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을 아직 안 보신 분이시라면 스포 다수 포함되어있음을 인지해주세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인 중국인 서래. 낮은 목소리의 속삭이듯이 중국어로 말하는 탕웨이의 서래는
색, 계와 만추의 탕웨이를 섞어 놓은 듯 했다.
모국어를 중심으로 제2외국어를 사용할 땐 자주 쓰는 단어를 직역하게 된다.
서래는 남편이 죽었다는 경찰, 박혜일의 해준에게 ‘마침내’라고 말한다.
이는 담당 경찰 수완(고경철), 해준(박혜일)과 관객들에게 별다른 설명없이 서래가 남편을 죽였구나 하고 짐작하게 되는 장면이 된다.
그런데. 중국어로 마침내 는 중국어로 终于(쫑위)를 직역했다면, 자연스러운 번역은 결국, 끝내 이다.
한국사람들의 파이팅을 외치는 응원소리를 듣고 기겁하는 외국인들과 흡사 비슷하다.
그렇게 곳곳에 서래는 중국어를 사용하고 감독은 번역 또는 통역 대신 핸드폰 앱으로 어색한 자동번역과 한국어가 서툰 서래에게 뜻 전달을 위해 쉬운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는 수완을 그대로 드러낸다.
중국어와 한국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큰 오해가 생긴다.
언어로 인해 생기는 오해, 잘못된 이해, 생각을 감독은 영화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하지만 사람의 진심은 육감(촉), 뉘앙스와 제스쳐, 분위기로 인해 눈치채게 되고 느끼게 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육감이 발달한다. 특히 촉감(감촉), 느낌, 눈빛, 표정으로 적어도 50%는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교감과 교류를 하게 되는 듯하다.
아마도 해외 배우, 스텝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많은 감독의 경험에서 우러난 에피소드들이 많이 녹아 있지 않을까 하다. 또 모국어를 사용할 땐 적당히 돌려서, 비유를 대면서 얘기하지만, 능숙하지 않은 언어로 얘기할 땐 아는 단어를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다 표현하기 어렵고,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직선적으로 얘기하게 된다.
‘바다에 버려요’
해준이 서래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상황을 끝내며 얘기한 순간 서래는 사랑을 시작한 순간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바다에 버려요 라는 말은 서래가 해준을 그리워하며 재회하기 전 듣고 또 듣는 마지막 대화가 되어버렸다.
서래는 일부러든 아니든 감정을 흘렸고 해준은 그 감정을 느꼈고, 해준의 진심을 서래는 다시 느꼈다.
만약 서로가 익숙한 언어로 대화를 했다면, 서로의 감정을 대화로 확인했을 테고,
말(대화)를 통해 확인된 감정을 스킨십으로 확인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헤어질결심을 하게 된 그 장면 이후, 색, 계의 못다한 탕웨이 같았다.
계약과 유혹에 넘어간 양조위를 사랑하게 됐지만 감정을 자제하며 어쩌지 못했던
색,계의 왕치아즈가 그녀로 인해 붕괴된 미스터이를 위해 색계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지켜주고 도망치지 않고 바다에 던진 듯하다.
산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며 공자가 한 말을 인용해서 설명하는 서래의 모습은 일반적인 중국사람들의 모습니다.
불과 60년대에 문화혁명을 통한 대숙청을 눈으로 보고 목격한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옛 선인들의 명언, 가르침을 인용하며 필사적으로 생각을 숨겨왔다. 링다오(지도자)들은 연설에서
공자, 맹자 등의 선인들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자신의 뜻을 간접적으로 피력한다.
연설문 번역이 어려운 건 바로 이런 인용문들의 숨은 뜻을 캐치하기 어려워서이다.
서래는 몇 번이나 간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고 육감이 발달한 해준은 눈치 빠르게 어렵지 않게
서래의 행동과 생각을 캐치할 수 있었다. 다만 서래가 없는 그 순간은 발 밑에 두고도,
신발 끈을 굳이 다시 묶고도 모르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단서를 주는 서래가 없었고 흔적을 지우는 파도 때문이었으리라.
누구든 능숙하지 않은 언어를 쓸 땐 어눌해 보이고 순박해 보이고 순수해 보인다.
표정만이라도 친절하게,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몇 번이고 다시 들을 수밖에.
극의 흐름을 깨는 요소가 몇 가지 있긴 했다. 부산이라고 하면서 10년동안 밖에 안 나갔다는
치매가 걸린 월요일할머니의 말투는 서울말투이고 해준 아내의 직장동료 이주임은
그 핫한 독일국적의 한국계 배우이며, 해준아내는 걸려온
전화만으로 육감이 발동, 끝내주는 추리를 하며 집을 나선다. 또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은 박해일과 닮은 배우라니.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이면 조선족인데 속삭이는 듯한 고급 중국어를 사용하는 서래,
진한 부산사투리가 오히려 조선족들을 연상시킨다 (일반적으로 조선족들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꽤 있다.
경상도와 함경도의 이주민들이 많다)
영화에서 스토리를 환기시킬 때. 환경을 바꾸고, 주연배우의 톤앤매너가 바뀌고 시간이 흐른다.
배우들의 감정선이 바뀌고 관객들은 스토리에 대해 환기되며 영화의 흐름에 따라가게 된다.
헤어질결심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관객들은 모르는 언어에 대해서 이해하기보다 촉감을 동원해
느끼려 하며 서래에게 때로는 해준에게 감정이입된다.
그래서 수완의 감정에, 연수의 담담함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 그래서, 슬프거나 웃기지 않고 가슴이 먹먹하고 담담하며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 저는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현지화된 한국회사에서 중국인, 조선족, 한국유학생, 한국에서 갓 온 주재원들과
중국에 오래 거주한 현지직원들과 함께 다년간 근무하며 중국어, 영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일과 생활을 했습니다.
언어의 뜻, 말의 의도를 육감적으로 느껴야 했고, 중국어를 할 땐 제 자신도 어눌해지고,
한국어를 잘 못하는 중국사람들은 또 반대로 한국어를 배워서 말할땐 순수하게 느껴져,
오랫동안 서로를 오해하며 일했던 것 같아요. (제가 말이 많네요 ㅋㅋ )
어떤 비서는 표정, 말투, 뉘앙스도 통역해야 한다며 차분한 말투로 통역을 하는게 아니라
화자의 목소리톤까지 통역해,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긴 상황을 연출하긴 했죠)
헤어질결심은 상을 받을 만합니다. 어색한 부분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이고
완성도 높은 영화라고 감히 글을 씁니다.
칸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하면 예술성이 더 많은 영화라는 편견도 사라졌어요.
몇 번 더 보면 놓쳤던 부분도 음악도 단서도 배우들의 표정, 제스쳐, 감독의 의도 등등 더 보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