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Aguinaldo, 리버풀의 뛰어난 유망주다. 이제 동료들은 나를 Naldo라 부른다.
브라질 그레미우에서 리버풀로 온지 벌써 1달 가까이 흐르고 있다. 잉글랜드의 궂은 날씨에는 아직 익숙해지지 못하고 있지만(브라질의 화창한 햇빛과 비키니 아가씨들이 넘쳐나는 해변이 그립다…) Jair 선배와 내 튜터링을 담당하고 있는 Sodje 선수,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임에도 나를 귀엽게 봐주고 있는 Will Hughes 선수 덕분에 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영어는 배우기 어렵다. 머리가 나쁜 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영어는 안 느는지…. 나름 스페인어
도 할 수 있는데 말이지. 2개국어는 쉬운 편이지만 3개국어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 그래도 팀에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할 수 있는 동료들이 많아서 영어만 하는 잉글랜드 선수들 말고는 그럭저럭 대화가 된다. 잠깐?…. Hughes 선수는 영어밖에 모르는데…? 어쨌거나 1달 가까이 리버풀에 익숙해지면서 팀 분위기와 감독 스타일 등을 알아가고 있다.
24년 7월 중순
감독이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시즌 대비 투어 경기 장소가 한국으로 결정되었다. 3개 구단과 친선전을 벌인다고 하는데 갈 수 있을지, 어떨지… U21팀에서 훈련 중인 나와는 별 무상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1군 합류 호출이 있었다. 아무래도 2명 뿐인 주전 스트라이커를 보조할 후보 선수 몇 명을 추가로 데리고 갈 생각인 듯. 나로서는 감독의 눈에 들 절호의 기회다.
같은 시기 브라질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Zico(SC, AM R) 선수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확실히 SC 3번째 자리를 노리는 나의 강력한 경쟁자임에 틀림없다.
Zico 선수 말고도 SC 자리를 노리는 선수는 Henrique 선수도 있지만 19살로 24살인 Zico 선수와 나에 비하면 아직 어리다. 이번 한국 구단들과의 친선전에서 뭔가 보여줘야 할텐데…
24년 7월19일 대구 친선 경기
한국에서의 첫 경기인 대구와의 친선전…
시작부터 강력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친선전으로는 지난 잉글랜드에서의 보카전 이후 2번째 경기라 그런지 발들이 조금씩은 맞아가는 모습이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별다른 선수 이동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전반전에 이미 2골을 넣고 있다. 이렇게 되면 후반에 기회가 생길지도….
후반 15분, 감독이 수석코치와 상의하고 있다. 교체 타임이다.
“Naldo!”
수석코치가 나를 부른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재빨리 감독 앞으로 뛰어갔다. 감독은 2골 차이도 맘에 안드는 듯, 인상을 찌뿌리고 말했다.
“이것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 기대에 부응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오늘 한 골을 넣은 Mitorvic 선수와 대신해 투입되었다. 사이드라인에서 볼 아웃이 되길 기다리는 동안 감독의 말을 곰곰히 되새겨 보았다.
U21팀에서 훈련하고 있긴 하지만 U21팀 감독의 말에 따르면 1군과 U21팀은 같은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언제든지 1군에 올라오더라도 전술을 새롭게 배울 필요가 없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 동안 훈련 받은 걸로 미루어보면 감독은 SC에게 많은 역할을 요구하진 않는다.
간단한 몇 가지만 지키고 골만 넣으면 충분히 만족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골을 넣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어제 같은 호텔방을 쓰고 있는 Jair 선수와 했던 말들이 다시 생각난다.
“Jair!! 그 컴퓨터 게임은 그만하고 얘기 좀 해요!! 모처럼 만났는데 묻고 싶은 것도 많고, 이것저것 할 얘기도 많단 말이에요.”
Jair(DC)가 뭐라 투덜거리며 나를 돌아본다. 언뜻 노트북 화면을 보니 FM을 하고 있다.
“U21팀에만 있다보니 1군 선수들도 궁금하고, 감독 스타일도 어떤지 알고 싶다구요! 우리 감독 어때요?”
Jair가 잠깐 생각하더니 답해준다.
“흠, 10년 전쯤 유명했던 뱅거 감독이랑 퍼거슨 감독 알아?”
물론 알고 있다. 나를 브라질 시골 촌놈으로 보나본데, 거기도 TV는 나온다구… 어릴 적 동네축구를 하면서도 밤이면 프리미어리그와 프리메라리가는 가끔 보아왔다.
“우리 감독은 딱 그 두 감독을 섞어놓은 타입이야. 영계 킬러고, 말수는 적은데 한 번 화나면 무지 무섭다구!”
역시 우리 팀에 노장 선수가 드문 이유를 알 것 같다. 노장이라고 해봤자, 1군에서 쫓겨서 U21에서 같이 뛰고 있는 31살의 Kondogbia(DM, M C)가 최고령이고, 30살의 주전들이 6명 정도… 우리 팀 평균 연령이 25세 정도이고 프리미어 리그 최저였다가 올해엔 2번째로 젊다. 1위는 맨시티라고 했던가?
“그럼Barbosa 선수가 PSG 간게 감독과의 불화 때문인가요?”
“그런 면도 있지. 그런데 사실은 다들 Mitrovic 선수가 이적할 줄 알았지...”
나이도 더 많은 Mitrovic 선수가 남아 있는 이유는 받아줄 구단이 없어서였단다. Barbosa 선수는 27살이라서 레알을 비롯해 몇 개의 구단에서 제의가 왔다고 했다.
“흠… 그럼Mitrovic를 대신할 선수로 절 뽑았던가요? 우리 팀은 왜 2톱을 안쓰는거에요?”
“감독은 원래 4-4-2를 선호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10년전쯤부터 세계적으로 4-2-3-1 시스템이 유행이었잖아? 그리고 4-4-2를 쓰고 싶어도 전통적인 윙어인 M RL 출신 선수들이 부족한 것도 이유이고. 감독은 4231을 쓰면서도 윙 자리를 인사이드 포워드 대신에 디펜시브 윙으로 쓰면서 수비를 지시하고 AM C 선수를 새도우에 가깝게 올리는 스타일이라 변형 442에 가깝지. 그래서 우리팀 AM C 선수들이 득점력도 좋잖아.”
하긴 팀의 주축인 Hughes와 같은 나이인 Oliver(M/AM C), Villalba(25, M/AM C) 선수 모두 어시스트 뿐만 아니라 적당한 득점력도 갖추고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조금 떨어진 감이 있지만.
“Torress 선수는 키도 작은데 대단해요! 아무리 팀 전술이 낮은 크로스를 요구해도 그렇지, 키 큰 선수들 틈에서 그 득점력이라니…”
팀의 SC 두 주전 중 떠오르는 스타라고 할 Jacobo Torress(SC) 선수는 키가 큰 편이 아니다. 174센티미터인 그는 흡사 과거 오웬을 연상시키는 빠른 발과 민첩성이 뛰어난 선수. 심지어 얼굴도 오웬을 닮았다.
2018년 셀타에서 리버풀로 합류한 이후 2020시즌부터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해서 작년 시즌엔27(14) 경기에 출전해서 44골을 기록했고 리그 득점왕 2위, 챔피언스컵 득점왕을 차지한 스타.
“제가 내년엔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감독 성향이 그렇다면 저에게도 기회가 금방 올 듯한데…”
“너 말고도 Zico 선수나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지. 그들에게도 너만큼 기회가 주어질 거야. 내일 있을 경기에 누가 뛸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잘 안되면 Sodje가 그 자리로 갈 수도…”
헉… 기존 경쟁자 말고도 Sodje 선수가 SC 자리로 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다. 비록 SC 경험이 있긴 하지만 빠른 발을 자랑하는 윙포드로 널리 알려진 Sodje 선수라니…
이거 방심할 때가 아닌걸…
…. 드디어 볼 아웃이 되었고, 난 Mitrovic 선수를 대신해 대구 진영 쪽으로 향했다. 부주장인 Hughes 선수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경기장 조명 속에서 Hughes 선수의 하얀 치아가 반짝였다. 조금 자신감이 붙는 느낌이다.
‘그래, 밤에도 식지 않는 이 도시의 열기는 브라질을 기억나게 하는데... 브라질이나 여기나 공을 골에 넣으면 1골인 건 똑같으니까.’
생각한 순간 오른쪽에서 Sterling(AM RL) 선수가 공을 빼앗고 라인에 붙어 돌파하고 있다.
“Naldo!”
엔드라인 끝에서 크로스를 올리며 나를 부르고 있다. 공의 궤적이 하얗게 라인을 그은 것처럼 뚜렷하다. 아무 생각없이 공만 보며 몸을 날렸다.
-철썩
첫 골이다. 내 장점인 빠른 발을 이용한 위치 선정과 헤딩을 통해 얻은 첫 골. 감독이 원한 대로 해냈다는 느낌이다. 팀 동료들이 친선전이긴 하지만 루키인 나를 위해 모두 달려왔다.
경기는 3:1로 끝났다. 한 골 추가 이후엔 대구 선수들의 강력한 수비와 우리 팀 선수들이 조금 늘어진 관계로 오히려 한 골 먹히고 별다른 공격 포인트 없이 끝나고 말았다. 감독은 1 실점이 맘에 안드는지 종료 후 라커룸 대화도 생략한 채 호텔로 향했다.
“원래 저래요?”
옆에서 계속 내 어깨를 두들겨대며 대견해하고 있는 Jair에게 물었다.
“어, 이건 아무 것도 아냐. 이 정도는 괜찮은 거지…”
역시 퍼거슨의 후배인가?
그 후 2차례의 한국 구단과의 친선전에도 연속 출장해서 총 3경기 4골 1도움을 기록했다. 수원과의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해서 8:0 완승에 주력이 되었고, 울산전에서도 1골을 기록했다. 자신 스스로 대견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리버풀에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체력 훈련과 틈나는 대로 이것저것 내 스타일을 눈여겨 봐줬던 Sodje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느꼈다.
24년 8월 11일 채리티 쉴드 맨체스터 시티전
예상 외의 호성적을 기록한 친선 경기들을 뒤로하고 본 게임인 리그가 다가오고 있다. 그에 앞서 채리티 쉴드의 맨시티 경기가 있지만 이건 이벤트 성격이니 리그가 시작되는 8월 17일까진 어쨌거나 조금 여유가 있긴….. 개뿔….
우리 감독은 맨시티 전이라면 이를 박박 갈고 있단다. 감독이 리버풀을 맡은 이후 11년간 리그 우승을 하고 있긴 하지만 맨시티도 매년 2-3위를 차지하며 리버풀을 위협하고 있는 중이라 감독으로선 석유재벌 맨시티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팀내 구성원들도 우리팀에 비해서 전혀 뒤떨어지 지지 않고, 오히려 어떤 부분은 더 나아보인다.
맨시티의 장점은4-1-2-1-2로 대표되는 강력한 중원이다. 그 중원의 핵심이 감독의 고향인 한국 선수들이라는 것도 아이러니.
소문에 듣기론 두 선수 모두 리버풀에서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둘 다 부상빈도가 심해서 감독이 주저한 사이 맨시티가 높은 이적료와 급료로 하이재킹해서 감독으로선 더 용서가 안되는 사태가 벌어진 듯. 이 내용은 벌써 팀에 12년 동안 주전으로 뛰고 있는 Hughes 선수가 해준 얘기.
우리 감독은 뱅거와 퍼거슨도 모자라서 속이 코딱지만한 듯.
감독으로선 리그가 시작되기 전에 채리티 쉴드부터 기선을 제압하고 싶은 모양이다. 언론 인터뷰로도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고 선수들에게 압력을 팍팍 넣고 있다.
지난 친선 경기 때의 호성적을 빌미로 아직 1군에 남아 있는 나에게도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에게 뿜어져 나온다. 오늘은 Jair에게 농담도 못붙이겠다.
평소 로테이션으로 AB팀을 돌리고 있는 감독 스타일이 아닌 B팀 핵심들도 총동원된 대기 상태. 나는 선발되지도 못하고 벤치만 달구게 생겼다.
맨시티도 라이벌 답게 부상 선수 제외한 풀 주전 멤버. 맨시티 감독의 언론 인터뷰로는 팬들을 위한 이벤트라고 하더니…
경기는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Toress 선수의 골을 잘 지켜 1:0 신승. 감독은 라이벌과의 대결이 기뻤는지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휴…. 리그가 시작되기도 전에 리그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경기였다. 경기 내내 손에 땀이 나는 중압감이라니… 벤치에서도 이런데 실제로 뛴다면….? 아직 난 조금 부족할지도….
자신감이 조금 줄어든 듯한 하루였다.
(계속)
작가하셔도 될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