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파시대의 피아노 음악을 얘기할 때 쇼팽과 슈만이외에 반드시 언급되는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Franz Liszt(1811-1886)입니다. 쇼팽과 슈만이 1810년에 태어났지만 모두 단명한데 비하여 리스트는 불과 1년 늦게 태어났지만 비교적 장수(75세)를 누리며, 피아노음악 뿐아니라 클래식음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특히 베토벤 사후 "Program Music"으로 지칭되는 새로운 음악 흐름의 주창자로서 (나중에 그의 사위가 되는) 바그너와 함께 New German School이라는 음악 파벌?을 만들어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19세기 후반내내 음악을 순수한 음악 그 자체로 볼 것인가(Absolute Music) 아니면 음악에는 반드시 (문학과 같은) 음악 외적인 요소가 적극적으로 차용이 되어야 하는가(Program Music)하는 이념논쟁이 지속되는데, 리스트는 "Program Music"의 대표주자로서 브람스로 대표되는 "Absolute Music" 파벌과의 치열한 낭만주의전쟁(War of Romantics)을 펼치게 됩니다.
브람스가 교향곡같은 기존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였다면 리스트는 주로 교향시(Symphonic Poem)와 같은 작품들을 통하여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개척하려 노력하였으며 결국 바그너를 통하여 이러한 시도가 어느정도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쇼팽, 슈만, 바그너가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연주가 되는 반면에 리스트의 음악은 그 방대한 레파토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특히 리스트의 음악에 대한 가장 큰 비판중의 하나는 그의 음악이 'superficial'(깊이가 없이 겉치레만 요란하다)하다는 평론가들의 평인데,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말에 반드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수긍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클래식음악을 즐겨듣는 분들 중에는 어느 한 작곡가에 필이 꽂히는 분들이 계시는데 예를 들어 쇼팽중독자, 슈만중독자, 바그너중독자, 브람스중독자들입니다. 그런데 리스트중독자는 제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리스트와 같은 Hungary에서 태어나서 Franz Liszt Academy에서 공부까지 한 피아니스트 Andras Schiff가 공개적으로 본인은 리스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인터뷰에서 얘기하는 걸 보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리스트의 음악에 대한 호불호가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리스트 생존시에 리스트가 누렸던 명성은 현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엄청났으며, 그의 연주회에는 그가 땀닦은 손수건 하나라도 어떻게라도 건져보려는 여자들로 넘쳐났으며 실제로 리스트는 많은 여성들과 (유부녀들과도)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팬덤이라 부르는 집단추종자들이 최초로 생겼을 때가 바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회에서였습니다. 이게 역사적으로 굉장한 사건인 것이 비록 부르주아(경제적 능력이 있는 평민계급)가 성장하고 있던 시대였지만 아직도 신분제사회가 타파되지 않았던 유럽에서 평민인 리스트가 귀족여자들을 건드리고 다녔으니까 선배음악가였던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로망스를 리스트는 자유자재로 했던 것입니다. 좀 더 선배였던 하이든은 귀족의 하인들과 같이 식사를 했었고 (거의 하인대접), 더 선배였던 바흐는 출장에서 늦게 돌아왔다고 그의 고용주로부터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바흐와 하이든의 말년에는 엄청난 명예와 존경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젊었을 때의) 리스트의 초상화나 사진을 보면 조각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사람들 앞에서의 쇼맨십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얘기가 길어지니까 이쯤에서 리스트의 음악을 올려드려야겠습니다. 그런데 올려드리는 것이 엄밀하게는 리스트의 음악이 아닙니다. 리스트의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피아노로 편곡하여 음악에 대한 새로운 view point를 제공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리스트가 본인의 연주회에서 자기의 뛰어난 기교를 뽐낼 음악으로 다른 작곡가의 음악(물론 피아노음악이 아닙니다)을 피아노로 편곡하였지만, 어쩌면 원곡보다 더 잘 알려진 편곡도 많은 것으로 볼 때 리스트의 혜안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남의 작품(그것도 동시대 라이벌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흔치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리스트의 실용주의적 가치관때문에 현재 우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슈베르트의 가곡, 베르디나 바그너의 오페라도 피아노연주로 들을수 있습니다. 리스트의 편곡은 크게 3가지 (교향곡이나 Overture등의 관현악곡, 오페라음악, 가곡)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러한 편곡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베토벤 전교향곡의 피아노편곡, 슈베르트 주요가곡집의 피아노편곡을 들 수 있습니다.
슈만/리스트 Widmung
위 곡은 슈만의 가곡집 Op.25 Myrthen의 첫번째 곡이며 리스트의 편곡이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습니다. 올려드리는 유튜브사이트는 여러 피아니스트들의 Widmung연주를 비교하게끔 들려줍니다.
헨델/리스트 Almira
헨델의 오페라 Almira에 나오는 사라방드를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하였습니다. 헨델의 (몇몇) 곡들이 가지는 장중하고 비극적이며 엄숙한 분위기를 리스트가 그대로 살려냄과 동시에 리스트 특유의 피아노 브라브라를 맘껏 뽐낸 작품으로 언제들어도 멋집니다. 특히 곡의 분위기가 또 다른 다른 유명한 헨델의 사라방드 d단조(Keyboard Suite HWV437)와 유사합니다.
모차르트/리스트 Lacrimosa in Requiem
모차르트의 장송곡중의 Lacrimosa입니다. 리스트는 Mozart의 Requiem에서 정확히 두 부분을 (Confutatis와 Lacrimosa) 피아노로 편곡하였는데 아래에서는 둘 다 연주를 하였습니다. 갑자기 예전에 임신한 자기 와이프에게 이 곡을 못듣게 한 (좋은 것만 생각해야 된다는 이유로) 제 친구가 생각납니다.
멘델스존/리스트 노래의 날개위에 (요것도 유명하죠. 지금도 어느 fm방송에서 시그널뮤직으로 사용됩니다.)
멘델스존/리스트 결혼행진곡 (한여름밤의 꿈; 결혼식을 다시한다면 식장에서 사진찍을 때 이 음악을 틀어놓고 싶습니다???)
벨리니/리스트 Norma
베를리오즈/리스트 환상교향곡
베토벤/리스트 교향곡7번 2악장(알레그레토)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나그네 전곡을 리스트편곡으로 올려드립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나그네를 끝까지 들어보신적이 없으신 분은 (또는 피셔-디스카우의 독일어에 별 감흥을 못느끼시는 분은) 순수하게 피아노로만 연주된 위 전곡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집은 클래식음악역사의 위대한 유산이지만 불행하게도 언어의 장벽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즐겨듣지 않는것 같은데 피아노로만 연주된 위 전곡을 들어보시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위에 올려드린 여러 곡중에 굳이 두 곡만 추천드리면 헨델 그리고 슈베르트를 들어보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피아노 배울 때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순으로, 바로크 고전 낭만시대 곡을 주로 배우는데 리스트 곡을 처음 봤을 때 좀 당황했던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건너뛴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어렵기도 어렵고 표제가 붙어 있는 것도 생소하고 너무도 개성이 강해서요 편곡한 곡은 헌정밖에 몰랐는데 차분히 감상해봐야겠네요!
심박50
IP 112.♡.63.171
09-11
2018-09-11 19: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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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해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음악이 기교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모르겠더군요. 다만 사람들이 어떤 특정부분이 어렵다 그런 말들을 하기에 대충 짐작할 뿐입니다. 리스트의 편곡들말고 그의 오리지날 피아노 작품들도 너무나 방대해서 듣는 사람들이 어디서 시작해야 될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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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배울 때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순으로, 바로크 고전 낭만시대 곡을 주로 배우는데 리스트 곡을 처음 봤을 때 좀 당황했던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건너뛴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어렵기도 어렵고 표제가 붙어 있는 것도 생소하고 너무도 개성이 강해서요 편곡한 곡은 헌정밖에 몰랐는데 차분히 감상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