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께서는 한국 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다. 부대원이 대부분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당시의 기억 때문인지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실 때가 있다. 전쟁은 베테랑 군인이든 초보이든 간에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긴다. 미국 출신의 원어민 선생님과 오래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미국에는 군인들의 심리 상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좋아서 싸우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전쟁을 치른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그렇지만 그 어떤 것이든 피해 없는 전쟁은 없다.
작가 스스로 반전 소설이라고 강조하는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공상 과학 소설의 색채를 띤다. 주인공 빌리가 시간 이동을 하고, 그 이동 중 일부는 외계인 사회에 다녀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이나 기계를 이용한 계획적인 여행이라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르는 공포스럽고도 신비한 여행이다. 혹시 전쟁을 겪고 살아가는 동안 주인공이 정신적인 문제를 갖게 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상 속 세상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본다면 정신 질환자의 머릿속에서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빌리는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으로 향한다. 전쟁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춥고 먹을 것 없는 상황에서 드레스덴으로 긴 이동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그때마다 저자는 ‘그렇게 가는 거지’라는 자조 섞인 말을 계속 붙인다. 심지어 김 빠진 샴페인에도. 숱한 죽음을 목격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제5도살장은 그가 수용되어 있던 건물에 적힌 글자이다. 공습으로 인해 그곳마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엄청난 참상을 목격한 그는 외계인에게 가서 지구의 상황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는 묘한 일을 겪게 되지만.
맥락 없이 시간 이동을 반복하다 책이 끝났다. 그 사이에 그는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는다. 한 사람의 눈으로 본 역사의 장면들이 블랙 코미디처럼 그려진다. 씁쓸한 유머와 위트. 수많은 죽음들, 지금도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다. 그들의 삶 속에서는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과 소망이 있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면 이 부분이 아닐까?
“그 사람들이 모두 존엄하게 살고 싶어 하겠지.” 내가 말했다.
“그럴 테지.” 오헤어가 말했다. (247쪽)
책 내용 중 빌리가 영화를 거꾸로 돌려보다가 계속 상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사일이 폭파시킨 바닥을 다시 추슬러 비행기로 되돌아가고, 비행기는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거꾸로 날아간다. 군인은 고향으로 돌아가 고등학생이 되고, 히틀러는 아기로 돌아간다. 전쟁이 나기 전의 상태.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단지 상상일 뿐이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정치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또는 국익을 위해 침공을 하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국민들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안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힘이 없는 나라는 호시탐탐 외세의 침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나라 할 것 없이 동시에 총을 모두 내려놓지 않는 한 이 땅에서 전쟁은 계속되지 않을까? 참 암울하기도 하다.
* 목소리 리뷰