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의 2007 -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사람중에 한명인 마이클 버리가 본인이 어떻게 금융위기를 예측할 수 있었고 금융위기가 일어나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하는 강의의 번역을 나눕니다.
동명의 책을 각색한 영화 빅쇼트에서 크리스챤 베일이 마이클 버리를 연기 했고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하죠. ㅎㅎ
7초쯤에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한글과 영어 그리고 금융지식이 모두 서툴러서 어색하거나 틀린 번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하면서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단어나 개념 그리고 문장 뒤에 원어를 적어두었습니다.
내용의 이해를 해치는 번역을 발견하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의는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수 있고 필기록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동영상과 필기록의 링크은 본 글의 제일 밑에 있습니다.
번역의 시작은 동영상의 시작을 기준으로 하였고 번역은 100% 필기록을 보고 했습니다. 필기록은 동영상 전에 나오는 약간 잡다한 (그러나 중요할 수도 있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작-
싸이언 펀드를 시작하고 얼마 안되서 주택 분야의 중요성이 커져갔고 저의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주택 레버리지의 양과 종류, 집값은 언제나 오른다는 여러 세대에 걸친 믿음(assumption) 그리고 사회 많은 사람들이 주택 분야에 참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단지 몇 명의 얼리 어답터나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이 나쁜 짓을 하는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 소비, 일자리, 증권 시장을 포함한 모든 경제가 집값 상승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주택을 시작으로 재정적 아마겟돈이 곧 닥칠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장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예측할때 저는 다시 한번 정부의 행동과 민간의 반응에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가 10년전에 시카고에서 연구한 것과 들어맞는것이 많았습니다 (필기록을 보시면 예전에 어떤 연구를 했는지 나옵니다).
잠시 주택에 관련된 역사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지난 100년 가까이 아메리칸 드림에서 주택소유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현대 대통령들이 어떤식으로든 집을 사는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군인들이 돌아왔을때 집을 사는 것을 도와주었고 1970년대초 최초의 주택담보대출 포트폴리오를 증권화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간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이 증권화되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2차 모기지 시장 강화법(Secondary Mortgage Market Enhancement Act)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안은 연금회사와 보험회사가 증권형 모기지에 투자 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얼마 후 레이건 대통령은 이 증권에 세금 혜택을 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주택담보의 증권화는 대출 기관에서 비롯되는 주택담보의 양에 거의 제한이 없음을 의미했습니다(To be clear, securitization of mortgages meant there was nearly no limit on the amount of mortgages originated by lending institutions.) 모든사람들이 이것이 해롭지 않고 아메리칸 드림에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을 만족시키려는 이 욕망에는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 도구를 사용해 소득, 신용 또는 자산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 융자를 훨씬 더 저렴하게 만들었습니다.
1982년 예금 기관 법 (The Depository Institutions Act) 덕분에 미국에서 변동금리 모기지가 합법이 됩니다. 이 변동금리 모기지 또는 티저(Teaser)금리 모기지는 25년 후 다양한 형태로 주택 파열의 중심에 있는 주요 모기지 상품이 됩니다. 90 년대와 2000 년대 초반에 규제와 법이 추가적으로 변하면서 적정가격 제품(affordability products)의 시장에 시동을 걸기 전까지는 변동금리 모기지가 큰 인기가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90 년대에 로버트 루빈 재무 장관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77년에 제정된 지역사회 재투자법 (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재해석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요점은 은행이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 더 많은 대출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루빈 재무 장관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렇게 했습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는 90 년대에 미니 붐을 맞았습니다. 미니 붕괴가 오기전 10 년 동안 약 5 배의 모기지가 발행되었습니다. 빌 클린턴은 이 동력을 The National Homeownership Strategy 라고 불렀습니다.
1999년 Gramm Leach Bliley 법은 1933 년 Glass Steagall 법을 없애고 점점 더 균열이 커지던 월 스트리트와 예금 은행 사이 활동의 분리를 공식적으로 제거했습니다. 이로 인해 은행은 새로운 비즈니스 라인을 실험하고 확장 할 수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운명적일 수 없는 파생 상품과 자산 기반 증권화(asset backed securitization)의 실험 말입니다. 따라서 민간 시장은 주택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모든 노력에 매우 큰 큐모로 반응을 할 수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 1999 년을 잘 기억하지만 사실 우리 지구촌은 90 년대 내내 정말 많은 위험을 과소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식 시장 붕괴, 엔론사태, 9/11, 월드컴 사태, 그리고 전쟁마저도 해결(deal with)해야했습니다.
연방 준비 은행은 경기가 나빠지는것을 막기 위해 은행에 부과하는 할인율을 6%에서 약 1 %로 낮추었습니다. 다른 주요 단기 금리가 뒤따랐습니다. 수십 년 동안 가계 소득의 변화와 큰틀에서 비슷하게 움직였던 미국 집값이 2001 년부터 2003 년까지 갑자기 가계 소득 추세선에서 멀어지면서 빠르게 오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집값이 그러한 차이를 보인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2001 년부터 2003 년까지 단기 금리가 대공황 이후 최저로 빠르게 떨어져서 변동금리 모기지 붐을 일으켰습니다. 티저 금리 기간 동안 집을 가진사람의 달러가 훨씬 더 강세이기 때문에 집값이 부자연스럽게 올랐습니다. 하지만 재융자 옵션 덕분에 집값이 빠르게 오르는 한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완전한 축복과 함께한 파지티브 피드백 고리(a positive feedback loop)였습니다.
사실 2003 년 주택 시장이 빠르게 올라서 사람들이 두려워 할때 연준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부동산의 국가적 거품은 절대 없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확언하였습니다. 저는 주택의 국가적 동향을 조사하면서 역사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전례를 적용을 하는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건지 궁금했습니다. Greenspan 의장은 2004 년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변동금리 모기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2005 년 그는 서브 프라임을 빌린사람이 주택을 구입할 수있는 제도를 칭찬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불행하게도 연준은 사람들이 마땅히 막아야 한다는 대출 관행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쨌든 2003년 모기지 금리는 40 년 만에 최저치로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전형적인 변동금리 모기지가 이미 널리 쓰이게 됩니다. 성장을 해야하는 대출 기관에게 큰 문제였습니다. 대출 기관들은 안정적인 모기지 금리와 불충분한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대출량을 자극해야했습니다. 이 시점에 주택 가격이 크게 상승하려면 구매자에게 제공된 모기지 크레딧의 유형과 품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자율만으로는 더 이상 경제성(affordability)을 알아낼수 없게 되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이것을 “금융상품/수단(instrument)을 통한 신용연장”이라고 불렀고 우리 주택 시장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민간 시장이 과잉 반응을 보일 시간이 왔습니다. 2003 년에 대출 기관이 서브 프라임 채무자를 위해 선택한 도구는 1920 년대의 유물로, 이자만 지불하는 옵션이 붙은 변동금리모기지였습니다. 대출 기관은 오랫동안 피했던 모기지 기능을 사용함으로써 신용 기준을 유지하는것보다 성장에 더 관심이 있음을 모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2004 년 가을, 저는 투자자들에게 전체 대출이 24 % 감소하는 가운데 대규모 모기지 대출 기관인 Countrywide Financial의 서브프라임 대출이 전년 대비 158 % 증가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증거가 분명했습니다. 은행이 불량 신용을 쫓고있었고 주택 투기꾼도 뛰어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그들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였습니다. 사기(fraud)가 급증했습니다. 신용 규정이 가장 느슨한 지점이 자산의 최대 가격 지점을 나타낼겁니다. 서브 프라임 수준의 주택 구매자들이 매월 거의 제로에 가까운 티저 요금으로 서브 프라임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모기지가 나올때 주택 시장의 정점을 찍을거라고 상상했습니다. 저는 대출 기관이 이 상품을 최대한 이용할거란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증권화 덕분에 은행이 소유하고 싶지 않은 대출은 언제나 월스트리트를 통해 수익에만 굶주린 투자자에게 매각 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하게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증권화 되었고 의무적인 규제 신고가 있었기 때문에 문서를 통해 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05 년 여름에는 이자만 내는 모기지가 서브 프라임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이자만 내는 모기지가 월스트리트를 통해 투자자에게 넘어가고 있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풀의 40%이상을 구성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 년 전에는 불과 10 %였습니다. 동시에 2 차 담보 모기지가 늘어 났고, 소득을 확인하지 않는 옵션은 liar loans라는 새로운 방언(vernacular)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부 모기지 풀에서 서브 프라임 대출의 40 %는 두 번째 주택 또는 별장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05 년 말까지도 증권화 프로세스에 매우 중요한 Moody’s 와 S & P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최고가는 곧 우리를 덮치게 됩니다. 이자만 내는 서브 프라임 변동금리 모기지가 판매 채널 침투(maximum sales channel penetration) 최대치에 도달하면서, 페이 옵션 adjustable rate mortgage(pay‐option ARM)이라는 더욱 극단적인 티저 이자율 모기지가 광범위하게 도입됩니다. 과거 표준화된 형식으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모기지를 빌리면 대출자가 매달 거의 아무것도 지불 하지 않고 미지급된 이자가 모기지 잔액에 거꾸로 상각됩니다. 만연한 cash-out refinance가 이미 집을 마법의 ATM으로 만들었고 이제 주택은 마법의 신용 카드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대출 기관과 투자자는 이 상품에 신의 가호를 빌어주었습니다. 최고 신용, 이것이 제가 기다려온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기지 상품은 주택 가격 상승이 주요 가정일때에만 존재할수 있고 이러한 모기지 상품이 존재했기 때문에 주택 가격 인상은 계속될수 없었습니다. 모기지 상품의 일부는 서브 프라임 채널에도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005 년 이 모기지가 Alt-A 모기지 증권화로 패키징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알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월가로 팔리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주택 융자 분야의 두 대기업인 Washington Mutual and Countrywide는 지불 옵션 adjustable-rate mortgage들을 자신들의 대차 대조표에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대출 규모가 또 다시 둔화되자 이 회사들은 둔화되는 대출 성장을 위해 마이너스 상각 기능을 써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은 대출 개시가 둔화 되는 경우에도 주택 가격 안정성에 대한 확신을 표명했습니다. 물론 신용 평가 기관,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의회, 대통령, 대통령의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집값이 횡보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안정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생각했습니다. 주택 가격 인상이 더 이상 주요가정이 아니라면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모기지는 사라질 것입니다. 최고 신용에 굶주린 주택 가격은 필연적으로 하락하고 모기지 옵션이 무너지면서 가파르게 하락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 위기는 2007 년 이전 그러니까 새로운 유형의 모기지 대부분의 티저 금리 기간이 만료되거나 재설정 되서 주택 구입자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없는 모기지를 떠안을때 시작합니다. 그리고 집값이 떨어질때 주택은 소비자 지출과 일자리를 같이 빼앗으면서 매우 해로운 파지티브 피드백 루프를 셋업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기지 시장을 매도하고 붕괴로부터 이익을 얻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브 프라임 RMBS(Residential mortgage-backed securities)의 후순위 트랜치(tranche)에서 신용 디폴트 스왑을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월스트리트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수준의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다른 월스트리트 은행에 전화를 걸어 저와 거래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처음에는 사겠다는 은행이 없었습니다.
신용 디폴트 스왑 구매를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했습니다. 이 증권이 표준화가 되는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야 제가 한 딜러로부터 신용 불이행 스왑을 구입하면 같은 스왑을 다른 딜러와 쉽게 거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if I bought a credit default swap from one dealer counterparty, I could easily trade the credit default swap to another dealer counterparty). 맞춤형 단발성 스왑은 계약과 계약당사자 위험(full of contract and counterparty risk)이 가득했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 년 5 월에 우리는 Deutsche Bank와 첫 서브 프라임 모기지 시장 공매도 거래에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곧 표준화 될 계약서 내용을 약간 다듬었고, 2005 년 6 월의 첫째날 첫 번째 거래가 마침내 성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9 개의 딜러를 사용하게 됩니다. 리먼과 베어는 피했습니다. Goldman Sachs가 두드러진 특징을 이룹니다(Goldman Sachs would feature prominently).
확실히 하자면, 이러한 신용 부도 스왑은 모기지가 손실을 입으면 가치가 상승합니다. 이제 저는 수백억의 모기지를 공매도하고 싶었습니다. 엄청난 투자 기회였고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뻔뻔하게 조지 소로스를 언급했습니다. 저는 공매도를 위한 별도의 vehicle을 설치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영문학 전공자들은 이해하실텐데 2005 년 여름에 vehicle의 이름을 '밀튼의 작품'이라고 짓습니다. Vehicle을 만드는 시도를 하면서 제가 아무것도 팔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제 투자자들은 저의 아이디어에 매우 회의적이었고 외부 기관에 아이디어를 제시하자 기관은 본인들의 공매도를 시작했습니다(they simply went off to do it themselves). 밀튼의 작품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밀튼의 작품은 실락원이고 우리가 실락원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혀 의심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2005 년 말까지 아직 저만 시장에서 공매도 방향이었습니다. Goldman과 DB가 특별히 제가 하는 일에 매우 관심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주택담보대출저당증권 약 18 억 달러를 공매도하고 AIG, Countrywide, Washington Mutual, Fannie Mae, Freddie Mac을 포함한 기업 크레딧을 약 66 억 달러를 공매도하게 됩니다. AIG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왜냐면 AIG가 파생 상품 거래를 할때 AA 이상의 등급을 받는 한 담보를 게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Goldman Sachs, Bank of America와 신용 계약 협상을 하던중 이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다음의 이론을 세웠습니다. AIG 등급이 떨어지면서 AIG에 대한 수요 폭증이 과거 2005 년 4 월까지의 추가담보 요청으로 나타날 것이라고요. 아무도 이것을 이론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몇 년 후 AIG를 불필요하게 국유화하게 되고 납세자들이 약 1,800 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하게 됩니다.
2006 년 2 월 마침내 신용 평가 기관이 특정 서브 프라임 모기지 풀에 대해 더 많은 담보의 요구하면서 대응했고 우리는 모기지에 대한 CDS 구매를 완료하게됩니다. 실제로 전국 부동산업자 협회에 따르면 그 무렵의 신규 주택과 중고 주택의 중간 가격이 2005 년 8 월에 비해 하락했습니다. 2005 년 여름 조기 모기지 채무 불이행률이 새로운 주택 재고의 과잉과 마찬가지로 기록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기사에서 어느 정도의 공황이 확인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 혼자만 본것을 세상이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이 지나면서 10년 미국 국채의 수익율과 30년 모기지 금리의 차이는 계속 줄어들었고 모기지의 함축된 위험이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왜 시장이 적절한 경고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했습니다. 그 이유는 2005 년 말에 신용 파생 시장이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막는 기술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까지 correlation trader가 가장 하급이고 판매하기 어려운 분할 발행을 빨아 들이면서 서브 프라임 RMBS의 Credit Default Swaps에 의존하는 CDO (Synthetic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RMBS에 대한 신용 디폴트 스왑 시장을 추적하는 거래 가능한 ABX 지수가 등장했습니다. 이 지수는 투자자 및 correlation traders과 같이 많은 분석없이 많은 수익을 쉽게 얻을 수있는 방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Synthetic CDO와 ABX 지수는 서로 함께 위험을 광범위하게 분배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실제 모기지에 비해 위험이 기하 급수적인 방식으로 분산되었습니다. 이것은 월가의 위험 모델이 어떤 예상을 하던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명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단 한개의 위험 모델을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2006 년은 체계적 위험이 과대화 된 해가 됩니다. 한 예로 Merrill Lynch가 2006년에 서브 프라임 노출을 수십억에서 500 억 이상으로 늘렸습니다. 궁극적으로 Merill은 400 억이 넘는 모기지 자산을 탕감해야했습니다. 사실상 2006 년 이전에는 그 어떤 모기지 자산도 메릴의 장부에 없었습니다. 이 해에 월스트리트가 확실히 걸려들었습니다 .
2006 년이 시작되고 투자자들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지금 일어나는 일은 오직 한가지의 궁극적인 결과만이 존재하는, 최저의 수익이 최고로 빠르게 증가하는 레버리지를 조장하는 운명의 비극일뿐입니다. 규제 당국이 아무것도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입니다.” 잠시 코멘트를 하자면,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투자자들에게 2006 년이 우리에게 어려운해가 될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우리의 상대 딜러들은 우리의 CDS 장부에 가격이나 점수를 매겼습니다. Goldman Sachs 및 Morgan Stanley와 같은 딜러와 이 점수의 유효성을 따지는 지속적인 싸움은 터무니없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RMBS CDS 거래를 side pocket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Their purpose is to separate illiquid, hard-to-value, and often highly risky assets from other, more liquid assets.)
투자자들이 매우 화가 났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홍콩 사무소를 닫고 직원들 급여를 삭감하고 해고 했습니다. 우리는 소송협박을 받았으며 정말 최악의 시기인 2006 년 12 월에 펀드 청산을 고려해야했습니다. 저는 대신 수십억 개의 기업 신용 불이행 스왑 숏 포지션을 급매 비슷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곤경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딜러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먹으려 했습니다. (그당시 저에 대한 보도는 나쁜 보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숏 포지션을 달러당 0.1 페니 미만을 받게되고 우리의 실적은 더욱 악화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엄청난 매도는 우리 포트폴리오에서 추정상 수십억의 이익을 삭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분석이 옳다는 것을 알았고 비방하는 사람 중 누구도 세부 사항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유지할수 있는 포지션을 유지했고 2007년에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조차 쉽지는 않았습니다. 최근 Carl Levin 상원 의원은 우리가 이미 알고있던 것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우리의 월스트리트 은행 거래처 (9 명 모두)가 우리를 끝까지 망치려고 시도했습니다. 거래처들이 우리의 포지션에 매긴 점수 혹은 가격을 가지고 한 장난질에 대해서 밤이 새도록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Levin 상원 의원은 특히 Goldman을 조사하고 있었고 Goldman이 신용 부도 스왑의 가격을 낮추는 "short squeeze"을 채택했음을 보여주는 이메일을 공개했습니다.
Goldman의 고위 간부 Mr. Swenson은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는 월가에서 이 쇼트를 죽이기 시작해야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사기를 완전히 잃을겁니다." 또 다른 이메일에서 우리가 "최대의 고통" 을 느끼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일어난 일을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골드만이 빠르면 2006 년 12 월부터 우리 쪽으로 옮겨 왔고, 2007 년 봄 더 큰 규모로 거래에 뛰어 들려고 했다는겁니다. 그래서 Big Short의 더 낮은 가격이 Goldman Sachs에게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Wall Street가 운영되는 방식입니다. 2007 년 6 월 말에 신용 폭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Goldman과 다른 은행이 저와 같은 편에 들어서자 신용 폭이 걷잡을 수 없이 상승했습니다.
이제는 AIG가 Goldman의 가격에 대해 불평 할 차례였습니다. 놀랍게도 나중에 보고된걸 보면 최고점에서 60 조 달러 이상의 신용 파생 상품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60조 달러를 과장해서 표현하면 "60조 달러는 지구에서 생성 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보다 큽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총생산이 얼마인지 누가 정말로 압니까? 그래도 60 조 달러라니 어떻게 된걸까요? 기초 자산에 대한 신용 파생 상품은 모든 자산 담보 파생 상품이 현금으로 결제되기 때문에 자산보다 몇 배 더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Doomsday Machine의 비밀 소스(sauce)였습니다. 그렇게 위기가 펼쳐집니다. 시장은 너무 늦게 신호를 제공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 버냉키 연준 의장과 행크 폴슨 재무 장관은 상황을 계속해서 과소 평가했습니다.
저는 졸도할것 같았습니다. 이제와서 폴슨 장관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합시다. 행크 폴슨은 THE Goldman Sachs에서 사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최고직에서 일하다가 2006년 여름 재무 장관으로 갓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AIG, Fannie Mae, Freddie Mac 및 월가의 구제 금융에 대한 정부 인수를 조율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무력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다른 누구보다도 사태에 대해 먼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 그렇게 느꼈다면 이 일은 정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굉장히 충격적인 흔적입니다.
사실, 이 위기에 관한 책과 기사가 급증함에 따라 실패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겪고있던 거의 모든 주요 기관과 미국 정부의 모든 관련 부서에 저와 같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보다 더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단 한명도 높은 지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CEO, 주지사, 회장, 의장이 이러한 상황을 보지 못했고 그들의 고객과 지지층에게 적절한 대비를 해주지 않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리더를 선택하고 권위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흔적입니다. 그러나 2008 년에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았습니다. 2008년 하반기까지 정부는 징벌 소환장으로 상품 헤지 펀드 매니저를 표적으로 삼았고, 소위 투기꾼, 헤지 펀드, Fannie, Freddie, AIG의 국유화와 그 부채, Federal 리저브의 활짝 열린 통화 정책과 TARP에 대한 전반적인 공격을 보고 저는 위기의 진짜 원인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미래가 걱정되었습니다.
역사적인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미국은 독약을 치료제로 선택했으며 두 번째로 큰 세대는 결코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the second greatest generation would never be born). 오늘 저는 미국 정부가 차압 위기와 기업 및 공공 재융자 고비을 넘어 차기 대통령 임기까지 쉬운 자금 정책을 계속 쓸거라고 예상합니다. 정크 본드의 경우 – 믿을 수 없을 정도로 – 최고가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양적 완화가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하는 일에 대한 잘못된 확인방법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통화를 약화시키면서 큰 희생을 치르는 도박입니다. 버냉키는 돈을 인쇄하지 않고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현재 저는 연방 준비 은행에서 양적 완화 (Quantitative Easing 2) 덕분에 매일 70 ~ 80 억 달러 정도의 국채 화폐화하고 있다는 이메일을 매일 받습니다. 사실, QE II – 엘리자베스 여왕(Queen Elizabeth II)이 아니라 양적 완화 – QE II의 규모와 폭은 재무부의 필요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정부가 사회에 현금을 투입하고 은행, 중개인 및 소비자를 구제 할 목적으로 돈을 빌리는 것은 - 근시안적이고 쉬운 전략은 장기적인 가시밭길로 이른다는것을 아직 배운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 근시안적이고 쉬운 결정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구, 필요, 두려움의 심도있는 재평가를 돋우기 위해 필요한 카타르시스를 달성 한 적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년에 제정된 금융 개혁때문에 명목화폐(fiat currency)와 activist 연준 (activist가 activist investor: 활동 투자가에서 쓰일때와 같은 용도로 쓰이는것 같습니다)이라는 불량한 쌍둥이가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연방 준비 은행은 광범위한 규제 권한을 새로 획득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및 금융 분야의 어떤 방법도 위기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결론은 쓸모 없습니다. 우리가 또 같은 실수를 할 것이라는걸 보장할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들에게 불만이 있습니다. 저는 리더들의 엄청난 실수를 고찰할 때 몇 차례나 당황했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더 나은 리더가 필요하지만 솔직히 이 요구는 충족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안정적인 토대로 돌아갈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얻으려면 세금을 인상하고 조세상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야하며 지출을 삭감해야 합니다. 주택 소유는 절대로 미국 정부의 정책이 되어서는 안되며 은행 시스템은 상당한 개혁이 필요하고 은행의 해체도 필요합니다. Glass Steagall은 강력한 형태로 다시 한번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2,250 만 명의 공무원들은 납세자를 상대로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없습니다 (And those 22.5 million public workers have no business unionizing against the taxpayer.) 아마도 하지 않을거 같지만 (정부가) 해야하는 일은 끝이 없습니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1 조가 의미하는 바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1년 동안 개인이 내는 소득세를 모두 더해도 1 조 달러가 되지 않는데 2020년이 되면 국가 부채의 이자만 1 조 달러를 넘을수 있습니다. 정부의 현재 1 조 7 천억 달러의 연간 적자를 고려할 때 재무부가 연간 2 조 달러 조금 넘게 받는 것도 기억하세요. 현재 엄청나게 부푼 연방 준비 은행이 보유한 은행부채와 정부부채가 우연히 대략 2조정도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2조 초는 64,000 년입니다. 우리나라의 계산은 무서울 정도로 크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 계산이 작동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Our country’s math is scary big, but what’s even more scary is that it simply does not work.) 만발하는 번영과 경제 회복을 주장할때는 모든 부채와 인쇄되는 모든 돈이 실제 청구서라는것을, 그러니까 앞으로 내야하는 실제 세금이라는 사실을 같이 고려해야합니다. 저축하는 사람과 고정 소득을 받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except with respect to savers and those on fixed income.) 따라서 개인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As such, sober analysis on the part of the individual is paramount).
우리 사회는 언제나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고 종종 매우 오랜시간 잘못된 길로 갈때가 있다는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내기위해 사회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것이 틀린것이 아니라는걸 기억해야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유산은 끔찍하고 치명적인 부담입니다. 그리고 커리어 경로와 삶의 선택을 할때는 상식을 따라야 합니다. 책임감있는 사람은 누군가 맹목적인 믿음을 따를때 믿음의 정도에 관계없이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대충 넘어가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을 따르는것은 더더욱 안됩니다. 이 모든걸 고려해 볼때 캐나다에서 소매 은행 계좌를 여는걸 제안해봅니다.
다시 한번 주목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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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anderbilt.edu/2011/04/13/michael-burry-transcript/
영화가 아닌 원문을 접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해서 이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할 능력을 길렀으면합니다. 미국전 인구가 흥청망청 미쳐돌아갈때 세류의 모순을 발견하는 안목, 그것을 파생상품화 해서 수익모델로 연결시키는 능력,... 대단합니다.
여담으로 크리스찬베일은 정말 대단한 배우같아요. 버리는 의안을 착용하고 있어서 한쪽눈의 시선이 부자연 스럽죠. 이걸 연기해 냅니다. 버리역을 버리가 봐도 놀라운 장면이죠.
정성들인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