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화재는 종종 이슈가 됩니다. 예전 BMW 화재 사건이나 최근의 테슬라 화재 사건 등이 그렇죠.
그럴 때면 차량 화재 통계가 소환됩니다. 한국에서만 매년 4,000~5,000건의 차량 화재가 발생한다. 하루에 16건씩 발생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현기차아니냐? BMW가 혹은 전기차가 화재가 더 잘 난다고 볼 수 있느냐? 뭐 이런 식으로 통계를 소환하(기 시작하)곤 합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현기차는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노후차량이 많다. 상용차가 많다. 기타 등등 여러가지 얘기가 나오죠.
이 글에서는 가능하면 건조하게 차량 화재 관련 통계를 살펴보고, 거기서 도출할 수 있는 사실관계는 어떤 어떤 것들이 있을지 좀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해에 걸쳐서 살피는 것은 제 역량을 벗어나므로 2019년에만 집중해보도록 하죠.
일단 두 가지 기본적인 공식 통계가 있습니다.
▶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통계분석 2020년판(2019년 통계)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통계분석에는 '차량 화재'에 대한 자료는 없습니다.
단지 '교통 관련 전체 통계'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굵직한 숫자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19년 >
등록차량: 23,677,366대
교통사고 건수(*): 229,600건
전체 교통사고(**): 1,292,864건
사망자수: 3,349명
'교통사고 건수'와 '전체 교통사고'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교통사고 건수: 경찰에 접수된 인명피해를 수반한 사고
* 전체 교통사고: 보험(과 공제조합)에만 접수된 사고를 포함한 전체 사고(경찰 접수 사고 포함&중복제거)
교통사고 건수에서의 인명피해는 상당히 가벼운, 그러니까 목이 아파서 진료 받아봤다는 정도까지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 접수를 넘어서 경찰에 신고까지 된 사건이라는 뜻이므로, '전체 교통사고'에 비하면 좀 더 중한, 부상자가 발생한 정도의, 차에 상당한 충격을 준 사고라는 뜻입니다. 사망자는, 상상하기 어려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경찰 접수사고가 전체를 포괄한다고 봐도 됩니다. 이하에서는 주로 교통사고 건수를 우선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차량 화재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소방청 자료를 봐야 합니다.
▶ 2020 소방청 통계연보 (2019년 통계)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
전체 화재 통계는 넘어가고 차량 화재만 확인해봅시다.
2-3-1-12. 연도별 차량 화재 현황
< 2019년 >
차량 화재 발생: 4,710건
사망: 41명
부상: 136명
네, 여기서 말하는 차량 화재 발생 건수가 서두에서 처럼 널리 인용되는 연간 한국의 차량 화재 발생건수 4~5천건의 근거입니다.
이 숫자 자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실제 해석되는 방식에서 커다란 오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차량 화재 ≠ 교통사고 화재'라는 점이죠.
즉 4,710건은 교통사고로 인해 발생한 화재 건수가 아닙니다.
'교통사고 화재'는 소방청 연감의 '2-3-1-5. 원인별 화재 현황'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2019년 교통사고 화재: 433건 (전체 차량 화재 건수의 9.2%)
흔히 인용되어 왔던 4천건이니 5천건이니 하는 사고 건수는 교통사고와는 무관한 수치이며, 교통사고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차량 화재가 전체의 90%가 넘는다는 뜻입니다.
자동차 화재, 10대 중 8대 주차 후 10분 이내 발생
https://auto.v.daum.net/v/nIN1VjRKXZ
즉 주정차 중 발생한 화재가 전체의 80%가 넘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주차 후 10분 이내에 발생합니다. 이는 '주행 자체가 공냉'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기사에는 10대 중 8대라고 되어 있는데, '전체 차량 화재의 80%'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래에서도 관련설명이 나오겠지만, 주정차 직후 발생한 화재는 전체 차량 화재의 70%선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차량 화재의 원인을 좀 살펴봅시다.
서울시, 최근3년간 자동차 화재유형·원인분석
http://www.cartv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388
차량화재 원인은 전기적 361건(26.3%), 기계적 323건(23.6%), 미상 288건(21.0%), 교통사고 88건(6.4%) 등의 순이었다.(...)
서울시의 통계에서는 교통사고로 인한 화재가 전체 차량화재의 6.4%에 불과합니다. 가장 커다란 부분은 전기적, 기계적 요인에 의한 발화인데, 쉽게 말하면 '차량 배선이나 부품의 노후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위에 '주행 자체가 공냉'이라고 했습니다. 즉 주인이 차를 세우면(그리고 시동까지 끄면), 냉각시스템도 따라서 멈추고, 한동안 엔진룸 온도는 더 올라가고, 결국 노후한 배선이나 불량 부품의 발화로 이어진다는 얘기죠.
아무튼 전체 차량 화재 통계를 좀 살펴봤는데요. 사실 교통 사고로 인한 화재가 아닌 다른 원인의 차량 화재는 교통 안전의 측면에서는 걱정의 최우선 순위는 아닙니다. 몇년전의 BMW 연쇄 화재 사건에서도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었습니다. 주정차 중이면 화재가 나도 탑승자들이 피할 수 있고, 주행중 엔진룸에서 연기가 올라와도 갓길에 세우고 대피할 정도의 시간 여유는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위험한 쪽은 '교통사고로 인한 화재'입니다.
차량 화재로 인한 사망자, 부상자 대부분은 교통사고 화재에서 발생합니다. ('거의'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밝힙니다.)
물론 교통사고 화재 또한 차량의 노후함이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겠죠.
부상자가 발생하고 경찰에 접수되는 정도의 교통사고가 났을 때 차량에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9년 기준)
433건 / 229,600건 = 0.19%
대략 교통사고 500건당 화재 1건이 발생합니다. 전체 차량 등록대수로 따진다면 ...
23,677,366대 / 433건 = 54,682
연간 5만 5천여대당 1건꼴로 교통사고 화재가 발생합니다. 차량 화재에 대해서 비율을 따져본다면 ...
23,677,366대 / 4,710건 = 5,027
연간 5천대당 1건 꼴로 차량 화재가 발생합니다.
이런 식으로 발생한 차량 화재에서 소방청 기준 사망자는 41명입니다. 주의할 점으로 교통사고 화재 433건으로 인한 사망자나 부상자는 소방청이 따로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까지 밝혀줬으면 이야기가 더 편했을텐데요. 교통안전 측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표본입니다만, 이 사망사고들에 대한 세부 분석 통계는 발표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수 조사를 해봤습니다. 41명이니까요.
다음과 같습니다. (표는 좀 볼품 없습니다만)
2019년 차량화재 사망사고 분석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
소방청 일일보고를 포함하여 (거의) 전수 조사를 했을 때 '차량화재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52명이었습니다. 조사하다 빠트린 사고사례도 있겠습니다만, 소방청 차량 화재 사망자 통계의 지역별 분포와 비교해보면 그럭저럭 거의 잡아냈다고 보입니다.
사실은 위의 소방청 공식 통계상 차량 화재 사망자 41명보다 더 많은 숫자가 집계되었죠. 그 부분은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주요 비율만 본다면
교통사고 화재: 21건, 29명 사망
주정차 중 화재: 17건, 20명 사망
주행중 화재: 3건, 3명 사망
차종별로는 세단 24건, SUV 5건, 승합차 4건, 트럭 6건, 불명 3건 입니다.
의외로 주정차 중 화재 사망자가 많습니다. 20명이나 사망했네요. 하지만 위에 적었듯이 주정차 중 화재는 교통안전과는 연관성이 적습니다. 비고란에 '방화'라고 적힌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주정차 중 차량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대부분 인위적인 방화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쉽게 말해 '자살 방화'입니다. 방화로 밝혀진 사례 외의 기타 화재들도 보도된 내용들을 볼 때는 정황상 차량 자체의 문제로 인한 자연 발화가 아니라 인간적인 요인(자살이나 실화)에 의한 화재로 보입니다. 야산, 임도, 외딴곳, 폐가에 주차된 차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는데, 불을 끄고 보니 뒷좌석에 번개탄, 가스버너, 기름통 등이(...) 식의 이야기 입니다.
주행중 혹은 주정차 중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 중 2~3건 전후 정도가 차량 자체 발화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주행중 사고 3건만 보자면 2월 4일 사고는 주행중 운전석에서 먼저 화재가 발생하고(차량 요인으로 보입니다), 그 후에 들이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입니다. 또 12월 5일 사고는 택시에 탑승한 승객이 차내에 불을 질러서 타죽고, 운전사는 탈출한 사고입니다. 1월 19일 사고는 항구의 부두를 주행하던 싼타페가 차내 화재가 발생하고, 부두 아래로 추락 운전자 사망한 사고네요(인간 요인으로 보입니다). 또 교통사고 화재 중 5월 3일 사고는 차량이 목재소를 들이받고 목재소 내부의 인화 물질에 불이 붙은 사고 입니다.
교통사고 화재에 의한 사망자는 29명인데요. 각 통계 항목을 아울러 살펴볼 때 이 29명의 일부는 소방청 통계연감의 연간 사망자 41명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보입니다. 이는 29명의 사망자 중 일부는 화재와 상관없이 교통사고의 충돌(충격) 자체로 사망(즉사)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2월 14일 사고는 잘 알려진 겨울철 블랙아이스 다중 추돌 사고인데, 화재 차량에서 발생한 사망자이긴 하지만, 통계를 교차해보면 소방청 통계상의 화재 사망자로는 잡히지 않는 듯 합니다. 혹은 화재와 상관없이 현장에서 구조됐지만, 나중에 병원에서 사망한 경우도 있고요. 대신 주정차중 화재 사망자는 상당수(명백한 방화 사망자는 제외될 수도 있습니다. 1월 10일의 택시기사 분신 사례라든가?) 포함되겠지요. 대략 추론하자면 ...
주행 중 혹은 주정차 중 화재 일부 제외 + 교통사고 화재 일부 제외 = 소방청 통계 41명
이런 식으로 집계되리라 보입니다. 역으로 주정차 중 화재로 인한 사망자 대부분은 경찰이 집계하는 교통사고 사망자에서는 제외될 것입니다.
이렇게 추려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차량 화재 사고 사례, 즉 '교통사고나 차량 결함으로 차에 불이 붙고, 운전자나 탑승자가 그 불에 타죽은' 사례는 전체 사고 표본에서 그렇게 비율이 높지는 않습니다. 연간 20명(20건) 전후인데, 전체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의 0.6~0.7% 정도입니다.
기존에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화재 발생 빈도를 비교해보면 전기차가 높지 않다는 주장들을 종종 봐왔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는 좀 걸러볼 필요가 있겠죠. 차량 화재의 주된 요인은 '차량 노후화'(전체 건수 면에서) + '인간의 실화/방화'(인명 피해 면에서) 입니다. 이 두가지 요인 모두 전기차라고 해서 피해갈 수는 없는 부분들입니다. 전기차들의 연식이 누적될 수록 이 부분의 위험도도 계속 상승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궁금한 부분은 이걸 겁니다.
"같은 정도의 교통사고가 차량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에서 내연기관차량과 전기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없을까?"
"교통사고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그런데 사고 충격으로는 죽지 않았을 탑승자가 차량 화재로 죽거나 추가 피해를 볼 확률에서 내연기관차량과 전기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없을까?"
이는 이제까지 확보된 통계만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 전기차 쪽의 표본이 매우 적기 때문이죠.
이번에 테슬라 차량에서 교통사고 화재가 발생하여 탑승자가 사망한 사례가 한 건 발생했는데요. (테슬라 차량의 화재 발생 자체가 처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테슬라 모든 모델의 국내 누적 판매량은 14,000대 전후(?) 정도로 보입니다. 그 중 올해 1만대 이상 팔렸겠죠.
이 정도 숫자라면 차량의 노후 정도를 따지지 않고 단순 비율로 나눴을 때, 연간 0.25대의 교통사고 화재가 발생하는 비율입니다. 즉 테슬라의 경우엔 이번에 1건 발생한 것으로 이미 한국 교통사고 화재 전체 발생 비율의 4배가 된 셈입니다. (사망자로는 더욱 그렇고) 물론 표본이 적어서 이걸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미국 쪽에선 좀 더 표본이 쌓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관련 연구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