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가지 사건들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내적인 문제, 현실의 벽에 부딪혀, 뜻하지 않은 재해 등에 의해서.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살아간다 할 지라도, 예기치 못한 일들이 내 신념을 뒤흔드는 경우도 있다.
인생을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하나의 항해라고 생각한다. 그 항해를 함에 있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이 나는 나침반이라고 본다. 가령 어린 시절 법이 정하는 성인의 기준 이전에는 자신의 항해에 필요한 배를 준비하고,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 배는 혼자의 힘으로, 또는 여럿이 함께 만드는 배일지도 모르고, 그 배의 나무나 내부 장식은 본인의 능력을 벗어나 주변의 여건에 의해 결정 되어질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각개의 항해의 목적지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처음 시작은 작은 뗏목일지언정 여행을 하며, 더 많은 가치와 유무형의 재산을 가지고 더 큰 배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나무조각에서 큰 폭풍우도 이겨낼 수 있는 범선으로 성장한다면, 그것 만으로도 그 항해는 멋지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항해는 배로써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바다는 그리 녹록하지 않은 곳이어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출항을 할 지언정 금새 지쳐 망망대해에서 떠돌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함은 그 항해를 지속할 수 있는, 온갖 고난 속에서도 나를 목적지로 데려가 줄 수 있는 길잡이. 대학시절 교내 신문에서 사회에서 꽤나 이름있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각자 저마다의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겠지만,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제껏 많은 나침반들을 가지고, 그것이 나의 신념이라, 내 삶의 방향성을 가르켜주는 등불이라 믿어 왔다. 중학 시절에는 서진규 씨의 좌우명이,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현관에 붙어 있던 前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모교의 '호상 비문'이, 장교 후보생 시절 부터 군 전역까지는 '장교의 책무'라는 글귀가 지금의 나의 가치관을 지키고, 나를 진실된 삶으로써 인도하였다.
어떠한 삶을 살고자 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가치관은 다를 것이고, 그에 맞는 것을 택하면 그만이다. 꿈을 쫓는 삶이 버거운 이들에게도 밤하늘의 별은 어김없이 빛나리라. 삶이란 또 길고 긴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서 그러한 도구를 가지고서도 지쳐서 주저앉고 싶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담 나는 그 자리에서 앉아 신세한탄이나 하길 권한다. 그런 인생이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이라면, 그렇게 사는 것 또한 그의 자유라는 것이다.
단지, 혹시나 그 넋두리의 끝이, 이제껏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자에 대한 분노, 뜻모를 억울함의 감정 등 그 어떤 것이라 할지 라도,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배의 존재 가치는 아니다. 배가 항해를 마음 먹었으면, 나름의 준비를 마치고 나가면 된다. 혹 갖은 고초를 겪을 것이 두려워 항구에 정박하고 싶다면, 그 또한 그의 자유이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저 옛날 사람들의 믿음 처럼 바다의 끝에 가면 낭떠러지가 있다거나, 선원의 목숨을 탐내는 바다 괴수는 없을 거라는 것.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배를 타기로 마음 먹었으면 그 배의 주인이 되어라. 목적지를 설정하지 못하는 선장은 결국 목표를 아는 사공에게 배를 빼앗기기 마련이다. 2016. 11. 6. 13:24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
-윈스턴 처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