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의 섹스
Marilyn Manson과의 섹스 :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믿는 것을 끝까지 다각도에서 의심해보고, 그 과정에서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 맨슨. 그렇기에 그는 나와 공명한다. 10년간의 우울증 기간 동안 내 옆에 있어준 그 음악은 날 틀렸다고 섣불리 간주하지 않았다.
잘자, 푼푼과의 섹스 :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상처가 이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는 사람마다, 환경마다, 시시각각 달라진다. 자기파괴적인 삶의 방향을 가졌던 푼푼은 나와 닮아 있었기에 공명한다. 다만 마지막 엔딩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악의 꽃, 피의 흔적과의 섹스 : 인간의 심리를 한계까지 해체하는 이 작가는 내게 두 번의 영감을 주었다. 내 경우엔 아픔을 구조적으로 해체하고 이 작가는 감각적으로 해체한다는 점에서 방식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닿아 있다고 느꼈다.
버팔로 '66과의 섹스 : 나와 비슷한 정신적 결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감독 빈센트 갈로와 나는 공명한다.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 정도의 밀도로 안겨주는 영화는 흔치 않다. 자전적인 감정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빈센트 갈로는 내가 도달하지 못할 수준의 아티스트처럼 느껴진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의 섹스 : 이 세상 사람들 중 의미부여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룰루 밀러와 나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호르몬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다만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가 얼마나 의미와 분류, 옳고 그름에 기대 살아가는 존재인지 자각하려 한다. 대다수는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의미와 위로를 발견했고, 그것이 베스트셀러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내겐 묘한 아이러니로 느껴졌다. 룰루 밀러가 아니었다면 난 훨씬 더 고독했을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의 섹스 : 죽음과 고독 속 인간을 해부하고 위선을 비틀어 바라보는 그 태도를 보며 변태 같은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몇 페이지 읽지 않았을 때 이미 느꼈다. 톨스토이 역시 나와 비슷한 이질감 속에서 오래 흔들렸던 인간이라는 것을.
Sheena Ringo와의 섹스 : 온갖 작품들이 제작자의 입장에서 구조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시이나 링고의 음악을 들으면서부터였다. 자기만족만을 위해 만들던 내가,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이 사람이 가진 개념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동시에 대중적으로 풀어냈는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음악적 재능과 외모, 신체까지 자신의 모든 재료를 효율적으로 조합하고 약점마저 현명하게 배치하는 그녀는 뛰어난 아티스트인 동시에 지독한 전략가처럼 느껴진다.
"난 이렇게 무생물과 섹스하고, 60을 바라보는 남자와 섹스하고, 두 젖이 봉긋한 여자와 섹스하고 있다. 어떤가. 문란하지 않은가?"

"더럽다 느끼는가?"
플로리다 프로젝트와의 섹스 :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션 베이커만큼 잘 표현해내는 사람은 드물다. 감각과 구조를 모두 건드리면서도 힘을 과하게 주지 않은 채 스며들게 만드는 방식은 경이롭다. 켄 로치 역시 사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션 베이커가 한 수 위처럼 느껴진다.
파프리카와의 섹스 : 프로이트의 난해한 무의식 이론을 이렇게까지 대중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곤 사토시.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인간 역시 거대한 흐름 속 알고리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공각기동대와의 섹스 : 꽃과 모래, 물과 기계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사람이라고 뭐가 다를까. 지금 시대에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훨씬 살아가기 유리하겠지만, 먼 미래엔 이런 종류의 인식 전환이 오히려 생존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 역시 무한에 가까운 공간 어딘가에 계속 신호를 남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예술은 섹스다.
섹스는 배설이다.
배설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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