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동네는 금년에 눈이 자주 오네요. 대체로 눈이 계속 쌓여 있고, 눈이 많이 오는 날은 하루에 7cm정도 추가로 내리기도 합니다.
제 차는 노르딕 타입 윈터 타이어를 장착한 전륜구동차입니다. 금년에는 윈터 타이어의 효과도, 한계도 확실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윈터 타이어가 어떤 노면에서 효과가 있고, 어떨 때는 효과가 미미했었는지 적어봅니다.
윈터 타이어가 4계절 타이어 대비 효과가 높은 노면 순서대로 시작합니다.
- 1위: 전혀 제설하지 않았으며 계속 영하의 날씨라서 표면이 전혀 녹지 않았고, 자동차들이 다녀서 빽빽하게 다져진 눈길. 스키장 슬로프같은 상태.
- 2위: 전혀 제설하지 않았는데, 영상의 낮에 거의 녹았다가 다시 영하가 되어 반질하게 얼어버린 빙판길
- 3위: 눈을 옆으로 치우지 않은 상태에서 염화칼슘/암염만 닿아서 4cm이상 슬러시로 덮힌 길
- 4위: 현재 눈이 내리고 있어 포실포실한 눈이 4cm이상 쌓이는 노면
다만 진짜 블랙 아이스 (영하의 차가운 표면에 찬 비가 내려서 곧장 얼어붙음)는 이 지역에 여간해서는 안 생겨서 경험이 없네요.
1위의 물기 없이 다져진 눈길은 영상 온도의 빗길과 비교될 정도로 접지력이 좋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접지력의 근원은 아래 두가지입니다.
- 타이어 가감속, 선회력이 걸려도 잘 다져진 눈은 유동하지 않고 거의 흙처럼 단단하게 반작용을 받아냄
- 윈터 타이어 고무 재료가 눈과 잘 달라붙음
그래서 윈터 타이어 광고 영상을 보면 이런 노면에서 호쾌하게 주행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위의 빙판길도 단단한 얼음이 유동하지 않고 타이어의 힘을 잘 받아주기 때문에 성능이 좋은 편입니다. 기온이 영하라서 윈터 타이어가 빙판에 쩍쩍 달라붙는 느낌입니다.
3위 슬러시길부터는 도로의 전단강도(剪斷强度)가 낮기 때문에 차가 미끄러지는 것 같습니다. 타이어는 노면의 뭔가를 붙잡지만, 그 노면 바로 아래 층이 힘 없이 좌우로 미끌하게 유동하기 때문에, 마치 묽은 흙진창에서 오프로드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것처럼 도로가 자동차 타이어의 힘을 받아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1번의 다져진 눈길에서 눈을 옆으로 밀어내지 않은 채 염화칼슘/암염만 섞여 깊고 다소 단단한 슬러시의 바다가 되면 이런 3번 상황으로 접지력이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눈을 옆으로 밀어내지 않은 채 염화칼슘/암염만 살포하면 염화칼슘/암염이 다량의 눈에 희석되기 때문에 눈을 완전히 액체화시켜 하수구로 흘려보내지 못하고, 여전히 단단한 슬러시까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3번 상태가 되어 눈을 치우지 않으니만 (=1위 상태) 못한 상태가 되지요.
슬러시 중에서도 염화칼슘/암염의 농도가 높아 겉보기 점도가 낮다면 (=물처럼 묽어진다면) 타이어가 자동차 무게에 의해 슬러시를 완전히 밀어내고 그 밑의 단단한 노면에 도달할 수 있는데, 슬러시의 겉보기 점도가 높다면 타이어가 단단한 노면에 닿지 못해서 슬러시가 마치 그리스 (grease)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여 노면 위에서 타이어가 원활하게(!) 미끄러지도록 합니다.
특히 슬러시의 겉보기 점도가 높으면 타이어가 회전할 때 접지면 밑 슬러시를 재빨리 배출할 시간이 부족해지므로 수막(여기서는 슬러시막)현상이 발생합니다. 빗길에서 발생하는 수막현상과 같은 원리인데, 슬러시는 겉보기 점도가 높기 때문에 빗길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발생하지요.
4위 포실포실 눈길은 슬러시보다도 전단강도가 낮고, 슬러시보다 겉보기 점도는 엄청나게 높기 때문에(사실상 고체) 출발 직후 극히 낮은 속도에서부터 타이어와 노면의 접촉은 방해하고 낮은 전단강도의 고성능 고체 윤활제로서 작용합니다. 일부 기계 윤활유에 첨가되는 흑연처럼, 고체이면서도 낮은 전단강도를 써서 고체 윤활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렇게 포슬포슬 눈이 쌓이는 길에서는 윈터 타이어도 별로 장점이 없더군요. 4계절 타이어보다 낫지만, 1위 다져진 눈길과 동일한 "눈길"로 간주하고 윈터 타이어 성능을 끌어내려다가는 큰 코 다치겠더군요.
그래서 제가 사는 동네는 출퇴근 시간까지 눈이 그치지 않으면 제설차가 지나갔던 길도 이내 위의 4위 노면 상태가 되어, 눈길 운전의 고인물들이 많은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퇴근 시간이 두 배가 되곤 합니다.
경험상, 이 상태도 은근히 미끄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동네에서 염화칼슘의 저가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천연 암염은 조해성이 없어서 눈이 말라버리면 건조한 흰색 소금밭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