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높임말을 쓰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이브온라인을 접한지도 3년 10개월. 곧 4년을 지나 5년차에 들어서게 되었다. RL상의 이유로 게임을 그렇게 치열하게 하지는 못했고, 스킬만 찍고 게임을 하지 않았던 기간이 절반이 넘지만, 꽤 오랫동안 들락날락하면서, 나는 이브온라인이라는 게임에 대해 몇 가지 나름의 편견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부터 하는 말은 전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인상이므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할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적어 내려가 본다.
1.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비교적 철저하게 지켜진다.
사실 현실의 어떤 시장보다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비교적 철저하게 지켜진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게임 내에서는 물론 외부 사이트의 도움으로 전 우주의 시세를 비교적 실시간에 가깝게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생산 공정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으므로, 생산에 필요한 자원의 시세 변동이 생산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도 누구나 계산해 볼 수 있다. 즉, 상당한 수준의 정보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으므로, 정보를 검색해 보는 정도의 노력만 있다면 정보비대칭에 의한 오판을 현실 시장과 비교했을 때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스캠(사기)과 같은 시장의 노이즈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스캠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피해갈 수 있는 것 들이다. 스캠에 걸려드는 사람들은 오직 탐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 뿐. 물론 거대 얼라이언스나 몇몇 큰 손에 의한 시세 조작 등이 횡행하지만, 마켓 오더를 잘 들여다 보고 있으면 대부분은 금새 파악 가능하다. 물론 일시적인 몇몇 품목에서 시세 조작은 쉽게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것으로 금새 해소되곤 한다.
단순히 마켓을 떠나서 게임 전반적으로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조금 다른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높은 리스크에 대해 높은 보상이 돌아온다고 하는 기초적인 룰이 거의 항상 진실인 것도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 때문이다. 하이섹에 비해 더 위험한 널섹이나 로섹에서 주로 생산되는 소재는 하이섹에서 주로 생산되는 소재보다 단가가 더 높은 것이 당연하다. 그보다 더 위험하고 운송마저 힘든 웜홀에서 생산되는 소재는 그보다도 더 단가가 높다. 즉 마켓 전반을 지배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PVE 컨텐츠 전반의 난이도 대비 수익을 결정한다. 대형 얼라이언스가 그토록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은, 사람들을 모으고 계획을 세워 지휘하여 무법지대를 지키는 것이 이브 온라인의 가장 어렵고 복잡한 컨텐츠이기 때문인 것이다.
2.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동료를 믿어야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브 온라인은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범죄의 대가가 인신에 대한 구속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정 밴을 당하는 사유인 지속적인 인종차별 및 특정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괴롭힘, 불법 프로그램 이용 등을 제외한다면 범죄에 대한 진입장벽(...?)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따라서 손쉽게 여러가지 범죄들이 자행된다. 베잇(낚시), 게이트 캠핑, 로컬 스맥토크 등과 같은 범죄라고 부르기도 힘든(하지만 현실에서 했다가는 바로 중죄인이 되는) 행위들은 물론이고, 하이섹 갱킹(퍽치기), 스캠(마켓 사기)과 같은 이브 온라인 내에서도 증오의 대상이 되곤 하는 범죄들, 그리고 스파이 행위나 포스 강탈, 운송 사기 등과 같은 다수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범죄까지.
그래서 이브 온라인 내에서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 1년 내내 함께 게임을 해온 상대가 실은 적대 얼라이언스의 스파이였다던가, 얼라이언스에서 인정한 공식 운송 점퍼가 실은 한탕을 노린 사기꾼이었다던가 하는 일은 무척 흔하다. 대부분의 대형 얼라이언스들은 적대 얼라이언스의 슈퍼캐피탈 플릿 폼업 시점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들의 주력 함선, 함대의 규모, FC 가 누구인지, 심지어 전투 도중에 상대가 프라이머리 타겟을 누구로 바꾸는 지도 심심치 않게 알고 있다. 그런 정보들을 흘리는 것은 바로 당신이 들어가 있는 팀스피크 채널에 들어와 있는 같은 콥원인 것이다.
한층 흥미로운 것은, 자신도 모르게 스파이 행위를 하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게임을 오래하다 보면 여러 친구와 알게 된다. 친구의 친구들 중에서는 서로 죽자사자 싸우는 적대 얼라이언스 소속인 경우도 흔하다. 그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정보의 중개 통로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평소 들어가 있던 퍼블릭 채널에서 흘린 한 줄의 정보가 수십빌 어치의 함선이 파괴되는 단서가 되는 경우 또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이렇게 믿을 놈 하나 없는 게임이지만, 같은 코퍼레이션, 얼라이언스의 동료들을 믿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이브 온라인이다. 채광, 생산, 웜홀, 로섹, 널섹, PVP 는 물론이고 PVE 대부분의 컨텐츠가 믿을만한 동료들이 없다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코퍼레이션이나 얼라이언스의 리더쉽은 이러한 상황을 조율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스파이들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도 구성원들을 믿고 일을 맡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브 온라인은 MMO 게임 중에서 게임 내부의 조직관리가 가장 어려운 게임중 하나다.
3. 이브 온라인 플레이어의 95%는 호구 혹은 바보다.
이브 온라인은 복잡한 게임 메카닉을 가지고 있고, 그 메카닉을 머리로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실전에서 수행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게임 메카닉을 대강 이해한 상태에서, 별다른 경험도 없이 실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 게임에 호구와 바보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95%는 호구 또는 바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그게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단지 알아야할 것이 많고, 경험을 쌓을 기회가 아직 많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는 이 95% 와 바보가 아닌 5% 의 엘리트 플레이어들과의 격차가 극심하다는 점에 있다. 95%의 호구 또는 바보들은 이 5%의 엘리트 플레이어들에 의해 쉽게 좌절하고 금방 게임을 접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아 5%의 엘리트 플레이어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브 온라인의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은 이유는 이 5%의 엘리트 플레이어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5%의 엘리트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가?
내가 지금까지 이브 온라인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게임을 오락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이 5%에 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임은 여가 시간을 즐기는 오락거리'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것 아닌 좌절에도 쉽게 포기하고 다른 일을 시도하곤 한다. 즐겁지 않은 것에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차례의 모든 시도가 포기로 끝나면, 결국 게임을 접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5%의 엘리트 플레이어가 되는 사람들은, 게임을 오락거리라기 보다는 도전으로 여긴다. 마치 또 다른 현실 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결과를 내려는 사람들만이 5%의 엘리트 플레이어가 될 만한 자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들에게 '왜 고작 게임에 그렇게 열을 내?' 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만이 이 5%의 엘리트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나는 5%의 엘리트 플레이어가 되는 길이 게임을 하는 옳은 길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브 온라인도 소소하게 오락 거리로서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다만 당신이 이브 온라인의 더 깊은 부분에 손을 대고, 결국 이브 온라인 우주에서 조연보다는 주연이 되고 싶다면, 아마도 이브 온라인을 조금 더 진지한 자세로 대해야만 할 것이다.
(...2편에 계속...될까?)
#CLiOS
"동료들을 믿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저도 이브를 즐겁게 하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