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영국에서 현대 NF쏘나타를 타다가 결국 한국까지 이 차를 직접 데려온 사람입니다. 현재는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일병 1호봉으로 막내 생활 중인데요, 예전에 여기 굴당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렇게 근황을 업데이트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ㅎㅎ
처음 이 차를 만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 당시 차가 정말 간절하게 필요했습니다. 인턴과 취업 준비 때문에 영국 여기저기를 다녀야 했는데, 기차 비용이 너무 비싸서 현실적으로 부담이 컸거든요. 그래서 한국차이면서 디젤, 수동, 디자인 괜찮고 내구성 좋은 세단, 가능하면 밝은 색 인테리어를 갖춘 차량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사실 그 기준을 맞추는 건 NF쏘나타나 마젠티스(로체)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영국 중고차 사이트(autotrader UK)를 뒤적거리던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차량 광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목부터 아주 솔직했습니다. “수리용 차량(Spares or Repair)”이라는 문구와 함께, 1단과 후진 기어가 잘 안 들어가고 상태가 좋지 않아 싸게 내놓았다는 설명이었죠. 원래는 그냥 폐차를 하려다가 전 주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품용이나 수리용으로 올려둔 차량이었습니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상태는 더 심각했습니다. 광이 다 죽어버린 페인트, 심하게 긁혀있던 휠, 휠하우스 주변엔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녹, 흐려진 헤드라이트, 작동하지 않는 카오디오 데크까지… 실내 역시 선바이저가 부러져 있었고, 럼버서포트 레버도 빠져 있었으며 시거잭엔 녹까지 슬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치 당시 제 처지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당시 저는 영국에서 혼자 유학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외면당하는 그 차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얘는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보다 더 외로워 보이고 더 간절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해외에서 혼자 어떻게든 현지인과 연애도 하고 교우관계도 원만히 맺으며 살아남고 있었지만, 이 차는 그저 기어가 잘 안 들어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폐차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저는 이 차를 직접 보러 갔습니다. 아니, 폐차 직전에 놓인 차를 구하러 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전 주인은 가격을 £750에서 £550까지 깎아줄 테니 빨리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일정 기간 안에 팔리지 않으면 진짜로 폐차를 보내겠다는 말도 덧붙였죠. 그래서 바쁜 일정을 미루고 친구들과 함께 케임브리지로 달려갔습니다.
실제로 본 차는 사진보다 더 초라하고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헤드라이트는 뿌옇게 흐려 있었고, 뭔가 을씨년스럽고 힘없이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전날 미리 충전을 시켜놨다는 배터리는 막상 그날 아무리 점프스타트를 해봐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전기장치만 간신히 켜질 뿐이었죠.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씨름한 끝에야 가까스로 시동이 걸렸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아보는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얘를 데려갈까?” 하는 마음과 함께 이 차를 살려보고 싶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지만, 그때 저는 가진 돈을 다 써서 이 차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자 그 말썽이던 기어가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엔진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고, 주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 차가 저에게 “고마워, 한 번 더 믿어줘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이 차는 저의 유학생활에서 엄청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녹 방지 스프레이를 정기적으로 뿌려주고, 순정 매트도 구해 깔아주고, 틈틈이 점검과 경정비를 해주며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영국의 좁은 골목길도, 비 오는 날의 고속도로도, 새벽 안개 속의 공항 가는 길도, 수트를 입고 면접을 보기 위해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이 차와 함께였습니다. 힘들고 지친 날이면 이 차 안에서 펑펑 울기도 했고, 밤이면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제 삶의 가장 힘든 순간들을, 이 차는 모두 지켜봐 준 셈이죠.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차를 팔거나 폐차하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웠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폐차 견적도 받아보고 중고차 사이트에 매물로 올려봤지만, 워낙 희귀한 차량이다 보니 연락 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그나마 연락 오는 건 사기꾼들뿐이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다행히 사기는 안 당했습니다.)
결국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 차를 꼭 한국으로 데려가자’고요. 이 차는 이미 제 삶의 일부였고,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 마음의 밑바닥엔 제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타셨던 우리 가족의 첫 차였던 04년식 은색 라세티를, 5만키로 밖에 안 탄 차가 미션에 이상 생겼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폐차장에 보냈던 기억도 있었어요.그때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너무 어린 시절에 친구들 부모님 차에 비해서 옵션이 적고 차가 작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다가, 뒤늦게 그 차에 애정이 붙고 나중에 성인되면 그 라세티를 제가 끌고 다니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엔 폐차가 되었고, 그 아쉬움과 후회가 쏘나타에 투영됐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부터 정신없이 준비했습니다. DVLA에 직접 수출 신고를 하고, 복잡한 이삿짐 조건을 맞추고, 컨테이너 운송을 예약하고, 한국 세관 통관 절차까지 모두 직접 처리했습니다. 관세사조차 처음 보는 사례라며 놀랐지만, 결국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몇 달 뒤 부산 신항에서 컨테이너 문을 열었을 때, 컨테이너와 세관 보세창고에서 몇 달간 방치되었던 그 차는 배터리 단자를 분리하지 못했음에도 점프 스타트 없이 곧바로 시동을 걸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울컥했습니다. “너도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고, 사이드브레이크와 하부 부식 같은 문제들에도 신규검사를 무사히 한 번에 통과했습니다.
지금 이 차는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조용히 쉬고 있습니다. 아직 손볼 곳이 많지만, 서두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 차가 제게 준 따뜻함과 위로, 그리고 말없이 곁을 지켜준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만큼 고마운 존재가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굴당 여러분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정비나 관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저에게 부품 정보부터 세부적인 정비 노하우까지 하나하나 알려주셨고, 심지어 내수형 NF 시승 기회까지 제공해 주셨죠. 굴당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낡은 중고차일 수 있지만, 제게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견디고 이겨낸 친구입니다. 그리고 이 친구를, 천천히, 진심을 다해 복원해 나갈 생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 다읽고나니.. 저라도 가져왔을것 같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본진인 한국에서 저렴하게 잘 수리하셔서 오래오래 타시기 바랍니다 ㅎ
영국에서 타던 차를 한국에서 가져와서 탄다니..이건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수가 ㅎㅎ
마음이 참 따뜻하신 분 같아요.
한국에서도 하시는 일 모두 잘되시길 바랍니다. :)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ㅎㅎ
앞으로도 좋은 추억 많이 쌓으시길 빕니다!
읽으면서 눈물이 나네요 정말이지 인생의 친구네요 ㅠ
시간이 되신다면 만나뵙고 싶습니다! 지역이 멀어도 찾아갈께요! NF로 할 짓 못 할 짓 다 해봐서 나름... 현 상황에서 NF운용법도 잘 알고 있어 도움 드릴 수 있을 것 같고, 순정에서 조금은 멀어졌지만 시승도 도와드릴 수 있구요. ㅎㅎ
연락드릴 방법을 모르겠네요. 인스타그램 주소 남깁니다! (Nakchun_K)
나는 당신의 자동차입니다. 당신의 빛나는 인생입니다. Live Briliant
밝은 미래가 함께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침착맨 만두콘이 생각 나네요
부럽습니다
현대 마케팅 담당자분들 빨리 모니터링해서 선물 증정식도 하고 광고도 만드세요 ㅋㅋ
멋있습니다 ㅎㅎ
저도 차를 특이하게? 구입해서 기억에 남는데 우연찮게 주차장에 전 주인분이 차 팝니다라고 올려놓은 팻말을 직접 연락해서 단지내에서 거래했었습니다 ㅎㅎ
지금은 다른 차량을 주로 타다보니 안타고 방치되어있어 운전초보인? 처제 한테 줬는데.. 처제가 사고를 많이 내고 관리를 잘 안하는것 같아 아깝더라구요^^;
저도 보름전까지 07년식 타다가 폐차하고 새차 샀는데
정말 좋은차입니다
일단 군생활 다치지 말고 건강히 하셔요 ㅎㅎㅎ
너무 멀쩡했는데…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 잘 달려주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ㅎㅎ
그리고 NF는 저 그릴 디자인이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도면 사랑 아닙니까!!
저도 참많이 공감하는게 지금타고있는 12년식 SM5는
제 능력으로 첫차를 뽑아서 결혼도 하고 첫째 둘째 낳고 울 가족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고 가족 모두가 키우는 반려동물 존재처럼 대하고있습니다ㅎㅎ
한번씩 회사 법인차를 타고 올 때면 첨단 옵션들 때문에 차바꿀까? 하고 물어보면 애(SM5) 듣는다고 뭐라 합니다.
더이상 못탈때까지 쭉 함께하려고 하는데
저희보다 더 한 마음 이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