득을 통해 자기 노동 소득의 수 배를 벌어 들이니 자기도 달려들고 싶겠죠.
그리고 실제로 이익을 보니 노동보다는 자산 투자에만 신경 쓰게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회의 혁신 역량은 줄어들고요
혁신 역량이 줄어들면 그 나라 경제 전반의 생산량도 늘어나기 어렵지 않겠어요?

그런데 뭐 그냥 이것도 큰 싸이클의 일부분이겠죠.
그저 싸이클이 돌아가는 과정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싸이클의 변동폭이 너무 커져버리면... 그 변동 과정에서 쓸려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안타까워서 그렇죠.
(그리고 내가 쓸려 나갈수도 있습니다 ㄷㄷㄷ)
베르티바
IP 182.♡.42.93
06-20 2022-06-20 16:20:23
·
@로마목욕탕님 불평등 완화가 어느 한 국가의 생산성 증가로 당연히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오히려 미국에서도 자주 나오는 얘기처럼,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 기회가 더 넓을 때 생산성이 높게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로마목욕탕
IP 61.♡.122.58
06-20 2022-06-20 16:30:30 / 수정일: 2022-06-20 16:30:36
·
@베르티바님
저도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 기회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는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는 상위 계층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요.
저는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 = 계층 간 이동 기회 감소"의 등식이 어느 정도 맞다고 봅니다.
특히나 미국이나 한국 같이 어느 정도 완숙된 경제에서는 저 등식이 거의 부합한다고 보여져요.
pureoul84
IP 1.♡.99.139
06-20 2022-06-20 14:51:21
·
잘읽었습니다 스크랩도 했습니다 ㅎㅎ
잉여다
IP 61.♡.116.77
06-20 2022-06-20 15:15:51
·
요약하자면

1. 2차대전 이후 트루먼시기
- 전쟁이후 1600만명의 참전군인 실업 예정자 발생우려
- 저금리로 돈을 풀고 소비를 조장하며 경제를 일단 키움
- 전세계 제조업이 초토화 되있기때문에 미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가지면서 버블이 생긴 경제를 지탱
-> 경제는 성장하는데 빈부격차는 줄어드는 마법같은 일이 25년간 일어남

2. 오일쇼크 시기
- 오일쇼크, 유럽과 일본의 추격등 여러 외적인 요인으로 침체경험
- 경제 환경의 변화


3. 오일쇼크 이후,
- 다시 호황이 도래했지만 부자들의 자산만 증가하는 호황이 도래함
원인과 이유를 다루는건 매우 정치적이고 불쾌한 이야기라 생략하지만 어찌됫건 결과는 그렇게 나옴
- 2차대전 이후 사회적인 평등이 기본적 가치였던 미국인들은 급격한 불평등에 점차 세상이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
- 인터넷은 이 현상을 더 부채질
- 일부 미국인들은 남들에게 뒤쳐지는것을 참지 않고 빚을내서 소비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로인해 그것조차 실패함
-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후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내가 원했던 미국이 아니야" 라는 심리를 가지게 하고 이것이 트럼프의 부상에 큰 힘을 줌

전 대충 이렇게 이해했네요
베르티바
IP 182.♡.42.93
06-20 2022-06-20 16:09:22
·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만들고, 사람들이 저축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게 사실 국제정세가 매우 안정적이지 않으면 위험한 거죠. 전쟁나서 사람들의 현금흐름이 끊길 불확실성이 생긴다거나 하면, 오히려 외부 충격을 더 강하게 맞게 되거든요. 그런데 미국은 압도적인 국력으로 거시적으로는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있을지언정) 그 덕택에 금리인하라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수요 부양을 매번 해내고 있는거죠. (금리 수준 대폭 인하 → 미래의 소비를 당겨 쓰는 것의 비용을 크게 낮춰버림 → 대중들의 소비 수요 증가 → 총수요 증가 → 기업 수익 증가 → 임금 증가 → 선순환) 놀랍게도 미국의 도전적인 정책은 100년 가까이 대체로 성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부양 정책이 뒤늦게 발목이 잡힐 때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네요. 지금처럼 국가수요의 국면이 빠르게 수요 부양이 필요한 상황에서, 수요 억제가 필요한 고물가 상황으로 바뀌는 것, 결국 시장에서 메이져 영향력을 가진 참가자는 이러한 불확실성 앞에서 자산 포트폴리오를 현금 위주로 편성할 수 밖에 없게되죠. 본문에 따로 나온 내용은 아니지만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 경제정책사를 쭉 훑어보니 이거 어? 어느 나라 트렌드랑 무진장 비슷하군요 ㅎㅎㅎ 문제는 그 나라는 기축통화를 갖고 있지 않아서, 달러 금리 인상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패리티율에 의해 경제 환경이 출렁거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거죠.
로마목욕탕
IP 61.♡.122.58
06-20 2022-06-20 16:31:37
·
@베르티바님
혹시 그 나라 통화는 KRW인가요? ㅎㄷㄷㄷ
삭제 되었습니다.
알렉쎄이
IP 61.♡.207.12
06-21 2022-06-21 16:40:33
·
좋은 글 감사합니다.
hello
IP 210.♡.21.239
06-22 2022-06-22 11:17:36
·
아.. 시야가 넓어지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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