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기록하기로 하면서부터 나의 ’하루‘에 귀를 기울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부름’ 대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스쳐 지나간 아이의 웃음, 내가 무친 시금치의 단 맛, 소설의 한 장면처럼 창 밖에 내리는 눈, 아내의 굽은 어깨.. 사실, 귀 기울여 보면, 거의 모든 것들이 부름입니다. 일상의 잡스러움에 빠져 스스로를 잃고 있던 내가 ‘나’로 돌아와, 그 대답을 고민하게 하는, 나를 ’내‘가 되게 하는 부름들.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나를 잃기 십상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익명들의 키득거림, 알고 싶어 찾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어 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나와 상관없는 수많은 이야기들. 손에 든 조그만 요물에 시선을 옮기면 어느 새 나를 잃고 그 곳에 빠져들어 끝도 없는 그 안의 세계에서 헤메입니다.
오랜동안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 세계 속에 휩쓸려 그 안의 수많은 익명들 중 하나일 뿐이었던 나에게, 비록 곱고 심오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뒤틀리고 부끄러운 것이라도, ‘글’을 쓴다는 것, 나로 돌아와 일상의 부름에 답한다는 것은 오랜만에 느끼는 충만함, 내가 나로 섰음으로 느끼는 기쁨의 사건입니다.
내일도 나는, 나의 일상에서 들려오는 ’부름‘들에 귀 기울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답할 겁니다. 그것은 단지 일상을 열심히 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잃었다고 생각했던 나를 찾는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Muß es sein? Es muß sein!’
베토벤 현악사중주 16번, 3악장
카메라타 발티카
https://youtu.be/2NTpPtJFuMU?si=l-9GxNtOlFLhOX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