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아들이 결혼했습니다. 올해 30살인데 군대 제대하고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가 체코 프라하에서 우연히 인연을 만나서 5년간 연애하고 결혼을 하게되었습니다.
날짜, 장소를 비롯하여 모든 걸 알아서했기에 달리 도와준 건 없습니다. 주례없이 식을 진행하고 싶다고 하여 축사를 준비해 달라는 것과 축가를 불러줄 사람이 없다고 해서 연줄을 동원해서 '소울 트레인'이라는 인디가수를 섭외해주었습니다.
축사를 준비하려고 다른 사람들의 부모축사를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별다른 게 없어서 (대박 축사 신랑 아버지, 현실 남매 오빠 축사 등등) 고민을 하다가 이왕이면 30년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쌓아논 추억들도 소환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시절 같이 고생한 사진들을 PPT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예식장측에서 동영상만 틀어줄 수 있다고 해서 동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신부측에서 오빠가 축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여의치 않다고 해서 신부측도 사진도 같이 소개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랑 임재관군의 아버지 임성식입니다.
날도 춥고 바쁘신 일정과 아직도 계속되는 코로나 유행에도 기꺼이 결혼에 참석해 주신 양가 친지 및 하객 내외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대표로 오늘 결혼하는 두 사람의 소개말과 작은 당부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제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충남 아산군의 작은 시골동네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어찌어찌 내과의사가 되어 25년간 일하고 있으며 강원도 삼척에서 시작한 의사 생활이 좋은 인연이 닿아 20년가까이 강화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먼저 며느리 한나 소개드리겠습니다.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색동저고리 입은 돌사진인데 너무 이쁘죠?
한나에겐 두살 터울의 오빠가 하나 있구요. 자라면서 오누이 보다 쌍둥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현실 남매와는 다르게 엄청 둘이서 친하게 지냈는데 그 이유는 한나가 양보해서겠죠? 하교길에 반지사탕을 사주는 다정한 오빠랍니다.
(중간 ~ 생략)
두달간의 유럽 여행 중 프라하에서
운명의 짝궁을 만나게 됩니다.
그 만남이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으로 있게 했어요
**수렴동 , 오세암 휴가 - 94년 1살
신랑 임재관은 부모가 별나서 1살때 엄마가 베이비 캐리어에 업고 저는 텐트와 기저귀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설악산으로 야영을 들었갑습니다. 돌쟁이 재관이는 이때 무려 15kg.
다음날은 오세암까지 즐거운 산행을 했는데 3박4일 예정이던 야영이 중간에 분유가 떨어져서 2박3일만에 하산했습니다.
**2003년 6월 : 설악산 종주(3박4일) : 초4
10여년이 지나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 4,2학년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설악산 종주를 하게 됩니다.
백담사 ~수렴동(1박) ~ 구곡담계곡 ~ 봉정암 ~ 소청산장(2박) ~ 대청봉 ~ 양폭산장(3박)
수렴동 대피소에서 엄청난 인파에 겨우 새우잠을 자고 아이들을 달래고 꼬셔가며 대청봉 정상에 오릅니다.
**2003년 9월 15일 : 북한산 인수봉 암벽등반 (초4)
바위하는 사람들의 로망은 1. 여친 생기면 같이 암벽한다 2.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같이 인수봉 오른다 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수봉 등반에 도전합니다.
먼저 대슬랩에서 기본적인 암벽등반을 배우고 로프 하강을 배웠습니다.
암벽을 떠난지 5년이 넘은 철없는 아빠의 판단 미스로 겨우겨우 인수봉 정상에 올랐지만 하산길에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일정이 늦어져 깜깜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인수봉에서 하강하다 로프가 바위틈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고 벼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한시간여 매달려 있다가 도와준 분들이 계셔서 무사히 하강을 마칩니다.
**지리산 종주 4박 5일 (성삼재~노고단 산장 ~연하천산장 ~세석산장 ~ 치밭목산장) : 2005년 5월 , 초6
**자전거 제주도 일주 2006년 8월 7일 부터 12일까지 (중1)
철없는 아빠는 갑자기 2006년 5월에 자전거에 눈이 돌아가서 김포 장기동에서 강화읍 병원까지 편도 20km를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여름휴가를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자고 합니다.
그리하여 5박 6일간 제주도 자전거 일주 여행이 이루어집니다.
제주시 출발 ~ 협재(1박) ~ 화순(2박) ~ 표선(3박) ~ 우도(4박) ~ 세화(5박)
제주시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협재까지 첫날은 달릴만 했어요.
둘째날 화순까지 가면서 중간에 마라도까지 다녀왔네요.
우도에서 잡은 숙소가 너무나 더워서 잠을 거의 못자고 고생했던 기억에 마지막날은 비가 오기 시작하여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제주시까지 달렸습니다.
**2007년 8월 대관령 업힐 (중2)
김포에서 강화로 출퇴근 하던 아빠는 점점더 병이 깊어지더니 목동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멀쩡한 평지를 놔두고 지리산을 자전거로 오르자고 합니다.
지난번 성삼재에서는 막판에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올라간 재관이. 여름휴가에 대관령 업힐을 도전합니다. 대관령구도로 18km를 2시간에 걸쳐 한번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올라가는 데 성공합니다.
**2015년 부터 철없는 애비는 이번에는 오토바이에 빠집니다. 엄마까지 꼬셔서 면허따고 함께 다니기 시작하더니 다같이 면허를 따서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합니다.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이쁜 며느리 한나는 면허도 따고 같이 타고 여행을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축사를 준비하면서 옛사진을 보면서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고 시간을 보낸 좋은 아버지라는 걸 자랑하려고 했는데 보다보니 이토록 철안들고 사고 뭉치인 아빠를 다독여 같이 놀아준 건 제가 아니라 아이들과 아내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재관이와 30년을 함께 살면서 보여준것은 1. 부부가 사이좋게 2.재미나게 사는 것 뿐입니다.
결혼생활을 30년쯤 해보니 제가 알게 된 것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는 어른들도 잘 모른다는 겁니다. 혹시나 어른들이 젊은이들 보다 조금이라도 현명해 보인다면 그것은 힘이 빠져서 사고칠 시간에 집에 들어와서 누워있기 때문입니다. 저만해도 새벽까지 술마시고 그러던 게 어느덧 1차끝나면 2차도 못가고 집에 들어가고 싶어지더군요. 이러니 사고 칠 시간과 체력이 없어서 현명해 보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요새처럼 빨리 변하는 세상은 더더욱 어른들은 잘 모릅니다. 오히려 배워야 할 게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뭐라고 해도 듣는 척만하고 항상 둘이 사이좋게 상의하여 살아가기 바랍니다.
결혼은 장가가는 것도 아니고 시집을 오는 것도 아닙니다. 둘이 만나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것이고 모든 일의 중심에 부부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나 부모보다 부부가 중심이고 제일 중요합니다.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불로초를 찾으러 온 세계를 헤매다 빈손으로 돌아온 그에게 주막집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길가메시여, 그대가 찾는 것은 결코 찾을 수 없으리라.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인간의 숙명으로 안겨주고 영생을 거두었기 때문이오. 그대가 살아 있는 시간을 즐겁고 충만하게 보내시오, 그대의 손을 잡는 어린아이를 꼭 안아주오. 그대의 아내를 품에 안고 즐겁게 해주시오. 기껏해야 이런 것들만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이라오.
재미없는 이야기 길어질까봐 저기 높으신 사령관님께서 눈치를 주시네요.
재관아! 너는 이제 다시 군대를 간거다. 이번에는 장기복무고 제대는 없다~~ 오로지 사령관이신 아내의 말만 잘 들으면 된다.
한나야! 사고뭉치 아빠를 만나서 들로 산으로 끌려다니며 고생을 숱하게 한 재관이를 잘 부탁해~~
너희가 이쁘게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구나. 고맙다.
감사합니다.
============
사진을 다 올리지 못해서 블로그 링크 함께 올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축하드립니다.
항상 안라하시고 건강하세요~
멋지시네요! ^^
/Vollago
아침부터 따듯한 글에 감동입니다.
앞으로도 즐겁고 안전한 이륜차 가족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행복한 가족 되세요~~~
/Vollago
축하드립니다.
아드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너무 보기 좋습니다 ^^
늦었지만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