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끔씩 등장하는 골키퍼 퍼렁곰입니다.
저는 지금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와있습니다.
여기서도 혹시 축구를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축구장비를 챙겨왔는데
다행히 대학교 내 축구 서클을 찾아 축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곳에 와서 처음 축구했을 때는 매우 놀랐었습니다.
충격이 엄청 컸습니다. 나도 나름 축구를 오래한다면 오래했는데, 이 친구들이랑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 같고 그랬었더랬죠.
몇 번 차다보니 이런 충격은 사라졌습니다.
무슨 프로와 아마추어 수준의 격차도 아니고... 그냥 낯선 외국애들이랑 하다 보니 처음에 긴장했었던거죠.
다만 우리나라 축구와 다른 점이 보입니다.
사실 그냥 조금 다른게 아니라 좀 심각할 정도로 많이 다릅니다.
축구 스타일도 다르고, 애초에 축구라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축구팬들은 흔히 일본축구를 '패스 축구'라고 정의하는데,
정말 문자그대로 이 친구들은 '패스 축구'를 합니다.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신경질적일 정도로 롱패스를 싫어한다.
전진 롱패스는 절대로 안 합니다.
거짓말 안 하고 여기 와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씩 높게 뜬 로빙패스를 하긴 하는데, 사이드에서 반대쪽 사이드로 보내는 횡패스 뿐입니다.
심지어 공격 작업 시 사이드 돌파 후에도 크로스보다는
짧고 낮은 패스를 통해 페널티 에어리어에 볼을 배급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크로스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페널티에어리어에 최대한 접근해서 짧고 정확한 크로스를 하죠.
수비 시에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어도 수비수들이 절대로 볼 클리어링을 안 합니다.
역시 단 한번도 볼 클리어링 해주는 수비수를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높게 뜨는 공에 대한 기피증이라도 있는 듯 수비수들은 볼을 탈취해내려고만 하고, 걷어내는 행위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는 골키퍼에게도 적용되는데, 골키퍼가 골킥을 찰 때 하프라인을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넘길 줄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무조건 수비수에게 패스해서 최종수비라인부터 빌드업을 시작합니다.
2. 만들어 가는 작업을 중시한다.
위의 1번과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항상 후방빌드업부터 시작해서 슈팅으로 공격을 마무리하기까지 흔히 말하는 '예쁜 축구'를 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활발한 패스 작업은 필수죠. 그래서 다들 시야는 기본적으로 넓은 편입니다.
이 친구들이 경기 중에 굉장히 많이 외치는 단어 중 하나가 "키리카에;切り替え(きりかえ)"인데,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의 뜻은 [새로(달리) 바꾸다.]입니다.
경기 중에 뭘 바꾸라는건지,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답답해서 결국 직접 물어봤습니다. 무슨 의미냐고.
대답이 걸작이었는데, 주변을 환기하라는 뜻이랍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플레이는 잘 먹히지 않으니 다른 플레이를 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라는데,
주로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들에게 패스를 하게끔-좋은 공간에 있는 선수를 찾을수 있게끔-외치는 것입니다.
저 말을 직역하자면 (너의 플레이를) 바꿔라 겠지만, 의역하자면 다른 패스공간이 있으니 그쪽을 봐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듣고보니 확실히 주로 드리블을 길게 끌면서 상대의 압박에서 해멜 때 많이 외쳤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제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노이어가 유행시킨 스위퍼키퍼 마냥 골키퍼들도
넓은 활동범위를 가지면서 최종수비라인과의 패스 작업을 활발하게 해야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절대로 롱패스는 없습니다.
제가 첫날 매우 당황하고 충격을 받은 이유 중 하나인데, 안타깝게도(?) 저는 볼을 발로 소유하고 있을 때 시야가 매우 좁습니다.
그래서 제게 올 때마다 멀리 걷어냈더니, 제 클리어링의 정확성과 관계없이 짧게 주변으로 뿌려달라고 주문받았습니다.
당연히 골킥도 마찬가지구요. 멀리 차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식의 스위퍼키퍼 역할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쩔수 없습니다.ㅠㅠ
3. 슛하기 좋은 위치에서도 패스 시도하는 것을 선호
축구 게임 '풋볼매니저'에 선수의 '선호하는 플레이' 목록 중 위와 같은 것이 있죠.
일본 친구들은 선천적으로 이 '선플'을 장착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슈팅각이 나왔다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슈팅을 때리지 않습니다.
'이걸 안 때려?' 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골문 앞에서도 정말 누가봐도 100% 골이다 싶은 순간이 아니면 슈팅보다도 주변 선수를 찾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키리카에'를 외치는 것도
'슈팅 각이 나왔으니 드리블 질질 끌거나 되지도 않는 패스보단 슛이나 때려라' 라는 의미로 외치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제가 골키퍼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슈팅을 선방해낼 때의 짜릿함인데,
여기서 축구할 때는 이런 감정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절대적으로 슈팅 숫자가 적기도 하거니와,
이 친구들이 진짜로 슈팅을 할 때는 정말 90% 이상 거의 완벽한 골찬스이기 때문이죠.
확실히 수준이 꽤 높은 편이긴 합니다.
다들 기본기가 좋습니다.
다만 피지컬을 보다 활용하는 플레이를 하거나,
좀 더 롱볼축구의 장점을 이식해도 될 것 같기도한데
정말 고집스러울 정도로 예쁜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래도 외국에서 외국 친구들이랑 볼 찰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근데 패스축구라니.. 배워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