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할수록, 삶을 살아갈수록 느끼는 진리로 느껴지는 문장이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예를 들어보자. 하나의 사회문제에는 수많은 원인이 존재한다.
부동산 가격 문제를 생각해보자. 과거 은행이율, 현재 5060이 가진 유일한 자산, 계급이동의 사다리, 교통정책과의 연계, 재산세를 비롯한 관련 세금
끝도 없다. 그러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감정은 '절망감'이다.
다중회귀분석처럼 뭐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열거할 수는 있지만, 그 원인이 200가지라면 해석과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
이건 개인의 인생도 똑같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를 고민하면, 그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라는 답밖에 할 수가 없다.
즉, 우리는 어떤 결과에는 특정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다.
이걸 정확히 저격한 책을 교보문고 매대에서 마주했고.
바로 샀다. 너무 재미있다.
이제 시작해보자.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브라이언 클라스 저, 김문주 옮김, 2024, 웅진
1장. 들어가며.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힘
[우연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
1926년 10월 30일. 미국 국적의 여행객인 헨리 스팀슨은 배우자와 함께 일본 교토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다. 스팀슨 부부는 당시 옛 일본 제국의 수도에 깊이 매료 되었다. 그리고 헨리 스팀슨은 1945년 미국의 육군 장관이 되어 원자폭탄 투하 후보자에서 교토를 제외시켰다. 교토 대신 원자폭탄이 투하된 두 도시의 사망자는 거의 20만 명에 육박했다. 한 사람의 여행이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편 전쟁 당시 원자폭탄은 두 도시에 투하될 예정이었는데, 그 중 한 곳이 고쿠라시였다. 하지만 투하 당일 고쿠라시의 날씨가 좋지 않아 원자폭탄 투하가 불가능 했고, 고쿠라시를 대신해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가 나가사키였다.
| "지금도 일본인들은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재앙에서 벗어났을 때 '고쿠라의 행운'이라고 부른다." (20) |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역이 결정된 건, 단순히 한 여행객의 좋은 추억이나 그 날의 날씨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단순한 형태의 원인과 결과로 구조화 하는 걸 배워왔다.
그래서 우리는 원인 X가 결과 Y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구도를 선호하게 되었다.이러한 명료한 관계로 세상을 정제하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복잡한 원인과 결과 관계로 만들어져 있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학살도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 아인슈타인의 탄생, 지질학적 힘에 의해 만들어진 우라늄, 전쟁 상황, 미드웨이 해전이라는 훨씬 다야한 원인 존재한다. 이 중 하나의 선행 요인만 변경되었어도 결과 자체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도 고쿠라의 행운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여전히 자기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행운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와 같은 우연성을 무시하며 살아간다.
| "우리는 단순한 인과관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만을 추구하면서, 간략하게 줄인 동화책 같은 현실에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X는 Y를 야기하고, X는 언제나 주요 요인이어야 하며, 절대로 사소하거나 임의적이거나 우발적인 변덕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측정하고 구분해서 그래프로 그릴 수 있고, 적절한 개입이나 '넛지(nudge)'만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틀리기도 하는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가, 점쟁이에게 끌려다니면서도 거의 항상 확신에 차서 살아간다. 복잡한 불확실성과 마음은 편하지만 틀린 확실성 사이에서 당연하게도 안락함을 고른다. 그러나 아마도 세상은 그리 단순한 곳이 아닐 것이다. 명백한 우연에 의해 바뀌어버리는 세상을 우리가 이해할 수나 있을까?" (24) |

[하나의 몸짓으로도 모든 별자리가 바뀔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운명은 매우 우연한 원인들의 복합 속에서 나온 결과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운명은 매우 취약하다. 우리가 개입할 수 있을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러지 않은 척을 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즉, 왜 모든 일이 벌어지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안성맞춤인 해결책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학, 철학, 물리학, 인류학 모두 마찬가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이 지점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진 세계관 전체를 뒤집어야 함을 제시한다.
이 책은 잡다한 인간 지식의 영역에서 제공되는 조각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퍼즐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인간 경험의 세 가지 측면을 탐구한다. 첫째. 인류는 어떻게 지금 상태에 이르렀으며, 왜 그것이 중요한가. 둘째. 우리의 삶은 통제할 수 없는 우연한 사고들로 인해 어떻게 방향을 바꾸게 되는가. 셋째. 왜 우리는 현대사회의 역동성을 오해하는가가 그것들이다.
| "나는 (환멸에 빠진) 사회과학자다. 오랫동안 이 세상이 우리가 그런 척 가정했던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찜찜함을 품고 있다가 환멸에 빠졌다. 현실의 복잡성을 해결하려 애쓸수록, 우리가 모두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부터 역사와 사회적 변화를 설명하려는 미신에까지 이르는 안락한 거짓말 속에서 살아왔다고 더욱 의심하게 됐다. 나는 인류의 역사가 단순히 무질서와 확률, 혼돈으로 규정되는 세상에 질서와 확실성과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꾸준하지만 헛되이 투쟁하는 과정일까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난삼아 매혹적인 생각을 한 가지 떠올렸다. 우리와 우리 주변의 모든 상황이 그저 다 우연이며길들일 수 없는 우주가 던져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난잡하고 불확실한 현실을 맞히는 법을 배우고 이 혼돈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29) |
[어떤 일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시작부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이 우리의 삶을 더 많이 바꾼다는 사실에 반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 우선 한 가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가깝다. 우연치 않게 발생한 작은 사건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후자에 무게가 실릴 테고, 반대로 작은 사건이 진화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전자에 무게가 실리게 되기 때문이다. 알람을 못 들어서 늦게 일어난 건 사건이지만, 결과적으로 회사에 지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큰 사건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수렴성)라는 주장과 '어쩌다 그럴 수도 있지'(우발성)라는 사상적 대립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라는 문장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고고한 질서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진화이론가였던 기무라 모토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연구했다. 기무라 모토는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마다 연구원들과 돌연변이가 일어난 타당한 설명과 이유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기무라 모토와 연구원들은 유전적 돌연변이는 아무런 규칙적 반복이나 이유 없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무라 모토의 연구는 진화생물학 분야를 재편했고, 신선한 통찰을 학계에 전파했다. 이는 우리의 삶과 사회가 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환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길을 제시한다.
세상에 작은 변화는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반면 모든 일에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기무라 모토가 1945년 8월 교토대학의 학생이 되었는데, 헨리 스팀슨 부부가 1926년 교토가 아닌 오사카에 갔다면 기무라 모토의 연구가 없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Voll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