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좀 부탁드려요 대학교 과젠데 너무 어렵네요 ㅠㅠ
홍대 앞에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택시를 탔다. “인사동!” 따블로 주기로
했다. 기분이 좋아진 택시 기사가 요즘 좀체 않는 정치 이야기를 했다.그
의 어투에 억눌러진 사투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전라도 사람이라고 했
다. 안심은 나를 더 피곤하게 했고 여전히 좀 창피스러웠다. 늦겨울의 짧
은해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미루나무 숲에 동그란 구멍을 내놓았다.잠
시 후 그 맑은 구멍이(나는 그것이 작은 손거울 같다고 생각했는데) 영안
실로 들어갔고, 그리고 쨍그렁 하고 거울이 깨어져버렸다. 그 순간 온 세
상 사방데가 정전되듯 갑자기 깜깜해졌다. 당황한 택시기사의 손이 바르
르 떨리면서 실내등을 켰다. 침묵. 나는6시 반에 내 개인전 오픈이 있으니
돌아서라도 빨리 좀 가자고 했다. 침묵. 나는 아내가 담배 피우는 대신
먹으라고 준 안주용 해바라기 씨앗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씹어 먹었다.
차가 인사동 입구 구 민정당사 앞에 섰다. 지갑을 꺼내고 운전수를 보았는
데. 아니. 이럴 수가! 오류동이 차고인 광명택시, 서울 노 6112의 이현섭
씨는 온데간데없고, 식육점의 붉은 형광빛 같은 실내등만 켜져 있었다. 나
는 그것이 피라고 생각했고, 소스라치게 놀라 호주머니에서 해바라기 씨앗
들을 꺼내어 운전석에 뿌리고 도망쳐나왔다.
화랑 학고재에 15분 늦게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이토 나리히코 교수가 웃
으면서 나왔다.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전시는 다 끝났으며 사람들도 다
돌아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실망했지만 이토 상을 데리고 저
녁을 먹으러 이모집으로 갔다. 모듬전이나 홍어찜을 잘하는 그 한정식집
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체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미로 같은 골목만을
한참 헤메었다. 러시아 공관 뒤편짝까지 갔다가 복사꽃 가득 핀 신궁여관
을 돌아나오자 바로 도쿄 신주쿠 고르덴 가가 나왔다. 60년대 동경대 좌파
들이 숨어들어와 테이블 하나만 놓고 술집들을 하고 있는 골든 街를 3년
전 이토씨가 안내한 적이 있는데 거시서 이토 씨가 이모집을 찾아내는 것
이 아닌가. 내가 놀란 것은 초행인 그가 이모집을 찾았다는 데 있지 않고
이 인사동 골목이 서울이 아니라 사실은 동경 신주쿠라고 그가 말한 데 있
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뒤에 두고 그가 이모집 문을 열었다. 대문이
삐익 소리를 내는 것은 예나 같았다. 그러나 그 밥집은 어두운 지하 계단
을 한참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고, 이토 씨는 라이터를 켜서 내 발걸음을
도와주었다. 그가 작년에 보스니아 내전에 평화 사절로 다녀온 이야기를
했으나 지하의 공명 때문에 말이 울려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식
당 안에는 사람들이 몇몇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죽은 사람들이 아닐까. 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나는
검은 늑대의 얼굴을 한 신상이 창을 들고 지키고 있는 이집트 묘실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친절하고 신사적이었던 이토 나리히코의 표정이 갑
자기 표변하여 굳어 있었고, 그는 어떤 의식을 집전하듯, 나를 작은 별실
로 안내했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그 방의 정면에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
어서 실내는 어두웠지만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토는 잠깐 전화하고
오겠다며 나갔다. 방 가운데 사각형의 검은 탁자가 있고, 거기에는 서류들
이 놓여 있었다. 그 서류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는 이미 나는 잘 알고 있
었다. 내 호주머니에는 해바라기 씨앗이 없었다
#CLiOS
홍대 앞에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택시를 탔다. “인사동!” 따블로 주기로
했다. 기분이 좋아진 택시 기사가 요즘 좀체 않는 정치 이야기를 했다.그
의 어투에 억눌러진 사투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전라도 사람이라고 했
다. 안심은 나를 더 피곤하게 했고 여전히 좀 창피스러웠다. 늦겨울의 짧
은해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미루나무 숲에 동그란 구멍을 내놓았다.잠
시 후 그 맑은 구멍이(나는 그것이 작은 손거울 같다고 생각했는데) 영안
실로 들어갔고, 그리고 쨍그렁 하고 거울이 깨어져버렸다. 그 순간 온 세
상 사방데가 정전되듯 갑자기 깜깜해졌다. 당황한 택시기사의 손이 바르
르 떨리면서 실내등을 켰다. 침묵. 나는6시 반에 내 개인전 오픈이 있으니
돌아서라도 빨리 좀 가자고 했다. 침묵. 나는 아내가 담배 피우는 대신
먹으라고 준 안주용 해바라기 씨앗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씹어 먹었다.
차가 인사동 입구 구 민정당사 앞에 섰다. 지갑을 꺼내고 운전수를 보았는
데. 아니. 이럴 수가! 오류동이 차고인 광명택시, 서울 노 6112의 이현섭
씨는 온데간데없고, 식육점의 붉은 형광빛 같은 실내등만 켜져 있었다. 나
는 그것이 피라고 생각했고, 소스라치게 놀라 호주머니에서 해바라기 씨앗
들을 꺼내어 운전석에 뿌리고 도망쳐나왔다.
화랑 학고재에 15분 늦게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이토 나리히코 교수가 웃
으면서 나왔다.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전시는 다 끝났으며 사람들도 다
돌아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실망했지만 이토 상을 데리고 저
녁을 먹으러 이모집으로 갔다. 모듬전이나 홍어찜을 잘하는 그 한정식집
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체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미로 같은 골목만을
한참 헤메었다. 러시아 공관 뒤편짝까지 갔다가 복사꽃 가득 핀 신궁여관
을 돌아나오자 바로 도쿄 신주쿠 고르덴 가가 나왔다. 60년대 동경대 좌파
들이 숨어들어와 테이블 하나만 놓고 술집들을 하고 있는 골든 街를 3년
전 이토씨가 안내한 적이 있는데 거시서 이토 씨가 이모집을 찾아내는 것
이 아닌가. 내가 놀란 것은 초행인 그가 이모집을 찾았다는 데 있지 않고
이 인사동 골목이 서울이 아니라 사실은 동경 신주쿠라고 그가 말한 데 있
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뒤에 두고 그가 이모집 문을 열었다. 대문이
삐익 소리를 내는 것은 예나 같았다. 그러나 그 밥집은 어두운 지하 계단
을 한참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고, 이토 씨는 라이터를 켜서 내 발걸음을
도와주었다. 그가 작년에 보스니아 내전에 평화 사절로 다녀온 이야기를
했으나 지하의 공명 때문에 말이 울려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식
당 안에는 사람들이 몇몇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죽은 사람들이 아닐까. 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나는
검은 늑대의 얼굴을 한 신상이 창을 들고 지키고 있는 이집트 묘실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친절하고 신사적이었던 이토 나리히코의 표정이 갑
자기 표변하여 굳어 있었고, 그는 어떤 의식을 집전하듯, 나를 작은 별실
로 안내했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그 방의 정면에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
어서 실내는 어두웠지만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토는 잠깐 전화하고
오겠다며 나갔다. 방 가운데 사각형의 검은 탁자가 있고, 거기에는 서류들
이 놓여 있었다. 그 서류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는 이미 나는 잘 알고 있
었다. 내 호주머니에는 해바라기 씨앗이 없었다
#CL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